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서(篆書)의 미(美)’라 이름 붙인 2008 베이징 올림픽의 픽토그램은 전서체를 기본 형태로 삼아, 동물의 뼈나 청동 유물에 새겨진 고대 중국 서체의 그림문자적 매력과 현대 그래픽의 재현적인 단순미를 결합시켰다.
issue 베이징 올림픽의 픽토그램
Beijing 2008 Pictograms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의 개막.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된 각종 아이콘들을 여기저기서 마주치게 될 터이지만, (비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전세계의 수많은 관중이 지켜보게 될 이 거대한 이벤트의 의사소통 작업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디자인 디렉터인 왕민이다. 이번에 왕민이 이끄는 디자인 팀은 거리 현수막부터 올림픽 메달까지 베이징 올림픽의 모든 디자인을 탄생시켰다. 디자인 디렉터 왕민으로부터 그의 역할을 직접 들어보았다.
2008 베이징올림픽 픽토그램
과거, 현재, 미래
저는 중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입니다. 학업도 중국에서 시작해, 이후 유럽으로 건너 갔지요. 베를린 예술대학과 미국 예일대 예술학부에서 수학한 후, 20여 년간 역시 유럽과 미국에서 후학 양성 및 작업 활동을 계속 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중국으로 돌아올 결정을 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일에 전력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로 디자인 교육과, 2008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디자인 작업 때문이었죠.
현재 중국의 디자인계는 ‘위기(危機)’의 순간에 처해 있습니다. 한자어에서 ‘위(危)’란 위험을 의미하고, ‘기(機)’란 기회를 의미하지요. 다시 말해 위험한 고비로부터 기회가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중국에서는 1천 개 이상의 디자인 학교와 교육 프로그램이 생겼고, 현재 그 결과 수십 만 명의 학생이 대학 수준 정도의 디자인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중국에서 어떻게 디자인을 가르칠 것인가, 서구의 모방이 아닌 학습 방식은 어떤 것인가, 동양의 미학적 지성과 감성을 디자인으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물음들이 더욱 중요해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중국으로 돌아온 것은 바로 현재 목도한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중국인 디자이너로서 저는 정말 운이 좋게도 중국 중앙미원(中央美院, CAFA) 디자인대학의 학장으로 현재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희 학교가 중국에서 워낙 영향력 있는 명문 예술학교인지라, 그곳의 학장이라는 위치 덕에 현재 중국의 디자인 교육 현장에서 제 목소리를 내고 영향력을 미칠 수가 있지요. 오늘 현재 CAFA을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 중국 디자인계의 내일을 이끌 미래의 선도자이자 교육자라고 봅니다. 향후 중국 디자인의 희망과 방향이 바로 그들에게 달려 있지요.
그 결과, 알아보기 쉽고 기억하기에도 쉬운 편리한 픽토그램이 탄생하였다. 중국 전통 예술 형식의 하나인 ‘탁본’처럼, 흑백의 선명한 대비 효과를 솜씨 있게 이용한 베이징 올림픽의 픽토그램은, 움직이는 인간의 형상과 세련되고 미학적인 역동성 그리고 풍부한 문화적 함의를 담아냄으로써, 형식과 관념의 조화 및 통일을 이루어내었다.
베이징 올림픽의 픽토그램은 육상, 조정, 배드민턴, 야구, 농구, 권투, 카누/카약 레이싱, 카누/카약 슬라럼, 사이클, 승마, 펜싱, 축구, 체조, 리듬체조, 트램펄린, 역도, 핸드볼, 하키, 유도, 레슬링, 수영, 수중발레, 다이빙, 수구, 근대5종 경기, 소프트볼, 태권도, 테니스, 탁구, 사격, 양궁, 철인3종 경기, 요트, 배구, 비치발리볼 등 총 35개 종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기념 우표
2008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의 픽토그램. 베이징 올림픽의 픽토그램이 지닌 창의적 컨셉트와 디자인 스타일을 차용하는 동시에, 이전 대회들의 픽토그램을 참고해 장애인 올림픽 종목의 특징적 요소를 적절히 표현하였다.
image courtesy designboom.com
성화 봉송 주자들의 유니폼 디자인
성화 봉송 스태프들의 유니폼 디자인
올림픽 성화의 이송을 맡은 항공기의 디자인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메달은 용 문양이 새겨진 중국 고대의 옥(玉)인 ‘벽(璧)’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것이다. 금과 옥으로 만든 이 메달들은 고결함과 덕을 상징하며, 중국의 전통적인 윤리적 가치와 명예를 구현한 것으로, 중국적인 정취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두 종류의 금연 포스터. 위 포스터는 1639년 청나라 황제의 ‘담배 금령’ 고시 문서를 활용한 것이며, 아래의 포스터는 1604년 영국 제임스 1세가 출간한 책자 ‘담배에 대한 반대(A Counterblast to Tobacco)’를 이용한 것이다. 왕민이 직접 디자인한 것으로, 그는 자신 역시 담배를 피지만 중국에는 흡연 인구가 매우 많다며, 사람들이 담배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돕고 싶었던 자신의 바람에서 나온 포스터라고 이야기한다.
중국의 디자인을 홍보하는 포스터
여러 가지 로고 디자인 :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어도비(Adobe Originals), 버드 하우스(Bird House), 악기 박물관(Museum of Musical Instruments), 이튼 푸드(Eaton Food), HFF 패션(HFF Fashion), 마담 순 재단(Madam Soon Foundation), 포비든 시티(The Forbidden City), 재미 중국회(American China Society)
왕민의 활자 디자인
라이노타이프(Linotype) 사의 ‘미소스(Mythos)’ 서체
Min Wang
왕민
왕민
왕민
1956년 중국 출생. 저장미술학원(浙江美術學院, 현 중국미술학원)을 졸업한 후 베를린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1986년 예일대 예술대학에서 MFA를 취득하였다. 예일대를 졸업한 후에는 어도비 시스템(Adobe Systems) 사에 재직하며 현대 일본에서 쓰이는 한자인 ‘간지(かんじ; ‘漢字’의 일본식 독음)’의 디지털 서체를 개발하였다. 이후 코네티컷의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활동하는 동시에, 어도비 시스템 사에서 그래픽 디자이너 겸 아트 디렉터이자, 그리에이티브 서비스 부문의 디자인 매니저로서의 역할 역시 수행하였다. 1998년에는 어도비 사를 그만두고 에디 리(Eddie Lee)와 함께 ‘스퀘어 투 디자인(Square Two Design)’ 사를 창립해, 현재 샌프란시스코와 베이징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2003년, 베이징에 위치한 중앙미원(CAFA)의 디자인대학 학장으로 선임된 왕민은 동 대학에 올림픽 예술연구센터(ARCOG)가 설립된 후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디자인 디렉터로 임명되었다.
왕민 인터뷰
요즘 하루 일과는 무엇인지요?
어디 일이 급선무냐에 따라 다른데요,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에 가 있을 때도 있고, 학교에 있는 제 사무실이나 스튜디오에서 일을 볼 때도 있습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의 디자인 디렉터로서 어떤 일들을 맡으셨는지요?
제가 이번 대회 디자인 디렉터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은 2006년 10월입니다. 이미 디자인 작업이 많이 시작된 이후의 시점이었어요. 그중 일부는 저희 학교에 설립된 올림픽 예술연구센터(Art Research Centre for Olympic Games)에서 진행했는데, 현재는 제가 그곳의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이 연구 센터와 저희 학교의 교수 및 학생들이 함께 베이징 올림픽의 디자인 작업에 전력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이번에 저희 CAFA에서 담당한 디자인 작업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아이덴디티 지침 선정
- 색상 체계 마련
- 픽토그램 디자인
- 메달 디자인
- 길찾기 시스템 디자인
- 핵심 그래픽 디자인
- 성황 봉송 관련 디자인
- 경기 관련 디자인
장기간 동안 2008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아트 디렉터나 디자인 디렉터를 두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제가 그 자리를 맡았을 때 제일 먼저 고민해야 했던 일은 모든 제반 사항을 통일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올림픽의 슬로건이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 One Dream)’이에요. 아주 좋은 슬로건인데, 이 슬로건과 이미지들이 하나의 통일체로 한데 어울러지는 게 이상적인 것이었죠. 즉 하나의 목소리와 하나의 이미지로요. (경기장, 거리, 유니폼, 출판물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게 한 목소리를 내야 하고, 메시지도 매우 분명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처음부터 서로 제 각각의 목소리들을 내고 있었기에,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디렉터로서 저는 모든 것을 일관되고 연관성 있게 만들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토록 까다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가장 힘든 과제는 무엇이었나요?
‘올림픽 정신과 중국의 가치가 조화된 올림픽, 전통과 현대가 혼합된 올림픽, 색채와 형태에 있어 중국만의 독특한 올림픽의 모습을 어떻게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사람들의 머리와 가슴을 함께 건드릴 수 있는 올림픽, 출전 선수들과 관중들의 경험을 고양시킬 수 있는 올림픽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하는 일이죠.
중국 그래픽 디자인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해외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시나요?
머지 않아 중국의 디자이너들이 세계의 이목을 끄리라 봅니다. 지금 현재 중국 국내에서 새로운 창작의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인 디자이너들이 많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