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 핵심협약 비준 준비
어제 연구소에서 10월 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ILO(국제노동기구)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장흥배 상임연구원의 발표가 있었다. ILO의 189개 협약 중에 핵심은 8개인데, 1) 결사의 자유 2) 강제노동금지 3) 차별 금지 4) 아동노동금지에 관한 협약 각각 2개씩이다. 187개 회원국 중에 8개 협약 모두를 비준한 나라는 76%, 7개 이상은 85%, 한국은 현재 4개 협약에 가입해 2개를 비준한 미국 다음으로 8개 협약 비준율이 낮은 실정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대통령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63번째 '노동존중사회실현' 과제 안에 들어있다. ILO 핵심협약에 가입하면 국내법적 구속력을 가진다. ILO 협약과 충돌하거나 미비한 사항이 있으면 국내 노동관계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서 ILO 협약 가입은 노동계의 오랜 요구였다. 정부가 이 오랜 숙원을 해결하겠다는데, 노동계는 결사 반대하고 있다. 왜 그럴까?
한마디로 'ILO 핵심협약 비준'과 '사용자단체의 요구를 반영한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맞바꾸는 빅딜이기 때문이다. ILO 핵심협약과는 형식상으로는 충돌하지 않는 것처럼 만들고, 실질적으로는 껍데기 뿐이거나 노동자들에게 피해가 가도록 개정안을 꾸민 것이다.
개정안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두 개이다. 이것은 협약 비준과 아무런 관계도 없고, 그냥 협약 비준을 틈타 통과되는 개악이다.
1) 단체협약을 2년에서 3년으로. (ILO협약은 노동자에게 유리한 기존 노동법의, 불이익 변경을 금지하고 있음)
2) 쟁의수단으로 사업장 점거 금지: "대통령령이 정하는 시설에서 점거행위를 금지"를 추가 (ILO협약은 평화적 사업장 점거를 쟁의행위의 정당한 수단으로 규정)
두번째는 ILO 협약을 비준했으면 그에 따라 개선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 특수고용노동자의 노조법상 근로자 인정과 노동3권 보장
2) 간접고용노동자의 원청 사용자성 인정과 교섭권 보장
3) 노조설립신고 반려규정 삭제
4) 평화로운 파업에 대한 민형사상 면책
1)2)의 심각성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노조설립은 신고주의가 원칙인데, 반려규정이 있어서 한국에서는 사실상 허가규정이다. 4) 독일, 프랑스, 영국 등에서 쟁위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를 하거나 이를 인정한 법원 판례는 1950년대 이후 없다. 한국은 파업 이후 손해배상 청구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들이 너무 많다. ㅠㅠ
개정안에 좋아진 것도 있다. 하지만 단서 조항을 만들어서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다.
1) 해고자, 실업자 노조 가입 허용: 그런데 "사업 또는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아닌 조합원은 사업자의 효율적인 사업 운영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어서 사실상 노조에 가입해도 활동을 할 수 없다. (ILO는 노조 가입과 활동에서 재직자와 비재직자 차별을 금한다)
2) 퇴직공무원, 소방공무원의 노조 가입 허용. 교원의 노조가입과 퇴직교원의 노조가입 허용: 하지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없다. 직급에 의한 노조가입 제한은 삭제하되, 직무에 의한 제한은 그냥 둔다. (비유하면 직원협의회의 이름만 노동조합으로 바뀌는 것이다)
EU는 그동안 한국이 한-EU FTA의 '무역과 지속가능발전 장(章)'에 규정된 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비판하였고, 양측은 현재 분쟁 해결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양측은 분쟁 해결 절차 마지막 단계인 전문가 패널 구성을 위한 협의를 진행 중인데, 이후 한국 정부가 FTA 위반을 저질렀다는 결정이 나오면 한국 정부는 통상 불이익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랴부랴 이런 노동법 개정안 통과를 기획하고 있는 것이다.
말로만 '노동존중'이라 하면서 노동법을 개악하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EU와 제대로 무역하고 싶다면 노동법부터 '노동존중'의 국제 원칙에 맞게 바꾸어야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ILO 비준'이란 거창한 표제 아래 노동자의 권리를 갉아먹는 일을 하는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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