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
치매 검사에서 과일 열 개를 대라는 말에 사과와 감, 배, 복숭아, 살구, 자두 했는데 더는 나오지 않았다. 밤, 머루, 포도, 호두, 앵두, 산딸기 등 과일이 떠오르지 못했다. 풀 과일 수박과 딸기, 토마토, 참외도 있는데 말이다. 그럼 채소라도 말하라 해서 겨우 넘겼다. 외국에서 들여온 까만 열매들도 보인다. 5월 중순이면 산딸기가 나오면서 하나둘 자두와 복숭아가 과일 가게에 보이기 시작한다. 풀 과일은 시도 때도 없다. 이른 봄부터 수박과 참외, 토마토가 쏟아져나온다.
토마토는 방울과 주먹 굵기의 붉은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탐스럽다. 이걸 오이나 호박, 가지, 고추와 같이 채소라 이르니 어울리지 않는다. 밭에 몇 포기 심어놓으면 길길이 자라 어기적어기적 얼기설기 열린다. 겉과 속까지 붉은 것이 맛도 좋다. 그게 어쩌다 배추나 무, 상추, 감자와 같이 뭉뚱그려져 과실에서 빠졌는지 모른다.
동편 밭둑에는 가시덤불이 되게 얽히고설켜 어설퍼 보인다. 아카시아와 뽕나무까지 되나마나 나서 깔끔하지 못하고 지저분하다. 너절한 이것들을 아래 텃밭으로 내려오지 못하게 낫으로 후려치려면 풀 가시가 덥석 온몸에 달라붙는다. 뜨끔거려 하나둘 떼 내야 한다. 꽤 성가시다.
밭에서 나온 돌도 올려놓고 옥수수와 가지, 고춧대와 함께 온갖 잡동사니가 수북수북 쌓였다. 엉성한 그곳에서 뱀이라도 기어 나올 것 같아 으스스하다. 그 둑에다 돌을 쌓아 올려 흙으로 내리덮었다. 나무도 곧은 건 세워두고 휘어지고 꾸부정한 것을 모두 베냈다. 밭이 될까 했는데 언덕이 만년구짜 밭으로 변했다.
뭘 할까 하다가 문득 생각이 안 나 한참을 그냥 내버려 뒀다. 가을에 쪽파를 심어야겠다 뒤늦게 맘먹었다. 여름 장마 때는 대파와 함께 잘 녹아 없어져서 비탈진 마른 땅이 좋거니 생각이다. 그런데 아내가 이것저것 모종을 사 오더니 만들어 놓은 세 뙈기에 두 포기씩 참외를 심었다. 퇴비 거름을 뿌리고 알 거름과 비료 살충제까지 섞어 뒤집었다. 걸쭉한 밭을 만들어놨는데 엉뚱한 것을 심고 말았다.
할 수 없지 뭐. 참외 따 먹고 가을에 심으면 되겠다 싶다. 빨리 커라 했는데 이게 더디다. 심은 지 오랜데 꾸물꾸물 댄다. 하나는 비실비실하더니 죽고 말았다. 이래서 언제 열리려나. 수시로 가물까 물을 퍼 주고 살피니 외려 지실 들어 어물어가는 것 같다. 정말 수시로 살피고 돌봐서 눈독을 들이니 잘 클 수 없는가.
거기다 잎에 하얀 반점이 막 생긴다. 뜯어 멀리 버렸다. 자꾸 번지는 것 같다. 그 주위에 하얗게 옮겨붙는다. 흰 가루를 뿌려놓은 것처럼 뿌옇다. 갈 때마다 번져서 옆 뙈기에도 허옇다. 위 둑 풀밭에 버렸더니 벌레가 기어서 들어오는가 보다. 이번에는 바닷물 도랑에 넣었다. 짠물에 혼 좀 나라 했다.
살충제를 사용해도 막무가내다. 응애란다. 잎 뒤에 붙어서 거미줄처럼 둘러치고 잎을 빨아먹는다니 고약한 놈이다. 점점 커져 이제는 세 고랑 다 보인다. 뜨물처럼 구름처럼 희뿌옇다. 약을 사 치려 했는데 자주 뜯어내니 좀 덜한 것 같다. 반점이 생기다가 시들시들 누렇게 말라 죽는 잎이다.
참 얻어먹기 힘들다. 왜 이리 애를 태우나 했는데 조금씩 가지가 생기더니 사방으로 쫙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뜨덤뜨덤 밟고 다녔는데 발 디딜 틈이 없다. 어느새 이리 번져나갔나. 정말 눈 깜짝할 사이다. 그리 투덜거리더니 구석구석 노란 꽃을 피워 하늘의 별빛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온 밭을 휘젓고 다니다가 아래 옥수수밭으로 윗길 풀밭으로도 흘러내리고 기어오른다. 마치 뱀이 기어가듯 스멀스멀 혀를 널름거리며 기웃기웃 구불구불 헤맨다.
텃밭이 동서로 길쭉해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운동이 된다. 다리가 뻐근하다. 마침 가운데 뽕나무와 소사나무가 크게 자라 그늘이 근사하다. 오다가다 앉아 쉬면서 오이도 뚝 따 질겅질겅 씹어먹는다. 땅 가까이 열려 발갛게 익은 것은 벌레가 먼저 먹는 토마토다. 작은 방울과 굵은 붉게 익은 것을 주섬주섬 따와 옷깃에 문질러 맛본다.
참외도 깎아서 씨를 조금 빼고 달짝지근한 과즙을 함께 넘기면 얼마나 좋을까. 밭 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할 텐데 없다. 얼마 전엔 산딸기와 오디가 한 달 가까이 쏟아져 나와 시도 때도 없이 먹느라 바빴다. 과일 가게에 넘기고 이웃에 나눠주며 냉장해 둬도 넘친다. 끝나니 옥수수가 익어 따고 베내며 삶아 먹는 게 즐겁다. 달짝지근 하모니카 불 듯 은근한 맛에 취해본다.
다음 차례가 참외인데 이게 왜 이런가 무성한 숲에 흐드러지게 꽃피면서도 하나 달리지 않았다. 주위에 풀 베 주고 뜨물 낀 응애 붙은 잎을 모두 따 짠물에 넣는데도 이런다. 하는 수 없이 걸맞은 물약을 구해 와 뿌려댔다. 허옇게 번지는 게 조금 덜한 것 같다. 이번엔 옆 호박에 올라붙어 야단이다.
잘 달리던 호박이 그만 멎었다. 꽃은 피어도 암컷이 보이지 않는다. 이놈만 붙으면 이 모양이다. 뽕나무와 찔레나무, 딸기나무, 사시나무에도 엉겨 붙어 형편없다. ‘가분다리 천지다.’ 너절하게 온 밭둑을 기어 다니면서도 노란 맛난 열매는 보이지 않는다. 어찌 저리 꽃 피는 데도 하나 달리지 않을까. 고 참 이상하다. 그동안 들인 공이 얼만데 괘씸해라.
참새와 참꽃, 참깨, 참치, 참옻, 참나물, 참나무 말이 있다. 흔하게 많다는 뜻과 진실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세계 곳곳에 가장 많은 새가 참새다. 몽골 추운데도 보이고 말레이 더운 곳에서도 폴폴 날아다닌다. 참꽃인 진달래는 봄날 불붙은 듯 산을 붉게 물들여서 영산홍이라 이른다. 참깨는 한 알 씨앗이 수백 개나 나온다. 산 중턱 위쪽은 거의 참나무로 뒤덮였다. 많다는 뜻이 강하다.
주먹 크기의 둥근 것이 노란빛으로 어여쁘다. 흰 세로줄이 죽죽 그어져 단맛 나는 게 좋아라. 과일은 익으면 겉이 불그레해지는데 노랗게 빛나는 것이 참외와 살구이다. 예전엔 살구가 흔했다. 점점 뜸해지더니 살구꽃 피는 ‘고향의 봄’ 노래도 있는데 자취를 감춘다. 단맛이 덜한가. 빛 좋은 개살구라더니 쓴맛까지 나는 것도 있어서인가.
참외야, 장마도 끝나가는데 여태 소식이 없나 없어.
첫댓글 텃밭 가꾸기 힘든 데 잘 견딥니다
농부인 저도 못하는 일 대단하십니다
복수박 세 포기 심었더니 여 남 개가 달려
익어갑니다 오후 부터 비 온다니
들깨 모종 보식해야 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토마토는 굵은 줄기에 작은 열매가 달리고
오이와 수박은 가는 줄기에 길쭉하고 굵은 것이 열립니다.
참외는 땅바닥을 기면서 노란 게 수없이 열리니 참 재미있습니다.
선산갔을때, 산아래 밭둑에 참외줄기에 참외하나가 탐스럽게 열려서 익었길래,따면 안되는줄 알면서도 한개 서리(?)를 했습니다.
따올때는 신기하고...그랬는데, 한참지나도록 잊고있다가 생각나서 깎아서 맛을보니.....아무맛도 나지않아서..
거름주고 정성들인 하우스과일은 달고 맛있는데,노지에서 수확하는 과일 단맛내기는 힘든가...생각했더랬습니다.
어릴때, 원두막위에서 친구들과 숙제하던때가 그리워집니다.
사모님이 꼬들기셔도 너무 고된작업은 하시지 마셔요...덥고 습하고 벌레까지.ㅠ
교회 갔다 오다 잠깐 들렀는데
간밤 비바람에 옥수수가 넘어졌나 봤습니다.
모기 한데 물려 이곳저곳이 가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