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팔리다”는 표현이 우리의 언어생활 속에 등장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마도 1980년대에 들어와서 유행되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지금도 꾸준히 사용되고 있는
표현으로 최근에는 국어사전에도 올라간 말이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나온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 어휘를 동사로 분류하고 있으며,
속된 표현으로서 “부끄러워 체면이 깎이다”로 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생활에서는 체면이 깎이다 정도가 아니라 더욱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야 될 때, 창피할 때, 부끄러울 때,
만나기가 좀 어색한 사람과 만날 일이 있을 때 등,
이 말이 실생활에서 쓰이는 용도는 대단히 넓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어떻게 해서 생겨났으며 무엇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일까?
이 말은 “쪽”과 “팔리다”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일종의 합성어이다.
“팔리다”라는 어휘는 ‘팔다’의 피동형이므로 그 뜻이나 어원에 대해
특별히 문제 삼을 것이 없을 만큼 분명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쪽”이라는 어휘인데,
이 말은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다가 그 가운데 있는 어떤 의미가
팔리다와 결합해서 “쪽팔리다”가 되었는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 “쪽팔리다”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 “쪽”의 뜻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국어사전에 보면 “쪽”의 뜻은 대략 11가지가 되는데, 이 중에서 “쪽팔리다”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이야기되는 것은 두 세 개 정도인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시집간 여자가 뒤통수에 땋아서 틀어 올려 비녀를 꽂은 머리털을 뜻하는 것으로
낭자와 같은 의미.
둘째, 방향을 가리키는 말.
셋째, 사람의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 “쪽팔리다”의 ‘쪽’이 가지는 의미로 가장 설득력이 있는 뜻은 역시 세 번째 것인데,
실생활에서 사용할 때도 얼굴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쪽팔리다”는
얼굴과 관련이 있는 것이 확실한데, 그렇다면 왜 “쪽”이라는 말이 얼굴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느냐 하는 점이 문제가 된다.
“쪽”이라는 말이 어떻게 해서 얼굴이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가를 살펴보기 전에 항간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쪽팔리다” 어원에 대한 것을 먼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첫째, “쪽”은 시집간 여자가 뒤통수에 땋아서 틀어 올려 비녀를 꽂은 머리털을 가리키는
것으로 여성의 순결과 정조를 지칭한 것으로 보아 “쪽팔리다”는 여성의 몸이 팔려가는 것에서
생긴 것으로 현대에 들어와서 부끄러운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어원설은 설득력이 약하다. 여성의 머리에서 쓰이는 ‘쪽’이 무엇 때문에 얼굴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하기가 어렵고, 현대어에서 쓰이는 “쪽팔리다”라는
말이 몸 파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남성의 성기 중 일부인 불알을 지칭할 때 불알쪽이라는 말이 있는데,
“쪽팔리다”는 불알쪽이 보여서 창피해하는 데서 나왔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성적인 표현이 어떻게 해서 얼굴과 관련이 되어서 쓰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없다.
셋째, “쪽바리다”는 말이 “쪽팔리다”는 말로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일본이 망하고 나서 우리나라에 남은 일본인들이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이런 일본인들을 볼 때마다 손가락질을 하면서 “쪽바리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인데, 이것 역시 만들어낸 이야기로 볼 수밖에 없다.
일본인을 ‘쪽바리’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그것과 얼굴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전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쪽팔리다”는 ‘얼굴이 팔리다’를 어원으로 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쪽’이 왜 얼굴을 의미하게 되었는가를 밝혀내면 이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에게 있어서 얼굴은 매우 중요한 존재이다. 그 사람의 됨됨이나 성격, 감정 등
상당히 많은 판단이 얼굴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얼굴을 중요시하고, 자신을 꾸미는데 있어서도 얼굴에 가장 신경을 쓴다.
이처럼 얼굴이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나타내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말에는 얼굴이라는 어휘 외에는 사람의 얼굴을 나타내는 말이 없어서 무척 아쉽다.
그런데, 한자어에는 얼굴을 나타내는 글자가 여럿 있어서 “쪽팔리다”의 어원을 찾아볼 수
있게 한다. 한자어에서 얼굴을 나타내는 글자에는 顔, 容, 面 등이 있다.
이 글자는 모두 우리말로 얼굴이라는 의미로 풀이하고 있다.
이제 이 세 글자의 뜻에 대해 살펴보면서 ‘쪽’이 왜 얼굴을 나타내게 되었는지를 알아보자.
顔은 사람의 얼굴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지칭하는 글자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위로는 이마, 아래로는 턱, 양옆으로는 광대뼈를 중심으로 하여
그 안에 있는 부분을 가리켜서 顔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顔의 범위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눈, 코, 입이기 때문에 얼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모두 들어 있는 셈이 된다. 이 글자를 사용한 어휘에는 洗顔, 顔色 등이 있는데,
모두 얼굴의 중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容은 顔에 들어가는 부분을 포함해서 귀와 머리까지를 포함하는 의미로 쓰이는 글자다.
즉, 容은 얼굴과 머리 등을 모두 포함하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그리고 容은 때에 따라서는 몸 전체를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므로 容이 들어가는 어휘에는
얼굴을 나타내는 것보다 모양 혹은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중심을 이루기도 한다.
容貌. 容態, 形容 등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面은 얼굴을 가리키기는 하지만 좀 특이한 의미를 지니는 글자이다.
面은 사람이 일정한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서 바라보고 있는 옆면을 지칭하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개를 돌려서 어느 방향인가를 바라보고 있는
얼굴의 옆면을 面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옆얼굴을 따로 구분해서 글자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의 얼굴이 일정한 방향을 향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의 눈과 정신이 그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는데, 이럴 때 그 사람의 얼굴(顔)은 그 방향에 있는 무엇인가에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서로의 얼굴을 향하여 말을 해야지 다른 곳을 보고 말을 하면
상대방에게 엄청난 실례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을 향하여 있는 얼굴인 面이야말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알려서 판단을 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얼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面은 얼굴이라는 뜻과 함께 방향을 나타내는 의미로 확대되어서 쓰이게 되었다.
面識, 面面, 方面, 四面 등 아주 폭넓게 쓰이는 글자가 된 面은 우리말에서는 쪽으로 번역이
되었고, 이 글자가 원래 지니고 있는 의미인 얼굴이라는 뜻을 함께 얹어서 쓰이게 되었으니
얼굴에 대한 우리말 어휘의 부족이 이러한 결과를 나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엇인가를 향하여 있는 얼굴, 혹은 누군가를 향하여 있는 얼굴을 나타내는 面은 ‘팔리다’라는
말과 결합함으로서 지금의 뜻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팔리다’는 어떤 사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사물의 주인에게 무엇인가 대가를 치루고 자신의 것으로 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쪽팔리다”에서 ‘팔리다’는 상대방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것으로 좋고 나쁜 것을
판단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판단이라는 것을 얼굴의 주인에게 지불하고, 그 사람의 얼굴을
사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얼굴의 주인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얼굴을 팔아서 상대방의 판단이라는 것을
얻었으니 물건을 팔아서 돈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로 되기 때문에 얼굴이란 의미를 지니는
‘쪽’과 물건을 판다는 뜻을 가진 ‘팔리다’라는 말이 합성어처럼 쓰이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쪽팔리다”는 말은 ‘부끄러워서 체면이 깎이다’는 정도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나타내는 것에까지 사용되는
광범위한 쓰임새를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쪽’을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한 것이라든지,
“쪽팔리다”를 속된 표현이라고 낮추어서 설명한 국어사전의 내용은 좀 더 신중하게
고려해봐야 할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을 누가 처음 만들어서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쪽이 얼굴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은 “쪽팔리다”는 말 속에는 상당히 수준 높은 의미가 들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내용출처 : [직접 서술] 블로그 집필 - 우리문화사랑방
<빙혼>
어원을 이렇게 설명을 하면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읽다보면 더욱 헤깔릴 수도 있다.
쪽팔리다.
“얼굴을 내밀기가 부끄럽다”로 이해하면 안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