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혼례 재연 현장학습
처음에는 조금 귀찮게도 느껴졌었다.
광주에 사는 나지만 양림동이라는 지명이 익숙지 않아 찾아가는 길 부터 애를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한참동안 천변 근처를 헤메다 물어물어 이장우 가옥을 찾아가더길 가두행진 중인 풍물패와 신랑을 만날수 있었다.
도심속의 거리행진, 도로위의 차들과 섞여 들어오는 그 모습이 처음에는 조금 괴상하기도했지만 뭔가 이색적인 그 풍경이
싫지만은 않았다. 잔치 분위기를 한껏 돋워주는 신명나는 음악소리
요즘 우리 시대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사실은 관심을 갖지 않았던 ) 우리 소리가 그날 만큼은 친근하고 흥겹게 느껴졌다.
퍼레이드를 쫓아 들어간 이장우 가옥은 사람이 살지 않아 폐허가 되어버린 우리네 전통과옥과는 다르게
아직까지 사람의 손때와 숨결이 느껴지는 듯 했다.
동신대학교 설립자의 가옥이라 하여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도 같았고 내가 동신대학교 학생이라는 사실에 으쓱해지기도 했다.
나는 전통 가옥의 그 나뭇결과 나무내음을 좋아하는데 도심 속에 그런 곳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
등화불명이라 하였던가 - 언제나 우리것을 찾는답시고 멀리로만 나돌았던 내가 부끄러웠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졌고 우리 고장 광주에 대한 애정이 커지는 것 같았다.
전통혼례가 시작되고 모두들 웃고 즐기는 풍경
마을 사람, 하객들 , 관람객들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외국인들의 방문도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정작 한국을 느끼지 못하고 삭막한 도심만 느끼고 돌아갔을 그들에게
좋은 추억거리가 되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혼례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상쇠에게 마당 중앙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겪기도 했는데
나름 추억거리가 되었던 것 같다. 옛 사람들의 어울림 , 흥 그 한가운데로 빨려들어간것 같았다.
함께 간 친구는 마지막에 신랑이 던진 닭을 잡기도 했는데 그것 역시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사실 정말 웃겼다).
혼례 막바지에 한사람 한사람 손에 쥐어든 쌀, 팥 등을 신랑 신부의 오랜 행복을 기원하며 던지는 것도 참 좋았다.
현대식 결혼식장에서 느낄 수 없었던 진정으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결혼식장에 가서 축의금만 내고 밥만먹고 돌아오는 그것과는 사뭇 다른 모두가 하나되는 느낌이었다.
비록 전통혼례 재연이라고는 했지만 우리 모두는 신랑 신부의 축복과 더불어 그 자리에 있는 이들 모두를 축복하고자 하는 마음
이었던 것 같다. 모두의 앞날에 행복과 안녕이 가득하기를 빌었다.
귀찮게만 느껴졌던 현장학습이 내게 또 하나의 커다란 추억거리를 선사해준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