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치민 묘소
바딘광장 노변에 크게 서 있다. 1969년에 80세로 사망한 그는 베트남의 추앙받는 영웅이다. 무덤 건물 상단에는 ‘CHU TICH HO-CHI-MINH’, 즉 ‘주석 호치민’ 이라는 글씨가 씌여 있다. 왼쪽으로 ‘베트남 사회주의 만세’, 오른쪽에는 ‘호치민 주석이여 영원하라’ 라는 구호가 공원 담장에 걸려 있다. 중국 천안문 광장의 모택동 구호와 유사한데 단지 글자 색깔이 적색이 아니고 녹색이다.
교육자 집안 출생이다. 민족주의에 가담한 베트남 학자 집안이다. 국립대를 졸업하고 2년 동안 교사 생활을 했다. 진취적 사고를 지닌 그는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까 고뇌하다가 많은 지식인들이 외국으로 떠나는 것을 보고 함께 외국으로 떠났다.
그 당시 동양인들은 서양인들로부터 원숭이 취급 받으며, 인간 이하로 막노동을 해야 했다. 유럽, 프랑스, 파리로 이동하여 베트남 청년 동맹을 결성하고 공산당을 창당하여 프랑스에 입당했다. 그 후 러시아로 가서 사회주의를 공부했다.
그리고는 베트남에 돌아와 우리의 ‘임시정부’ 와 같은 조직을 수립했다. 베트남의 억압된 식민지 해방을 위해 운동하다가 30년간 징역받고 떠돌아다니다가 홍콩에서 다시 수감되었다.
그는 20대에 자서전을 썼다. 한국에도 그 때 쓴 책 내용이 발간되었다. 손에 낡은 타자기와 동지 3명으로 의용군을 조직하여 베트남 독립 운동을 하는 내용이다. 프랑스가 호치민으로부터 위협을 느끼고 프랑스 모국에 10만 군인을 요청했다.
그러나 호치민은 게릴라 전으로 프랑스군을 물리쳤다. 북쪽으로 후퇴하는 외적을 라오스 국경지역까지 몰아냈다. 1859년 처음 독립했다. 그 선포지역이 바로 지금 서 있는 저 무덤이다. 이 자리에 국민들 모아 놓고 독립선언을 선포했다.
1969년 사망시 러시아로 보내 시신에서 장기를 모두 빼고 방부 냉동 처리해서 이곳에 묻었다. 1년마다 10월 중순부터 11월말까지 방부처리를 하여 생시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무덤의 외벽 모양은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을 상징한다.
바딘 광장 중앙 호치민 묘소 앞에는 황성 적기가 드높이 올라 펄럭인다. 별이 5개인데 ‘사, 농, 공, 상, 병사’를 뜻하며 바탕의 적색은 ‘사회주의 이념’ 이다. 또한 호치민 묘소의 맞은 편 담장 앞에는 향로탑이 있다. 호치민 묘소-국기-향로탑이 일직선으로 있다. 곁에는 국회의원 건물인 중앙위원회 건물이 있다. 1년에 2회 모여서 국정운영회의를 여는 곳이다.
9시에 국기 게양식이 있고 자전거 도로 광장으로 개방하며 사람들은 자유로이 왕래한다. 유리관에 있는 호치민의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일체의 전기물 반입은 금지다. 우리가 간 그날은 금요일이어서 입장을 못했다. 금요일은 휴관일이어서다.
나는 호치민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나니 비록 타국의 영웅이지만, 그의 생애에 대하여 존경스러웠다. 한 국가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대한 지도자가 있음을 다시 확인시키는 현장이다. 박정희를 존경하는 나라, 검소하고, 농촌을 사랑하고 호치민과 닮은 점이 많아서일 것이다.
새마을 운동을 따라서 실행하고 있는 나라다. 곳곳에서 보인다. 건축물에서, 사람들 손에서, 도시에서, 농촌에서, 어른에게서, 아이에게서, 곳곳에서 성실함과 근면함이 보인다.
지금은 미국과 공조하며 자본주의적 사회주의로 힘찬 발돋움을 하고 있다. 그래서 영문 상호가 많으며,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직도 남아 미국 문화를 생생하게 재현한다. 부디 일어서길 빈다. 지구촌 모든 나라가 함께 성장 발전하여 평화롭게 살길 빈다. 호치민, 그의 업적이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는 빛이 보인다.
사진 재등록-2017.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