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원로 법조인들’이 탄핵에 반대하는 의견광고를 냈다. 법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슬프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간단하게나마, 그 의견에 반박해 본다. 본인의 글이 파란색이다.
1.우리나라는 국회의 탄핵소추 그 자체만으로도 피청구인 즉 박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돼 실질상 탄핵 효과가 선발생하는 매우 특이한 제도를 가지고 있다. 탄핵소추 당시 제출된 증거와 선례만으로도 탄핵결정이 날 수 있는 정도의 충분한 사전준비 절차가 선행돼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번 탄핵에서 국회는 아무런 증거조사 절차나 선례 수집 과정 없이 신문기사와 심증만으로 탄핵을 의결, 박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했다. 이는 증거재판을 요구하는 우리 헌법의 법치주의, 적법절차 원리에 반하는 중대한 위헌이다.
국회의 탄핵소추가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하여, 국회의 탄핵소추절차가 형사절차에 준하여 처리될 이유는 없다.
국회의 탄핵소추만으로 대통령의 권한을 정지시킬 수 있게 한 우리 헌법은 매우 독특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는 우리 현대 헌정사의 산물이다. 이 규정은 1960년 헌법개정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그 규정은 당시 이전 이승만 대통령 정부의 무법과 전횡에 대한 반성을 담고 있다. 즉 대통령 독재 전락의 위험성을 가능한 한 조기에 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 대통령 체제의 미성숙은 이번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한 번 여실히 증명되었다. 이 조항은 그렇게 대통령직이 파행적으로 운영될 때 그 위험성을을 속히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서, 우리 정치문화에서 아직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탄핵소추에 따른 대통령 권한 정지는 대통령직의 무도한 운영을 조속히 끝내기 위한 것일 뿐, 그것이 탄핵소추의 성격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탄핵소추는 어디까지나 대통령을 파면하여 헌법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적 절차, 행정적 절차이지, 형사소추의 절차는 아니다. 형사소추는 헌법재판소에서 파면 결정이 내려진 이후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 증거재판의 논리는 그 때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탄핵소추 단계에서 바로 형사절차의 ‘증거재판’ 법리를 요구하는 것은 탄핵소추에 대한 오해를 자백하는 것에 불과하다.
2.특히, 특검의 조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 탄핵소추를 의결, 처리한 것은 이번 탄핵이 비정상적으로 졸속 처리됐음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국회의 탄핵소추는 검찰 조사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상태에서 국민적 여망에 따라 추진되었다. 태블릿 피시 등 어처구니없는 국정농단의 증거들이 속속 밝혀졌고, 2016년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제1차 대국민 사과를 하였고, 11월 4일에는 제2차 대국민 사과와 검찰조사 수용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검찰은 11월 20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대통령을 ‘공모관계’ 즉 ‘피의자’로 명시하였다.
대통령의 헌법 위반, 법률 위반은 너무나 명백하였으며, 대통령이 가담한 범죄행위는 현재진행형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면, 조속히 탄핵절차를 밟아, 대통령의 직무를 중단시켜 헌법을 보호하는 것이, 다른 헌법기구들의 헌법적 의무일 것이다.
3.법적 성격이 전혀 상이한 13개 탄핵사유에 대해 개별적으로 심의, 표결하지 않고, 일괄하여 표결한 것 역시 중대한 적법절차 위반이다. 이번 탄핵은 여러 개의 탄핵사유가 실질적으로 동일했던(선거중립법위반)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과는 구별하여야 한다. 특히, 이번 탄핵의 논의 과정에서 세월호부분에 대하여 상당수 의원이 반대의사를 표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괄표결한 것은 표결의 적법성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본다.
이론적으로야 탄핵사유별 심의표결도 가능할 것이나, 이번 경우처럼 탄핵 사유가 너무 많을 때 개별적 처리는 불가능하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다. 국회 탄핵 절차는 국회 의사절차 가운데 가장 엄격하다. 국회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국회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구한다. 헌법개정 절차 의결정족수와 같다. 헌정사의 명운을 걸고 진행하는 절차이다.
나아가 세월호 부분만을 별도로 처리하는 것은 다른 중대한 탄핵사유들의 처리와도 형평에 맞지 않고, 탄핵의 초점을 세월호 문제로 이전시키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세월호 문제는 대통령 탄핵의 한 가지 사유일 뿐이며, 국회원내교섭단체들의 논의 결과 탄핵소추 사유로 포함된 것이다. 그것이 탄핵을 인용할만큼의 중대한 헌법 위반이 되는지 아니면, 그에 이르지 않는 정도의 의무위반에 그치는지 여부는 헌법재판소에서 최종결정할 문제이다. 탄핵소추 사유들 중 일부에 논란이 있다는 이유로 일괄표결을 부적법하다고 하는 것은 사실상 국회의 탄핵소추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4.박대통령은 대한민국 헌법의 원리나 원칙을 부정하거나 반대한 사실이 없다. 몇 개의 단편적인 법률위반이나 부적절한 업무집행 의혹을 근거로 하여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이들은 아마 대통령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대한민국 헌법을 박근혜 헌법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의 신임을 배신하고 국가의 권능과 예산을 최순실에게 맡겨버린 그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어떻게 단편적인 법률위반 부적절한 업무집행이라고 호도하는가?
5.대통령의 공익법인설립 및 그 기본재산의 출연을 기업들로부터 기부받는 행위는 선례도 많고,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므로 이를 범죄행위로 단죄하는 것은 선례에도 맞지 않고 공익재단법인의 법리에도 맞지 않다.
이들은 마찬가지로 대통령과 최순실의 공갈협박에 의한 강제출연 혹은 재벌과 정권과의 이해관계 합치에 따른 뇌물제공을 통상적인 기부로 착각하고 있다. 선례를 거론하는 것을 보니, 그들은 지난 권위주의적 정부의 어두운 정경유착을 명예로운 헌정사로 생각하는 것 같다.
6.헌재는 9명 재판관 전원의 심리 참여가 헌법상의 원칙이므로, 헌재의 소장 및 재판관의 임명절차에 관여하는 기관들은 2017.1.31 자로 퇴임한 박한철 소장과 2017.3.13 퇴임이 예정된 이정미 재판관의 후임을 조속히 임명하여 9명 재판관 전원 참여의 헌법정신을 준수하여야 한다. 헌재는 그때까지는 일시 재판을 중지하였다가, 하자가 없는 전원 재판부를 구성한 연후에 재판을 재개하여 심리를 진행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공정한 재판진행 절차라고 본다.
물론 헌법재판소 9명 전원의 심리 참여가 가장 바람직한 헌법재판절차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적이지 않다. 우리 헌법도 그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리하여 심리정족수를 얘기하지 않고, 다만, ‘재판관 6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결정정족수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는 경우 9인 전원에 의한 재판도 있을 수 있음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하자’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퇴임한 박한철 소장의 후임을 임명하라고 하는데, 헌법재판소 소장은 대통령이 지명하도록 되어 있다. 현재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된 상태이다. 그리고 황교안 국무총리는 그 대통령의 뜻을 따라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 직을 충실히 이행해 온 사람이다. 황교안 권한대행에 의한 후임 헌재소장 지명은 또 하나의 헌법유린이고, 그렇게 지명된 후보자가 국회 동의절차를 통과할 수도 없을 것이다.
퇴임이 예정된 이정미 재관관 후임도 언급하였는데, 대통령 탄핵 심판은 가능하면 조속히 마무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탄핵사유가 근거 없는 것이라면, 기존 대통령의 직무집행을 조속히 회복시켜야 마땅하며, 탄핵사유가 이유 있다면, 그 대통령 체제는 빨리 청산시켜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직 임기가 만료되지도 않고, 더욱이 헌재 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이정미 재판관 후임을 운운하는 것은 탄핵 심판을 지연시켜 기회를 엿보려고 하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소위 법조 원로들의 성명은 박근혜정부에 이어서 우리 헌정사의 또 하나의 오점일 따름이다. 부디 후학들은 이를 경계삼아, 법치주의의 근본을 깊이 새길 수 있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