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등산일시 : 2014년 10월 10일(금)
◈ 등산코스 : 사당역~관음사~낙성대~서울대~삼성산성지~호압사~석수역 (산행시간 : 4시간 40분)
◈ 등산시간 : 사당역→ 관음사(20분)→ 청동배드민턴클럽(25분)→ 무당골(10분)→ 낙성대(25분)→ 영어마을관악캠퍼스(5분)→ 서울대정문(30분)→ 관악산입구(10분)→ 물레방아(5분)→ 돌산갈림길(20분)→ 보덕사입구(5분)→ 약수사헬기장(5분)→ 삼성산성지(15분)→ 호압사(10분)→ 삼성산(15분)→ 호압사(15분)→ 산림욕장(10분)→ 호암산폭포(15분)→ 연리지(10분)→ 남서울약수터(15분)→ 석수역(15분)
◈ 사당역 가는 길 :
① 네비게이션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1동 1112. 사당역(02-6110-4331)
② 대중교통 - 사당역 4번 출구나와 300m 직진해 언덕위 순복음대학원 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관음사 방향으로 산행시작.
502, 540, N40 4212, 4318, 4319, 5528, 5530, 8155, 서초17
◈ 서울둘레길 5코스 :
관악코스는 사당역에서 출발해 관악산, 삼성산을 거쳐 석수역에 도착하는 코스이다. 관악산 산행은 높은 고도로 등반을 위한 길이 대부분이지만 본 코스는 관악산의 둘레길을 따라서 걷는 코스로 자연경관이 매우 훌륭하고 곳곳의 역사문화유적이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어 볼거리 또한 풍부하다. 대부분의 구간이 숲길로 비교적 난이도가 있는 코스지만 서울의 산림자연환경을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코스이기도 하다.
사당역 4번 출구를 나와 남태령 방향으로 300m 직진하면 언덕 위에 순복음대학원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우회전해 서울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올라가면 관음사 일주문이 보인다.
● 관음사 - 관악산 북동 기슭, 남태령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1943년 이후에 쓰여진 『봉은사본말사지(奉恩寺本末寺誌)』에 의하면 신라 진성여왕 9년(895) 도선대사가 세운 비보사찰(裨補寺刹) 중의 하나라고 전한다. 조선 초기에 쓰여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변계량이 관음사의 절경을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어, 이 무렵까지 관음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입구에는 수령 300여년의 느티나무가 있어 지정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낙성대 방향으로 계단을 오르니 헬기장 겸 공터가 나온다. 여기서 관악산 정상으로 가는 연주대 반대쪽으로 서울둘레길 안내판을 따라간다. 꽃밭을 지나 청동배드민턴클럽 등산로를 오르니 시야가 트이며 봉천동쪽 서울시내가 눈앞에 펼쳐진다.(사진은 무당골)
● 낙성대공원 - 고려시대의 명장 강감찬(姜邯贊, 948∼1031) 장군이 태어난 낙성대에 있는 공원으로 낙성대를 보존하고, 강감찬 장군을 기리기 위해 조성하였다. 1972년 5월 25일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날 때 출생지에 큰 별이 떨어졌다는 전설에 따라 붙은 이름이다. 삼층석탑은 근처 강감찬의 생가터에 있던 것을 옮겨 놓은 것으로 원래 석탑이 있었던 자리인 낙성대유지(落星垈遺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18-14번지)는 서울특별시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어 있다.
● 천주교 삼성산성지 -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앵베르(한국명 범세형) 주교를 비롯하여 성 모방(한국명 나백다록) 신부와 성 샤스탕(한국명 정아각배) 신부의 유해가 안장된 곳이다. 삼성산이라는 명칭은 신라 때의 명승 원효(元曉) ·의상(義湘) ·윤필(尹弼) 등 3명이 수도한 곳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는데, 1901년에 세 순교자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1970년에 사적지로 조성되었다. 1836년 이래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던 모방 신부와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은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각각 자수하여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문초를 받은 후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 효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 호압사 - 1407년(태종 7) 왕명으로 창건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본사인 조계사의 말사이다. 당시 삼성산의 산세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 과천과 한양에 호환(虎患)이 많다는 점술가의 말을 듣고 산세를 누르기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호갑사(虎岬寺) 또는 호암사(虎巖寺)라고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거의 전하지 않고, 다만 1841년(헌종 7) 4월에 의민(義旻)이 상궁 남(南)씨와 유(兪)씨의 시주를 받아서 법당을 중창한 기록이 있다. 1935년 만월(滿月)이 약사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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