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무궁화농장에서의 하룻밤
초가을 야영, 텐트 위로 별빛은 쏟아지고.
지난 10월 8-9일, 1박2일 일정으로 공주 마곡사 인근 친구농장에서 지인들과 캠핑을 했다. 어떤 형태의 캠핑이든 캠핑은 역시 여행등산의 꽃이다. 나이가 들어도 그 매력을 잊을 수가 없어 무거운 배낭을 다시 챙기곤 한다.
늦깎이로 캠핑을 시작한지도 어언 16년. 첫 비박(Bivouac)산행은 2008년 6.28-29일,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 중의 오지, 파로호를 배를 타고 건너야 하는 육지 속의 섬, 강원도 화천 비수구미였다. 비박 전문 산우들과 무려 100L의 그레고리 배낭을 메고 무서우리만큼 깊은 숲에서 밤을 지세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동안 다녔던 적지않은 비박캠핑 중 특히 잊을 수 없는 건 세걸산 정상에서의 캠핑과 무인도에서의 캠핑이다.
2012년에 지리산맥 봉우리 중 하나인 세걸산 정상에서의 야영은 참으로 뭉클했던 밤이었다. 세걸산은 지리산 서북능선에 위치한 해발 1,261m의 봉우리이다. 난 동료산우 2명과 함께 백무동에서 출발하여 세걸산 정상까지 여유있게 5시간 28분, 정상 부근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부운마을 방향으로 하산하였다. 내려오는 시간 4시간 43분 소요. 왕복 10시간 남짓 걸렸다. 비박용 100L짜리 글레고리 배낭을 메고 1,261m 세걸산 정상까지 왕복 10시간 산행을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엄두가 안난다. 휴! 세걸산 정상(1,261m)에 도착하면 겹겹으로 뻗어나간 지리산능선들이 한 눈으로 시야에 들어온다. 정말 감격스러운 비박산행이었다.
2019년에는 전남 완도군에 위치한 어느 무인도에서 1박2일 캠핑을 한 적도 있다. 사람이 살지않는 작디작은 섬에 낚싯배를 빌려 타고 들어가 텐트 치고 해산물과 삼겹살 등으로 직접 요리를 해먹으면서 소줏잔을 기우렸었지. 사람들은 왜 상상의 세계로 무인도를 그릴까? 우리가 태어난 원초적자연이 그리워서일까? 쏟아져내리는 별빛·은하수에 취해 잠못이루던 그 밤, 그때의 기억 역시 생생하다.
최근에는 인천 앞바다에 위치한 대이작도와 울도에서 연이어 비박캠핑을 했다.
대이작도는 작은풀안해수욕장이 캠핑하기에 가장 좋은 곳이다.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잘 갖춰져 있고 세면 및 캠핑용기를 닦을 수 있는 야외 수도시설도 잘 되어 있다. 특히 쓰레기 분리시설도 있어 굳이 쓰레기를 육지로 가져올 필요가 없다. 해수욕장에 소나무숲이 울창하여 텐트 및 타프치기도 좋다. 울도 역시 마을 입구에 비박지가 있어 텐트 치고 야영하기에 참 좋은 섬이다. “너무 멀어서 울며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나가기 싫어서 울며 떠난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섬 자체가 아름답고 섬사람들 인심도 좋아 여러날 조용히 힐링하고 싶은 섬이다.
각설하고, 이번엔 산이나 섬이 아니라 외딴 마을 친구 농장에서 지인 몇 명과 차박캠핑을 했다. 야외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으니 비박(Bivouac)은 맞지만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니지않고 차량으로 모든 짐을 운반했다는 점에서는 '차박'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비박(Bivouac) 은 독일어 ‘Biwak’에서 유래한 단어로, 텐트를 사용하지 않는 임시 야영을 뜻하는 등산 용어다. 조난 등의 긴급 상황에 대처하는 생존 방법이다. 엄격한 의미에서는 텐트를 치고 자는 야영은 비박은 아니지만 요즘은 넓은 의미에서 텐트야영도 비박의 일종으로 부르고 있다.
충남 공주 마곡사 인근에 위치한 무궁화농장, 태화산 계곡을 따라 형성된 임야 등 10만㎡에 달하는 이 농장에는 수령이 30년부터 50년에 이르는 100여 종의 무궁화 60만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필자 일행은 농장 안에서가 아니라 친구집 잔디마당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펜션을 겸하고 있어 집 내부나 잔디밭 등이 잘 정돈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집과 채전밭이 넓어 주변에 다른 집들이나 불빛이 전혀 보이지않는다. 마치 깊은 산골, 어느 외딴 절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수도시설이나 화장실 등이 집밖 잔디마당에도 설치되어 있어 캠핑하기에 안성마춤이다. 공기도 맑기 그지없다. 함께 간 친구들도 캠핑장으로 더할 나위없이 좋다고 환호한다.
우선 도착하자마자 텐트를 치고 저녁준비를 시작했다. 첫날 저녁은 삼겹살 파티! 서울에서 야채는 물론 파무침, 쌈장까지 풀세트로 준비해 왔다. 사각탁자에는 야채와 쌈장, 파무침, 햇반, 맥주 및 와인이 기다린다. 필자는 필자대로 버너에 불을 피워 된장찌개를 끓이고, 한편으로는 비화식으로 햇반을 익힌다. 요즘은 국립공원이나 산에서는 화재예방을 위해 일체 불을 피울 수 없도록 되어 있어 화재의 염려가 전혀없는 비화식 사용이 대세이다. 식품가열용 발열체에 일정량의 물을 부으면 금방 100도 이상의 열이 발생하여 음식을 익힌다. 쿠팡 등 인터넷쇼핑몰에 들어가보면 휴대용 발열팩도 있고 소고기덮밥, 떡국밥,소고기국밥, 김치비빔밥,제육덮밥 등 다양한 셋트형 즉석조리식품도 판매되고 있다. 동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라면, 만두, 순대,족발이나 닭고기순살, 떡볶이 등도 비화식으로 간단히 익혀먹을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발열체에 찬물만 붓고 약 10-20분 정도면 음식조리가 끝난다. 등산, 낚시, 캠핑 등에서 가지고 다니기 쉽고 사용방법도 매우 간편한게 특징이다.
사각탁자에는 구운 삼겹살, 야채쌈, 된장찌개, 익힌 햇반 등 먹을거리가 가득하다. 된장찌개는 계속 끓는 상태로 먹으면 좋은데 어떻게 할까? 코펠 밑에 버너로 불을 피우면 좋겠지만 버너를 놓을 자리가 없다. 이럴 때는 고체연료가 딱 좋다. 소형성냥갑 크기의 아주 작은 고체연료를 코펠 아래 받침대에 놓고 불을 피우면 식사 내내 끓는 된장찌개를 즐길 수 있다.
저녁식사 후 준비해온 맥주와 와인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초가을 날씨라 약간 쌀쌀하다. 함께 온 지인이 캠프파이어를 위해 불판과 장작을 가져왔다. 토치로 불을 붙이면 장작이 빠르게 점화된다. 장작불에 둘러앉으니 학창시절이 생각난다. 나는 대학교에서 유네스코학생회라는 소모임에 가입했는데 이 모임은 유네스코 관련 세계적 모임이어서 멤버쉽 트레이닝 등 야외모임이 많은 편이다. 남녀학생들이 함께 M.T.를 할 때는 캠프파이어는 빼놓을 수 없는 일정이다. 모닥불 피워놓고 함께 둘러앉아 기타 치고 노래하고, 흥이 나면 포크댄스로 이어진다. 밤 늦게까지 한판 불놀이가 펼쳐진다. 젊음의 밤, 낭만의 밤은 이렇게 익어간다.
그 학창시절이 참으로 그립다. 오늘밤 역시 그 시절 기분으로 밤을 익힌다. 장작불에 먹는 밤도 익히고 어두운 가을밤도 익힌다. 하늘엔 별이 총총하다.
첫댓글 비록 머리에는 서리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빨강 티가 젊어 보이시고, 야영을 할 수 있는 체력을 유지하시니 앞으로도 살아오신 만큼 더 장수하시리라 믿습니다. 모든 것이 다 좋아요.
취미로 종종 비박을 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