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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연인] 09
S#1. 신랑 대기실
신랑 대기실 소파에 심각하게 앉아 있는 기주.
수혁이 방으로 들어온다.
기주 :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내 꼴, 많이 우습냐?
수혁 : 그런 말이 어딨어.
기주 : (계속 거울을 응시한 채) 우스운데, 뭐~ 우습네~ 하...
(수혁을 쳐다보면서) 내가 여기 왜 이러고 있냐?
수혁 : 타이 매고 단추 잠궈. 그러면 멋있을 거야~
기주 : (다시 거울을 본다.) 멋있어 보여야 한다? 날이 날인만큼?
수혁 : ...
방에 들어오는 승준.
기주 : 다들 기다리니까 빨리 나오라고?
승준 : ...예. 다들 애타게 기다려요.
기주 : 다들 애타게 기다리신다? 나가야지, 그럼.
기주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거울을 보고 타이를 맨다.
S#2. 약혼식장.
나타나지 않는 기주 때문에 초조하게 앉아 있는 윤아, 한회장, 기혜, 문의원, 윤아의 모.
이 때, 기주가 문을 열고 등장한다. 뒤에 따라오는 수혁과 승준.
취재진들 : 어, 온다!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들이 사방에서 터지고 기주는 저벅저벅 걸어간다.
사회자 : (목소리) 예! 드디어 예비 신랑께서 오셨습니다! 자, 그럼 곧바로 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기주 :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중지하세요.
놀라서 쳐다보는 윤아, 한회장, 기혜, 문의원, 윤아의 모, 그리고 수혁.
회장 : (깜짝 놀라) 너,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기주 : (단호하게) 중지하라고 했습니다!
기혜 : 기주야...
회장 : 무슨 짓이야, 이게?
기주 : (회장을 똑바로 보고) 저, 이 결혼 안 합니다.
웅성거리는 취재진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문의원 : 이보게, 자네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게야!
기주 : (윤아의 옆으로 가서 선다.) 내 이름이 한기주고, 내가 GD 자동차의 사장이고,
이혼을 한 번 했고, 나하고 결혼하면 남 보기에 그럴 듯하게 평생 살 수 있다는 거 빼고,
나에 대해서 아는 거 있으면 얘기해봐.
윤아 : (당황해서) 왜... 이러는 거에요, 어른들도 계신데.
기주 : 말해봐, 나에 대해서 뭘 아는지.
윤아 : (큰 소리로) 한기주씨!
기주 : 나하고 약혼해서 평생 눈물 흘리는 것보다
오늘 하루만 눈물 흘리고 깨끗하게 접는 게 낫지 않겠어?
윤아 : ...
기주 : (문의원에게) 죄송합니다. 저, 이 약혼에 관심 없습니다.
(한회장한테) 아버지, 저 그냥 좋은 아들로 살게 해 주세요.
약혼식장을 나가는 기주. 취재진들이 기주를 에워싼다.
기주는 그들을 뿌리치고 걸어나간다.
수혁 : 삼촌!
뒤따라 나가는 승준과 수혁. 한회장과 기혜는 표정이 어둡다.
남은 취재진들은 홀로 앉아 있는 윤아를 찍고 있다.
따라오는 취재진들은 승준과 다른 사람들이 막고, 수혁은 앞에 가는 기주의 팔을 붙잡는다.
수혁 : 아, 이러고 어디가~
기주 : 미안하다. 아버지하고 누나 좀... 잘 부탁한다.
수혁 : (소리치며) 그럼 여기 뭐하러 왔어. 파토낼 거면 어제 냈어야지!
기주 : 이렇게 안 하면 아버지 포기할 사람이 아냐! 나중에 얘기하자.
떠나는 기주와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수혁.
S#3. 신부 대기실
윤아는 문을 잠그고 혼자 소파에 앉아 있다.
윤아모 : (목소리) 윤아야! 문 좀 열어~ (쾅쾅쾅) 엄마랑 얘기 좀 해, 응?
문의원 : 윤아야! 윤아야! (쾅쾅쾅쾅쾅)
S#4. 약혼식장
수혁은 "축 약혼 한기주 문윤아" 란 문구를 넣은 얼음조각을 바라보고 있다.
승준도 들어온다.
승준 : 회장님 지금 들어가셨다. 사건 크겠는데? 다신 집에 발 붙이지 마라셔~
수혁 : (한숨) 후...
승준 : 아~ 어쩐지 순순히 나온다 했더니, 결국 일을 만드네. 아, 어디간 거야, 대체. (핸드폰을 꺼내고)
수혁 : 관둬, 안 받을 거야.
승준 : 그래도 해 봐야지~ (기주에게 전화를 건다.)
S#5. 기주의 차.
기주는 운전을 하고 있다.
핸드폰이 울리고 발신자가 "승준" 이라고 뜨자, 밧데리를 빼서 던져 버린다.
가슴에 달았던 꽃도 뽑아서 던지고 넥타이도 풀며 한숨을 쉰다.
S#6. 세차장
의자에 앉아 사표 내고 나오는 날 찍었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태영.
저만치 뒤에 찍힌 기주를 보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약혼하는 기주를 생각하니 착잡한 마음.
세차장 주인 아줌마가 태영에게로 걸어온다.
아줌마 : 오늘 하루종일 이상하네? 왜, 무슨 일이 있어?
태영 : (일어나 고무장갑을 끼면서) 아~니요, 일은 무슨요~
아줌마 : 어제 그 고급차 긁은 거 때문에? 아이, 괜찮다니까~
(피로회복제를 따주며) 아유~ 자, 한 병 쭉 해! 하하하하!
태영 : (웃으며 받는다.) 저 약 먹을 정도로 피곤한 건 아닌데~
아줌마 : 기분 나쁠 때도 한 병씩 때려주면 좋아~ 하하! 자, 쭉 마셔~ 힘내고! 응? 자, 응?
태영 : (씩씩하게) 예, 뭐, 까짓것 한 병 때려주죠, 뭐!
(시원하게 들이키고 있는데 손님이 오는 걸 발견하고는) 음, 어서 옵쇼~
(달려가서) 오라이, 오라이, 오라이~ 오라이~ 더, 더, 더. 오라이, 오라이~
조금만 더, 예, 오라이~ 스톱!
방금 들어온 차 뒤로 또 다른 손님이 오는데, 들어오면서 세차 도구를 받아버린다.
태영 : (신경질을 내며) 아우~ 아니, 아, 이 양반이 정말! 아~ 조심성 없이! 아이, 진짜~
(고무장갑을 벗으면서 그 차 옆으로 간다.) 아, 이거 봐요!
아니, 이렇게 급하게 들어오시면 어떡합니까, 예?
그러나 선팅을 해서 차 안이 보이지 않는다. 운전자를 보려고 했으나 안 보이는 태영.
태영 : 아니, 손님 때문에 지금 이, 엉망이 되잖아요, 다 부서졌잖아요, 예?
(차 주인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이게 제 밥줄이라구요!
이, 손님 삐까뻔쩍한 차가 내 밥줄을 묵사발로 만들어 놨잖아요, 예?
그래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운전자 때문에 답답한 태영.
태영 : 아유... 아, 좀 들었으면 조, 좀 내리든가요~ 여, 여보세요? 아~니, 이, 이봐요!
(차 유리창을 두드리면서) 이봐요!
이 때, 유리창이 내려가면서 운전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선글라스를 끼고 태연하게 앉아 있는 기주. 기주를 보고 놀라는 태영.
기주 : (장난스럽게) 이거 도대체 얼마나 줘야 되나?
태영 : ...
기주 : 왜 이렇게 놀래?
태영 : (침울하게) 오늘... 약혼하는 날 아니에요?
기주 : 맞어!
태영 : 근데 왜 여깄어요?
기주 : (심각한 척) 약혼하다가 생각을 해 보니까...
태영 : ?
기주 : ...세차를 안 했더라고~ 차가 드러워서 약혼을 할 수가 있어야지~
태영 : (진지하다.) 그걸 지금 농담이라고 해요?
기주 : 아, 사실은 메뉴판을 보는데~ 스테이크가 안 나오고 갈비탕이 나온대잖어~
근데, (둘러보면서) 세차는 얼만가?
태영 : ... (뾰루퉁하게 서 있다.)
S#7. 식당 안.
스테이크를 먹고 있는 기주. 맞은 편에 앉은 태영은 멍하게 기주만 보고 있다.
기주 : (먹다 말고) 그만 쳐다보고, 먹지?
태영 : 아뇨, 전 됐어요... 안 넘어가요.
기주 : 왜?
태영 :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요. 오늘 같은 날... 절 왜 찾아온 거에요? 가차 없이 해고할 땐 언제고?
기주 : (스테이크를 썰며) 내가 해고하지 않았으면 아버지가 해고했을 거야.
아버지한테 상처받게 할 순 없잖아?
태영 : (힘없이 웃으면서) 이러나 저러나 뭐 상처받긴 마찬가지에요, 뭐. 워낙에 상처받는 성격도 아니고
(한숨) 어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몰라, 지금. 저 갈게요, 맛있게 드세요. 죄송해요.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기주 : 저... 저... 밥 좀 먹자.
태영 : (놀라며) ?
기주 : 밥 좀 먹자고.
태영 : ...
기주 : 그냥 그림자처럼 앉아 있어주면 안 돼? (오물거리면서) 혼자서 밥 먹기 싫어서 그래.
태영은 기주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하고 자리에 다시 앉는다.
기주 : (다시 썰면서) 버릇이야. 안 좋은 일 있으면 배가 고파지더라구.
(태영의 스테이크를 가리키며) 그냥 맛있게 먹어주라. 약혼식도 때려치고 나왔는데.
태영 : (약혼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다.) 때려치워요? 왜요?
기주 : 아니, 스테이크를 주는 줄 알았더니 갈비탕을 주더라고~
태영 :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
기주 : 밥 먹고 뭐할 거야?
태영 : ...내가 언제 밥 먹겠다고 했나요?
기주 : 먹을 거잖어~ 밥 다 먹고 뭐할 거냐고.
태영 : (결국 칼을 들고 스테이크를 썰기 시작한다.) 집에 가야죠, 뭐.
기주 : (입 안 가득 스테이크를 물고 씹다가) 데려다줄까?
태영 : ...?
기주 : 데려다줄게. 오늘 어디, 완벽한 거 한 번 해 보지 뭐. 어디 사람들 많은데 가서 시든 꽃처럼
한 번 앉아 있어봐. 그럼 내가 어깨 감싸주고, 흩어진 머리칼 쓸어 넘겨주고...
집도 아니까 집에까지 바래다주면 되지, 뭐. 이러면 완벽한 건가?
태영 : ... (어찌할 바를 몰라 멍하니 있는데)
기주 : 아니다. 그 전에 뭐 하나 더 하자. 산책하자.
태영 : ...
기주 : 이런 거, 데이트 맞는 거지?
태영은 달라진 기주의 모습에 적응이 안 되는 표정.
S#8. 태영네 집 근처.
저번처럼 기주는 손수건을 꺼낸다.
태영은 그러려니 하고 그 옆에 앉으려는데, 기주는 태영을 끌어당겨서 손수건 위에 앉힌다.
태영이 들고 있던 음료수도 손수 따주는 기주.
태영 : (놀라서) ...
기주 : 마셔~
태영 : 고마...워요. (한 모금 마신다.)
기주 : (주위를 둘러보며) 아~ 여기 오랜만이네. 취직 얘기하러 왔을 때 오고... 그러고 처음이네.
(음료수를 마시고)
태영 : (기주를 흘겨보면서) 거짓말~
기주 : (영문을 몰라) 뭐?
태영 : 울려서 보내놓고... 걱정됐어요?
기주 : 무슨 말이지?
태영 : 어유~ 참! 아니요~ 뭐, 다음부터 이럴 일 있으면 이렇게 혼자 다니지 말고 사람을 써요~
(가방을 열어 전에 찍었던 사진을 보여준다.)
기주 : (시치미를 뚝 떼며) 내가 왜 여깄어.
태영 : 어유, 그거야 저야 모르죠~ 거기...
기주 : 얼굴이 잘 안 나왔네, 압수! (사진을 안주머니에 넣어 챙긴다.)
태영 : (손을 뻗어 말리면서) 어, 안 돼요! 제꺼에요, 하나 밖에 없는데~
기주 : 아, 누가 내 사진 갖고 있는 거 싫어, 아주.
태영 : (사진 보여준 걸 후회하는 표정)
기주 : ...근데 돈은 많이 벌었나?
태영 : 아! 안 그래도 어떻게 전해주나 걱정했었는데요,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 저, 이거 많이는 아니구요, 어제 월급 받은 거거든요?
(봉투를 내밀며) 나머진 차차 갚을게요.
기주 : 아니, 뭐, 그런 뜻으로 한 얘긴 아닌데.
태영 : 빚 지고는 못 산다고 했잖아요~
기주 : 안 받으면 어떡할 건데?
태영 : 아~ 진짜 자꾸 그러면 양복 안주머니에다 콱 쑤셔넣어요, 내가~
기주 : (양복 윗도리를 들추면서) 자!
태영은 쭈뼛쭈뼛 하면서 주머니에 봉투를 넣는다.
기주 : 고마워~
웃다가 한숨 쉬는 태영.
태영 : 대답하기 싫은 건 알겠는데요... 미안하지만, 그래도 한 번만 더 물어볼게요.
기주 : ...
태영 : 왜... 그런 거에요, 오늘 약혼식?
기주 : ...무서워서.
태영 : ?
기주 : 무서운데, 피할 방법은 없고. 싸울 힘도 없고. 가장 비겁한 방법을 선택한 거지.
(고개를 끄덕이며) 비겁했어.
태영 : ...
기주 : 뛰쳐 나와서 생각해 보니까 어디로 가야 되나... 근데 생각나는 사람이 있더라고.
태영 : (입모양으로) '누구?'
기주 : (턱으로 태영을 가리킨다.)
기주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태영.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태영 : 수혁이 생각도 났을텐데...
기주 : ... (끄덕이면서) 수혁이, 좋은 놈이지.
태영 : ... (살짝 웃고만 있다.)
S#9. 기주의 방
수혁은 약혼반지함을 기주의 책상 위에 내려놓는다.
그 때, 눈에 들어오는 책상 위의 한 상자.
수혁은 궁금해서 열어보는데, 그 안에는 파리에서 태영이 기주에게 남긴 많은 메모들이 들어 있다.
메모들을 보고는 표정이 어두워지는 수혁.
전화 벨이 울린다.
수혁 : 네. (아무런 말이 없는 상대방) 여보세요?
윤아 : (목소리) 기주씨 있으면 바꿔줘요.
수혁 : 없는데요.
윤아 : (목소리) 집에 없어요? 핸드폰도 꺼져있던데.
수혁 : 답답하긴 마찬가지에요.
윤아 : (목소리) 시간 괜찮으면, 나 좀 만나줄래요?
수혁 : ...
S#10. 카페 안
윤아와 수혁이 마주 앉아 있다.
윤아 : 나와줘서 고마워요.
수혁 : (반지함을 꺼내서 내려놓으며) 이거... 돌려줘야 될 것 같아서요.
윤아 : 파혼하겠다고 한 적 없어요. 아직 기주씨 얘기도 못 들었고, 나한텐 상황종료 아니에요.
받아도 본인한테 직접 받을게요.
수혁 : 그래요, 그럼. (반지함을 도로 챙기는데)
윤아 : 태영이, 혹시 어디 사는지 알아요?
수혁 : (예민하게) 그건 왜요?
윤아 : 그냥 집이나 가르쳐줘요.
수혁 : 불똥이 거기로 튀는 거에요, 지금?
윤아 : 걔 밖에 없어요, 확실해요.
수혁 : 알아도 모르니까, 그만해요.
윤아 : 안다는 소리죠, 그거?
수혁 : (단호히) 무슨 생각하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무작정 찾아가서 마음 상하게 할 생각하지 말아요.
겉으론 씩씩해도, 상처받을 거 다 받는 애에요.
윤아 : 태영이... 잘 아세요?
수혁 : !
윤아 : 굉장히 잘 아는 사이처럼 들려서요. 그렇게 감쌀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
수혁 : 그거까진 나도 대답할 필요 없을 거 같네요. 용건 끝났으면 일어나죠, 갈 데가 있어서.
수혁은 윤아를 남겨두고 자리를 뜬다. 수혁을 흘겨보는 윤아.
S#11. 태영네 집 근처.
기주는 차를 세우고 내려서 태영 쪽 문을 열어준다.
기주 : 이제 완벽한 건가?
태영 : 100점 만점에... (웃으면서) 1000점! 하하...
기주 : (씩 웃는다.)
태영 : 저 이만 가 볼게요~ 뒤처리 잘 하세요. (인사를 하고 걸어가는데)
기주 : 자고 가도 돼?
태영 : (놀라서 뒤돌아본다.)
기주 : 호텔 가면 아버지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낼테고... 갈 데도 없는데 하룻밤 묵어가지, 뭐.
태영 : ...어디서 묵어요?
기주 : (턱으로 태영네 집을 가리키며) 집에서.
태영 : 우리 집...? 어머, 아, 안 돼요!
기주 : 왜 안 돼?
태영 :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빈 방 없어요.
기주 : 그럼 옥상에 있는 그거, 나무 테이블에서 자지, 뭐.
태영 : 테이블... 아, 평상이요. 오늘 비 온대요!
기주 : 아, 그럼 맞지, 뭐~
태영 : (말리며) 머리 빠져요, 안 돼요.
기주 : 씁... 아니, 진짜 너무하네~ 파리에서는 오들오들 떨 때, 내가 재워줬는데. 케익도 주고. 비싼건데!
태영 : (기가 막히는데 할 말은 없다.)
기주 : 아니, 똑같은 거 사준다 그러고 입 싹 씻은 것도 내 다 참았는데...
그러지 말고 하룻밤 묵어가지, 뭐~
태영 : (답답해서) 아니, 뭘 자꾸 묵어요~ 묵을만한 곳이 아니라니깐요!
기주 : 그러지 말고 하루 자~ (성큼성큼 걸어간다.) 이리로 가면 되나?
태영 : 아니요, 저기요~ (기주의 팔을 잡고 늘어지는데) 아니...
S#12. 태영네 집.
부엌 바닥에 앉아 있는 네 사람.
작은아버지와 건이가 기주를 빤히 쳐다보고 있다.
시선을 피하는 기주. 그래도 계속 쳐다보는 둘한테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태영 : 저, 그러니까... 하루만 봐주세요, 작은아버지...
작은아버지 : (중얼거리며) 괘안타~ 봐주긴 뭘 봐줘. (기주에게) 편안~히 앉아 계이소.
기주 : 아, 예... (주위를 둘러보더니) 집이... 상당히 아담하고 좋습니다.
건이 : 접대멘트는~ 아담한 게 아니라 누추한 거겠지!
태영 : (건이를 흘겨보면서 이를 악물고) 강건!
작은아버지 : (급히 건이의 입을 막으면서) 하하, 아가 원체 마, 솔직 담백해가가... (같이 웃는 기주)
흐흐흐흐... (막고 있던 손을 내리며) 어... 마, 태영이한테... 얘기 디~게 많이 들었습니다.
태영 : (당황하며) 어, 아니, 내가 언제 무슨 얘기를 했다고~
기주와 태영은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는데,
작은아버지 : 흐흐흐흐~ 빠~마히 요미 것도 홀려가지고~ 참, 그... 문화예술사업 쪽에 관심 있으시마...
이... 저의 작품 세계도 말씀드리고,
태영 : (말을 끊는다.) 작은아버지!
작은아버지 : ...기보다는~ 흐흐흐흐...
태영 : (눈치를 주면서) '하지마요, 하지마!'
작은아버지 : 마, 내 집이다 생각하고, 마, 편안히 계시소~ 으흐흐~ 참, 그라고 유혹하는 비디오
필요하시면 말씀하시소~ 흐흐흐 (당황하는 태영과 기주) 참, 그라고 불편하시면 있잖아예,
제 방에 제 아끼는 옷 있거든요? 그거 입으시고 편안히 계시소.
기주 : (꾸벅 인사를 한다.)
작은아버지 : 예~ 흐흐... 아, 그라면 우리 부자는 마, 약속이 있어가가~ 이 시간에~ 흐흐흐...
건아, 가자~ (건이를 일으켜 세우려 하는데)
건이 : 둘이 놔두고 어딜 나가? 뭔 일 나면, 누가 책임질 건데?
건이의 말에 또 당황하는 태영과 기주.
작은아버지 : 니한테 책임지라 안 할겨, 내 자식아~ (건이를 안고 일어나며)
그라믄 편히 쉬이소~ 태영아! (건이를 쾅 내려놓고 주먹을 쥔다.)
태영 : 예? 화, 화이...?
작은아버지 : 푸흐흐! (건이를 다시 안고 현관을 나서는데)
건이 : 신발~
작은아버지 : 신발은 밖에 있다, 밖에~
작은아버지는 건이를 데리고 서둘러 밖으로 나간다.
태영 : 어, 아, 아니~ 뭘 화이팅 하라는 거...
기주 : 아... 작은아버지... 헤어스타일이 상당히 독특하시네.
태영 : 아, 예... 웨이브가 좀 많이 나왔다고... 인생 자체가 워낙 독특하세요~
태영과 기주는 작은아버지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다시 태영네 집 부엌 바닥. 태영은 상에 커피를 두 잔 내놓는다.
태영 : 드세요~
커피를 마시는 기주와 태영.
태영 : 뜨겁...죠?
기주 : 어우, 뜨거~
태영 : (바로 그렇게 말하는 기주가 야속하다.)
기주 : 아, 아이스커피 같은 걸 타지 그랬어, 날도 더운데.
태영 : (시무룩하게) 예, 그럴려고 그랬는데요. 냉동실이 망가져서 얼음이 하나도 안 얼려져요.
기주 : (손으로 땀을 닦고 있다.)
태영 : (손으로 부채질을 해 주면서) 더워요? 아, 더우면 선풍기 틀어드릴까요?
기주 : 에어컨 같은 건 없나?
태영 : 예! 아, 선풍기도 시원해요~ 전력소비도 적구요. 잠깐만요~
태영은 옆에 있는 선풍기를 작동시킨다. 심하게 달달거리는 태영네 선풍기.
기주는 선풍기가 회전하는 방향을 따라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기주 : 아... 이, 이거, 한 방향으로 고정시킬 수 없나?
태영 : (선풍기의 '달달'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커진다. 기주를 가리키며) 아, 이 쪽 방향으로만요?
아, 진작 말을 하지~ 예, 있어요. (펜치로 회전 버튼을 돌려서 선풍기를 고정시키는데) 가죠?
기주 : (놀라서) 뭐 어떻게 한 거야?
태영 : 아아~ 이, 선풍기, 이거 버튼이 빠져서요~ 우린 이렇게 써요, 이거~ 하하...
기주 : 웬만하면... 하나 사지?
태영 : 아, 멀쩡한데 뭐하러 사요~ 이거 한 10년은 쓸 수 있어요~
기주 : 여기 화장실은 어딘가?
태영 : 아, 화장실이요? 화장실은, 여기... 오른쪽 방이요.
화장실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기주. 태영은 선풍기를 끈다.
그런데 기주는 화장실 문이 열리질 않자 당황하는데...
기주 : 이거 왜 이래?
태영 : 아, 아! 저 또 말썽이네. 잠깐만요~
태영은 화장실 문 앞에 서고, 그 뒤로 물러나 있는 기주.
태영 : (화장실 문고리를 만지작 거리면서) 이게 가끔 문이 안 열려서요, 고장이... 나거든요.
(옆에 있던 드라이버를 집어 들고는 문고리를 쑤신다.) 그, 금방 열릴 거에...
(아예 쑥 빠져버리는 문고리) 아, 열렸네요... 들어가세요.
기주는 불안한 눈초리로 화장실로 들어가고, 태영은 빠진 문고리를 손보고 있다.
역시나 빠져버린 안 쪽 문고리를 들고 나오는 기주.
기주 : 이거는... 어떡하지?
태영 : 아, 이건 안 쪽 문고리니깐, 변기 위에 놔두세요. 제가 나중에 달게요.
기주 :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태영 : (뭔가 생각난 듯) 아, 저기요~ 혹시 그... 변기 물이 안 내려갈 수도 있거든요? 당황하지 마시고,
그 변기 뒤에 그 뚜껑을 열어서 물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보면 동그란 고무막이 잡혀요~
그걸 위로 확 당기세요!
기주, 태영의 말을 따라서 해 봤는지 당기는 소리가 난다.
태영 : 그러면 시원하게 쫙 다 내려가거든요? 아셨어요?
기주 : (목소리) 아, 어, 어... 오, 오케이!
태영 : 예. (걱정이 되서 귀를 귀울이고 있는데)
기주 : (목소리) 근데 여기 불이 안 켜지네~ 그 스위치 좀 만져보지.
태영 : 아, 예. (스위치를 켜고는) 켜져요?
기주 : (목소리) 아니.
태영 : 아, 전구가 또 말썽이네~ 저, 전구를요, 오른쪽으로 아주 미세하게 돌려볼래요? 살살~
켜져요? 안 켜져요?
기주 : (목소리) 어, 어. 되네, 되네.
태영 : 켜져요? 아, 예.
기주 : (문고리가 빠져서 생긴 구멍으로 입을 가져다대고) 근데 저리로 좀 가지~
태영 : (목소리) 아, 예... 전 뭐, 도와주려고 그랬죠... 예.
태영이 가는 걸 확인하고는 휴지를 돌돌 말아 구멍을 막는 기주.
S#13. 태영네 집 근처.
수혁이 작게 한숨을 쉬면서 올라오다가 기주의 차를 발견한다.
차 쪽으로 걸어가는 수혁.
S#14. 태영네 집.
기주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태영은 수건을 챙겨서 기주에게 건넨다.
태영 : 아, 저, 이거, 수건이요.
기주 : (수건을 받아서 손을 닦으며) 아, 고마워~
태영 : 예.
기주 : 여기 있을 때, 수혁인 어디서 잤어?
태영 : 아... 여기요... (부엌 바닥을 가리킨다.)
기주 : 오케이! 나도 여기서 자면 되겠네.
태영 : ...수혁이, 집에 들어가니까 좋죠?
기주 : 누나가 좋아하지~ 나, 옷 좀 갈아입을게. (수건을 도로 태영에게 넘기고)
태영 : (받으면서) 예, 그러세요.
기주는 작은아버지 방으로 들어가고 태영은 커피잔을 치우려는데, 이때 태영의 핸드폰이 울린다.
창에 '애인'이라고 뜨고, 태영은 기주 쪽 눈치를 보다가 전화를 받는다.
태영 : 어, 나야...
수혁 : (목소리) 갖다 버린줄 알았더니, 잘 쓰네?
태영 : ...어, 비싼 거 버리면 아깝잖아~ 핸드폰은 그냥 핸드폰이라며.
S#15. 태영의 집 근처
기주의 차 앞에 서 있는 수혁.
수혁 : 잘~ 생각했다! 세차장에서 일하는 건 괜찮고? 힘들진 않아?
태영 : 어, 괜찮아~ 저기, 수혁아. 나 지금 뭐 하는 중이거든? 내가 다음에 전화할게~
수혁 : (힘 없이) 그래... 태영아!
태영 : (목소리) 어.
수혁 : ...삼촌 높은 베개 베고 못 자. 아침에 일어나면 물부터 한 잔 마시니까 챙겨주고~ 잘 자.
(전화를 끊고 한숨을 쉬면서) 후...
S#16. 태영네 집 안.
태영 :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다.) ...
기주 : (목소리) 아, 옷, 이거 말고 다른 거 없나?
태영 : 오, 옷이 왜요? (일어나서 작은아버지 방 앞에 가서 선다.) 아, 뭐 이상해요?
기주 : (목소리) 아니, 나 이게... 좀, 좀 그래서...
태영 : 뭐가 좀 그래요? 어디 나와봐요, 좀 보게~
기주 : (목소리) 아, 지금 나갈 수가 없어~
태영 : 예? 아니, 왜 나갈 수가 없어요... 나 잠깐 들어가요~ (문을 열려는데)
기주 : (목소리) 어, 안 돼, 안 돼~ 들어오지마!
태영 : 아니, 왜요~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돌리며) 아, 무슨 일 있어요?
기주 : (목소리) 아니, 들어오지마! 들어오지마!
태영 : 아, 잠깐만요. 문 열어봐요~ 왜 그래요, 예?
이 때 문이 확 열리면서 당황하는 기주. 작은아버지의 파란색 츄리닝을 입고 있다.
태영 : 어? (웃음이 터지고) 푸흐흐흐... 흐흐... 흐흐흐...
기주 : (상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은 채 방에서 나오며 어찌할 바를 모른다.)
태영 : (손으로 입을 막고 계속 웃고 있다.) 흐흐... 흐흐흐...
기주 : (옷을 아래로 잡아당기면서) 아, 나... 웃겨?
태영 : 아, 미안해요, 예.
기주 : (머뭇거리며) 아, 나... 파란색이 좀, 안 받는 거 같애서...
태영 : 아, 아니에요~ 쥑이게 어울려요! 역시 사람이 다르니까 비싼 옷처럼 보이네요~ 하하!
이 때, 퇴근하고 들어오는 양미.
양미 : 언니~ 아니, 왜 입이 댓발이 나와갖고... (기주를 보고는) 으어억!
밤. 잠든 양미와 달리, 태영은 잠이 오질 않는다.
슬그머니 방문을 여는데... 태영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자는 기주.
태영은 물끄러미 기주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잠든줄 알았던 기주가 눈을 뜨고, 태영은 놀라서 코 골며 자는 척을 한다.
그러다 이내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되는 태영.
태영 : (웃음) 베게요, 그거 높아서 불편해요. 이거 베요~
기주 : 어. 안 그래도 너무 불편했었어. (베개를 맞바꾸는 태영과 기주) 어우~ 좋네.
태영 : (미소를 지으면서) 잘 자요~ 많이 불편하겠지만...
기주 :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태영은 다시 방문을 닫는다. 기주는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는데,
기주 옆으로 건이와 작은아버지가 잠들어 있다. 작은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
태영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려고 시계 알람을 맞춘다.
기주 : (목소리) 고마워~
태영 : ?
기주 : 오늘 어디 있었어도, 여기보다 편하진 못 했을 거야.
태영 : ... (감동 받아 울먹이는 목소리로) 잘 자요~
떨리는 마음으로 다시 몸을 뒤척이는 태영. 기주도 안경을 벗고 잠자리에 든다.
S#17. 태영의 집 근처
밖에선 수혁이 기주의 차에 기대고 서 있다.
태영에게서 받은 MP3 플레이어를 귀에 꽂고 듣는 수혁. 수혁은 그런 채로 밤을 샌다.
동이 트자 듣고 있던 음악을 끄고 바닥에서 일어나는데, 마침 신문이 배달된다.
신문을 보던 수혁은 1면에 "GD자동차 한기주 사장 약혼식장에서 돌연 파혼"이라는 헤드라인과 함께
기주의 사진으 크게 실린 것을 보게 된다.
S#18. 태영의 집
아침 6시. 시계가 시끄럽게 알람을 울린다. 몸을 뒤척이던 양미와 태영.
태영은 일어나서 알람을 끄다가 문득 기주 생각이 난다.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던 태영은 기주가 이미 떠나고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한 표정.
기주는 입었던 츄리닝을 반듯하게 접어 놓고, 태영이 줬던 월급 봉투도 내놓고 갔다.
봉투를 집어들고는 작게 한숨을 쉬는 태영.
S#19. 태영네 집 앞.
기주는 다시 턱시도로 옷을 갈아입었다.
태영네 집 쪽을 바라보다가 세워둔 차 쪽으로 가는데, 차의 앞 유리에 신문이 끼워져 있다.
신문을 집어든 기주. 주위를 둘러본다.
S#20. GD 자동차 사내 로비.
기주가 회사로 들어서고 승준과 다른 직원 두 명이 기주를 쫓아간다.
승준 : 도대체 어떻게 된 거에요?
기주 : 나중에 얘기하자. 아버지 출근하셨어?
승준 : 당연하죠~ 어제부터 한 마디도 안 하시고, 오늘도 새벽부터 나오셔서 기다리고 계세요.
아, 대체 어디 숨어 있었어요~ 어유, 여기저기 입 막으러 뛰어다니느라 그냥...
기주 : 근데 그 입이 한 쪽이 터졌더라. (신문을 승준에게 건넨다.)
S#21. 사장실.
수혁이 소파에 앉아 있다.
수혁 : (옆에 놓여진 짐을 가리키며) 옷 챙겨왔어~
기주 : 고맙다. 어젠 뒷처리 잘 했냐?
수혁 :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뭐, 내가 한다고 제대로 되는 일도 아니고, 이제부터 삼촌이 해야지.
이것도 해결해~ (들고 있던 약혼반지함을 건네고는) 돌려줬더니 본인한테 직접 받겠대.
기주 : 누난 괜찮어?
수혁 : 우리 집 안에 괜찮은 사람 하나도 없어~ 일가 친척에, 말 많은 정계, 재계, 남 씹기 좋아하는
기자들까지 상대하느라 다들 아주 녹초야. 근데, 정작 일 벌린 당사자는 괜찮아 보이네.
기주 : ...
수혁 : 갈게.
기주 : (신문을 흔들며) 잘 봤다.
수혁 : ...걱정되서 간 거야.
기주 : 나? 강태영씨?
수혁 : 둘 다. 옷 갈아입어. 갈게. (방을 나간다.)
S#22. 회장실.
회장 옆으로 김이사가 서 있다.
회장 : (신문을 던지면서) 이게 뭐야! 다 막으랬잖아!
김이사 : 죄송합니다.
회장 : 걷어! 대구고 부산이고 제주도고, 다 걷어! 한 장도 남기지마!
김이사 : ...예.
'똑똑' 소리와 함께 회장실로 기주가 들어온다.
기주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회장실을 나가는 김이사.
기주를 회장 옆에 와서 선다.
회장 : (화를 내며) 정신 빠진 놈!
기주 : ...
회장 : 내 앞에 그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염치가 있어?
기주 : ...
회장 : 제 정신이면 어떻게 그런 일을 해! 뒷감당을 어떻게 할려고! 우리 집 망신은 우리가 감당하면
된다고 하지만, 문의원 집 망신은, 그 책임은 어떻게 질 거냐! 정리가 안 됐으면 시간을 더 달라고
하던가, 이렇게 깽판을 내는 법이 어딨어! 입이 있으면 말 좀 해 봐, 이게 뭐야 대체!
기주 : 아버지가 이러시는 이유는 도대체 뭐에요?
회장 : 뭐야?
기주 : 승경이 하고도 억지로 결혼했던 저에요. 한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또 이러시는 이유가 뭐에요! 저더러 어떻게 이해하란 말씀이세요!
회장 : 그럼,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테냐? 다 널 위해서...
기주 : (말을 끊는다.) 문의원님한테 무슨 약점 잡히셨어요! 제가 너무 넘겨집는 거에요?
회장 : 이젠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기주 : ...
이 때, 회장의 인터폰이 '삐' 울린다.
회장 : (인터폰을 받으면서) 무슨 일이야~
여비서 : (목소리) 문의원님 사모님 전홥니다.
회장 : (기주에게) 그만 가 봐.
기주 : ...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데)
회장 : 니가 벌린 일, 수습하는 일이야. 일일이 내 곁에 서서 들을테냐?
기주 : (돌아서서 회장실을 나간다.)
회장 : ... (전화를 받으면서) 아이쿠~ 송구스럽습니다. 아, 아닙니다. 제가 찾아뵙죠.
예...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숨) 후...
S#23. 사내 복도.
걸어가던 기주는 김이사와 마주친다.
기주 : (미안한 마음에) 김이사님, 저 때문에 번번히 죄송합니다.
김이사 : (시치미를 뚝 떼고) 하, 제가 요즘 기억력이 나빠졌어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기주 : (힘 없이 미소 짓는다.)
김이사 : (웃으며) 자식 이기는 부모 없습니다. 전 중3 짜리한테 매일 집니다. 하, 자, 그럼. (인사를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는 기주 앞에 윤아가 나타난다.
윤아 : 좀 참을 걸 그랬네요~ 기주씨 보러 가던 길인데. 마음이 통했나 봐요?
기주 : ...
S#24. 사내 라운지.
의자에 앉아 있는 윤아와 달리, 기주는 저만치 떨어져서 창 밖을 보고 서 있다.
윤아 : 편하게 잘 잔 얼굴이네요? 난 잘 못 잤는데.
기주 : ...
윤아 : 신문에 기사난 거 봤어요? 마음에 안 들어, 나 너무 이상하게 나왔죠?
기주 : (뒤돌아서) 문의원님, 내가 따로 찾아뵐 거야.
(윤아에게 걸어가서는 테이블 위에 약혼반지함을 내려놓으며) 돌려주는 거야.
더 이상은 억지 인연 만들지 말자고. 문의원님하고 우리 아버지, 문윤아씨하고 나.
앞으로는 어떤 인연으로든 얽히는 일 없길 바래. 오늘 이 자리가 끝이란 말이야.
윤아 : (반지함을 열어 반지를 보더니) 내 생각은 다른데요? 나한테는 오늘 이 자리가 시작 같거든요.
기주 : ?
윤아 : (자기 반지를 꺼내 손가락에 끼고 기주한테 보여주면서) 난 어제 약혼했어요!
누가 뭐래도 나, 했어요!
기주 : (억지부리는 윤아를 보고 한숨을 쉬다가) 내가 어제 왜 그랬는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군!
윤아 : 이해는 하지만 인정은 못 해요~ (따지며) 그래서 묻는 건데요, 나 감 없는 여자 아니거든요?
어제 그런 거, 오늘 이러는 거. 태영이 때문이에요?
기주 : ...
윤아 : (짐작하고는 비웃으면서) 태영이 좋은 애에요~ 고등학교 때 봐서 알아요. 잘 웃고, 인정 많고,
따듯하고. 가진 건 쥐뿔도 없으면서 겁 없이 씩씩하고. 하지만 기주씨 상대는 아니죠~
기주 : (윤아의 말이 끊나자마자) 문윤아씬 더더욱 아니지~
돌아서서 가버리는 기주. 윤아는 자존심이 상해 이를 악물고 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기주를 쫓아가서 그 앞에 선다.
윤아 : 나, 이제 더 이상 기주씨 등 안 봐요. 돌아서도 내가 먼저 돌아설 거에요.
기주 : ?
윤아 : 물론 그럴리는 없겠지만. (반지함을 보여주며) 기주씨 반지, 제가 보관할게요.
가버리는 윤아. 기주는 그 자리에 서 있다.
S#25. 사장실.
기주는 책상에 기대 창 밖을 보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기주 : (전화를 받으면서) 네.
S#26. 로비
CSV 로비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승경.
승경 : 하~ 이제서야 전화 되네~ 어제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전화할 줄 알아?
기주 : 왜 했는데?
승경 : 열나서 했지! 이봐요, 한기주씨. 고작 문윤아 같은 애랑 재혼하라고 내가 당신 놔준줄 알아?
그렇게 성질 부리려고?
기주 : ...
승경 : 근데, 아침에 나 신문 보고 쓰러졌잖아~ 당신 약혼식장 박차고 나왔다며?
기주 : 그러게, 그랬다네.
승경 : 당신 얘기야, 옆 집 아저씨 아니고.
기주 : 옆 집 아저씨 얘기할 거면 하고, 내 얘기 할 거면 끊자.
승경 : 생각했던 거보다 심난한가 보네~ 수혁이가 그러는데, 당신 어제도 집에 안 들어갔다며.
대체 어딨었는데?
기주 : 약혼식장 나와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한테.
승경 : (기주의 대답에 놀라) ...제일 먼저 생각난 사람, 나 아닌 건 확실하고. 궁금하다,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야?
기주 : ...나중에 얘기하자. 누나 좀 보러 가야 돼. 끊는다.
기주는 전화를 끊고 승경은 착잡한 마음인데, 승경 앞으로 양미가 지나간다.
승경 : (급하게) 최양미씨!
양미 : (뒤돌아서) 예! 본부장님.
승경 : 강태영씨 연락처 알죠? 오늘 시간 괜찮으면 나 좀 보자고 전해줘요.
고개를 끄덕이는 양미. 승경은 그 자리를 떠난다.
양미 : 뭐야, 이 분위기~ 허, 혹시 왕재벌이 집에서 자고 간 거 들킨 거 아냐?
(인상을 찌푸리며) 아~ 나, 진짜~ 쯧!
S#27. 기혜네 옷 가게.
기혜는 의자에 앉아 옷을 정리하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
기주 : (등장하면서) 그렇게 멍해 있지 마. (옆 의자에 앉는다) 누나 이렇게 멍하게 있으니까, 무섭잖아~
기혜 : (기주를 뚫어져라 응시하고) ...
기주 : 잘못했어. 내가 다 잘못했어. 나한테 전화해서 소리라도 지르지~
아버지하고 수혁인 다들 한 판씩 했는데, 누나 혼자 침묵하니까 더 무섭잖어~
기혜 : (고개를 떨구고 가만히 있다.)
기주 : (기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나 좀 봐.
기혜 : (기주를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고이는데)
기주 : 울어?
기혜 : (기주의 손을 치우면서) 왜 이래~ (훌쩍이며) 미안해서.
너한테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게 미안해서.
기주 : (우는 누나를 보니까 마음이 안 좋다.) 왜 이래~ 혼나러 제 발로 찾아온 사람한테.
집안 망신 좀 시키지 마라, 니가 애냐, 나이 값 좀 해라, 뭐... 뭐, 좀 혼내야 되는 거 아냐?
기혜 : 난, 아버지 얼른 돌아가시고 나 죽고, 너하고 수혁이만 남아서 잘 살았으면 좋겠어.
기주 : (기혜를 심각하게 바라보는데) ...
기혜 : 너하고 수혁이만 남아서... 그래야 너한테 아무도 이래라 저래라 못 하지.
기주 : ...내가 그렇게 나쁜 짓 한 거야? 죽고 싶다는 생각들 정도로?
기혜 :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 나쁜 짓은 다른 사람이 했지... 못 할 짓이다, 정말!
울먹이는 기혜와 표정이 어두운 기주.
S#28. CSV 승경의 사무실.
노크소리.
승경 : 네, 들어와요.
들어오는 태영.
승경 : 어서 와요~ (소파를 가리키며) 앉아요. 차 뭐 좀 할래요?
태영 : 아니요, 저 차는 지긋지긋해요. 하루에 열 대도 더 닦거든요. ...그 차가 그 차는 아니지만서도.
계속 서 있는 태영에게 승경은 앉으라고 손짓을 한다.
태영 : 아, 예. (자리에 앉아) 근데, 저 왜 보자고 하신 건가요?
승경 : 한기주씨, 파혼한 거 알아요?
태영 : 예.
승경 : 어, 아는구나. 신문 보고 안 거에요?
태영 : 아니요.
승경 : 그럼 어떻게 알았어요?
태영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난감하다.) ...
승경 : 혹시 약혼식장 뛰쳐나와 강태영씨 보러 갔던가요?
태영 : ...
승경 : ...나랑 한기주씨, 어떤 사인지 알아요?
태영 : 예. 애인이시죠?
승경 : 애인이요? 하~ (웃음이 나오고)
태영 : ?
승경 : 기주씨가 얘기 안 한 모양이네~ 애인이었던 적도 있었고, 부인이었던 적도 있었어요.
지금은 엑스 와이프에요. 2년 전에 우리 이혼했거든요.
태영 :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혼...이요?
승경 : 이혼하고 친구처럼 지내니까, 별로 불편한 건 없을 거에요. 괜찮죠?
태영 : 예? 뭐, 뭐가요?
승경 : 우리 극장에 출근하는 거요.
태영 : 아, 저요...? 아, 스탭 모집 끝났다고 하셨잖아요. ...혹시 한기주씨가 부탁한 건가요?
승경 : 어, 아니에요~ 내가 그러고 싶어서요.
태영 : ?
승경 : 왜, 싫어요?
태영 : 아뇨, 열심히 할게요! 하하... 아, 저, 근데 저 지금 세차장에서 일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저, 가서 일도 마무리하고 인사도 하고, 그러고 오면 안 될까요?
승경 : 네, 그렇게 해요~
태영 :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며) 감사합니다. 저 이만 가 보겠습니다.
어리둥절해서 나가는 태영. 승경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S#29. CSV 로비.
태영은 양미를 발견하고는 손을 번쩍 든다.
태영 : 야!
양미 : (태영을 보고 쫓아오면서) 그, 뭐래. 왕재벌 왔다갔냐고 따져? 그래서 사실대로 불었어?
아, 내가 딱 잡아 떼랬잖아~
태영 : 그러니까~ 잡았다 뗐다 붙였다, 그럴라 그랬는데, 출근하래잖아~
양미 : 정말? (생각을 잠시 하더니) 아니,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을까?
태영 : (같이 생각을 해 보는데)
양미 : (생각난 듯 박수를 짝 치며) 이거이거, 딱 적과의 동침이네!
태영 : 동치미든 백김치든, 난 해야 돼. 할 거야. 간다, 집에서 보자~ (서둘러 자리를 뜨고)
양미 : (혼잣말로) 애인의 여잘 취직시켜준다? 아, 이거 이해불가네~
이 때, 슬그머니 옆에 나타나는 직원.
직원 : 나도 진짜 이해가 안 간다~ 최양미씨, 일 안 해? 팝콘 타잖아~
양미 : (귀찮아서) 그, 타면 뒤집으세요.
직원 : (기가 막혀 이를 악물고) 그건 최양미씨 일이지~
양미 : 아, 나, 그럼 타게 냅두던가요! 아이, 정말... (계속 생각에 빠져 있다.)
직원 : (답답한 나머지) 어우... 열받어!
S#30. 세차장.
태영은 열심히 바닥을 청소하고 있다.
아줌마 : (목소리) 강태공~ 짜장면 왔어!
태영 : 아, 예, 짜장면이요? 예, 가요~
태영은 호스를 잠그고 안으로 들어간다.
짜장면을 먹기 위해 둘러앉은 주인 아줌마, 다른 남자 직원, 그리고 태영.
아줌마 : (짜장면을 비비며) 아, 근데 강태공이 안 나오면, 내가 섭섭해서 어떡해~
이제 막 정들려고 했는데. 좋은 데로 취직했다고 하니까 붙잡을 수도 없는 거고~
태영 : 자주자주 놀러올게요~
남자 : 놀러오지 말고 세차하러 와요. 내, 돈 이만큼 벌어서 큰 차 끌고 오면 50% 해준다!
태영 : 어? 정말요? 하하~ 그런 날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럴게요~ 하하!
어~ 저, 이거 제가 쏘는 거니까 많이 드세요! 그리고 두 분, 너무 감사했어요~
'강태공' 이라는 별명, 저 너무 좋아요~ 정말 안 잊을게요.
헤어질 생각을 하니 코 끝이 찡해오는 태영.
아줌마 : (훌쩍이는 태영을 보고 옆에 남자를 나무란다.) 아, 왜 애를 울려~ 응?
아, 걱정마. 작은 차 끌고 와도, 내가 50% 해줄게, 어? 기분이다! 먹어 먹어, 먹자~
태영 : (웃으면서) 정말요?
아줌마 : 아이, 그럼~ 말만 들으면 공짜야, 공짜~
태영 : 그 약속 꼭 지키셔야 되요~
아줌마 : 아이고, 그럼 그럼 그럼~ 아유~ 짜장면 맛있다, 오늘은 특별히...
저 뒤에서 태영을 바라보고 있는 수혁. MP3 플레이어를 듣고 있다.
남자 : 근데~ 그 GD 자동차 한 뭐시기 사장, 신문에 났더라구요. 그것도 아주 대문짝만하게.
태영은 기주 얘기가 나오자 뜨끔해서 갑자기 사레에 걸린다.
태영 : 에헴, 에헴, 에헴~
아줌마 : 거 이상하네. GD 자동차 하면 아쉬울 거 없잖아, 응?
남자 : 그럼~
아줌마 : 아니, 대통령 딸도 아니고 국회의원 딸을 며느리로 받을 이유가 없잖아~ 분명히 뭔가 있어!
남자 : (맞장구) 맞아.
아줌마 : 강태공, 어떻게 생각해?
태영 : (시치미 뚝 떼고) 전 먹을 때 생각같은 거 안 해요~ 그리고 저, 한기... 아니, 한 뭐시기 그 사람,
잘 몰라요, 저는.
태영은 짜장면을 입 안 가득 넣고 급하게 먹고 있는데,
태이블 위에 기주 기사가 실린 신문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한다.
갑자기 먹고 있던 그릇을 그 위에 내려놓으면서 기주 사진을 가리는 태영.
아줌마 : (마침 그 때 신문을 보고는) 어? 어? 그 사람, 여깄다 여깄어!
이거 치워봐, 치워봐. 그릇 치워봐~
태영 : (오물거리며) 아, 아니, 뭐요?
아줌마 : 아, 저, 그 사람 모른다면서~ 이거 치워봐, 그 사람 여깄어~ 이거 치워봐, 이거~
사진을 보여주려는 아줌마와 이를 막으려는 태영 간에 짜장면 그릇을 놓고 실랑이가 벌어진다.
태영 : 아, 그 봐서 뭐해요, 눈만 버려요~ 얼핏 봐도 인물이 영 거시기 같구요, 이거.
남자 : (다급하게) 태영아, 좀만, 좀만 좀 치워봐, 치워봐~ 아, 좀!
결국 밀려난 태영
남자 : (신문에 난 사진을 보면서) 아유~ 뭐 이 정도면 반반하네~
아줌마 : 그럼~
남자 : (짜장면을 먹으며) 근데 정말, 사랑하는 여자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태영 : (괜히 눈치를 본다.)
남자 : 집안의 반대, 뭐 그런 스토리 있잖아요.
아줌마 : 글쎄...
남자 : 그치?
태영 : (깜짝 놀라) 아, 전 몰라요. 왜 눈 동그랗게 뜨고 절 보세요? 저는 이 사람 정말 몰라요~
(신문을 탁탁 치면서) 이거 몰라요, 이 사람~ 예... (태영의 핸드폰이 울리고) 아, 저, 잠깐만요...
'애인'이라고 찍혀 있는 걸 보면서 잠시 망설이던 태영. 전화를 받는다.
태영 : 어, 수혁아...
수혁 : (뒤에서 태영을 바라보면서) 단무지도 좀 먹어라~ 안 느끼하냐?
태영 : 나 원래 단무지 안... 어, 야, 너 어디야? 너 여깄어?
주위를 둘러보던 태영은 수혁과 눈이 마주치고, 수혁은 웃으면서 전화를 끊는다.
S#31. 카페 안.
수혁과 마주 앉은 태영.
태영을 빤히 보고 있는 수혁 때문에 태영은 좀 불편하다.
태영 : 어제... 집 근처까지 왔었던 거야? 왔으면 들어오지, 왜 그냥 갔어...
수혁 : 그 집에 사람이 몇인데 나까지 가~
태영 : (미소 지으며) 그래도 넌 언제나 환영이지~ 양미가 너 많이 보고 싶어 하는데...
수혁 : (아무 말 없이 차를 마신다.)
태영 : (한숨) 후... (갑자기 티스푼을 내려놓으면서) 삼촌이... 잘 데가 없다고 해서 그랬어.
수혁 : 너 바보야?
태영 : ?
수혁 : 우리 삼촌, GD 자동차 사장이야~ 국내 직원만 2만명이 넘어. 삼촌 사인 한 장에 내셔널 인컴
(national income)이 달라진다고. 그런 사람이 하룻밤 잘 데 없겠어?
태영 : 내 말 뜻 알잖아. 몸이 아니라 마음 뉘일 곳이 필요했겠지.
수혁 : 그래, 그래서 더 싫어~ 그게 왜 너네 집인데?
태영 : ...
수혁 : (한숨) 후... (MP3 플레이어를 보여주며) 이거 기억나? 니가 준 거야.
태영 : ...
수혁 : 이 안에 노래가 스무 곡 들었거든? 어제 밤에 내가 이걸 몇 번 들었는지 알아?
스무 곡씩 여섯 번을 들었어. (한숨) 후... 삼촌 차 앞에서 밤새도록 기다렸거든~
태영 : ...
수혁 : 내가 참는 거, 어제까지만이야. 나 이제 안 참어! 너무 확실한 걸 봐서~ 이제 안 참아줘.
태영 : (벌떡 일어난다.) 수혁아! 나 어디 갈 데가 있는데 늦은 거 같애.
오늘 꼭 돌려줘야 될 게 있어. 갈게.
자리를 뜨는 태영. 가다 말고 수혁에게로 뒤돌아선다.
태영 :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다음에 보면 너 들었던 음악, 나도 들려줘, 같이 듣자. 갈게.
태영은 심난한 표정으로 카페를 나서고, 수혁은 그런 태영을 바라보고 있다.
S#32. GD 자동차 로비.
태영이 들어온다.
태영 : (주변에 인사를 하면서) 안녕하세요. 안녕하셨어요?
엘리베이터 앞에 이미 서 있는 중년의 여인. 그 옆에서 기다리는 태영.
그런데 위에서 윤아가 내려오고, 태영과 윤아가 마주친다.
윤아 : (태영의 옆에 서 있는 중년의 여인에게) 아, 엄마~
윤아모 : 어~
윤아 : (태영을 보더니) 이게 누구야?
태영 : ...
윤아모 : 우리 딸 마중 나왔니? 아는 사이야? 친구?
윤아 : (눈을 내리깔고) 얘가 태영이야, 엄마. 내가 얘기했었지?
태영 :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는데)
윤아모 : (태영을 무시한다.) 올라가자. 회장님 기다리신다.
윤아 : 뵙고 와요, 나 얘랑 할 얘기 있어. 너도 나한테 할 얘기 있지?
태영 : ...
S#33. 회장실.
윤아모와 한회장이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다.
윤아모 : 의원님은 말리시는데 제가 고집을 피워서 왔습니다. 언짢으셔도 이해해 주세요~
회장 : 하하...
윤아모 : 서로 죽고 못 산다, 연애해서 시키는 혼사도 아니고, 양 쪽 집안 서로 득 되자고 시키는 혼산데.
한 번은 이런 고비 넘겨야 할 거다 예상은 했었지만, 의원님 마음이 많이 상하신 모양이에요.
회장 : 한사장 불러다가 알아 듣게 얘기했으니까, 조만간 찾아뵐겝니다. 너무 걱정마세요.
윤아모 : (비꼬는 듯) 회장님 걱정에 비하면, 저희 걱정이야 티도 안 나죠~
회장 : !
윤아모 : 의원님은 입이 무서우신 편입니다만, 저야 아시는대로 화류계 출신이라 별로 입이 무겁질
못 합니다. 제 입 막으시려면은 이 혼사, 서둘러 주세요.
회장 : ...윤아가 누굴 닮았나 했더니, 안사돈을 닮은 모양입니다~
윤아모 : ...
회장 : (자리에서 일어나며) 일이 있어, 멀리 못 나갑니다.
윤아모 : (따라 일어나서)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회장실을 나가는 윤아의 모. 회장은 안색이 많이 안 좋다.
S#34. 회사 안
복도 끝에 놓인 테이블. 태영과 윤아가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윤아 : 약혼식 얘기는 알지?
태영 : 알지~ 전 국민이 다 아는데.
윤아 : 피곤하니까 길게 얘기 말자. (손을 들어 반지를 보여주며) 이거 보여?
태영 : 보이네. 반지네.
윤아 : 맞아, 약혼반지. 내가 한기주씨 약혼녀라는 표시지~
그러니까 이제 한기주씨 근처에 얼씬도 말아줄래? 여기도 다신 오지 말구.
태영 : 이봐, 문양. 문양 뜻은 알겠는데, 나 한기주씨 만날 일 있으면 만날 거고,
여기 올 일 있으면 올 거야. 그니까 괜히 스트레스 받지마. 니 건강에 해롭다. 간다~ (일어나는데)
윤아 : 뭐 하나만 물어보자.
태영 : 얼른 물어봐라.
윤아 : 그 사람이 GD 자동차 사장인 거, 이름이 한기주인 거, 이혼한 거,
이 때, 지나가다가 듣게 되는 기주.
윤아 : 고급차를 탄다는 거, 남자라는 거. 그 외에 그 사람에 대해서 아는 거 있니?
태영 : (잠시 생각하더니) 있지. 모든 걸 다 가진 사람이지만 참, 가진 게 없는 사람이고.
기주는 벽 뒤에 숨어서 태영의 말을 듣고 있다.
윤아 : 무슨... 뜻이야?
태영 : 돼지 저금통에 동전 모아본 적 없을 거고, 길거리에서 떡볶이, 순대 사 먹어본 적 없을 거고.
누구 앞에서건 편하게 울어본 적 없을 거고. 기억은 많지만 추억은 없고.
GD 자동차 사장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거고.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기주.
태영 : 아마 자기 그림자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걸?
고개를 떨구고 걸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테니까.
윤아는 이를 악문다.
태영 : (시계를 보고는) 야, 너 내 시간 너무 많이 뺏었다. 간다~ 윤아야,
다음에 볼 때 우리 좀 웃자꾸나, 응?
태영은 성큼성큼 걸으며 코너를 도는데 거기에 서 있던 기주와 마주 친다.
태영 : (놀라고 당황해서) 언제부터... 여깄었어요?
기주 : (윤아를 힐끔 보고는) 나 보러 온 거 아냐? 왔으면 바로 사무실로 오지,
무슨 얘기가 그렇게 길어? 가~ (먼저 걸어가고)
태영 : (혼잣말로) 다 들은 거 아냐? 음...
S#35. 사장실
들어온 기주와 태영.
기주 : (소파에 앉으며) 차 한 잔 할까?
태영 : (중얼중얼) 아니, 내가 뭐 율무에요? 꿀이에요, 모과에요, 유자에요?
나만 보면 맨날 차 한 잔 하자, 그 말 밖에 안 해...
기주 : 아니, 먹기 싫음 말지, 뭐 이렇게 궁시렁 대?
태영 : ...그러니까요~ 하하... (웃으면서) 뭐, 왜 그럴까요, 저?
(기주 맞은 편에 앉는다.) 저... 아까 내가 한 얘기, 다 들었어요...?
기주 : (시치미 떼고) 왜, 나 흉 봤어?
태영 : 아, 아니요, 흉은 무슨~ 아, 저 사람 없는 데서 남들 흉보고 그런 적...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까는 아니에요~ 절대! 네버, 엑스!
기주 : (태영이 들고 있는 봉투를 가리키며) 이거 뭐야?
태영 : 아, 이거 왜 안 갖고 가셨어요... 이거 돌려 드리려고 왔어요.
기주 : 이거 때문에 일부러 온 거야?
태영 : 아니.. 예! 실은, 너무 걱정돼서요. 아침도 안먹고 가 버려서, 그래서 이 핑계 대고 다시 온 거에요.
(미소) 근데 괜찮아 보이네요. 괜한 걱정을 했네요, 뭐... 일 보세요, 전 갈게요~
(테이블 위에 봉투를 내려놓고 일어나 나가려는데)
기주 : 내가 일부러 두고 온 거야.
태영 : (기주를 돌아본다.) ?
기주 : 이거 핑계로 나 보러 오라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태영과 기주.
S#36. 사장실 밖
승준이 초조하게 서 있다.
여비서 : (승준에게 다가오며) 사장님이~ 정말 강태영씨 때문에 약혼 깬 거에요? 회사 소문이...
승준 : (말을 끊는다.) 박상미(?)씨. 당신 직업이 뭡니까? 몰라도 아는 척 해야 할 때가 있고,
알아도 모르는 척 해야 될 때 있다는 거, 몰라요?
여비서 : 죄송합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어, 회장님!
승준 : (느닷 없는 회장의 방문에 놀라서) !
여비서와 승준, 회장에게 인사를 한다. 회장은 사장실로 들어가려고 하고...
승준 : (회장을 막으며) 아, 저, 회의 중입니다.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끝나는대로 사장님께 말씀 전하겠습니다.
회장 : (화를 내면서) 누구와 회의하는지는 왜 빠뜨려!
회장은 승준을 밀치고 승준은 어찌할 바를 모른다.
S#37. 사장실 안.
자리에서 일어나는 태영과 기주.
태영 : 저 이제 정말 가 볼게요.
태영은 문 쪽을 향해 몸을 돌리는데, 벌컥 열리는 문. 회장이 들어선다.
놀라는 세 사람. 그리고 당황하는 태영.
*출처 : 대본과시나리오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