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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셸링: 5단계 변화의 철학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셉 셸링 1775년 1월 27일 to 1854년 8월 20일
셸링은 독일의 철학자였습니다 표준 철학사에 따르면 그는 독일 이상주의의 발전의 중간 지점에 있으며, 초창기 스승이었던 요한 고틀립 피히테와 한때 대학 룸메이트이자 초기 친구이자 이후 라이벌이었던 게오르그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사이에 위치합니다 셸링은 루터파 목사의 아들로 1775년
독일 남서부 뷔르템베르크 주 레온베르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천재였으므로 15세의 어린 나이에 튀빙겐 대학의 신학과에 입학했고, 거기서 다섯 살 위인 헤겔, 헐덜린과 기숙사를 같이 쓰면서 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이 무렵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났고 보수적이었던 튀빙겐 대학의 정통 신학에
맞서 그들은 기독교에 대한 새로운 해석에 몰두했습니다 이는 특히 칸트 철학의 해석과 관련하여 신학이 올바른 일인지 하는 문제에 있어서 이들 운동권 삼위는 정통 신학과 철학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이들은 피히테의 영향을 받아서 인간의 자유를 절대화시키고 초월적인 신의 개념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피히테는 위에서 본 것처럼 선험적인 자아 개념을 내세워 거기서 세상을 도출한 관념주의 철학가였습니다.
그리고 이 튀빙겐 3인방 철학가들의 큰 특징은 피히테 말고 다른 두 가지 특징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1, 절대자, 즉 the absolute 개념과 2, 이성과 감정의 조화라는 것입니다 절대자 개념은 이들 친구들이 당시 유행한 야코비 F.H. 야코비가 쓴 절대자 개념입니다. 이는 또 무제약자 즉 the unconditioned 개념과도 같습니다 그 맥락은 야코비가 쓴 스피노자 서한, 즉 the Spinoza letters에서 그는 "스피노자의 철학은 최고의 합리적인 체계이다, 그러나 절대자는 개념적으로 파악할 수 없다 이는 직관적으로 파악된다, 는 등의 말을 남겨서 당시 독일의 문화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야코비의 사상 중 절대자, 즉 the absolute는 튀빙겐 삼인방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든 절대자 개념을 철학의 목표로 삼았습니다.
즉, 그들은 야코비가 발명한 절대자 개념을 쓰면서도 야코비와는 달리 그 절대자를 개념적으로 파악하려고 애썼습니다.
셸링의 철학을 해석하는 것은 그 진화하는 성격 때문에 어려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즉, 그 과정에서 아주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셸링은 1795년에 야코비와 피히테가 제기한 문제들을 두 개의 텍스트에서 다루고 있습니다. 철학의 원리로서의 나 또는 인간 지식의 무조건성에 관하여와 독단주의와 비판에 관한 철학적 편지입니다.
이 유튜브 방송의 강사 안재오는 셸링 철학의 발전 및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이 이론은 아직 학계에서 완전히 인정된 것은 아니니 독자들에게 참고가 되길 바랍니다.
1 단계 철학 : 피히테의 자아철학 연구 단계, 절대적 자아의 철학, 1794년
1794년경 셸링 철학의 초기의 대작은 위에서 말한 “On the I as principle of philosophy” (1794)입니다 이 책은 거의 피히테의 저서 Science of Knowledge를 따르고 있습니다. 셸링은 우선 피히테의 자아 개념을 방어합니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피히테는 “I am I”라는 동어 반복적인 문장을 통해서 사유하는 자아와 사유되어지는 자아를 동일하게 놓았습니다. Johann Gottlieb Fichte의 “I am I”는 단순한 동일성 명제가 아니라, 자아의 능동적 자기정립을 나타내는 철학적 원리입니다. 여기서 ‘나(I)’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스스로를 끊임없이 생성하는 활동이며, “I = I”는 자아가 자기 자신을 세우는 행위를 표현한다. 이는 Rene Descartes의 코기토처럼 존재를 확인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존재와 인식의 근거를 자아의 행위에서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피히테에게 세계는 이러한 자아의 활동 속에서 비자아 즉 (Not-I)와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며, 결국 모든 현실은 자아의 자기정립과 그 한계 설정 속에서 성립합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영혼과 육신의 통일성과 같습니다. 셸링은 야코비의 영향을 받아서 피히테의 자아-원리 즉 I am I를 “절대적 자아”라고 재해석합니다. 셀링은 절대자를 무제약자 즉 the unlimited 라고 해석합니다.
즉 셸링은 절대를 사물의 존재 증명 문제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절대적인 자아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것, 즉 대상으로서의 자아로부터 증명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증명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인 것에서는 그 존재의 원리와 사고의 원리가 일치해야 한다. 그것은 단지 그것이 있기 때문에 생각되고,
단지 그것이 생각되기 때문에 있다 나, 나의 나는 모든 생각과 상상의 선행하는 존재를 포함하고 있다. 그것은 생각됨으로써 존재하고 존재하기 때문에 생각되며, 따라서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한에서만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오직 자기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며,
오직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 그것은 절대적인 인과관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을 통해 스스로를 생산한다, 라고 서술했습니다.
위의 문장들에서 셸링은 자아를 모든 생각과 상상의 선행하는 존재라고 규정합니다. 나 곧 생각하는 나는 세상과 신, 그리고 사유에 앞서는 존재입니다. 나는 그 존재와 사유가 동일합니다. 셸링의 말로 절대-자아는 “자신의 생각을
통해 스스로를 생산한다”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서 자아를 자아 밖의 것으로부터 증명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아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고 한 것입니다. 이는 데카르트의 ego cogito sum을 다른 방식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즉 생각하는 자아를 절대적인 존재로 상승시킨 것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그는 또한 피히테와도 다릅니다. 피히테는 I am I를 그의 철학 즉 지식학의 제 1원리로 삼긴 했으나 이를 절대적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바로 독일 관념론의 기초를 발견합니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근대 철학의 원리는 이렇게 무서울 정도로 변화가 됩니다. 그래서 셸링은 절대적 자아를 신적인 자아와 비교 합니다.
철학이 신학의 위치를 차지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셸링은 그의 책
“On the I as principle of philosophy”제 4장에서 다음과 같이 천명합니다 :
내가 절대적이라면 나 아닌 것은 나에 반대되는 것,
즉 나를 전제할 때만 결정될 수 있으며 나에 반대되지 않는 비아는 모순입니다 반면에 내가 절대적인 것으로 전제되지 않는다면, 비아는 나 또는 자아와 동일시될 수 있습니다.
이런 논리에서 셸링은 자아를 절대적이라고 규정합니다. 이런 표현은 쉽게 말해 유아독존입니다. 단 불교와 차이점은 유아독존한다고 혼자만 있다는 말은 아니고 나 속에 세상이 다 들어있다는 말입니다.
좀 더 풀이한다면 세상은 내가 아닌 것이다 즉 비아이다 그러나 그 비아 역시 내가 규정한다는 말입니다.
더 말한다면 세상은 혹은 우주는 내가 가진 속성, 즉 아니다 혹은 부정성이란 개념에 의존합니다. 세상을 만드는 것도 결국은 나라는 말입니다. 이런 측면 때문에 당시 셸링이 피히테 자신보다 피히테 사상을 더 잘 설명한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는 과연 어린 천재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셸링은 독단주의와 비판주의의 종합을 기획합니다. 이는 이미 루소가 행한 유물론과 관념론의 통합,
그리고 피히테가 말한 독단주의와 비판주의의 극복과 거의 같은 생각입니다 두 가지 극단은 독단주의와 비판주의이다, 즉 독단주의의 원리는 모든 자아 위에 비아가 놓이는 것이고, 비판의 원리는 모든 비아 위에 자아가 놓이는
것이며 모든 비자아를 배제하는 것이다. 이 둘의 중간에는 비아에 의해 조절되는 자아의 원리 또는 이와 동일하게 자아에 의해 조절되는 비아의 원리가 있다. 피히테는 지식학의 3 원리를 설정했었습니다. 즉 1. 제1원리, (절대적 정립)
“자아는 자기 자신을 정립한다”입니다. 2. 제2원리, (비자아의 정립)
“자아는 스스로에게 비-자아를 정립한다”3. 제3원리, (상호 제한)
“자아와 비-자아는 서로를 제한한다”입니다.
셀링은 피히테의 지식학의 3가지 원리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이를 통해서 독단주의와 비판주의 모두 비판합니다. 즉 스피노자의 합리론과 칸트의 선험철학 역시 수정합니다.
절대적 자아의 철학 안에서 양자의 대립이 분해되고 극복될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그리고 자아가 절대적이다 라는 셸링의 명제는 그의 철학을 떠나서도 납득될 수 있는 점이 있습니다. 자아 즉 생각하는 실체로서의 자아는 스스로 충분한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형상을 본 받아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자아의 절대성은 사유의 절대성이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견해가 반영되고 있습니다.
2단계 철학 : 자연철학 - 셸링 출세의 철학 1797년
1795년 스물 살 때 튀빙겐 신학부를 졸업한 셸링은 3년간 라이프치히에서 가정교사를 합니다. 이때 자연과학에 몰두하면서 독자적인 철학을 구축합니다 그 결과 자연철학 이념 1797을 썼고, 이 생각을 더 발전시켜 1년
뒤 책, “세계 영혼에 관하여”(1798)을 출간했습니다 바로 이 책을 요한 볼프강 폰 괴테가 매우 좋게 봤고, 이를 계기로 괴테는 셸링을 예나 대학교수로 적극 추천하게 됩니다. 그러나 필자는 셸링이 피히테의 철학, 즉 자기 의식의 철학을 벗어나 갑자기 자연철학으로 바뀐 이유는 바로 당시 문학가이자 권력자인
괴테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뒤에서 자세히 밝히겠지만 우선 한 가지 사실은 피히테의 선험적 자아의 철학과 괴테의 자연철학은 서로 상반된다는 것입니다 셸링 자신이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괴테의 자연 예찬을 보겠습니다 괴테는 문학가이자 자연과학자였습니다. 그는 자연을 사랑하였습니다.
나폴리와 시칠리아에서 식물과 물고기를 본 후 "만약 내가 10년 더 젊었다면
인도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발견한 것을 내 방식대로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라고 1787년 여름 “크네벨에게 보낸 편지”에서 썼습니다. 괴테는 또 그 편지에서 “우리가 자연을 살아있는 방식으로 바라보고자 한다면 우리는 자연의 모범을 따라야 하며 자연 자체처럼 움직일 수 있고 자연처럼 부드러워야 합니다” 라고 썼습니다.
괴테는 이런 자연 찬사 외에 자연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했고 “식물 변형론”, “색채론” 등을 출판했습니다 이런 괴테의 마음에 들기 위하여
셸링은 피히테주의 철학에서 자연철학으로 전환한 것입니다. 그의 시도는 성공적이었고, 그 결과 그는 아주 젊은 나이에 예나 대학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의 친구 헤겔은 셸링이 있는 예나 대학으로 가서 강사로 일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하게 됩니다. 셸링의 자연철학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물체와 힘을 구별하는 뉴턴의 기계론적 자연관에 맞서서 셸링은 물체는 자체 내에 힘을 지니고 있다는 유기체적 자연관을 주장합니다. 유기체적 자연은 칸트가 이미 주장한 바이지만 셸링과는 다릅니다 칸트는 자연 속 여러 생명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어떤 유기체적 목적이 있을 것으로 추측했지만, 셸링은 인간을 위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역시도 자연의 일부이며 따라서 인간과 비생명들까지 모두 포함해서 자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유기체적 자연관에서 각 부분은 전체와 분리 불가능하며 전체의
관념이 각 부분의 위치를 결정합니다. 또한 그것은 자기 발생적이고 자기 조직적이어서 모든 부분들은 상호적으로 서로의 원인과 결과가 되며 외부의 원인을 갖지 않습니다 즉, 자연의 설계와 목적은 어떤 내적 원리에 따라 안으로부터 나오며 자기 산출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원칙을 바탕으로 셸링은 자연의 세 가지 기본적 힘 potent들을 규정합니다 첫째, 셸링은 자연의 가장 기본적인 힘을 무제한적 활동이라고 보았습니다. 그것은 그것을 억제하는 힘과 균형을 이루어 양적인 물질들을 산출합니다.
여기서 무제한적 활동은 청력이고 억제하는 힘은 인력이라고 정의합니다. 둘째, 무제한적 활동은 억제되지 않은 어떤 지점에서 다시 자신을 드러냅니다. 물체의 움직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물질의 운동역학적 법칙은 물론이고 전기 현상, 자기 현상, 그리고 물체의 화학적 성질들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셋째, 이런 힘들은 마침내 유기체를 구성하여 그 유기체 내의 감수성, 반응성, 재생성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유기체적 영역 안에서도 여러 단계가 있습니다. 낮은 단계에서는 재생성이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데 비해 감수성은 비교적 덜 발달되어 있습니다.
높은 차원의 단계에서는 감수성이 더욱 발달해 개체적 특수성들이 더 잘 드러납니다. 가장 위의 단계에 인간이 있으며, 이 인간이라는 유기체는 자연의 관념성을 가장 명백하게 드러내는 유기체입니다. 지금의 과학적 사고법으로 살펴보면 셸링의 생각이 지나치게 자의적인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철학적으로 이를 분석해 보면 여러 가지 주요한 개념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자연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보는 그의 관점은 지금의 지구 환경 보호적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훌륭한 철학적 지침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낮은 형태로부터 높은 차원의 형태가 창발된다는 그의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 진화론과 매우 유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3 단계, 선험적 관념론의 단계, 1800년
1800년 셸링은 선험적 관념론의 책인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 즉 , System des Transcendentalen Idealismus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에서 셸링은 선험철학과 자연철학을 서로 보완적인 것으로 설명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그가 이전에 연구한 선험적 자아론 피히테와 자연철학 괴테를 다시 종합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셀링은 칸트의 철학 시스템을 사용합니다. 이런 면 때문에 한때 그의 스승이었던 피히테는 불만을 가졌습니다.
하여간 선험적 관념론의 단계에서 셀링은 피히테, 괴테, 그리고 칸트를 종합합니다
그리고 선험적 관념론은 초월론적 이상주의라고도 합니다. 영어로는 둘 다 transcendental idealism입니다.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는 철학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셉 셸링이 1800년 튀빙겐에서 출간한 작품입니다.
이 책은 독일 관념론의 핵심 작품이며 셸링의 첫 번째 철학 단계를 마무리하는 작품입니다. 셸링은 자연철학을 선험철학과 양립시켜 진정한 관념론의 체계를 완성합니다. 셸링은 이 책에서 인간 의식에 대한 이론적 고찰로 시작해 인간의 삶의 실천 윤리 역사에 대한 결론을 도출한 다음 마침내 예술 철학을 공식화합니다. 셸링은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인식 방식을 자각하도록 유도하고자 합니다. 목표는 순진한 우리가 외적 사물이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셸링에 따르면 우리의 세계는 우리 자신의 자아의 구성물입니다
그는 순진한 의식이 우리와 별개의 사물의 세계가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근본적인 오해를 바로잡고자 합니다.
다른 관념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셸링도 우리가 경험한 세계는 우리의 의식 속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하여 셸링이 의지하는 것이 바로 피히테의 철학 곧 선험적 관념론입니다 참고로 보통은 피히테의 철학을 주관적 관념론,
즉 Subjective Idealism이라고 합니다. 셸링의 말을 직접 들어봅시다
이 자아는 사고와 다르지 않으며 자아의 사고와 자아 자체는 절대적으로 하나이다 그러므로 자아는 사고와 전혀 다른 것이 아니며, 따라서 사물이 아니라 무한으로 이어지는 비객관적인 것이다 이것은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자아는 참으로 사물이지만 오직 그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며, 따라서 원래 사물의 세계에 있지 않고 스스로를 사물로 만들어서만 사물이 되며 외부의 어떤 것을 위한 사물이 아니라 항상 그 자신을 위해서만 사물이 된다.
이런 물질 혹은 자연과 자아의 구별이 셸링의 선험적 관념론의 기본적인 구도입니다. 이런 논리 위에서 셸링은 철학의 새로운 원리를 찾습니다.
즉, 위에서 말한 자연철학과 선험철학 모두를 만족시키고 그 위에 설정되는 최고의 원리입니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바로 피히테 철학의 원리인 자아 혹은 나입니다. 셸링은 나의 원리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자아, 즉 the I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생산물, 즉 지적 직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지적 직관은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행위이므로 이 직관은 증명될 수 없고 요청될 수 있을 뿐이지만 자아는 그 자체가 이 직관일 뿐이므로 철학의 원리로서 자아 역시 자체가 요청된 것일 뿐입니다.
여기서 셸링은 자아를 지적 직관, intellectual intuition,
이라고 합니다. 지적 직관은 보통은 신적인 직관, 곧 자신의 생각을 바로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게 하는 기적적인 직관입니다. "나는 나다."라고
하는 선험적 자아를 이제는 지적 직관에 비유를 합니다. 물론 여기서는 그런 것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요청된다고 합니다. 칸트는 신과 자유 그리고 영혼 등이 요청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지적 직관 혹은 자아가 요청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선험 철학의 최고의 원리입니다. “나는 나다”라고 하는 선험적 원리를 셸링은 직관과 동일시함으로써 그는 자아의 철학에서
자연을 도출하고 더 나아가서 이제는 예술마저 건드리게 됩니다. I am 혹은 I am I라는 피히테의 원리를 셸링은 이제는 자연철학, 즉 자연의 생성에도 적용을 합니다. 나는 나다 원리에서 모든 것이 도출됩니다. 이것이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란 책의 집필 의도입니다. 그 일부인 이론편에서는 인식의 수단이 1. 근본적인 감각에서 2.
생산적 직관, 그리고 3. 반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4. 절대적인 의지행위라는 단계를 통과합니다.
이런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자아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면서 셸링은 피히테와 마찬가지로 각종 범주들을 도출합니다
자아와 비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 각종 사유의 규정들이 밝혀집니다 여기서 하나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셸링은 자아와 비아, 즉 긍정과 부정 혹은 존재와 무라는 대립자들을 통해서 생성이라는 범주를 도출한다는 것입니다.
필자의 관점에서는 이것이 헤겔의 논리학 1장, 즉 being, nothing, becoming이라는 변증법에 힌트를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셸링은 자연을 다루다 보니 자연히 생성 개념에 신경을 씁니다. 이런 원리를 통해서 선험 철학에서 창조의 철학이 나오게 됩니다. 이를 통해서 그는 자연철학의 기본 개념들인 물질, 기계론, 목적론, 유기체 등의 개념을 도출합니다.
이와 동시에 그는 칸트 철학의 기본적인 관념들, 예를 들어 시간과 공간,
인과성 범주, 실체와 속성의 범주, 관계성의 범주 등을 도출합니다. 그리고 칸트의 도식론 Schematismus를 도출합니다. 선험적 관념론의 체계의 2부는 실천 철학입니다. 실천 철학에 들어가기 전 칸트와 자기의식에 대한 공부가 조금은 필요합니다. 셸링은 피히테의 선험적 자아와 자기의식, 곧 self-consciousness을 동일시합니다.
이는 실은 임마누엘 칸트의 선험적 통각 transcendental apperception입니다.
칸트는 선험적 통각을 "나는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선험적 통각 혹은 "나는 생각한다"는 기능은 모든 생각 표상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자기의식은 나는 나다는 자아의식 그리고 선험적 통각은 모두 동일한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은 관념적과 실재적이라는 형용사입니다. 관념적 혹은 이상적 ideal은 타자가 실은 자기라는 것을 아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 반면 실제적 real은 타자를 느끼는 상태입니다. 셸링 사상은 근본적으로 실제적에서 관념적으로 이동합니다.
혹은 외부적인 체험이 내부적인 체험으로 넘어오는 것과 유사한 경우입니다.
이론 철학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자기 의식의 역사였습니다 거기서 마지막 단계에서 이상적인 지성이 산출되었습니다. 반면 실천 철학에서는 그 이상적인 지성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세계에서 자신의 자유를 현실화하려는 것이 주된 목적이 됩니다. 이는 자아가 현실 세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자유란 이미 칸트와 피히테도 말했듯이 바로 도덕적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자아의 도덕적 행위를 조건으로 하여 법과 국가의 체계를 얘기하고, 더 나아가 이것은 국가 간의 분쟁을 없앨 수 있는 국가의 국가, 즉 세계 기구의 성립으로 이어집니다. 세계 기구에 이르러서야 정치사회의 보편적 도덕 질서는 완전히 현실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도덕적 실천 과정은 한없이 진보를 수행하는 역사 속에서 실현됩니다.
셸링에 따르면 그 역사는 도덕적 실천의 근본인 절대자가 그 자신을 서서히 드러내는 끊임없는 계시의 과정이기도 합니다.
1부 이론 철학과 2부 실천 철학을 종합하는 것이 3부 예술 철학입니다 1, 2부에서 중요한 것은 자아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지식을 만들며, 1부 그것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천하는가, 즉 2부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자아의 지식은 끊임없이 산출되기, 즉 변화하기 때문에 현실과는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지식, 관념과 현실, 실제의 일치가 중요해지고 이러한 일치를 수행하는 것이 미적 직관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 작품을 볼 때 이론 철학의 반성적 지식이나 실천 철학의 도덕적 실천을 통하여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미적 직관을 통하여 무의식적인 것과 의식적인 것, 실제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 것의 일치를 이루게 되었을 때 만족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곧 그 작품에 아무것도 덧붙이거나 감해서는 안 된다는 감정을,
그리고 또한 비록 문제가 해결되는 일은 있지 않아도 어쨌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하는 감정을 향수하는 것은 어째서인가?
셸링의 생각으로는 완성된 예술 작품을 관조하는 것이야말로 자아,
즉 주관이 스스로에 대해 할 수 있는 최고의 객관화이기 때문입니다
4. 동일 철학 Identity Philosophy의 시대 (1801 to 1806)
셸링의 친구들은 횔덜린과 헤겔입니다. 1795년 프리드리히 횔덜린은 훗날
독일 관념론의 발전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친 “판단과 존재”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위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짧은 글에서 횔덜린은 자기 의식의 구조 안에서는 파악하거나 알 수 없는 의식의 선행적이고 근원적인 근거인 절대적 정체성을 생각하려고 시도합니다.
횔덜린은 이 근원적 정체성을 존재 sein라고 부르며 이를 판단과 구별합니다.
여기서 횔덜린은 반성적 판단의 근거가 되는 근원적 동일성을 생각하려고 시도합니다. 횔덜린에 의하면 판단은 분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횔덜린은 피히테의 I am I 역시 판단의 분리라고 합니다.
위의 횔덜린의 글 "판단과 존재"에서 또 하나 주목할 것은 지적 직관, Intellectual intuition입니다. 횔덜린의 사상을 짧게 정리하면 근본적인 통일은 존재이다, 존재는 지적 직관 속에서 겨우 파악이 된다, 정도로 하겠습니다. 이런 사상은 그의 친구들인 셸링과 헤겔 모두에게 작용합니다. 원래 존재 개념은 서양 철학의 중심이지만 관념론에 와서는 이 개념이 상당히 타락합니다. 그래서 존재란 외부적인 존재 혹은 감각적인 존재, 공간적인 존재라는 의미로 주로 쓰입니다 이런 헬덜린의 통일 철학은 셸링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피히테주의 비판입니다 이런 증명은 1801년 셸링이 집필한 책 즉“나의 철학의 체계의 서술”에서 이런
통일 철학적인 관점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는 나다라는 문장을 통해서 이를 철학의 기초로 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셸링은 이렇게 서술합니다
나는 내가 자연철학과 선험철학이라고 불렀던 것들을 항상 철학에 대립된 극으로 표상했었다. 현재의 서술과 더불어 나는 무차별 지점에 서 있다.
이 문장을 보면 이전의 셸링은 그의 시스템의 양대 산맥인
자연철학과 선험철학을 마치 북극과 남극처럼 서로 완전히 대립된 두 개의 봉우리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철학을 모토로 삼은 뒤에는 이 둘이 다르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정신과 자연이 동일하다, 즉 무차별적이다고 외칩니다. 혹은 무한자와 유한자가 동일하다라고도 합니다. 이는 보통 스피노자주의를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독단주의 쪽에 분류가 되는 만큼 셸링과는 다른 방향입니다. 이와 더불어 셸링은 직접적으로 피히테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그의 철학을 비판합니다. 주관성을 넘어선 절대적 동일성의 개념으로 셸링은 피히테의 주관적 관념론과 칸트의 이분법적인 철학을 깨뜨립니다. 셸링은 자신의 동일성 체계를 경험주의와 단순한 주관적 관념론과 구별하면서 독일 관념론 전반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으로 입증된 절대자 개념을 소개합니다. 절대자란 주체와 객체, 관념과 존재, 관념과 실재를 한꺼번에, 그것도 신중하게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긍정하는 무조건적인 동일성입니다. 절대자에 대한 즉각적인 지식으로서 이 동일성 체계는 셸링이 말하는 지적 직관과 긴밀히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스피노자도 언급하는 지적 직관은 야코비를 통해서 튀빙겐 삼인방에 전달이 되었습니다. 단 칸트는 이를 부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위의 횔덜린 문장에서도 나타난 지적 직관은 이제는 절대자를 보는 수단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런 셸링의 동일 철학의 의도는 그 성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서로 완전히 반대인 것들이 서로 똑같다고 하면 형식 논리학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남자와 여자는 똑같다라고 하면 상식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는 다시 말해서 “A는 A이다”라는 동일률을 깨뜨리게 됩니다.
따라서 동일 철학은 헤겔에 와서야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즉 변증법이 필요합니다.
셸링은 이런 모순을 피하기 위하여 자연과 의식을 양적인 관계로 설정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는 근본적으로 피히테의 모방이었습니다 피히테 역시 이런 문제에 빠져 한 가지 대안을 만듭니다. 이를 피히테는 양적인 관념론 Quantitative Ideellism이라고 합니다. 그 내용을 간단히 말씀드리면 비아가 자아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즉 비아가 자아의 부정이 아니라 부분이라는 논리입니다. 혹은 부정이 긍정의 일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셸링의 동일 철학 개념은 원리와 체계가 일치가 안 됩니다. 무차별적 동일성에서 다시 차별성으로 내려와야 합니다.
이를 후일 헤겔은 “밤중에는 모든 소가 검다”라고 야유했습니다.
5단계, 긍정의 철학, 신화의 철학 (1841 to 1852)
1831년 11월 14일 헤겔은 베를린에서 사망했습니다. 1840년 셸링은 헤겔을 대신해 현재 공석인 베를린의 교수직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듬해 셸링은 키에르케고르, 바쿠닌, 훔볼트, 엥겔스 등이 참석한 긍정 철학, 즉 Positive Philosophy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이 강의는 세 단계로 진행되었습니다 데카르트 이후 부정 철학의 역사에 비추어 긍정 철학을 소개하고 그 근거를 제시하는 긍정 철학의 토대, 신화의 철학 Philosophy the Mythology과 계시의 철학 Philosophie der Offenbarung이 이어졌습니다.
여기서는 신화의 철학에 대해서 간단히 알아보겠습니다 신화의 철학에 대한 그의 일련의 강의에서 셸링은 독일 낭만주의와 관념주의 사상의 패러다임적 혁명을 이루었고, 이는 이후에 독일 철학과 심리학자 칼 융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피히테의 제자였던 셸링은 독일 낭만주의 철학자 중 가장 중요한 그러나 종종 잊혀지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자연철학 즉, Naturphilosophie를 바탕으로 셸링의 신화 철학에 대한 설명은 객관적 실재보다는 인간의 본능이나 마음의 사실을 중시하는 소위 직관주의 심리학의 기초가 되며 신화의 현실성에 대한 강력한 옹호입니다. 셸링 이후 그간 무시되었던 각종 신화에 대한 붐이 일어났습니다. 셸링의 신화 철학의 핵심 주장은 철학적 개념이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 이전의 사상과 완전히 다른 변화입니다. 사실 철학은 신화적인 사유와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즉, 그들은 모두 실증과학 혹은 경험과학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셸링은 신화가 인간 본성과 진화에 근본적이라고 믿습니다. 즉, 신화와 전설이란 것은 인간들의 창작이 아니라 그보다 더 근원적인 자연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신화는 자연에서 나옵니다.
이때 말하는 자연 개념은 눈에 보이는 자연이라기보다는 우주 만물을 다 말합니다.
따라서 신화는 인간의 주관성인 의식과 함께 성장하여 또 인간의 의식과 지성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신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했을 때 셸링은 인간의 의식과 이해가 신화에 의해 형성되고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견해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신화는 깊은 인간 사고의 첫 번째 구체화였으며 이야기에 구현된 깊은 직관적 진실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결국 신화는 전통적으로 대대로 전해지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공식적이고 전통적인 맥락에서 신화는 오늘날 우리가 신화라는 단어를 들을 때 종종 생각하는 것처럼 진실이 아닌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런 식으로 셸링은 탈신화를 주장한 계몽주의 사상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즉, 계몽주의 학파는 신화란 것은 과거의 어두운 시대의 표현이었고, 그만큼 비과학적이고 미신적이다라고 가르쳤습니다. 따라서 신화를 믿는 사람들은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글을 모르고 무지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미를 부적절하게 전달하려고 시도한 결과물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따라서 계몽주의에 도달하기 위해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이론에 대해서 셸링은 반대 견해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시 한번 신화가 인간의 존재와 의식을 형성한 것이지,
인간의 존재와 의식이 어떤 초기의 어둡고 무지한 형태로 이 신화를 형성하고,
신화가 초기 인간 의식의 무지 때문에 가난하고 어두워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들의 글에서 가장 초기의 신화는 바다가 태동하고 원시적인 인간 육지 동물에게 미치는 위험의 현실을 구체화합니다 땅은 인간의 집입니다. 인간이 걷는 곳입니다. 인간이 사랑을 나누고 번식하는 곳입니다. 인간이 정착하고 농사를 짓는 곳입니다. 그러나 땅은 항상 물의 신 티아마트나 다른 바다 괴물과 바다의 신에게 압도당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 혼란스럽고 통제할 수 없으며 물의 홍수는 언제든지 풀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러한 고대 신화적 원형의 표현이기 때문에 질서 있고 번영하는 존재입니다. 땅은 번영할 잠재력이 있는 질서 있는 존재입니다.
셸링에게 신화는 사전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미리 전제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신화는 인간의 사고와 의식의 기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신화 너머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신화는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신화는 인간의 의식과 사고가 시작되는 곳입니다.
신화는 정신의 첫 번째 문법입니다. 셸링은 기독교가 발전시키고 계승한 오래된 성경 해석학 전통과 연속하여 신화는 항상 우화적 의미로 받아들여졌으며 진실은 우화에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진실은 신화에 표현된 의미에 존재하며 신화의 역사성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웅 전사가 자연의 거친 힘과 약탈적인 동물에 맞서 자신의 백성을 구하고 그로부터 수장이나 왕이 되는 것과 같이 신화에 대한 역사적 선례가 있을 수 있지만 신화 속 진실은 이야기에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현재 신화라고 생각하는 이러한 이야기를 통해 이러한 진실을 전달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운명, 운명, 투쟁, 인간의 삶과 존재 등에 대한 진실 초기 인류 역사에서 부족의 용감한 또는 강한 남자가 적대적인 자연의 세력과 모험을 떠나 싸워서 자신의 백성을 구해야 했고, 살아남아 백성을 구한
사람들이 영웅으로 칭송을 받았고, 그 사람들이 나중에 사람들의 지도자로 선출된 역사적 선례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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