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발생 후 14년,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대법원은 1, 2심 판결을 바로 잡고, 성폭력 범죄의 사법 정의 실현하라!
14년 전인 2006년, 성폭력 범죄가 발생했다. 2년여간 가해자의 통제 아래 (합동) 강간, 추행, 약물강간, 불법촬영, 유포협박, 폭행, 특수협박 등 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가까스로 탈출하여 가해자의 추적을 피해 숨어 지내야 했다. 그러던 중 2013년 경찰의 인지로 수사가 시작되었다. 가해자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숨어 지내야 했던 피해자는 “다른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경찰의 설득에 용기를 냈다. 그러나 곧 진실이 드러나고 가해자들이 처벌될 것이라는 피해자의 기대는 산산 조각났다.
2013년 경찰 조사 7회, 2013년, 2014년에 걸친 검찰 조사, 2018년, 2019년 검찰 과거사위원회 재조사, 2019년 검찰조사 7회, 윤중천 1심 재판 증언, 김학의 1심 재판 증언, 2020년 경찰 조사 14회, 2020년 윤중천 2심 재판 증언.
이 사건의 피해자 중 1명인 김숙희(가명) 님이 사법기관에 피해 내용을 진술한 것은 최소 35회이다. 2년여간 수백 건의 성폭력 피해를 입은 김숙희 님은 이 중 30회 가량의 성폭력 사건만 특정하여 진술해야 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진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수사 기관은 피해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요구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그때의 상황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떠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때 피해자는 다시 사건을 재경험하는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김숙희 님은 진술하는 도중에 가해자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심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꼈다.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간 것 같은 두려움으로 몇 번이고 진술을 중단하기를 반복하기도 하였다. 또한 자신의 진술을 의심하고 비난한 2013년, 2014년 검찰 조사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극도로 긴장한 상태에서 진술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김숙희 님이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냈던 것은 자신의 목소리가 있어야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법기관은 일관되고 구체적인 피해 진술을 수십 회 거듭해 온 피해자의 목소리를 너무도 쉽게 외면했다. 오히려 사법기관은 “피해자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으로 일관하며 불성실한 조사를 받았던 가해자들의 편에 섰다.
많은 피해자들이 김숙희 님과 비슷한 패턴으로 윤중천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 첫 번째 단계, 윤중천은 호의를 베풀며 여성들에게 접근하여 피해자들의 신뢰를 얻는다. 두 번째 단계, 피해자들에게 강간, 불법촬영 등의 폭력을 가한다. 세 번째 단계, 유포 협박, 폭행 등을 통해 피해자들을 자신의 통제권 아래에 두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여성들을 ‘이용’한다. 이렇게 ‘포획’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신체적, 정서적, 성적, 경제적 폭력을 저지르며 착취해온 윤중천은 단 한 번도 여성들에게 저지른 범죄로는 처벌받은 전력이 없었다.
어렵게 시작된 검찰 과거사위원회의 조사부터 지금까지 사법기관은 십수 년 전에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해 수십 회 되풀이해 온 피해자의 진술 중 사소한 몇 부분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진술을 의심했다. 또한 2013년, 2014년 피해자의 진술을 탄핵하기 위한 검찰 수사의 피해자 진술과 비교하며 왜 그때는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피해자를 비난했다. 그러나 ‘불법촬영물’에 등장하는 가해자는 대한민국 전 국민이 알아봤음에도, 가르마 방향 운운하며, “자신은 ‘별장’에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그는 처벌되지 않았다.
2020년 10월 8일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하여 처벌받은 자, 책임을 진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이 사건 해결 과정에서 나타난 부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자와 함께 해왔다. "김학의 사건 피해자 보호 및 엄정수사 촉구" 국민청원에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동의했다. 1,000여 개의 여성·시민 단체는 최소 10회 이상의 기자회견을 개최했으며, 수천 명의 시민과 함께 집회를 열고, 서명 및 탄원서 제출 운동을 전개하였다. 여성학자, 심리학자, 법학자, 법률가 등 전문가들 또한 간담회, 토론회, 자문회의 등을 통해 이 사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제대로 된 해결을 촉구했으며, 13명의 피해자 변호인단은 긴 수사·재판 과정에 헌신적으로 대응해왔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 이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이 사건의 해결이 바로 한국사회의 사법 정의가 회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이 사회권력층이라는 이유로 처벌되지 않는 사회, 수사 기관이 가해자와 결탁하여 사건을 조작·은폐하는 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사회는 이제 끝나야 하기 때문이다.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그 명명만 달리하여 반복해서 발생하고 있다. “고 장자연 씨 사건”, “버닝썬 사건”,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등을 통해 우리가 목도한 것은 여성들의 몸/성이 남성들의 향락/이익 등을 위해 착취되고 있으며, 사법 기관은 가해자들과 결탁하거나 이를 방관함으로써 같은 범죄를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뇌물죄’로 재판 중인 김학의의 성범죄와 기소되지 않은 윤중천의 여죄, 2013년, 2014년의 ‘잘못된 검찰 수사’ 책임자에 대한 경찰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이다. 그리고 2020년 10월 15일, 윤중천의 성범죄에 대한 대법원 선고가 예정되어 있다.
법원은 2014년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한 피해자의 재정 신청을 기각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윤중천 1심 재판부는 끊임없이 피해자의 진술에 의문을 품으며 사건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렸고, 공소시효 등을 이유로 면소 및 공소기각을 선고하여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심지어 가해자 인생의 서사를 판결문에 기술하여 공감을 표하면서 그 과정에서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한 여성들이 있음은 철저히 무시하였다. 2심 재판부 역시,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한다”면서도 1심과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달라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 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 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이는 대법원이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을 하며 판시한 내용이다. 그동안 대법원이 설시해온 “성폭력 사건을 판단함에 있어 ‘성인지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그 ‘판단 기준’은 본 사건에도 반드시 적용되어야 한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시민들은 이번 대법원의 판단이 이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단초가 되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대법원은 제대로 된 판결을 통해 한국 사회의 사법정의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라.
2020년 10월 8일
‘김학의, 윤중천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사법 정의 실현을 위한 시민 공동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