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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에서의 김구 선생은 1948년 2월10일 『3천만동포에게 읍고(泣告)함』이란 성명서를 통해 『마음속의 38선을 무너뜨리고 자주독립의 통일정부를 세우자』고 호소 하였다.
분단된 상태의 건국보다는 통일을 우선시 한다하여 5 ·10 제헌 국회의원 선거를 거부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1948년4월19일 남북 협상차 평양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에 의해 민족 통일 정부수립의 좌절을 안고 1948년5월5일 서울로 돌아 왔다.
서울로 돌아 온 김구 선생은 건국 실천원 양성소의 일에 주력하면서 구국 통일의 일군들을 양성하는데 힘을 쏟았으며 서울과 평양에 남·북한 단독 정부가 수립된 이후 민족 분단의 비애를 딛고 민족 통일 운동을 재야에서 전개해 나갔다.
남한에서의 反美 운동은 이러한 민족 통일 운동이 재야에서 전개되면서 자연스럽게 극소수의 반미 세력으로 싹트기 시작하였으며 북한의 김일성은 남한의 남로당을 통해 이들과 세력을 모으는데 주력하여 고정 간첩을 통한 남한 내 反美 세력을 구축해 나갔다.
당시 김일성은 남북 통일을 위한 남침을 이미 계획하고 있었고 그로부터 꼭 2년 뒤 김일성은 소련과 중국의 협조와 묵인 하에 공산 적화통일을 위한 6.25 전쟁을 일으킨 것이다.
적화 통일의 꿈도 미국과 UN 16개 참전국으로 인해 좌절되자 이때부터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제2의 적화통일을 위한 反美를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그의 이루지 못한 과제는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고스란히 이어 졌다. 反美는 김일성과 김정일이 제2의 적화 통일을 위해 풀어야 할 지상 최대의 과제였던 것이다.
(2) 군사정부 時代의 反美
6.25 전쟁이 끝난 후 사회는 극도로 혼란스러웠고 남한에 뿌리를 둔 남로당의 잔당들과 김일성의 지령을 받고 침투한 고정간첩들에 의해 이른바 간첩의 시대로 접어 들었다. 김일성은 제2의 적화통일을 위해 고정간첩들을 통해 한국 사회를 혼란시켜 그 틈바구니를 이용해 적화통일의 기회로 삼으려 했다.
김일성은 한국 사회를 혼란케하기 위해 요인 암살이나 기간산업의 파괴에 주력을 하였다. 이런 와중에 한국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하야와 윤보선 전 대통령에 이어 4.19의거와 5.16 군사혁명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른바 군사정부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과제는 잘 알다시피 『잘 살아 보세!』였다. 재건대를 조직하여 깡패를 소탕하였으며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농촌 근대화에 성공 하였다. 그러나 가장 골치 아픈 일이 김일성의 적화 야욕이었다. 고정 간첩들은 비밀 루트를 통하여 한국에 잠입하였고 일본을 통해 잠입 하였다.
무장공비는 동해안 울진을 비롯해 다대포로 침투하였고 청와대 뒷산인 북한산까지 침투하였으며 1974년에는 육영사 여사가 문세광이란 간첩에 의해 비명에 숨지는사건이 발생 하였다. 따라서 간첩 소탕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어서는 조국 근대화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김일성이 지시한 간첩들의 임무는 첫째 박정희 정권의 붕괴를 통한 적화통일(혁명사업)의 완수였고 둘째 고정간첩들의 활동을 통해 남한 내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을 포섭하여 김일성 주체사상과 김일성式 통일혁명 사업에 관한 학습을 거쳐 지하 노동당에 가입시켜 이들로 하여금 민중 봉기를 유발케 하여 통일을 이룩 한다는 2대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주로 돈이 없어 고학이나 어려운 환경에 처해 사회에 불만이 많은 학생들이 포섭의 대상이었으며 이들을 노동 현장에 위장 취업을 시켜 노동자들 포섭하여 뜻을 이루고자 하였다.
물론 이런 원칙은 철저히 김일성의 지령에 의해 이루어 졌으며 행동강령으로는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 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대를 이은 김정일에 이르기까지 무려 50년이 넘게 이러한 행동 강령을 남한 내 지하조직을 통해 꾸준히 성취하고자 했다.
대학생들과 노동자들이 주체사상을 학습하고 미국을 원수로 생각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학습은 전염병처럼 한국 사회에 번지기 시작 했다.
이들의 첫번째 과격한 反美 행동은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지 2년이 지난 1982년3월18일 문부식과 김장현에 의해 일어 난 부산 미국 문화원 방화사건 이었다. 일명 『부미방』 사건 이었다.
반미 운동가들은 부미방 사건을 80년대 반미 운동의 효시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부미방 사건이 김일성의 사주와 남한 내 고정 간첩의 주체사상 학습 성과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라는 것은 부미방 사건 당시 뿌려진 유인물을 보면 확연하게 알 수 있다.
부미방 사건 당시 뿌려진 유인물에는 『살인마 전두환 북침준비 완료!』『민주주의를 염원하는 광주시민을 무참하게 학살한 전두환 파쇼정권을 타도하자!』『최후발악으로 전두환 정권은 무기를 사들여 북침준비를 이미 완료하고 다시 동족상잔을 꿈꾸고 있다!』는 등 9개의 구호가 인쇄되어 있었다.
같은 시간 미 문화원 거너편 유나 백화점 6층에서 뿌려진 유인물에는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을 속국으로 만들지 말고 한국에서 물러가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군사정권이 북침을 한다는 주장과 현재 미국이 북한을 선제공격하려 한다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북한 노동당 통전부의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또한 한국이 미국의 우방이나 동맹국 관계가 아니라 속국이라는 주장도 그래서 주한미군은 철수를 해야 하며 악법 중의 악법인 국가 보안법을 폐지하여야 한다는 주장도 변함없는 통전부의 주장인 것이다.
강정구가 6.25를 통일전쟁이라 부르고 맥아더를 가리켜 남북 분단의 집달리라며 엄연한 역사를 왜곡하는 것도 알고보면 북한 통전부의 김일성 사상이 주입되었기 때문이다.
(3) 김대중 노무현 時代의 反美
김일성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통전부의 끊임없는 대남 적화 야욕을 위한 남한 내 친북 좌파들에 대한 이념적 침투는 전교조 한총련 민노총을 통전부 소속 남한내 행동 단체들로 포섭하는데 성공을 했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에 와서는 이들 단체 뿐만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김일성의 통일 혁명을 위해 인권위원회나 승가회나 과거사 진상 위원회에서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무서운 존재들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에 고정 간첩으로 활약한 자들 이다.
남로당 정판사 위조지폐 사건의 주범인 박사장의 친 손자 박지원은 김대중의 비서실장으로 재임하였고 인민군 신분으로 남한에 온 임동원은 국정원장을 지냈으며 북한에 잠입하여 노동당에 가입을 하고 노동당 서열에 오른 자들이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를 맞아 귀국하여 민주화 투사로 둔갑을 하고 이들이 친북 좌파 행동 단체들을 뒤에서 조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 장갑차에 치어 죽은 효순 미순양의 죽음을 대선 직전 반미운동으로 승화시킨 자들도 이들이며 『평택 미군기지 확장저지 반대 범국민대책위원회』도 이들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에 주체사상에 매료되어 포섭된 학생과 노동자들이 대학에서 또는 노동 현장에서 반미 운동에 깊숙히 관하여 왔으며 이들이 노무현 정권의 핵심적 인물로 등장하여 정부의 각 요직을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이 노무현 시대에 있어 반미 운동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노무현이 이들을 부추키고 이들의 범죄 행위를 수수방관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대 놓고 북한의 인사들을 남한에 불러다 남북이 합동으로 축제를 벌이고 대한민국의 국기를 이상한 한반도기로 바꾸어 가면서 김일성식 통일을 추구하고 있다.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에 와서 이러한 반미 운동이 확산되고 한미 동맹이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은 김대중과 노무현에 의해 면죄부를 받은 남한 내 고정 간첩들과 친북 좌파 단체들의 과격한 반미 운동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김대중과 노무현이 김일성의 남로당 조직과 전혀 무관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김대중이 남로당 목포시 지부 청년 부장을 지낸 사실과 노무현의 장인이 김해 진영의 남로당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무고한 양민 11명을 죽이고도 비전향 장기수로 죽음을 맞이한 사실은 이를 뒷 받침하고 있다.
[反美와 김정일 先軍政治의 목표는 적화통일 이다!]
반미 책동은 백범 김구 선생의 건국 실천원 양성소를 시발점으로 70년대 이르러 군사독재 종식을 위한 학생운동으로 전개 되었으나 김일성의 지령에 의한 남한 내 고정 간첩들의 사주에 의해 학생운동은 점차 노동계로 퍼져 갔으며 1982년 부미방 사건을 계기로 그 세력은 체계적인 조직을 갖추며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김일성 주체사상이 본격적으로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으로 학습되어 진 것은 한총련에 의해서 이다.
이러한 세의 확장은 전교조를 비롯해 한총련으로 급속히 확산 되었으며 전국 공무원 노조에서도 김일성의 주체사상이 여과되지 않고 학습되어 지기도 했다.
전교조와 한총련은 물론 민노총은 작금에 이르러서는 친북 좌파의 세력이라기 보다는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노동당 통전부의 전위대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며 이들의 노선을 지지하는 민노당도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노무현과 그 요직에 앉아 있는 패거리들도 예외는 아니다.
전교조 서울 지부가 2006년7월12일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학급 게시물 중 통일란에 환경미화 용으로 배포한 『선군정치의 위대한 승리 만세』라는 포스터가 북한의 포스터를 그대로 옮겨 왔다.
전교조는 이 포스터를 가리켜 『이북의 정치 포스터』라고 소개하면서 『선군 정치는 군인을 앞세우는 정치라는 뜻』이라고 적어 놓았다. 그러나 군인을 앞세워 무엇을 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또한 2006년 7월29일 범민련과 통일연대 등 친북 좌파 단체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세계최강의 선군정치!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는 제하의 글이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대학생 모임 공동대표 고려대 김진아 연세대 조승우 서울대 권현진 한양대 성윤식의 이름으로 게재 되었다.
이들은 북한의 선군정치에 대하여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온 세계가 떠들썩할 때 진행된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 대표의 ‘선군의 덕’ 발언 이후 한국 국민들 속에 북한의 선군정치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집중되고 있다. 반통일수구세력과 조중동 같은 수구언론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반북대결감정을 부추기려고 애를 쓰고 있지만 미국 앞에서 유난히 당당한 북한의 힘과 그 비결에로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과 반향을 막을 수는 없다. 북한은 정말 대단하다. 미국, 일본 초강대국들이 핵주먹을 휘두르며 무릎 꿇으라고 강박해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오히려 할테면 해보자는 식이다. 영토도 크지 않고 인구수도 많지 않은 작은 나라에서 어떻게 그런 배짱이 나올 수 있을까?』로 시작 한다.
이쯤되면 북한 김정일의 적화 통일에 대한 구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미군 철수와 국가 보안법 철폐는 오래 전 김일성에 의해 줄기차게 주장 되어 온 것이며 김대중이 2000년 6월15일 평양을 방문하여 김정일과 낮은 단계의 통일 방안에 대해 합의를 하고 온 후부터 6.15 정신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 민족끼리란 말을 만들어서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각종 이름의 축제를 개최하며 미군 철수에 못을 박았고 노무현은 전시 작전 통제권 마져 내 놓으라고 한다.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이루어야 하고 우리민족끼리 통일을 이루려면 외세를 추방해야 하며 그래서 미군을 이 땅에서 몰아 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이후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최 우선의 정책으로 삼았다.
김정일은 미군 철수와 국가 보안법 철폐는 이미 성공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 후의 전략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남한 내 친북 좌파들에게 선군정치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일이었다. 선군정치란 듣기만 해도 섬뜻한 대한민국 적화 정책이란 것을 이번 스커드 미사일 시험 발사로 증명 되었다.
[김정일의 先軍政治 책동에 현혹되어서는 않된다!]
그러나 『세계최강의 선군정치!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라는 글을 쓴 대학생들은 선군 정치야 말로 우리 민족을 부흥케하는 21세기의 초강법이라 주장하고 있다. 김정일의 대한민국 적화 계획은 그의 의도대로 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미사일 시험 발사와 미군 철수는 이미 성공했다고 판단하고 3단계 적화통일 계획인 선군으로 통일 혁명 과업을 완수하겠다는 뜻이다. 『세계최강의 선군정치! 우리 민족이 자랑스럽다』라는 글에서는 선군정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북한의 선군정치는 지난 한 세기동안 힘이 없어서 강대국에 휘둘리며 살아왔던 약소민족의 설움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민족이 21세기의 세계에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 것을 선언한 역사적 사건이다. 우리 민족이 세계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화려하게 등장한 것이다!
최근에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 대하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있는데, 고조선이 발달된 철기문화를 가진 한나라에 멸망했으나 그 후예들은 강철을 단단하게 하는 기술인 초강법을 연구, 발전시켜 고구려를 건국하고 드넓은 대륙을 호령하는 대국으로 성장하였다. 선군정치는 우리 민족을 부흥케하는 21세기의 초강법이다! 』
[친북 좌파들의 착각!]
친북 좌파들의 착각은 김정일이 우리민족끼리인 남한에 미사일을 쏘지 않는다는 것이고 핵 개발은 우리민족끼리인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선전에 놀아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한반도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선군정치의 덕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자신들이 핵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섣불리 선제 공격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며 그래서 남쪽은 김정일 장군님의 선군정치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므로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반미와 선군정치는 별개의 것이 아니며 김일성代로 부터 김정일에 이르기까지 추진되어 온 적화통일 계획의 일환인 것이다. 미군이 철수하면 그 즉시 김정일의 선군들이 남한을 공격하게 되어 있다.
친북 좌파들은 여기에 속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요 혈맹인 미군은 철수하지 않으므로 그렇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진정한 우방은 우리 국민들과 오래 전에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고 체니 부통령이 단호하게 말하지 않았는가?
[김정일과 노무현의 몰락 이 후를 생각해야 한다!]
국가에 아무런 이득이 없는 반미와 적화통일의 한 축인 선군정치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한다. 노무현이 물었다. 『反美면 안 되는 이유가 뭐죠? 무슨 불이익을 받게 되죠?』라고 말이다.
이들이 말하는 반미란 미군 철수를 말하는 것이다. 미군이 철수하면 김정일은 적화 통일을 위해 선군으로 남한을 밀어 부친다.
김정일은 벌써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며 미국의 대북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노무현도 미국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어떤 불이익을 받게 되는 줄 진정 모른다면 그대로 당하면서 체험으로 알게 될 것이다.
중국이 북한에 대해 등을 돌렸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김정일 북한 정권에 자금을 대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밝혔다.
이는 북한에 대한 지원을 끊으라는 초 강력한 미국의 메세지이기도 하다. 한국이 미국과 협조하여 김정일의 항복을 받아 내는데 일조를 한다면 한미 동맹은 새로운 관계를 모색할 명분이라도 생긴다.
만일 끝까지 김정일을 옹호하고 대변하고 보호하려고 한다면 노무현도 김정일과 함게 몰락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더 이상 우리민족끼리란 기치 아래 반미 선전과 선군정치의 책동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김대중은 어제 『미국의 군사력이 북한을 제재할 정도에 이르지 못하며 한국과 중국이 버티고 있어서 성공할 수 없다』고 했다.
착각도 보통 착각이 아니다. 미국은 분명하게도 북한을 제재할 군사력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사용하지 않을 뿐이며 중국은 이미 북한에 대한 제재에 미국과 함께 UN 회원국들과 대북 결의안에 동참을 하였다는 엄연한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은 이제 와서 『북한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참으로 무책임한 말이다. 김정일은 김대중과 노무현으로 인해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 시험 발사를 한 사실을 모른단 말인가? 이제는 김정일과 노무현의 몰락 이 후를 생각해야 할 때이다.
[시스템클럽 - 솔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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