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년 전 시내학교 근무할 때였으니 세월이 좀 지나고 있다. 태풍전야 고요와 같은 수능을 앞둔 주말 몇몇 동료들과 나선 걸음이었다. 일행이 탄 자동차는 서쪽으로 달려 늦은 밤 전라도 고창에 닿아 제철 큰새우 맛을 보았다. 이튿날 동백나무숲이 우거진 산언덕 아래 절을 찾았다. 그리고 산길을 더 올라 미륵세상을 꿈꾼 마애불상 아래서 위를 쳐다보면서 후천개벽 미래가 궁금했다. 일행은 다시 선운사로 되돌아왔다.
그때 남방계 고인돌과 실학자 반계가 은둔한 집터도 둘러보았지만 절 아래 밭에서 가꾸던 넝쿨딸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지주에다 철사 엮어 키우는 포도처럼 이랑마다 넝쿨딸기를 심어 가꾸고 있었다. 우리가 들렸을 때가 늦가을이라 딸기는 볼 수 없었고 넝쿨에 붙은 갈색 잎이 지고 있었다. 초여름이면 그 넝쿨에 송알송알 맺히는 열매가 암갈색 복분자다. 이것에다 소주를 부어 얼마간 숙성시키면 복분자술이다.
마침 일행 가운데 그쪽 지역이 고향인 동료가 있어 여정에서 안내를 잘 받았다. 바닷가 소금창고가 딸린 염전과 젓갈시장 포구도 구경했다. 전나무숲길이 인상적인 내소사로 가기 전 늦은 점심을 먹었다. 풍천장어가 구이로 나온 알려진 집이었다. 투명한 잔에 와인처럼 붉은 복분자술이 함께 나왔다. 소주보다 부드러우면서 달작지근했다. 과일주는 전통 발효주와 달리 제조과정에서 비법이 없이 소주에다 우려내었다.
운전대 잡은 동료를 제외하고 모두들 복분자술 두어 순배 돌렸다. 이후 우리는 내소사 경내를 거닐다 한껏 멋을 부린 대웅전 문살에 눈길 멈추었다. 늦은 밤 창원으로 돌아온 일행은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고 수능이후 겨울방학에 들었다. 그 무렵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졌다. 남의 자녀들에 열정을 쏟다보니 정작 집에 와선 진이 빠졌다. 집토끼에 소홀했는가싶어 반성되니 후회는 늘 지나야 왔다.
나는 틈이 나면 창원근교 산에 오르고 있다. 산에 오를 때마다 꽃이 피고 잎이 지는 자연은 오묘했다. 도시에 살지만 바깥으로 멀리 나가지 않아도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반나절은 반나절대로, 한나절은 한나절대로 어디든 산에 들었다 나올 수 있다. 많은 사람 붐비는 알려진 등산로보다 부엽토 알맞게 덮인 한적한 오솔길이 더 마음에 들었다. 그런 산에서 새소리 물소리는 공으로 들었다.
이런 산행에서 산신령님 허락 없이 저지른 잘못이 있어 고백한다. 그렇다고 숲에서 당연히 획득할 전리품인양 의기양양해하지 않았다. 봄에 홀잎이나 취나물을 보았다. 여름 들머리엔 산딸기나 돌복숭을 만졌다. 가을엔 어름이나 다래도 있었다. 이웃에 보내서 오고가는 계절을 음미했다. 적은 양이지만 알고 지내는 동료나 선배와 나눈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이 주는 혜택만 입고 돌려 준 것 없어 미안했다.
내가 자연에서 입은 은총 가운데 산딸기가 있다. 가시 가득한 가지에서 딸기를 따려면 얼마간의 기회비용을 지출했다. 손톱 밑에 가시가 들기도 하고 등산복 올이 터지지도 했다. 그런 속에도 현충일이 낀 유월 초에서 하지 무렵까지 근교 산자락에 가면 탐스런 산딸기를 만질 수 있다. 그간 산딸기를 따면 큰형님한테 먼저 보내 다른 녹즙과 함께 제철 자연식품으로 들도록 했다. 좋지 않던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다.
지난 초여름 처음으로 산딸기에 소주를 부어 아파트 베란다에 두어보았다. 그간 산딸기를 따면 그냥 한 점 먹어 보거나 이웃으로 보내기만 했지 과일주를 담그질 않았다. 투명한 용기에 부은 소주는 얼마 후 붉게 물들었다. 여름 한철 지나 가을이 왔다. 태양 황도가 북회귀선까지 올라왔던 하지에 담근 술이었다. 엊그제 그 황도가 적도까지 내려선 추분이 지났다. 석 달째 소주에 담긴 그 산딸기 술이 궁금했다.
퇴근해서 돌아오니 집안이 썰렁했다. 큰 녀석은 전방으로 간 지 제법 되고, 작은 녀석도 공부하러 떠났다. 집사람은 작은 녀석 학부모 모임이 있어 집을 비웠다. 혼자 된장국 데워 저녁밥을 들려다 멈추었다. 베란다로 가 산딸기 술을 개봉해 보았다. 혀끝에서 입안으로 맛을 음미했다. 하늘의 때는 땅이 주는 이로움만 같지 못하고, 땅이 주는 이로움은 사람사이 화목만 같지 못하다.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