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벌초를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벌초를 함부로 안 하는 것입니다.
일년에 1회 벌초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이성계의 유언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태조 이성계는 유언을 통해 고향인 함흥에 묻히기를 원했지만아들 태종은 조선의 첫 왕릉을 먼 함흥에 조성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대한 계책으로 수도 한양 근처인 지금의 동구릉에 태조의 왕릉을 조성하되 함흥의 억새풀로 떼(무덤 옷)를 입혀 유언을 대신하게 됩니다.
아래는 이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태조의 마지막 유언과 다산의 애절양
함흥에 묻힐 수 없다면...
태조가 승하할 때까지 두 부자의 갈등은 끝내 풀어지지 못했다. 원래 태조는 먼저 죽은 신덕왕후 강씨(태조의 계비로 방번, 방석의 친모다)가 묻힌 정릉에 합장되기를 원했으나 신덕왕후와는 원수지간이었던 태종이 이를 수용할 리 없었다. 정릉에 묻히지 못할 바에야 고향인 함흥에 묻히길 원했던 태조는(태종과 멀리 떨어져 있고 싶던 것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결국 이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1408년 5월 14일 영욕의 삶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
태종의 입장에서는 왕조의 창업군주를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함흥에 모실 수도 그렇다고 유언을 거스를 수도 없었다.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봉분에 심어진 억새였다. 건원릉의 봉분은 함흥의 흙과 억새로 덮은 것이다. 그리고 이 억새는 600여 년이 지난 오늘까지 끈질기게 살아왔다. 아들에 대한 분노가 억새의 생명력을 이어왔을까, 아들에 대한 용서가 생명력을 이어왔을까? 600여 년을 억새와 함께 보낸 태조의 마음이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첫댓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닌 듯.... 유언때문이군요
그니까요. ㅋ
억새풀이 원래 많이 살지 않나요??
잘 알겠어요.
유언때문에 벌초를 하지 않다니...
벌초하기 힘들겟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