여느 일요일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늦잠을 즐기고 있다.
자고 있는 방문을 삐죽이 열면 지네들 깨울까봐 이불을 얼굴까지 걷어 올리며 깊은 잠을 자는 시늉을 한다. 어떨 때는 끙끙거리며 코까지 골고 있는 모양을 연출하니 나는 그냥 문을 닫고 나온다.
우리가 없는 일요일의 아침 메뉴는 늘 똑같다.
계란 6개를 탁 깨서 신나게 흔들어, 곱게 다진 갖은 야채를 섞어 이른바 계란말이를 해서 커다란 접시에 가득 잘라 놓으면 화려한 만찬이 준비된 것이다.
별달리 요리 솜씨도 없는 나에게 이 넘들이 잘 먹어 주는 것으로 난 엄마 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믿는다.
궁금해 하지도 않으니 묻지도 않는다.
그러나 실컷 잠에서 깨어나 우리가 없으면 문자 한 통 정도 보내주는 효도는 한다.
‘어디에요?’ 혹은 ‘언제 오세요?’ 와 같은 단문의 질문이지만 그 효도도 받아 보면 기분 좋다.
"차가 더러운데......"
욱은 오늘 흥사단 단우님들을 모시고 경주에 가야되는데 더러운 차 때문에 어쩌면 좋을지 내내 신경 쓰고 있다.
나는 들은 척도 안한다.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경주여고 사회 교사로 근무 하시는 박영조 단우님 차를 타기로 했다.
단우님은 장거리 출퇴근의 베테랑답게 가장 값싸고, 도로 사정이 한가하고, 또 시간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도로를 안내해 주셨다.
어디까지는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어디서부터는 국도를 이용하고 또 자동차 전용도로도 이용하고...... 등.
그리곤 도로를 이용하면서 부닥친 몇 번의 아찔했던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 때의 놀람과 두려움을 나 이외 다른 사람들도 당하지 않게끔 반드시 119에 신고해 빨리 해결하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하셨다. 단우님의 이처럼 높은 시민의식과 참여정신으로 아마도 그날의 많은 사고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119 신고 이야기를 듣다가 불현듯 스쳐가는 과거의 황당했던 기억이 떠올라 창밖을 보며 혼자 피식 웃어 본다. 내 평생 딱 두 번의 119 신고 경험 중에서 오래 전의 일을 끄집어내면......
1996년 4월. 이 집에 이사 오고 주민들과의 화합과 단결을 위해 첫 반상회를 열었다.
지금처럼 그때도 ‘모든 일은 가족과 함께’ 라고 외치는 욱을 따라 초등 2년인 다래, 여섯 살 된 바다와 함께 참석했다.
어른들과의 대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우리들 옆에서 앞에 차려진 음식만 주섬주섬 집어 먹다가 특별히 지네들을 위한 이벤트가 없자 다래가 집에 가자고 졸랐다.
나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 더 앉아 있고 싶었다.
처음부터 실실 빠지면 누가 좋아해 주겠는가?
안 그래도 새침때기로 생겼는데......
그래서 다래한테 열쇠를 주어 보냈다.
어린 다래는 엉덩이를 실룩실룩 거리며 우리에게서 벗어나 좋다는 몸짓으로 보무도 당당히 집에 돌아갔다. 그리고는 시간이 흘렀고 오후 11시 30분이 넘어서야 반상회를 위한 모임이 끝이 났다.
역시나 상쾌한 발걸음의 우리 셋.
"띠리리리리 리리리리......"
<엘리제를 위하여>라는 대문 벨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진다.
‘네~’ 하고 뛰어나올 때가 되었는데 음악이 끝나도 다래는 기척이 없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누르고서야 이 넘이 깊은 잠에 빠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엘리제는 열심히 울어서 눈이 뻘겋게 충혈 될 지경이건만 한 번 빠진 잠에서 헤엄쳐 나오지 못하는 우리 다래.
긴급 처방이 필요했다.
열쇠 전문가를 불렀다.
이 분은 설상가상으로 문을 아래, 위, 그리고 걸고리까지 완벽히 단속해 놓아서 문을 해체하지 않고는 열 수 없다는 겁나는 말을 했다.
어쩌지?
그때 TV에서 인기리에 방송되던 긴급구조 119가 생각났다.
위급한 상황에서 119 번호만 누르면 신속 정확하게 집을 찾아 아주 안전하게 인명 구출뿐 아니라, 뱀, 벌, 원숭이 등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능히 처리해 주는 119 구조대원.
당시 꽉 잠긴 집의 대문도 열어주는 방송도 했던 것 같았다.
해보자~!
119 눌렀다.
재빨리 들리는 상대편 음성.
우리 주소지까지 벌써 파악이 되는지 확인 작업을 한다.
"(자신만만하게)저기요, TV에서 보니까 옥상에서 줄 타고 내려와 베란다를 통하여 대문을 열어주던데요......"
"네 그렇습니다만, 119 구조대 차량이 아주 커서 차량이 드나들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자기 머리가 띵하다.
이 야심한 밤에 119 구조대 차가 이 동네 들어오면 동네 사람들은 무슨 난리가 났나 싶어 다 모여들 것이고, 아이구, 생각만 해도 어지럽다.
"(꽁지 내리며 미안한 듯)그러면요. 우리 아들 좀 더 열심히 깨워 보고 안 되면 다시 전화드릴게요."
희망은 없다. 깰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사정을 알고 있는 이웃집에서 자기집에 들어와 자고 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아직은 초면인데 민폐를 끼칠 수는 없다는 생각에 우리 셋은 가까운 여관을 찾았다.
비도 부슬부슬 내렸다.
그때 우리의 모습은 부모한테 야단맞고 집에 돌아가고 싶지만 선뜻 돌아갈 수 없어 동네를 배회하는 아이들 마냥 처량해 보였다.
여관 아줌마한테 욱이 다가가 형편을 설명하고 전화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방바닥에 앉자마자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전화를 걸고 있는 나.
한 10분 쯤 지났을까?
전화기 저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야호~! 다래 일어났다~!"
잃은 아들을 다시 찾은 것만큼이나 기뻤다.
이때 물 주전자를 갖고 막 들어서는 여관집 아줌마한데 우리 아들이 이제 잠을 깼다고 했더니 웃으며 돈도 안 받고 그냥 가라고 하셨다.
우리는 미안해서 거듭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나중에 혹시라도 방이 필요하면 이 여관에 오겠다고 다짐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럴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이것도 세월이라고 이제는 그 여관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요즘도 이 넘들은 잠들면 깨기가 힘들다.
그렇지만 옛날처럼 문을 그렇게 쳐 닫고 있지는 않는다. 희한하게도 우리 식구들은 벨을 누르기 전에 먼저 현관 도어를 열어보는 습성이 있어서 그때 잠겨 있으면 괜히 빨리 안 열어 준다고 심술을 부린다.
그래서 언제쯤 오는가에 맞춰 아예 문을 미리 열어 두는 매너를 보인다.
아니, 이제는 숫자가 달린 전자키로 바꾸든지 해야겠다.
우리 집 남자 셋은 끊임없이 일을 저지르고, 난 뒤치다꺼리 해주고 그리하여 추억은 하나씩 쌓여간다.
2007년 1월 12일.
멋진윤 서.
첫댓글 아이구! 윤단우 낄낄 . 파랑새의 에피소드는 계속된다.
초등2학년이던 다래가 벌써 대학생이 되다니... 세월 참 빠릅니다. 그때 우리 도영이는 3살 이었지요. 하하하! 노진화 단우님 조만간에 또 바빠지시는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장단우님 또 거금 ?원 투자하시고... ㅎㅎㅎ 그래도 대박이 예감됩니다.
대체적으로 그대나 나나 사연들이 길어지네요. 여자들의 입심을 누가 당하랴. 참고 열심히 읽어주는 독자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합시다. 노진화씨, 내글 리플이여? 장부장 리플이여?? 번지수 똑바로 적어주슈
하하하 나도 비슷한 추억이 있다. 바다가 없었으면 여관에서 단둘이 신혼밤을 보내고 푹 쉬었다올건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