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일어나는 인간관계의 고통은
매우 무거운 짐입니다. 인간이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부터 먹고 사는 생식의
문제와 인간관계의 문제와 자기 방어의 짐을 필연적으로 떠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 중에 인간관계를 해결할 수 있는 신앙의 능력이 절실합니다. 실제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 외엔 딴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해결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위정자나 교회의 지도자들이 우러러 보이던 청 장년기를 지나 노년에 이르면 이들과
관계는 없지만 같은 국민이며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산다는 것이 보통 짐이 아닙니다.
다윗도 인간관계의 고통을 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시55:4절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심히 아파한다는 말은 히 ‘야힐’로서 빙빙 돌려 꼰다는 뜻입니다. 속된 말로 하면
환장 하겠네 하는 말입니다. ‘사망의 위험’은 배신의 고통으로 죽을 지경인 겁니다.
5절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이전 성경은 황공으로
표현했으나 공포감이 맞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죽음의 공포로 변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6-8절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거하리로다(셀라) 내가 피난처에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고 탄식합니다. 다윗도 현실도피증이 있을 만큼
현실을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인간관계의 고통을 피해 피난처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아마 지금 이런 저런 이유로 국외로 이민을 갈려는 사람들이 많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에서는 어디나 똑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사실 이런 문제로
인해 이 교회 저 교회를 전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디가나 부딪치는 거죠.
그러나 자신이 변하지 않는 한 어딜 가든지 똑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전 세계 이민 교회 어딜 가도 한국교회를 모내기 해 놓은 것과 꼭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12절 “나를 책망한 자는 원수가 아니라 원수일진대 내가 참았으리라
나를 대하여 자기를 높이는 자가 나를 미워하는 자가 아니라 미워하는
자일진대 내가 그를 피하여 숨었으리라”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사람이
죽을 고통을 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14절 “우리가 같이 재미있게 의논하며 무리와 함께 하여 하나님의 집 안에서
다녔도다” 차라리 원수라면 참고 말지만 가까운 사람의 배신은 정말 칼로 도려내는
고통입니다. 말씀 사역을 해 보면 이런 경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말씀을
들어도 말씀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건너편에서 아장거리는 걸 보면 속이 상합니다.
다윗은 그들이 그렇게 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15절 “사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임하여 산 채로 스올에 내려갈지어다
이는 악독이 그들의 거처에 있고 저희 가운데 있음이로다” 악독이 함께 한 것이
원인입니다. 겉은 번지르르하지만 속에는 말씀을 거역하는 악독이 가득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야말로 특수 악질들입니다.
이미 자신의 구원이 한계점에 이르러 절망에 사로잡혀 있고 몸에도 여러 가지
질병으로 하나님의 경고의 시그날이 울리는데도 입만 화려하게 놀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까운 사이라면 이런 이들에게 당신 지금 스코어는 불 못이라고
서슴없이 말해 줍니다. 지금 기독교가 이미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공감하면서
이 문제를 공론화하면 벌 떼 같이 달려들어 이단 삼단하며 자신들을 방어합니다.
속에 사망이 있는 사람은 빛과 생명의 사람을 배신합니다. 빛의 사람은 어둠이 싫고
어둠의 사람들도 이유 없이 빛의 사람들이 밉습니다. 속에 사망이 있는 사람들은
브레이크를 밟아 꾹 참아 삭이든지 내뱉으므로 남을 죽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16-17절)
그리스도인들은 부르짖음을 통해 마음속에 있는 악을 선으로 이겨야 합니다. 신원과
보응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요즘 들어와서 속이 부글거려 매일매일 힘에 겹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로 그들에게 직격탄을 날리지 않으면 화병이 날 정도입니다.
중요한 건 하나님 앞에서 진리 안에 서 있으면 자신은 그 싸움에서 피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잘못했으면 얼른 수습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저울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한 이후의 다윗의 간증을 봅니다.
18절 “나를 대적하는 자 많더니 나를 치는 전쟁에서 그가 내 생명을
구원하사 평안하게 하셨도다” 그 이름 안에서 부르짖는 자 곧 그 이름을 호소하는
자들의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절)
그리고 난 다음에 다윗은 오늘의 제목과 같이 권면합니다.
22절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자기와 친한 사람의 등을 치고 배반하는 사람,
입은 우유 기름 보다 더 미끄럽지만 속에는 전쟁을 숨기고 있는 사람, 말은 부드러워도
실상은 뽑힌 칼과 같은 사람들(20-21절) 이런 사람을 맞상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이와 같은 사람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애굽의 바로나 가룟 유다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인물이며 부정적인 사역자들입니다. 그 쪽으로 맡은 일에 신실한 자들입니다.
영화 속의 악역으로 나오는 인물처럼 그 악역의 대본을 맡았으니 충성하게 됩니다.
그들이 더 악랄해야만 주인공의 마지막 역전이 감동스러워지는 겁니다. 그러므로
인간관계로 인해 열 받고 약 올라서 힘겨운 짐을 지고 끙끙대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다윗과 같이 무시로 간절히 주의 이름을 부릅시다.
첫댓글 아멘.
오늘 아침에도 생명의 말씀으로 먹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인간 관계 속에서 어려움이 올때 잠언16:7 말씀으로 힘을 얻습니다.
사람의 행위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원수라도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사람과 풀수 있으면 풀지만
풀려고 해도 풀리지 않으면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풀리더라구요.
그래서 이 말씀 붙들고 하나님게서 그 마음 만져 주시고 돌려 주시기를
이 말씀 붙들고 기도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도 잘 새겨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