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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상회까지가 오부자의 흥 興의 시절이었다면 양철지붕 집에 살면서부터는 계속하여 나락으로 떨어지기만 해서 망 亡의 시절이 시작되는 시기라 하겠다. 포목상인 예천상회를 정리하고 논농사로 시작하여 양계업으로 해서 양돈으로 이어지고, 고물상으로 옮겨 가면서 어느 하나 오 부자네의 소비적인 생활을 감당해 주는 사업이 없었다. 남부럽지 않던 재산은 스멀스멀 하나씩 사라져 갔다. 수입도 변변치 않았지만, 돈이 새는 큰 구멍이 있었다.
"자네는 다마를 몇이나 치는가?"
"한 삼 사백 치니더."
"허이구, 집 몇 채 가져다 바쳤겠네."
"몇 채까지는 몰라도 집 한 채 정도로, 마이 썼다고 봐야제요."
칠닥이는 깜짝 놀랐다. 대체 당구 좀 친다 해서 집 한 채 값을 써야 할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제 형 개동이는 오부자의 수입에 상관없이 여전히 부잣집 맏아들 신분으로 아낌없이 돈을 써 주었고 한 번씩 폭행이나 노름으로 형사 사건으로 큰돈을 축내고는 하였다.
"일을 그따위로 하니깐 이 모양이제요!"
칠닥이가 보기로는 아버지는 모든 일을 거꾸로만 했다.
"뭐, 그따위? 저놈의 자식을 보래이. 그따위가 뭐로 그따위가 지 아부지를 보고."
섬뜩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칠닥이다.
자식 중에서는 가장 많이 아버지 오 부자를 원망해오던 칠닥이는 그 자신이 양철지붕 시절의 오 부자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제 아버지의 처지와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칠닥이가 변산에서 귀농에 실패하고 도로 안산으로 돌아왔을 때가 오 부자가 양철지붕 집에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사십 대 후반의 같은 연배인 셈이다.
인생을 뒤바꿔 놓을 듯이 호기롭게 떠난 시골 부안을 칠닥이는 채, 오 년을 버티지 못했다. 더는 어찌할 수가 없자 지친 몸을 이끌고 되돌아온 안산 옛집에, 덩그럽게 걸려 있던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물끄러미 들여다봤을 때는 아버지는 그를 너무나 닮아 있는 모습이었다. 칠닥이가 아버지를 닮았겠지만.
칠닥이는 망연히 생각에 잠긴다.
이미 아버지는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아들 칠닥이 자신으로 거기에 계셨다. 그러고부터는 한동안 아버지는 칠닥이었고 그의 아들, 강하는 할아버지로 그는 아들의 아들로 세대가 범벅이 되어 여직 보지 못한 손자의 모습으로 비치는 알 수 없는 파노라마와 같은 돌고 도는 혼동에 휩싸이고는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장례식에서 삼우제 참석도 거부한 채 아들인 할아버지를 이끌고 험한 소리를 내뱉으며 부안으로 발걸음을 내친 것은 형제들에 대한 배신감을 강하게 표현하는 못된 강짜였다. 그랬던 칠닥이가 한 오 년 후에 채 독수리도 아닌 것이, 까마귀의 몰골로 날개까지 꺾여서는 무기력에 절은 채로 변산에서 안산으로 되돌아왔다. 그러고부터는 곧잘 아버지의 무덤이 계시는 공원묘지를 찾는 연유는 무엇일까.
아버지가 계시는 무덤의 군락,
그곳은 무상하면서도 허탈한 것이 왠지 오히려 마음을 편케 해주었다.
무상과 허탈의 편안함이라…….
그토록 질시해 마지않던, 아버지의 무능력한 허 허하는 너털웃음이 어느새 입에 붙어서 칠닥이는 허, 허하며 너털웃음을 지어 본다.
그는 영락없는 아버지였고 지금, 그의 무덤 앞에 그 웃음을 지어 보는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칠닥은 그의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그 허한 웃음밖에는 남지 않았다.
허 허 허….
칠닥이는, 마치 자신이 꿈속에 있는 듯하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음산한 날에는 아버지와 동료 귀신이 계시는 무덤의 시가지를 가라앉은 심정으로 즐긴다.
무거운 기운이 한층 더 기분을 눌러 주어 안락하다.
칠닥이가 하루는 그곳에서 비슷한 중년을 만나게 되었는데,
“아니, 비 오는 날 어떻게…?”
“이런 날이 더 편안합디다. 허 허 허.”
“나도 그렇던 데, 허 허 허….”
허 허 허, 허 허 허….
그 사내나 자신이나 귀신인 갑다.
아직, 봄이 완연치 못하여 꽃샘바람이 무덤의 골목을 휘몰아쳐 나가면 을씨년스러워 발길을 돌릴 즈음에,
“내 아들인 할아버지는 내 너털웃음을 훗날 이맘때쯤이면 질시해 마지않다가는 결국에 흉내를 낼까?”
아버지는 칠닥이의 무덤을 덥히고 계신다.
아들의 손자이신…….
“뫼비우스의 띠라는 거, 들어 봤니 껴? 이게 직사각형 띠를 가꼬는 한 번 꽈. 꼬아서는 반대편 면 자리에 붙인다 말이제? 이 띠의 어느 한 부분에 점을 찍고는 쭉 가. 꼬인 면을 따라가다 보면 반대편 면에 도착한단 말이제? 꼬였으이까. 도착한 반대 면에서 또 가. 가다 보께이 첨에 출발했던 위치에 닿더라 그 말이제? 두 바퀴 돌아서 첨 위치로 회귀하는 원리는 그 띠의 경계가 하나이기 때무이따 그 말이제. 그라믄, 이 띠를 가꼬 가로로 잘라서 경계를 두 개 만들면 어떨꼬? 이등분을 하매 네 번 꼬인 띠가 되는 게지. 삼등분하면 짝수 등분할 때와 홀수 등분할 때가 경우가 달라져. 하도 복잡해 싸서 설명도 모 하게따 만은 우얏튼 돌고 돌면 첨 그 자리에 온다고 하는 그 원리야. 뫼비우스라는 수학자가 그랬다는구먼. 그라이 내 말은 우리 아부지나 내 아들 강하나 더 나가 할아부지 증조 할아부지 고조, 또는 손자 그 손자에 손자 손자에, 손자에 손자 등 이런 관계가 말이지 돌고 돌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란 말이지. 나는 애당초 아버지의 할아버지였고 아들인 강하는 나의 할아버지란 말이지. 증조나 고조할아버지는 아직도 태어나지 않은 손자나 손자에 손자나 그 어느 즘에서 출생을 대기하고 있을 꺼 라는 그 말이야. 말이 좇 같아? 살아 보면 세상은 오묘한 공식에 의해서 살아진다는 걸 느낄 때가 있을 거야 씨발.”
칠닥이에게 있어서 변산에서의 귀농 오 년은 치유될 것 같지 않은 상처를 남긴 것이 사실이다.
“인생, 계산해 봐야 좆이나 계산대로 살아지던가? 차라리 닥치는 대로 씨발 그냥 사는 게 더 나아."
건물 꼭대기에 그냥 두면 억울해서 덤으로 어설프게 한 칸들인 옥탑방, 그곳에 칠닥이와 임 씨가 어쩔 수 없는 동거를 하고 있다. 둘 다 늙어가고 있는 군상이다.
임 씨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신경 쓰이는 소리가 벅벅 난다.
생살을 깎는 소리다.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는 것 같아서 싫다!)
임 씨가 오늘은 화장실에서 나와는 한숨을 푹 쉰다.
"그 뭐여~살갗이 허옇게 일어나는 거…. 그게 안 없어져."
"각질 말이껴? 아, 거~ 각질이라는 게 나이 들면, 자연히 생기는 게지…. 형님처럼 그렇게 생살을 깎으면 피부가 죽어서 또 각질이 되는 거 라요!"
평소에 마땅치 않은 그의 행동에 칠닥이 자신도 모르게 면박을 주고 말았다.
"그럼, 어떻 혀~"
"뭘 어떠해요. 그런 갑다 하고, 보습제 같은 거랑 바르며 그래야지 젊은 사람처럼 보들보들하기를 바라니껴?"
칠닥이 보다도 열 살 이상이나 많은 임 씨는 새로 사귄 손아래 애인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그의 주된 생활애장품은 발뒤꿈치를 미는 쇠 솔이나, 핸드크림, 무스, 헤어 젤 그런 것이다. 한 번 들어간 화장실에서 발뒤꿈치의 각질을 완벽히 벗겨야만 나왔다. 서걱서걱 빡빡 쓱쓱, 화장실이라야 방과는 문지방 하나가 경계 전부라 발뒤꿈치를 작업하는 소음이 소름 끼칠 정도로 생생하게 들려온다. 냄새도 물론이어서 한겨울 내복 깊숙이 묻혀 있던 속살의 비린내처럼 역겨운 냄새도 더불어서 방의 구석구석을 장악해 온다.
벌겋게 혹사당한 발뒤꿈치를 들고는 방 한쪽에서 자리를 잡으면 크림을 번질번질하게 쏟아붓고 문지르면서 무스나 젤로 머리 모양도 빗을 들고 다 잡는다. 한참을 단장에 노력이 끝나면 그럴듯한 복장을 갖추고 일어선다.
"갔다 올게."
임 씨는 춤을 추러 나가는 것이다.
"늙는다는 것은, 익는 것과 같은 말이지. 과일도 봐봐, 익으면 에틸렌이라는 성숙 호르몬이 발산 거든, 향과 착색과 익음을 촉진하는 것이 바로 에틸렌이야. 그냥 풋사과는 그것대로 싱그럽지? 그런가 하면 잘 익은 사과는 그 또한 농 짙은 색깔과 향기로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 늙음이다! 젊은 건 그대로 좋고 늙으면 그것대로 좋은 거야."
아닐까……?
칠닥이가 임 씨를 만나게 된 것은 변산을 떠나면서 전국을 물색하다가는 결국 어머니와 형제가 있는 안산으로 귀착하고부터이었다.
딸랑 불알만 두 쪽인 무일푼의 칠닥이의 한계는 분명하였다. 아들 강하를 쫓듯이 제 엄마에게 보내고 어머니와 막내가 생활하는 낡은 공동주택에 빌붙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곳에서 겨우 얻은 일자리가 마을버스 회사인 진보 운수이었다. 그 회사에서 미리 운전기사를 하고 있었던 임 씨는 회사 근처 상가건물 옥탑에 피난처인 양 방을 얻어 지냈는데 칠닥이더러 거처가 마뜩잖으면 같이 지내자고 제의해 온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임 씨가 얻어 놓은 싸구려 월세방에 몸을 기대게 된 것이다.
창고 문 같은 옥탑방의 철제문이 열리며, 임 씨가 들어선다.
"어? 형님! 오랜만이시더. 그러잖아도 요즘 통 오시질 않아서 왜냐 했니더. 저녁은 드셨니껴?"
늘 상투적으로 물어보는 말이다.
"밥도 먹었고, 술도 먹었지…. 하룻밤 신세 지자고."
한잔했음을 강조하듯이 취기의 목소리다.
"장사는 잘돼야?"
"어이구~ 늘 그런니더."
"좀…. 잘 된다는 소릴 해 봐!"
임 씨의 항의하듯 한목소리가 편치 않은 심정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웬일이껴, 형수님 어디 가셨니껴?"
"두들겨 팼어! 난리 낸 게지."
" 저런…. 왜, 그랬니껴?"
"......"
임 씨는 충청도 어느 시골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는 곧바로 상경하여, 골목 점포에서 전자기술을 배우게 된다.
붙임성이 좋은 전파상 점원인 임 군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동네 상가에 오밀조밀한 구멍가게나 옷가게며 잡화상, 미장원 등등 이웃 점원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저 젊은것들이라 자연스럽게 남녀가 서로를 견주어 보며 관심을 두게 되는데 하루는 누가 미장원 아가씨를 사람 좋은 임 씨에게 다리를 건네주었다. 미장원 아가씨는 혼자 남자와의 약속장소에 나가기가 쑥스러워 친하게 지내는 주인댁 여대생과 동행하여 나간다. 임 군은 엉뚱하게도 소개받아 만나러 온 미장원 아가씨보다는 그보다 들러리로 자리를 같이한 어린 여대생을 눈여겨본다. 뻘죽하게 앉아서는 아직 채 촌티를 벗지 못한 어쭙잖은 미장원 아가씨에 비해 어린 여대생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재미있다는 듯이 당돌스럽게 임 군을 빤히 쳐다보고는 하였다. 비록 곁눈질이라도 갓 스물의 여대생을 훑어보기란 그 맛이 신 자두를 한 입 깨문 것처럼 싱그러웠다.
임 군은 기어코 여대생을 꾀고야 말았다. 아니면 그녀가 임 군을 유혹했거나. 어쩌면 칠닥이가 지금 와서 보기로는 임 씨는 타고난 바람기가 있어 보이기도 하였다.
"아마도 형님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그런 매력이 있는 갑니더!"
"무신, 내가 인물이 번듯한가? 배운 게 있나 자네처럼 키가 홀쭉한 것도 아니고…."
"아이시더! 인물, 학력이나 키, 그렁기 아이라 왜 남자들도 어떤 여자를 척 보면 왜 이렁거 이짠니껴? 하~ 조 거 참 맛있게 생겼다! 한 번 따 먹거 밧쓰면 조케따! 왜?"
"있지! 서울에 변호사 마누라가 그랬어. 내가 안산으로 내려 올 때만 해도 따라오겠다고, 사는데 알고서 가야겠다는 걸 따돌리느라 애먹었지."
"변호사 마누라요? 아, 신랑이 변호사면 돈도 많을 낀데 왜 따돌려요?"
"엄청, 밝혀. 밤새 해줘도 마다하는 법이 없지. 하도 부담스러워 잘 됐다 싶어 끊은 거야."
"솔직히, 형님도 밝히는 쪽 아이껴? 하 하 하."
"아, 이 사람아 남자치고 안 밝히는 사람 있는가?"
"내 말은요, 밝히는 기 남자고 여자고 그른 기 아이고요. 남자든 여자든 성적인 매력을 타고난 사람이 따로 있다 카이요."
칠닥이의 다소 그럴듯한 설명에 임 씨는 눈을 껌뻑껌뻑했다.
"아마 형수님이 그 어린 나이에도 형님에게서 풍겨 나오는 성적인 매력에 매료되었을 것이더. 남녀 간의 상열 지사를 방해할 어떠한 현상도 이 세상에는 없다고 생각하니더. 신분의 차이나 부의 격차, 나이의 층하 그 어떤 것도 사랑을 이겨내지 못해요. 왠지 아니껴? 그 건 그 자체로 더 좋을 수가 없기 때문이시더."
최고의 여자대학에서 엘리트라는 말을 들으며 군대의 고급장교 출신의 부잣집 막내딸에게 장가듦으로써 임 씨의 신분 상승이 일거에 이루어지는 듯하였다.
한국전쟁 때 헌병대 고위 장교이었던 여대생 집안은 사회적인 지위로 쳐도 상류층에 속한다고 하겠다. 어쩌다 시골 청년인, 전파사 점원에게 사랑에 빠져 결혼에 이룰 수 있기까지는 그녀가 청년의 신분을 집안에서는 계속해서 속여야만 가능했다. 임 군으로서는 밤하늘에 뜬 별을 딴 셈이다.
그러나 별은 무겁고 거북한 존재이었다. 하늘에 두고 바라다보기만 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손아귀에 들은 그 별로 해서 임 씨의 사생활은 빠르게 변형되어야 했다. 처가 근처에만 가도 임 씨는 대학을 나온 역시 학사 출신이었고 작으나마 사업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여대생의 신랑감 정도는 되는 신분으로 변신하여야만 했다.
"씨발, 공무원 집안에 색시를 맞이하는데 장사치 집안의 신랑은 주눅이 들어야만 했어. 좆이나 되지도 않는 약간의 우월적인 지위로 온갖 일상의 것에 압박을 가하고 경멸을 쏘아대기를 멈추지 않는 거야. 봉건사회의 신분제도를 잘도 답습하는 셈이지. 그런 중에 돈의 위력은 각 각의 신분 구조에서 막강하게 작용하여 천박하기 짝이 없어. 오직 내세울 게 돈과 신분이라는 듯이 콧날을 세우는데 나도 미쳤지. 왜 그 상황에 휘말려서 그렇게 아등바등했는지 몰라. 좇 같아서 말이야. 공무원,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신분이라꼬 사람을 개, 돼지로 아냐고 조지나."
경기도 안산은 산업도시로 급조되는 과정에서 인구가 짧은 시간에 갑자기 불어나면서 어수선했고 그 와중에 많은 자영업자는 호황을 누렸다. 잡화상 송 사장의 경우도 그랬지만 옥탑방 임 씨도 택시 영업을 하면서 짧은 순간에 큰돈을 벌었다.
"그 당시 안산은 시내버스 노선이 몇 개 안 되었지. 손님들이 중앙역에 딱 내려서 반월공단까지 가면 택시 요금이 돈 만 원 나오는 건 잠깐이었어. 재미있었지. 한 삼 년 벌면 쓸 거 다 쓰고도 아파트 한 채 값이 모이고 또 한 삼 년 더하면 아파트 한 채 생기고 그랬어."
집을 두 채나 사게 되었던 신도시 안산에서 구렁이 알돈 같은 개인택시 영업을 할 즈음에도 그는 단 한 번도 택시기사라는 사실을 처가 쪽 식구에게는 표를 낼 수가 없었다. 자두처럼 싱그럽던 처자를 얻어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하는 사이에 그녀는 기가 센 여인으로 변모해 갔다.
아니 애당초 그녀는 그런 여자이었을지도 모른다.
최고의 명문 여자대학을 졸업한 그녀에게 임 씨나 그의 집안은 늘 기가 죽어서 지내야만 했다. 까닥하면, 집안의 우월성을 들어내거나 자기 동창들의 사회적 지위를 거들먹대고는 하였다.
"대통령 부인이 이대 출신이라는 거 알지? 우리는 그만한 여편네들이야. 왜, 이래 이 거!"
도대체 중졸 자신에게 이대 출신 여자가 무슨 소용인지 모르겠다. 임 씨나 그 집안들은 서서히 그녀의 하인 신분으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씨발, 정말로 높은 곳에서 보면 하찮기가 그지없는 미세한 우월함을 큰 무기로 삼아서는 주변 모든 사람을 아랫것 취급을 하면서 여지없이 구박을 주고 경멸하기를 이를 데가 없이 말이야."
교육학을 전공한 임 씨의 부인은 어린이를 상대하는 학원 사업에 뛰어들었다.
"떼돈 벌겠다는 말하더니 내가 벌어 놓은 아파트 두 채를 다 말아 먹었어. 깨끗하게 무주택자가 되어 허탈해 있는데 벌이 좋은 개인택시까지 처분해 달라는 거야. 한창 시세가 좋을 때니 그만큼 벌릴 땐데, 무척 속이 상한 심정도 다 과분한 여편네를 얻은 탓이라고 하고 말았어. 그것도 모자라서 나 모르게 시댁 쪽에도 손을 벌려 시동생이며 사촌이며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망쳐 놓았지만 그러면서도 항상 여자의 태도는 계속 당당하고도 위압적이기만 했지."
하늘에 별을 취한 대가로 임 씨는 평생을 기어 다니면서 여자에게 착취당해야만 했다. 그저께도 마누라가 망한 학원을 재건시키겠다고 교육청에 가는 길에 임 씨를 불러 동행케 했다.
“당신은 이 개 좀 지켜요.”
교육청 입구에서 애완견을 맡긴 그녀가 몇 시간이고 볼일이 끝날 때까지 계단에 쪼그려 앉은 임 씨는 개의 대가리만 쓰다듬으면서 그 개보다도 못한 자신의 처지에 서러움이 울컥 치솟았다.
임 씨의 부인은 근엄한 이미지의 유치원 원장 선생님으로 다시 변신하였다.
마치, 원아처럼 복종에 길들어진 임 씨는 공장의 경비근무 보는 시간 외에는 부인이 출타 중일 때나 겨우 잠시 동안 옥탑방에서 쉬어가곤 하는데, 오늘은 아예 드러누워 코를 골고 있다.
육십 나이의 이들 부부의 불평등에 의한 갈등은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모를 일이다.
"형님 늦었습니다!"
안전사고로 마을버스를 그만두고 반월공단 전 자회사 경비로 취직한 임 씨가 지친 모습으로 옥탑방을 들어선다.
"대리 근무 서 주느라…."
"대리요? 참, 그러고 보니 오늘이 형님의 휴일이네?"
임 씨는 본디 격일 근무하는 경비직이지만 그가 경비반장이 되고부터는 달력에 빨간 날은 쉬는 평상 근무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가 어떻게 반장까지 되기까지의 우여곡절 무용담을 꽤 오랜 시간을 들어주기를 이미 여러 번 칠닥이는 경험했어야 했다.
"부하 직원이 제사래…. 모른 척할 수 없잖아."
임 씨로부터 “부하 직원”이라는 단어가 다소 생경하게 들린다. 그에게도 부하가 있었구나.
"낼 출근 하자면 피곤할 터인데, 앞으로는 부탁 들어주지 마소."
자리에 누운 임 씨는 일 전에도 누구의 대리 근무 부탁을 맡았지만 돌아오는 건, 맨 술 한 잔밖에 없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아~ 술이 무슨 보약이껴? 그 사람도 그라제 제사다 뭐다 하고 근무를 빠지면, 좀 생각 있는 사람 같으면 일당을 쳐서 주어야지, 술이 다 무어라 말이껴?"
"일당은 무신……. 그동안 대신 출근 하느라 쓴 차비가 만원이 넘어."
칠닥이는 임 씨가 답답하다고 느꼈는지 예전에 직장 다닐 때나, 시골서 농사지으며 이웃 노인네들에게 도움 주고 해 봐야 부질없이 막걸리나 줄기차게 얻어 마셨던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훈계하듯 나무랐다.
한참이나 듣고만 있던 임 씨는 돌아누우며 타령조로 내뱉는다.
"나는 회사 가서 일하는 게 더 편해. 일하면 잡념이 사라지는데, 집에 있으면 갑갑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들고……."
그제야 칠닥이 또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의 사정을 잘 아는 그는 그저께 좁디좁은 방을 대청소하면서 이곳저곳 발에 차이는 그의 물품 따위를 귀찮아하면서 유치원 원장인 그의 아내가 지척에 사는데, 꼭 여기 와서 자야 하는가 하면서 짜증스럽게 생각했더랬다.
육신이 휘둘려야 마음이 편한 사람의 심정이란…….
이제 그의 퇴근을 따뜻이 반기는데 인색하지 않아야겠다.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다소 과장되게 그를 맞이할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곤 했서랬는데, 마누라는 멀어져도 동생 하나 생겼다는 듯이 대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동안 보이질 않던 임 씨가 옥탑방 잠자리를 찾은 지는 불과 사나흘 되던 때, 일을 마치고 방문을 따니 임 씨는 벌써 퇴근해서 샤워 중이다.
경비 서는 공장에서 사장 차에 왁스 칠하고 광내라 해서 도망치듯 퇴근하느라, 저녁까지 굶었다며 라면을 한 개 반이나 끓여 허겁지게 밀어 넣으며 새는 발음으로 연신….
"난, 말이야~ 옥탑에서 자는 게 편해. 아이~구 마누라 옆에 자면, 코 곤다고 깨우지~ 침대 밑에서 잔다고 잔소리하지. 아주 불편해서 죽겠어! 집에서 자더라도 씻는 건 여기서 씻잖아? 여기서 씻고 출근하는 게 그게 편한 거라니깐…?"
"그러시소. 여기서 주무시고 씻고, 출근하이소."
"그러니깐……."
임 씨의 괜한 너스레이거니 했다.
라면 국물에 부안 감자 찐 것까지 비어 갈 즈음에 그의 핸드폰이 울린다.
"응……. 라면 먹어…. 아~ 씨…!"
먹던 상을 치우고 한참이나 말없이 텔레비전을 보던 임 씨가 전화기를 집어 든다.
"나…. 갈게."
윗도리에 단추 끼우고는 바지를 꿰는 임 씨다.
"어디 가시니껴?"
"오라고 하잖아…. 이제 눕기만 하면 잘 텐데……."
임 씨는 불안하게 편한 잠을 자느니 안심하고 불편한 잠자리를 택한 것이다.
“자네도 춤을 배워 봐! 키가 있어서 배워 두면 재미있을 텐데?”
“하이고~ 춤요? 나는 원체 몸치라 그런 게 잘 안 되니더. 뭐, 노래도 못 하고 화투도 칠 줄 모르고 당구나 뭐나 그런 잡기는 하여간에 안 되는 잉가이씨더!”
“내가 말이여 첨으로 춤을 배워서 사귄 여자가….”
임 씨의 화려한 여성 편력의 무용담은 밤이 깊어도 계속되었다. 다행이라 할지 그의 부인은 뻔히 눈치챌 일인데도 전혀 시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임 씨에게 그런 재미조차도 없었더라면 그의 인생이 여자가 기르는 개보다 나을 것이 없을 일이다.
“야! 너, 나 만나기 삼 일 전에는 니 신랑과 잠자리하지 마.”
“왜~에?”
“니 신랑의 정자가 남아 있는 듯해서 찝찝해.”
임 씨는 무도회장에서 만난 여자를 옥탑방에 가끔씩 데려와서는 칠닥이에게 자랑삼기도 하였다. 그러는 그들을 칠닥이는 천박하게만 느껴졌다.
“이 옥탑방 보증금도 말이야 저년이 대 좋잖아?”
임 씨는 여자가 자기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것을 강조하였고 이미 시집간 여자의 딸도 자기네 관계를 알고 있을 정도로 서로가 스스럼이 없다고 했다. 목수인 남편이 객지로 일을 나가기라도 한다면 여자의 집에서 만나 밤도 새고 섹스를 나눈다고도 한다. 샛 서방질하는 계집의 방탕을 모르는 건 본서방뿐이다? 그저 세상모르고 지내는 이는 남편인 덜떨어진 목수일 뿐이다. 칠닥이 생각으로 어쩌면 임 씨는 안개 마을의 깨칠이나 도청마을의 코뿌리일 것이다. 그들과 통정을 나누는 사실을 애써 모르는 척하는 동네 사내들이 남편 목수일지 모른다고 하는 그저 그런 생각도 들어라고 했다.
해방 후 반공 反共, 친미 親美 이승만정권의 독재는 반일 反日을 표방하였지만, 현실은 정권의 요직에 친일파로 채워졌을 뿐 아니라 말단 경찰공무원이나 면서기조차도 일제 때 순사 했던 이들이나 침탈의 협력자들로 자리를 이었다. 해방 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주도했던 미 군정 美軍政의 조급함 때문이었다. 오랜 식민국가에서 정부를 구성할 인재라고는 대부분이 일제 日帝 부역자가 아니면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미 군정은 3.8선 이남의 남한의 공산화도 크게 우려했는데 그런 염려과정에서 1948년 제주 4.3사건이 터져 제주민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947년 3월 1일, 제주시 관덕정에서 삼일절 기념 제주도대회에 참가했던 이들의 시가행진을 구경하던 군중들에게 기마 경찰이 총을 발사함으로써 민간인, 여인과 젖먹이를 포함한 6명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제주도 전체 직장 95%, 41,211명이 참여하는 총파업이 일어난다. 그러나 정부나 경찰은 도민을 상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 군정 경무국장, 조병옥은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이 사건으로 촉발된 제주 4·3사태는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충돌로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제주도민 열에 한 명꼴로 억울한 희생을 당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악행이 극심하였으며 토벌대 군 지휘관 국방경비대 11연대 부연대장, 송요찬 등은 군대를 이끌고 입도 入島하여 그 같은 만행에 주축의 역할을 하였다.
제주도민은 일본열도와 가까운 관계로 뭍보다도 선진문물을 보다 빨리 받아들이는 등 진보적인 성향이다. 해방 후에 제주도 인민위원회는 육지 어디와 비교해, 이론적이나 조직적으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삼일운동이 일어나기 전인 1918년 10월 7일 서귀포 승려들이 중심이 된 무장 항일운동, 법정사 항일운동이 일어나고 제주 해녀들도 항일운동(1931~1932)을 한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 4.3의 불씨는 이미 붙고 있었다. 1946년 미 군정은 제주를 전라도에 분리하여, 도 道로 승격시켰는데 이는 군대와 경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이에 반발한 제주 인민위원회와 충돌이 인다. 군정은 2,500명의 제주도민을 검거하여 구타하고 고문하였다. 1946년 6월 이승만의 정읍 발언으로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주장한바 제주는 그 점에 있어서 위험한 걸림돌이었다.
1948년 3월 6일 조천 중학생, 김용철이 고문으로 사망하고 3원 14일 모슬포 청년, 양은하가 역시 고문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자 김달삼이라는 사상이 뚜렷한 일본 유학생이 무장대 사령관이 되어 350명의 무리를 이끌고 4월 3일, 24개 지서 중에 12개 지서를 습격한다. 이승만은 제주를 빨갱이 섬으로 낙인을 찍고 회유와 설득 없는 무력진압을 조장한다. 따라서 제주민의 투쟁도 일어난다. 제주 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군인이 자국민을 토벌하는 데에 한탄하며 무장대와 타협을 모색하게 된다. 어렵게 김달삼을 만나 평화협상을 체결한다. 그러나 경무국장 조병옥이 내려와 김익렬을 해임한다. 김익렬은 여수 14연대로 전보되고 이것이 여순항쟁의 단초가 된다.
송요찬은 1948년 10월 17일, 해안선에서 5km를 벗어나는 주민은 폭도로 간주하고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빨갱이로 몰린 주민이 산으로 올라가 은신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이다.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하여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
이것은 박진경 국방경비대 9연대장이 토벌부대로 부임하여 연대장의 취임사다.
박진경은 한 달 만에 5,000명을 검거하고 고문을 하였다. 진압이 아니라 무조건 사살로 이어졌다.
당시에 제주에서는 군인이나 경찰보다도 더 악랄한 살해행위를 저지른 자가 서북청년단이다. 서북청년단은 일반 양민뿐만 아니라 소극적이거나 의심 가는 군인과 경찰조차도 처단을 감행하였다.
박진경은 토벌성과로 한 달 만에 대령으로 진급한다. 진급 주를 마시고 박진경은 막사로 돌아가 곯아떨어진다.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는 연대장 시중을 드는 부관이었다. 손선호는 박진경을 흔들어 깨운다.
“야, 야! 이 새끼야. 너를 우리 제주도민의 이름으로 처형한다!”
탕! 탕 탕.
그리고는 두 사람은 당당하게 재판장에 섰다.
문상길 중위는 크리스천이었다. 그의 최후진술이다.
“군인으로서 직속 상관을 살해하고 살길을 도모하지 않는다. 법관들도 우리가 민족반역자를 처벌하는 데에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이 법정에 원한을 갖지 않는다. 모두가 저세상 하나님 앞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의 법정은 공평하지 못해도 하나님의 법정은 공평하다.”
당시에 문상길은 22세, 손선호는 20세였다. 다음은 손선호의 유언이다.
“우리는 도망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 하나의 생명이 30만 도민을 구할 수 있다면 당당히 처벌을 받겠다.”
이승만은 당황했다. 그는 빨갱이들이 군대에 다수 포진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숙군작업에 돌입하고 1만 명에 이르는 군인을 희생시킨다. 박정희도 숙군. 대상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2003년 10월 31일. 대통령, 노무현은 제주 4.3에 대해 국가를 대표해서 공식으로 사과했다.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제주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이, 형은 우째서 간나라당 같은 걸 지지하고 그러니껴! 어~”
“경상도이니까!”
그렇게 내뱉고 옥탑방을 나서는 개동이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은 게 칠닥이의 심정이었다.
(씨발, 저게 뭐 저런 씹으로 빠진 잉가이 다 인노? 어이. 경상도 인가이라꼬 경상도 대통령만 뽑아야 칸다면 말라꼬 선거를 하노, 그냥 국민들 쪽 수 시알라서 많은 쪽이 해 처 머그면 되지. 빙신 가튼 게….) 칠닥이는 잠시 동안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이 하릴없이 정치적으로 너무 예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동이는 사기꾼들에게 투자해서 한때 짭짤한 목돈을 거머쥔 적이 있었다. 사기꾼들은 유령회사를 세우고 바지사장이 앞장서 은행거래를 트는 것이다. 한동안 거래 실적을 필요한 만큼 올린다. 그래서 얻어 낸 어음이나 가계수표책으로 주로 중소기업을 상대로 물품을 구입 한다. 물품은 출고 즉시 덤핑 처리하여 현금화시키는 것이 그들의 사업 요지다. 물론 수표는 부도나고 법적인 문제는 바지사장이 감당한다. 그 대가로 감옥으로 간 그의 몫이 적지 않게 분배되는 것이다. 개동이는 그 유령회사의 밑천 일부를 투자하고 일이 끝나면 투자금액의 몇 곱절을 되돌려 받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해서 생긴 목으로 밑천으로 해서 개동이는 그때 시중에서 한창 돈벌이 사업으로 떠 오른 성인 오락실을 열게 된다. 자기 말로 하루에 팔백만까지 수입이 된 적이 있을 정도로 개동이 인생에 최고의 금전적인 호황을 맞게 된다. 그러나 무지개만 같던 현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 김대중, 국민의 정부 시절에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경찰은 사회악 일소 차원에서 대대적인 불법 오락실을 단속을 감행하였고 개동이는 가게의 권리금도 날아가고 보증금도 겨우 받아 낼 정도로 폭망하여 오락실 기계는 고철로 처분했어야만 했다.
“이것 봐라! 전라도 놈이 대통령 되드이 경상도 다 주긴다 어이?”
개동이는 그러잖아도 싫어라. 미운 전라도 대통령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트렸다고 크게 분개하였다.
사회 전반에 전라도 대통령을 경멸하는 경우가 전라도 지역을 제외한 타 지역에서는 흔했다. 특히 경상도 사람 중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김대주이 대통령이 되면 안 돼!”
칠닥이와같이 티브이를 보던 막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대주이가 되면 왜 안 된다 말이고?”
뚜앙해진 칠닥이가 묻는다.
“경상도 사람 다 아 죽는다이!”
“야, 인마야 니는 내보다도 한 참 젊은 노미 우에 생각이 그런노 어이! 그래, 경상도 대통령이 되가 그 대통려이 경상도인 니 한테 뭐 얼 해 주었드노? 절므면 절믄대로 생각이 쫌 진보, 뭐 그런 거는 아이래도 우에 케케무근 영감들 생각 고대로 하고 있노 어이? 아이, 세사이 어떤 세상인데 전라도 대통령 되따고 경상도 사람이 죽껬나 주끼는, 그랬따가 그 전라도 대통령이 임기나 마칠 수 있겠나? 참말로 내, 니보이 답답해서 내가 도로 주께따.”
칠닥이는 다소 과하게 역정을 내었다. 젊은 놈까지도 정치적으로 한 생각에 지독하게 갇혀 있다는 게 여간 답답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대부분 경상도 사람들은 그 틀에 갇혀 있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분주하게 칠닥이의 장례식이 진행되면서 문상객이 이어지다가 끊기나 싶으면, 다시 이어지는 것은 죽은 칠닥의 자신이, 생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기억에서 멀어진 부분을 끄집어내면 그 기억 속에 당사자들이 문상을 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단 삼 일의 장례절차 속에서 칠닥이의 과거 회상은 무구한 기억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손님에게 접대할 육개장은 고우고 고와서 더 구수해졌다. 큰 솥에서 김이 솟고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그것에 뱃속이 인내심을 잃고 시장기를 마구 부르는 것이다. 몰골이 앙상한 개동이는 육개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마시고 나면 어디 구석에서 잠자다가 눈을 뜨면 또 육개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을 마시고는 다시 잠자리 찾기를 이틀째 이어 가고 있다.
"하이고, 내사 이래 마싯는 육개장은 첨이다. 어 이, 육개장 맛으로 보자면 칠닥이 에게는 안 된 말이다. 만은 초상을 한 보름 치랐쓰면 좋겠다. 어 이."
장례식장마다 육개장이 고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죽은 칠닥이에게도 구수한 국물 한가득히 입안에 머무는 감각이 아련한 경험으로 그 맛이 전해 왔다. 어쩌면 맛이란 혀보다도 더 빨리 눈으로 해서 뇌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임 씨가 마을버스 진보 운수를 그만둔 계기는 안전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팔십 대의 할머니가 뒷문으로 하차하면서 넘어져 갈비뼈를 다쳤는데 병세가 심상치가 않았다. 보호자들은 미처 내리기 전에 버스가 출발하여 발생한 사고라며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주장하는 것이고 임 씨는 버스에는 안전장치가 장착되어 손님이 내리고 뒷문이 닫혀야 비로소 출발이 가능하여서 할머니가 완전히 내린 다음에 일어난 사고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어쨌거나 노선버스 운행 규정상 운전자의 과실이 있건, 없건 일단 다친 승객에 대해서는 병원치료만큼은 버스회사의 의무 책임으로 되어있다.
"그만두어야 하겠어. 계속 붙어 있고 싶으면 내 돈으로 치료비를 감당해야 할 판인데 팔순 노인 치료비가 한두 푼이겠어? 포기하고 회사에서 보험처리 하라고 하고 그만 주고 딴 일 해야지 뭐."
대체로 운수회사는 사고가 나면 운전자 본인이 감당하도록 한다. 차마다 보험에는 가입이 되어있지만 사고접보를 하면 회사로서는 보험료 할증이 매섭다. 그래서 회사는 사고경비를 운전자에게 떠넘기고 운전자는 감당할 수준이 넘어서면 스스로 사직을 하고 차라리 실업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예전에 서울 노원역 뒤에서 시내버스를 해 봤잖니껴. 그때 보이, 한 십 년씩 운전하는 고참들 중에 퇴직금 받아 가는 놈은 한 놈도 못 봤니더. 벗거 형이라꼬 대머리가 훌렁한 고참이 십일 년짼가 그 회사에서 일 했거등요? 안내양 있을 때, 막 안내양 따 먹은 이야기 하고 그랬어요. 이. 그 형이 운전 참 약게 하거등. 저래 운전하면 사고 안 난다 했는데 웬걸? 십 년 무사고다 카이 십일 년째에 사고 내고 퇴직금 천, 몇백만 원 다 꼬라박고, 쫓겨나고 그랫짠니껴? 그리곤 동네 마을버스를 한다던가 뭐 한다 던가. 회사에서 시간 조지면 사고 안 나고는 못 배기거든? 씨발 밥시간조차도 십 오 분주면서 돌리면 사고 안 나면 그게 이상한 겨여 조지나. 마을버스 기사들은 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현상이 결국에는 시내 버스 기사로 이직해 가는 것이 그 소망이다. 아이껴."
분에 겨운 하소연은 계속된다.
"사고가 발생하면 기사가 덤탱이 쓴다는 데는 마을버스나 별반 다르지 않으나 그래도 시내버스, 거기는 어용 御用일지라도 노동조합이 있다. 이거요. 기사들이 밥 먹는 식당도 그럴듯하고 휴게실도 있단 말이지. 수준이 떨어지기는 해도 연간 몇백 프로의 상여금도 지급되지요. 이용하는 승객들의 눈초리조차가 다른, 정규직 운전기사인 것이여. 우리나라가 노동조합 때문에 기업 해 먹기 힘이 든다고 지랄들 하지만 전체 사업에 노동조합 결성률이 10%도 안 되는 후진적인 나라란 말이요. 씨발!”
자유당 정권은 3.15 부정선거를 계기로 4·19혁명을 불렀다. 민중혁명으로 이승만이 실각하고 잠시 야당인 민주당의 윤보선정권이 들어섰으나 박정희의 516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서 18년 동안이나 독재 치하가 지속이 된다. 박정희로 시작한 군부정권은 전두환에서 노태우로까지 이어졌다. 삼당통합으로 기득권으로 전향한 김영삼 정권까지 길고 긴 친일, 친미 친군부 친재벌 보수 권력의 가도는 김대중의 당선으로 마침내 제동이 걸린 셈이다. 사실적 최초의 정권교체라 하는 진보정권의 집권은 한 번 더 노무현 정권으로 이어졌다.
국회는 2004년 3월 12일 대한민국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다.
힘겹게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을 한나라당과 주류 보수언론은 끊임없이 집권 기간 오 년 내내 흔들어 대기 시작한다. 노무현은 김대중보다도 더 힘없는 대통령이 되고 만다. 한나라당의 이재오 입에서 노무현 집권 일 년이 채 되지 않아서 벌써 탄핵 소리가 나온다. 노무현에 대한 공격과 조롱하기가 도를 넘는다. ‘환생 경제’라는 연극은 한나라당 초 재선의원 중심으로 여의도라는 극단을 만들어 2004년 8월 28일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공연한다. 노무현을 노가리(주호영 분)라는 가장으로 표현하여 경제라는 아들이 죽어 있는데도 매일 술만 퍼마신다는 것과 엄마 근애(이혜훈 분)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아들, 경제가 되살아난다는 줄거리이다. 연극의 마지막 부분은 아버지 노가리를 죽여서 저승으로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나는데, 배우들(한나라당 의원들)은 노가리에게 ‘육시랄 할 놈, 개 잡놈, 불알 까. 거시기 달 자격도 없는 놈. 하는 원색적인 성적 비하 발언을 주저하지 않는다. 국회의원이 현직 대통령을 신랄하게 조롱하는 이 연극의 단장은 박찬숙 의원에 김영덕, 주성영, 나경원, 송영선, 심재철, 박순자, 이재웅, 정두언, 정병국 의원이 함께 출연했으며 박근혜 역시 연극을 보면서 박장대소를 하며 즐겼다. 그들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여기지를 않았다. 이렇게 대우받지 못하던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 사건이 터진 것이다.
2004년 1월 5일 새천년 민주당의 조순형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선거 중립문제와 측근 비리 문제를 거론하며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겠다고 발언한다. 2004년 2월 24일 노무현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의 열린 우리 당 지지 발언을 야당이 문제 삼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의 선거 중립의무 규정에 위배라는 유권해석을 내린다. 선관위의 어처구니없는 결정으로 이 전이나 이후도 없을, 대통령의 권한이 얼마나 약화 되었고 보수 주류세력의 저항이 얼마나 강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2주 후 3월 9일에 한나라당과 새천년 민주당은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3월 12일 자유민주 연합이 합세하여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박관용 국회의장 사회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
안산에서 유일하게 정규직 기사를 채용하는 운수회사인 경원여객에 칠닥이는 모두 세 번을 지원하게 된다.
첫 지원에서는 실기시험인 버스운전에서 낙방했다. 결정적인 실수는 없었지만 칠닥이 자신이 생각해도 운행이 매끄럽지 가 못했다. 시험관의 불만족한 표정을 명백하게 읽을 수 있었다.
"에~ 오늘 낙방한 지원자는 삼 개월 후에나 다시 도전을 할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그 정도는 충분히 경험을 쌓아서 재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씨발, 면허시험장에 운전시험 치르듯이 단시간에 짧은 거리에서 어떻게 정확한 실력을 평가한단 가?"
여기저기, 낙방자들의 불만이 새어 나왔다.
"내 고속버스만 육 년인데, 사람 찐짜 몰라보네! 잉~"
칠닥이가 생각해도 고속버스, 저 양반은 떨어져도 틀린 게 없다고 본다. 자신이 고속버스 기사 출신이랍시고 편한 복장이 아닌 허리를 덮는 외투에 끝이 뾰족하고 반들거리는 새까만 신사 구두를 신고는 옷자락을 휙 하니 뒤로 젖히고 부앙~ 하며 버스를 출발시켰다.
(꼴값하네. 야, 씨발 놈아, 시내버스 운전은 고속버스와는 달라. 장거리를 빨리 가는 방법이 아니라, 짧은 노선을 안전하게 운행하는 게 목적이야. 고속버스는 뭐 시내버스 위에 있는 상질 上質인지 아는 가베? 좆같은 놈이. 세상에 어딜 가나 저런 헛바람 든 새끼들이 꼭 있다니까.)
칠닥이는 삼 개월 후에 경원여객에 재도전했다.
이번에는 실기시험에 합격하였다.
"아, 왜? 한 손으로 운전합니까?"
"이렇게 회전을 할 때는 한 손을 난간 대를 잡으면 중심이 잘 잡힙니다."
방향 회전 때마다 한 손으로 핸들을 돌리든 수다스럽든 한 인간은 전번이나 요번이나 낙방하였다. 남들이 다 바짝 긴장되어 운전시험에 임하고 있는 순간에도 뒷자리에 앉아 자신이 버스의 구조나 운전에 통달한 양 계속 떠들어 대더니,
"아저씨는 운전에 기본이 안 되어있어요!"
하는 시험관의 질책과 함께 고배를 마시고 만다.
그러나 칠닥이도 면접시험에서는 낙방하고 말았다.
삼 개월 후에 또다시 시험에 응했다.
마찬가지로 운전시험에 합격하고 2차 면접시험을 치른다.
면접은 관리직 직원에게 먼저 받고 별 하자가 없으면 최종적으로 사장 면접을 받는다.
"성품이 솔직하군요."
비교적 사실적으로 대답을 했다는 심정에서 '솔직'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느낀 칠닥이는 한결 자신감을 가지고 사장 면접에 임했다.
"에~ 전에 근무했다던 서울의 한성 버스가 왜? 부도를 맞았다고 생각합니까?"
사장은 한성 버스가 부도난 관계로 경력증명서를 직접 떼지 못하고 국민연금 납부 서류로 대신했다는 부분에서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글쎄요, 제가 퇴직하고 나서 부도가 나서 그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게 다 노조 때문이오, 노조! 노동조합이 강경한 회사는 견디질 못해요. 에 이 노조들이라고는."
순간 칠닥이는 면접이 순조롭지가 못하다는 느낌이 확 다가왔다.
"아, 그러니 지금은 혼자 사는 거 아니요! 이혼하고, 무슨 변명이 필요합니까, 변명이."
사장이 빨간 사인펜으로 '이혼'이라는 글씨를 쓰고는 동그라미를 그렸다.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치는 강경한 노동자가 회사를 말아먹고 가정조차도 지키지 못해 이혼하고 혼자 사는 부적절한 인간으로 보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혼의 경력은 이후에도 칠닥이의 정규직 직장에 진입하는 데에 있어서 실패하게끔 하는 일등 공신 功臣이 되었다.
애당초에,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생각하지는 안 했지만,
일 회전부터 뻗는 펀치는 왠지 제대로 맞아 주지를 안 했다.
맞아 주는 게 아니라 되러 내가 맞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더니
이제,
상대의 주먹이 부담스러워지더니 역겨워지기 시작하였다.
비기기만 하자!
주먹을…. 주먹을….
되뇔수록 몸은 무거워졌고 지쳐만 간다.
가볍게 맞아 주던 잔 펀치조차도 힘겹기만 하다.
언감생심 비기는 것도 힘들겠다. 케이오만 되지 말자 판정으로 몰고 가자!
시야가 흐려지고
입에는 진한 단내가 토해진다.
후들거리는 다리로는 서 있기도 버겁다.
1분의 휴식 시간은 짧기만 하여 채 회복도 못 하고 또 격돌이다.
끝났으면….
케이오든, 판정이든 종료종이 울리기만 바란다.
더이상 싸울 의지가 없다. 상대 어깨에 매달려 천근 몸을 가눈다.
집에 가고 싶다!
누었으면 좋겠다!
전의 상실이다.
전ː의 [ 戰意 ]
전ː의(戰意)[저늬/저니][명사] (전투나 운동 경기에서) 싸우고자 하는 의욕. ¶전의를 상실하다.
16쪽 260매.
(현대사- 4.3, 노무현 탄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