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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의 관찰 :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저 / 안인희 역 | 휴머니스트
출간일: 1905년(원본) / 2008년 06월 02일(번역본)
<목차>
(옮긴이의 말)
(제1부) 역사의 관찰 - 되풀이 되는 것, 항상 있는 것, 전형적인 것
01. 우리의 과제
02. 역사 연구를 위한 19세기의 자격
(제2부) 역사에 나타나는 세 잠재력 - 국가·종교·문화
03. 국가
04. 종교
05. 문화
06. 시문학에 대한 역사적 관찰
(제3부) 세 잠재력의 상호작용 - 여섯 가지 제약받음의 관찰
07. 국가의 제약을 받는 문화
08. 종교의 제약을 받는 문화
09. 종교의 제약을 받는 국가
10. 문화의 제약을 받는 국가
11. 국가의 제약을 받는 종교
12. 문화의 제약을 받는 종교
(제4부) 역사상의 위기들 - 전쟁과 혁명
(제5부) 위대한 개인들 - 개체성과 보편성
(제6부) 세계사의 행운과 불운에 대하여
(원주)
(찾아보기)
<저자 소개>
스위스 바젤과 독일의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과 역사학을 전공했고, 역사를 공부하면서 문학과 미술도 함께 공부했다. 바젤 대학교에서 역사학 교수와 미술사 교수를 동시에 역임했다. 미술사 교수직을 맡으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문학 연구를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의 문학 연구는 원어 텍스트를 토대로 이루어졌다(그리스어, 라틴어, 이탈리아, 프랑스, 영어, 도이치어 등). 젊은 시절 부르크하르트는 랑케(Leopold von Ranke, 1795~1886) 밑에서 공부를 했고, 랑케가 물러난 다음에 베를린 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초빙을 받았으나(1872년) 정중히 거절하고 고향인 바젤에 남았다. 바젤은 도이치 문화권의 변방에 위치한 도시지만 지성의 역사에서 톡톡히 한 몫을 한 곳이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미술사학자 하인리히 뵐플린이 부르크하르트에게 배우고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부르크하르트는 역사 연구의 임무란 ‘발전’이 아니라 역사에서 ‘항상 있는 것, 되풀이되는 것, 전형적인 것'을 실증적으로 탐구하는 데 있다고 함으로써 우리 현대 문화의 발전에 대한 이해를 위해 결정적인 작용을 남겼다. 그는 문화사 및 예술사가로서 정통의 도이치 역사학 전통에서 벗어나 특출한 인물이다. 역사학자로서 그의 독특한 위치와 영향력은 그동안에도 이미 확고불변한 것이었거니와, 오늘날 문화사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면서 오히려 더욱 커지는 일면이 있다.
출간한 책으로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시대》(1852), 《이탈리아 미술작품의 감상을 위한 여행안내서》(1855),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1860), 《르네상스의 역사》(1867), 《그리스 문화사》(1898~1902,유작), 《세계 역사의 관찰》(1905,유작) 등이 있다.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의 《세계 역사의 관찰》을 읽고
역사학과 20100621 온지현
⊙ 시작하며
세상은 빠르게 돌아간다. 20세기에 경제는 무섭게 발전했다. 사람들은 상자 곽 같은 빌딩 안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그렇게 번 돈을 쇼핑센터에 투자한다. 모두가 복권을 산다. 모든 일은 경제 논리로 통하고 우리 시대에 가장 위대한 가치는 돈이 되었다. 주식 부자가 칭송 받는 이 시대에, 역사는 과연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나? 누가 역사에 귀를 기울이나? 내가 역사를 공부하겠다고 하니 여리 저기서 만류해 온다. 그걸 공부해서 뭘 먹고 사느냐가 논지의 핵심이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사라짐과 동시에, 역사를 왜 알아야 하느냐는 자못 허무주의로까지 보이는 인식이 현대 사회에 팽배해 있다. 포스트히스토리는 역사의 상실 선언이다. 모든 것은 옛날에 한번 발생한 것의 반복일 뿐이다. 세계 문명화 과정이 아무런 의미도 없이 계속 진행된다. 그러니 역사는 더 이상 우리 삶에 교훈도 주지 못하고, 고려할 필요도 없게 된다는 주장이 전개된다.
역사의 반복은 의미 없는 반복이 아니다. 역사에서 ‘되풀이 되는 것, 항상 있는 것, 전형적인 것’을 관찰하는 것은 중요하다. 늘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핵심 현상 -예를 들어 역사 권력은 계속 나타났다가 몰락해 사라진다- 을 통해 우리의 현재 모습을 성찰 할 수 있다.
부르크하르트의 스승인 랑케는 의식이 바탕이 되는, 그래서 의식의 발전 과정에 따라 역사도 진보한다는 계몽주의 시대의 역사 연구에 반대해서 역사에는 보편적인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즉, 역사는 ‘특수한 것, 서로 혼동 될 수 없는 것, 언제나 개별적인 것’이다. 모든 것은 일회적이며 역사는 과거 그 자체다. 랑케는 역사의 개별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면서 역사의 현재성이 주목되었다. 수많은 자료가 쏟아지며 역사와 접촉하는 순간이 늘어나고, 삶에서의 방향 정립을 모색 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함께 작용한 현상이다. 한 개인의 과거가 개인의 현재 모습을 결정지었듯이 현재의 시선을 통해 역사를 들여다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부르크하르트의 보편성에 주목하는 역사관은 랑케와 현대 역사관의 중간쯤에 위치해있다. 그에게 역사학이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소통의 다리이다.
계몽주의의 18세기가 지나고 19세기가 시작되면서 역사주의가 대두하고, 세계사 서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본저는 실은 책으로 쓰인 것이 아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던 시대 상황 속에, 저자가 1870~1871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다룬 강의록이다. 이 강의록은 그가 죽고 몇 해가 지난 다음 조카에 의해 책으로 출판 된 것이다.
역사책은 흔히 역사를 지역별로 나누어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는데, 이제는 인물사, 사건사, 구조사를 새로운 차원에서 서로 결합하는 작업이 과제로 떠오른다. 그리고 부르크하르트의 작업은 이를 잘 보여준다.
⊙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는 역사의 세 잠재력 - 국가, 종교, 문화
부르크하르트는 세계 역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을 국가, 종교, 문화로 본다. 정치적 욕구의 표현인 국가와 형이상학적 욕구의 표현인 종교는 해당 민족과 세계에게 보편적 타당성을 요구한다. 그러나 문화는 온갖 정신의 표현으로 움직이고, 자유로운 것이며 편파적이지도 않고, 타당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렇듯 국가, 종교, 문화는 연구 대상 면에서도, 그 드러나는 특성 면에서도 서로 너무 다르다.
그런데 공기처럼 항상 우리 주위를 싸고 있는 국가, 종교, 문화는 결코 따로 작용하는 법이 없다. 시대별로 우위는 바뀌어 왔지만 기본적으로 국가, 종교, 문화라는 역사의 세 잠재력은 그 기능을 뒤섞으며 함께 보조를 맞춰왔다. 세 잠재력이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역사를 이룬다. 두 부분이 맞물리기도 하고, 세 부분이 동시에 뛰어들기도 한다. 서로를 제약하고, 서로에게 제약받는다.
그는 제약을 받는 부분을 위주로 서술해 나간다. 국가와 종교의 제약을 받는 문화, 종교와 문화의 제약을 받는 국가, 국가와 문화의 제약을 받는 종교…….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등의 대작 연구서를 낸 역사학자는 세 잠재력에 대한 자신의 분류가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단지 관찰을 위한 임의적 결정이라 썼지만 나는 거기에 대해 깊이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동안의 역사책은 흔히 역사를 지역으로 나누어 연대기 순으로 서술하거나 사건사가 중심이었다. 내가 이전에 봐 왔던 책들도 그러했고. 나는 이 책에 와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5000년 가량의 방대한 세계 역사를 세 부분의 상호작용으로 파악하는 부르크하르트의 시선은 통이 크다. 대범하고, 그러면서도 치밀한 그의 시선을 쫓다보면 역사의 단면만을 바라보던 그 동안의 편협한 사고가 자꾸 부끄러워졌다.
자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는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는 쉽게 애국심에 고취 될 수 있고, 착시에 빠질 수가 있다. 이런 종류의 맹목적인 찬양을 피하기 위해 세계 역사의 맥락에서 대등하게 조국을 바라보는 거리 두기의 태도가 요구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부르크하르트가 심지어 세계 역사 연구에서도(!) 이런 거리 두기를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저 멀리 달에서 바라보니 국가, 종교, 문화의 세 잠재력이 유기적인 세포로서 꿈틀대며 세계라는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를 형성하고 있더라는. 하나의 생명체의 생리활동, 즉 역사는 ‘항상 되풀이 되는 전형적 특성’을 가진다는 저자의 보편성에 기초한 역사 인식도 이러한 철저한 인식과 객관적 관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말이다.
⊙ 역사의 흐름이 빨라진다 - 역사상의 위기; 전쟁과 혁명
국가, 종교 그리고 문화는 천천히 지속적으로 상호작용한다. 그런데 평소에 눈에 띄지 않게, 슬로 모션으로 진행되던 역사의 흐름이 갑자기 빨라지는 순간이 있다. 바로 전쟁과 혁명의 순간이다. 게르만 족의 이동 같은 민족 이동도 침입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이다. 전쟁과 혁명의 역할은 이전의 낡은 것을 전복하고 새로운 피를 수혈하는 것이다. 사회의 온갖 특권과 명예를 움켜쥐고 전체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들을 침묵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전체를 위한 명예로운 진짜 전쟁, 진짜 혁명이라 할지라도 이 둘은 필연적으로 힘을 동반한다.
그 점에서 전쟁과 혁명이 처음부터 문제를 안고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힘은 힘으로써 전복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모두에게 퍼져있다. 전쟁의 승자, 혁명을 완수한 이들은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더 나은 세계를 곧장 다음 타자에게 넘겨 줄 마음이 없다. 치고 올라올 또 다른 힘 -새로움- 을 봉쇄할 목적으로 그들은 군대와 돈을 장악한다. 곧, 보수화한다. 혁명의 선봉장이 내일의 독재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역사의 위기의 순간에 활약하는 것은 국가, 종교, 문화가 아닌 인간이며 이들이 역사를 바꾸어 왔다고 역설한다. 전쟁이나 혁명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권력은 악하다) 역사에서 어쩔 수 없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 위대한 개인들, 역사적 위대성이란 무엇인가?
우리 시대는 위대한 개인을 원한다. 위대한 정치가, 위대한 경제 전문가, 위대한 과학자, 위대한 예술가……. ‘위대함’이란 무엇일까? 금전에 대한 감각이 뛰어나고 출세를 해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인가?
그는 위대성이 동반해야 할 자질 몇 가지를 소개한다. 위대한 개인은 모든 관계를 전체와 세부 사항을 모조리 개관하면서 동시에 꿰뚫어 본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순간의 소음에 귀가 먹지 않는다. 또 영혼의 강인함이 동반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사리사욕에 따라 판단하는 영리함에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나온 자발적 자기 제한에서 비롯된다. 부르크하르트는 결국 역사적 위대성이란 개인의 범주를 벗어나 전체 인류라는 보편성에 다가간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의문을 하나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요즘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박정희 향수’에 관한 것이다. 사회 일각에서 ‘박정희 때리기’에 나서면 나설수록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더욱 강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다. 박정희란 인물이 ‘역사적으로 위대하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 기억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치를 그리워하는 것일까?
부르크하르트의 견해에 따르면 그렇지 않다.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여기까지는 저자도 눈 감아 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문제는 이 다음이다. 박정희는 독재자가 되었다. 독재자의 생명은 권력의 유지와 맞물리기 때문에, 그는 참된 정치를 할 수가 없다. 독재를 위한 독재를 이어간다. 박정희의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사로운 정권 유지를 향한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적 위대성이란 개인을 희생하고 전체 인류를 향한 보편성의 실현을 의미한다. 이기적으로 가능한 모든 것을 철저히 이용한 박정희는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위대할지 몰라도, 역사적으로 결코 위대하지 않다.
⊙ ‘의도’를 경계하라 - 부르크하르트의 신중한 역사 인식
그에 따르면 ‘의도’란 역사 관찰자가 자신의 상황에서 역사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자기에게 바람직한 것을 찾으려는 태도를 가리킨다. (앞서 말한 박정희를 예로 들면, 호남 출신 A씨가 박정희를 악마라고 판단 내리는 것) 이는 참된 역사 ‘인식’을 방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인 글에서조차 전승은 이미 수많은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다. 그는 우리가 이런 의도를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전에 서울대 주경철 교수의 《테이레시아스의 역사》에서,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주경철 교수가 언제 한번 면접에서 학생들에게 ‘흥미 있게 읽은 역사책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했다. 그런데 학생들의 대답이 열이면 열, 전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그는 곧바로 학생들에게 그토록 경탄을 받고 있는 시오노의 저작을 읽어 보았고 깜짝 놀랐다.
시오노 나나미는 전문 역사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로마사에 대한 재미있는 서술로 일반인들의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었다. 그러나 그 책은 딱 그 정도라는 것이다. 그녀는 로마인들이 이민족에 대해 너그럽고 관용적인 지배를 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로마 성장에 바탕이 되는 노예제도는 언급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전쟁 영웅들을 찬미한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작가의 의식이 일본 제국주의의 향수에 기초한듯하여 위험한 인상을 풍기는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그녀는 재미있는 서술을 위해 사실과 허구를 뒤섞는 한편으로 가짜 사료(!)를 만들기 까지 했다. 그리고 나서 하는 말이 달랑 ‘내 장난기가 발동했다.’라니.
그런데 시오노 나나미 뿐만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자기 좋을 대로 해석하고 멋대로 판단한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게 패배한 것은 불운이다.’, ‘8세기에 유럽이 이슬람을 막아 낸 것은 행운이다.’ 라고 과거의 행운과 불운을 판단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부르크하르트에 따르면 이 모든 의도적 판단들의 원천은 다름 아닌 ‘이기심’이다. 우리 인간은 이기심을 버릴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시대와 가치를 지향하는 의도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개별적인 것은 모두 자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과거와 미래 속에서 존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이기심에 얽매여 의도 속에 갇히는 것을 피하고 객관적인 역사 관찰로부터 참된 인식을 얻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저자는 사실, 역사학이란 매우 불확실한 분야라고 고백을 한다. 시작도 끝도 없고, 그것을 밝힐 수도 없다. 오로지 중간만이 있고 따라서 열려있는 역사이다. 그것을 단지 인식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 맺으며
그는 당대의 정치사적 서술 경향을 거부하고 역사 서술은 민족국가의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 또한 단호히 부정한다. 철저하고 깊은 관찰에서 나온 부르크하르트의 역사를 보는 시선은 다소 비관적이다. 그는 인간이 속한 세계사가 항상 위기 속에 운동하는 것을 보았고 그가 살던 19세기의 정치적 열기, 산업화 등이 가져올 미래의 위기를 염려했다. 그러나 그는 다가올 미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역사란 항상 논리적이고 발전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정신의 지속성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며 다만 오는 시대의 역사를 담담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고찰할 때 우리는 진정한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책은 방대한 세계 역사를 단 한권에 담았다. 그리고 다소 생소한 배열과 오랜 관찰과 깊은 사유에서 나온 저자의 역사인식을 쫓아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부르크하르트는 개인이 당면한 상황이나 가치관에 따라 역사를 판단하기 보다는, 과거를 초연하게 관조하는 태도가 진정한 역사를 보는 눈이라 생각했다. (19세기와는 또 다른 면에서) 혼란스러운 이 시대에, 교육의 기회가 증가하고 혁신적인 정보 소통이 이루어지는 이 시대에, 물질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하고 각종 유흥이 진지한 사고를 방해하는 이 시대에 저자의 책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자신과 세계에 대한 또 다른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참고 문헌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한스 위르겐 괴르츠 저/최대희 역 | 뿌리와이파리
출간일 2003년 05월 30일
저자 : 한스 위르겐 괴르츠
1937년 독일의 프론차에서 태어나 함부르크, 괴팅겐, 튀빙겐에서 신학, 철학, 역사학을 전공했다. 1964년부터 1972년까지 하이델베르크대학 기독교연구소의 연구원을 지냈다. 1974년 역사학 교수자격시험을 통과한 뒤, 1982년에 함부르크 대학의 역사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옥스퍼드 대학, 케임브리지 대학, 예일 대학, 하버드 대학 등의 객원교수를 역임했다.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주경철 저 | 산처럼
출간일 2002년 04월 25일
저자 : 주경철
1960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및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는 『역사의 기억, 역사의 상상』『테이레시아스의 역사』『네덜란드―튜립의 땅, 모든 자유가 당당한 나라』『언어 사중주(공저)』『문화로 읽는 세계사』『신데렐라 천년의 여행』『대항해시대』『문명과 바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역사와 영화』『유럽의 음식문화』『제국의 몰락』『경제강대국 흥망사 1500-1990』『유토피아』 외에 다수가 있다.
첫댓글 서지사항 보완 요
서지 사항 보완했습니다. 참고 문헌 서지 사항도 추가했고요.
그리고 부분적으로 짧은 문단 한 두개를 추가하였고, 독후감 부분에 (맺으며)를 독립시켰습니다. 또한 전체적으로 작가의 논지를 제 의견과 좀더 명확하게 구분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