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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도서10:12-15(p.958)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말
우리나라에도 있지만 일본에는 원숭이학교라는 이름으로 관광객들에게 입장료를 받고 원숭이 묘기를 보여줍니다. 원숭이들이 교실에서 공부하기도하고 줄넘기 높이뛰기 같은 묘기도 보여줍니다. 제주도에는 돌고래 쇼 (show)를 보여주는 곳이 있습니다. 돌고래가 여러가지 묘기를 보여줍니다. 돌고래가 인사를 하기도 하고 조련사의 모자를 쓸쩍 벗겨버리기도 하고 조련사를 태우고 달리기도 합니다. 코끼리 묘기나 사자 묘기는 아주 옛날부터 서커스에 있어서는 단골 메뉴였습니다. 동물들의 이런 묘기를 보노라면 얼마나 많은 훈련을 받았을까하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저렇게 훈련을 잘 시켰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야고보 사도는 “들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짐승과 바다의 생물들은 어떤 종류든지, 모두 사람들이 길들여서 다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혀는 누구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겉잡을 수 없는 악이요, 죽음에 이르게 하는 독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혀는 누구도 길들일수가 없다라고 단정적으로 말씀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말을 보게됩니다.
지혜자의 말은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의 영혼 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체를 살리지만 우매자의 말은 자신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듣는 자들로 하여금 그 영혼과 함께 삶을 피폐(疲弊)하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우리는 이 시간 명심 하시므로 지혜자의 말을 할 수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12절과 13절 말씀을 봅니다.
12. 지혜자의 입의 말들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들은 자기를 삼키나니
13. 그의 입의 말들의 시작은 우매요 그의 입의 결말들은 심히 미친 것이니라
지혜로운 지혜자는 입만 열면 은혜로운 말을 하지만, 우매자는 즉 어리석은 사람은 입술을 놀렸다 하면 제 신세를 망치는 말을 한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시작도 어리석은 것이더니 결말도 심히 미친 소리로 끝을 낸다 라고 말합니다.
지존파(至尊派)라는 범죄 조직이 있었습니다.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전남 영광군을 거점으로 6명으로 결성된 범죄 조직으로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조직을 지존파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5명을 연쇄 살인하고 강도, 성폭행 등의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심지어 조카를 성폭행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 6명의 두목인 김기환은 당시 26살이었으며, 나머지 5명은 20세에서 22세였습니다, 지존파는 사회 부조리가 자신들을 범죄자로 만들었다며 범행을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나중에 이들이 체포되었을 때 두목인 김기환은 인터뷰에서 초등학교 시절 미술시간 준비물인 크레파스를 가져가지 못했을 때, 선생님이 자신을 밖으로 내쫓고, 상의를 벗기고, 벌을 서게 하며, 준비물은 훔쳐서라도 가져와야지 왜 선생님 말을 무시하고 듣지 않느냐며 독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그는 집이 가난해서 가져올 수 없는 변명보다는 필요한 것을 훔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선생님의 미움도 받지 않게 되었고 작은 절도가 큰 절도로 그 죄가 더 과중해져 나중에는 사람을 무차별 죽이는 죄에까지 이르렀다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우매한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을 살인과 성폭행 범으로 만드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말은 지혜로워야 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 사도께서 예수를 증거하다가 죄수의 몸이 되어 재판을 받기 위해 로마로 호송(護送)되어 가다가 유라굴라라는 광풍(狂風)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요즘처럼 엔진으로 가는 배가 아니라 바람이 잘 불어 줘야 갈수 있는 배였는데 바람이 미친 듯이 불었으므로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바람부는 대로 배가 바람에 좇겨가게되었습니다. 바람부는대로 배가 쫓겨가다가보니 배가 침몰할까 염려하여 배를 가볍게하기 위해 배안에 있는 연장들을 전부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계속하여 배는 바람부는대로 쫓겨 갔습니다. 3일째 되는 날에는 배를 더 가볍게하기 위해 배의 기구들을 바다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않고 큰 풍랑은 잠시도 쉬지 않고 그대로 미친 듯이 불었으므로 구원의 여망(餘望)마저 없어졌습니다.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이 그들 가운데 서서 말하였습니다. “여러분이여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당신들 중 아무도 생명에는 아무런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만 부숴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하고 말했습니다.
광풍에 쫓겨다닌지 14일째 되는 날에는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음식 먹기를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기다리고 기다리며 먹지 못하고 주린 지가 오늘까지 열나흘인즉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떡을 가져다가 모든 사람 앞에서 하나님께 축사하고 떼어 먹을 것을 권하니 그제서야 사람들이 다 안심하고 받아 먹었습니다.
그리고 배는 다음날 날이 셀때에 한 섬에 도착하여 상륙하여 배안에 있던 276명 전원이 살았습니다.
지혜자는 위기의 순간에도 사람을 살리는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혜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지혜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므로 위로 받고 힘을 얻어 살아갈수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매자는 곤경에 처했을때에, 위기의 때에 사람들을 더 낙심하게 만드는 말을 합니다. 우매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위기의 날에 절망의 날에 환난의 날에 절대로 소망의 말을 하지 못합니다.
12명의 정탐꾼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12명이 다같이 가나안 지역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모세에게 했던 보고는 10명과 2명(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로 나누어졌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은 우매한 말을 하였습니다.
1.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민13:31)
2.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다라고 하였습니다.(민13:28)
3. 땅을 악평하였습니다.(민13:32)
4. 그들은 신장(身長)이 장대하다 하였습니다.(민13:32, 33)
5. 우리는 메뚜기 같아 보인다 하였습니다.(민13:33)
갈렙과 여호수아 2사람은 지혜로운 말을 하였습니다.
1.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하였습니다.(민13:30)
2. 그 땅 백성을 두려워 말자 하였습니다.(민14:9)
3. 하나님이 약속한 그 땅을 아름답다라고 하였습니다.함(민14:7,8)
4.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다라고 말하였습니다.(민14:9)
5.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였습니다.(민14:9)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근거하여 굳은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호 하심을 믿고 확신에 찬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에 대한 굳은 믿음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굳은 믿음으로 조금도 대적을 두려워 하지 않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말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말은 현격(懸隔)하게 달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울고 싶던 차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섰습니다.
지혜로운 말을 들을 줄 아는 귀도 필요합니다. 우매자의 말을 분별할 수 있는 귀도 필요하다는 것을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교훈으로 새기게 됩니다.
지금은 그 어떤 때보다 지혜자의 말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암8:11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현대인들은 수많은 말을 듣습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전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 가를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자기가 영화를 보고 싶다면 옛날처럼 극장에 가지 않고도 스마트폰으로, 지하철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영화를 봅니다.
내가 듣고 알고 싶은 것이 있으면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는 일일이 책을 찾아보고 책에서 찾아보았지만 지금은 어디서나 찾아 볼수 있습니다.
지식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우리의 심령은 갈급합니다. 자살자가 늘어가고 범죄자가 늘어가고 술에 취한 자들이 늘어가고 해롭다는 담배를 줄담배로 피워대는 것은 알고보면 심령이 메말라 그런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게되면 항상 갈증을 느낌니다. 만족이 없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돈방석에 앉아서도 기갈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시므로 기갈에서 벗어나시기를 축원합니다.
14절 말씀을 봅니다.
“우매한 자는 말을 많이 하거니와 사람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나중에 일어날 일을 누가 그에게 알리리요”
사람이 어리석으면 말을 많이 한다라고 본문이 말씀합니다. 아주 고급식당은 반찬 종류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불고기 잘 하는 집은 불고기 외에 반찬이 20가지 30가지 나오지 않습니다. 갈비 잘하는 집은 갈비 하나만은 확실하게 그 어느 갈비집보다 차별되게 독특한 맛을 내는 갈비를 상에 올린 후에 다른 반찬은 그렇게 많이 내지 않습니다. 갈비외에 반찬을 30가지 40가지 상에 올리면 갈비가 빛을 내지 못하므로 갈비외에는 몇가지 특별한 반찬만 상에 올립니다.
말이 많은 사람은 반찬 종류만 많을뿐 실상 맛난 반찬이 없는 밥상과 같습니다.
주관식 시험을 칠 때, 시험 출제자가 묻고자하는 핵심을 아는 사람은 간결하지만 정확하게 문제의 핵심 답을 답안지에 쓸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묻는 것인지 잘 모르게되면 장황하게 많은 글을 답안지에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시험 출제자가 읽어보면 헥심 답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되면 아무리 답안지에 많이 무엇을 썼다할지라도 점수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정작 알아야 할 것을 모르기 때문에 자신이 박식하다는 것을 알리려고 말이 많을 수 있습니다.
진실로 우리 인생이 알아야 할 것은 장래에 관한 것입니다. 죽음 이후(以後)에 내가 어디로 갈것인가 이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죽음 이후를 전혀 알지 못하면서, 또한 준비되지도 않은채로 제 아무리 잘 알아서 말이 많을지라도 그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고금동서(古今東西)의 학문에 통달하였을지라도 그의 학설과 그의 강연은 모두 헛것입니다. 그의 강연에, 그의 노래에, 그의 연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열광한다할지라도 그 모든 것이 헛것입니다. 안개입니다. 다 사라지고 말것입니다.
우리가 알 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믿고 구주로 고백할 분은 예수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15절 말씀을 봅니다.
“우매한 자들의 수고는 자신을 피곤하게 할 뿐이라 그들은 성읍에 들어갈 줄도 알지 못함이니라”
우매한 자는 자꾸 일을 벌립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늘상 일을 저지르고 봅니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곤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이런 우매자는 성읍에 들어갈 줄을 알지 못한다는 말은 안식이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일만 자꾸 만들게되면 편하게 쉴 틈이 없습니다.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책상에 앉으면, 이 책 잠시 들여다보다가, 또 다른 책을 꺼내서 읽다가 공부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다면서 침대에 누워 버립니다. 책만 책상에 수북하게 쌓아두고 잠을 자버립니다.
낚시 초보자들은 자리를 이곳저곳 옮겨다니다가 고기를 한마리도 못잡고 돌아옵니다. 자리를 자꾸 옮겨다니는 이 사람은 다른 강태공들을 정신소란케 하다가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일 저일로 분주할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일 하나만이라도 확실하게 합시다. 그것이 바로 말씀을 듣는 것(혹은 읽는 것)입니다.
눅10:38-42절에 보면 이런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번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가시다가 한 마을에 들어가시었습니다. 그 마을에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마르다에게는 마리아라 하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방안에서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고, 마리아는 주의 발 앞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의 언니 마르다는 밖에서 음식을 준비하느라 눈코 뜰새 없었습니다. 바쁘다가보니 마음까지 분주하였습니다. 그래서 마르다는 예수님께 나아가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 주라 하소서”하고 말했습니다.
마르다의 그 말에 예수님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말씀 듣는 이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교회가 할 일이 많지만 그 중에 가장 시급한 일이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 개인 신앙에도 말씀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일임을 명심 하시고 이 일에 최우선을 두고 살아가십시다.
심령이 살아나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이런 교회와 성도들이 존재한다면 그 시대가 평화로울 것입니다.
무슨 연합사업이 그렇게도 많은지요? 거기 전부 쫓아다니다가 어느 시간에 말씀 앞에 서겠습니까? 교회 안에도 무슨 행사가 그렇게 많은지요? 그런 행사에만 교인들을 메달리게하여 교회 안에 잡아둔다면 껍데기 신자만 만들고 말것입니다. 말씀 앞에 앉아 말씀을 듣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그렇게 신앙생활 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은혜로운 말을 합시다. 그리하여 낙심한 자가 힘을 얻고 죄의 길에서 방황하는 심령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합시다. 많은 말보다 참 해야 할 말..., 믿음의 말을 합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복된 입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입에 두고 말씀을 전하는 복된 입을 갖이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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