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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의 창작방법과 실제(서정문학 7.8월호)
김관식
언어유희 기법
1) 프롤로그
언어유희 기법은 고대시가에서 현대시에 이르기까지 시 장르 뿐 아니라 문학의 전 장르에 걸쳐서 활용되어왔고, 우리 생활주변의 광고, 팸플릿, 게시물 등 생활현장 등에서도 다양하게 활용되어 왔다. 때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 언어유희는 효과적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기 위해 해학적인 언어유희 기법을 활용하기도 한다.
현대시에서도 해학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어떤 의미를 암시하여 전달하려고 할 때 언어유희 기법이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기법을 익혀두는 것은 다양한 시적 표현의 기능을 신장시키는 일일 것이다.
2) 언어유희 기법의 개념
언어유희란 단순한 말장난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어떤 의미를 암시하거나 전달하고 날카롭게 현실을 풍자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주로 낱말, 문자 등을 해학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동음이의어를 재치 있게 구사하거나 유사 발음을 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이지만, 춘향전에서 춘향이의 어머니 월매가 옥에 갇힌 춘향이에게 “네 서방인지 남방인지 걸인 하나 왔다”와 같이 발음의 유사성을 이용하기도 하고, 봉산탈춤에서 “아, 이 양반이 허리 꺾어 절반인지, 개다리소반인지, 꾸레미전에 백반인지”와 같이 절반, 소반, 백반 등 비슷한 음운을 활용하기도 하며, “춥다, 문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와 같이 낱말을 배치를 바꾸는 방법 등이 모두 언어유희 기법을 활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다음백과 사전에서는 언어유희를 네 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 동음이의어를 이용하는 경우 : ‘눈싸움을 하다 눈에 맞아 눈물이 나니 눈물(淚)인가 눈 물(水인)가’ ②비슷한 발음의 단어를 연속하여 각운을 맞추는 경우 : ‘리리 리자로 끝나는 말은, 개나리 피리 봉우리 광주리 유리 항아리’ 또는 봉산탈춤에서 말뚝이가 양반을 소개하는 장면에서 ‘양반인지 허리 꺾여 절반인지, 개다리소반인지, 꾸레미전에 백반인지’ ③도치법으로 문장의 앞뒤를 바꾸는 경우 ‘먼 옛날 만주에서 개 타고 말 장수 하던 시절’ ④어울리지 않는 단어를 조합하여 새 말을 만들어내는 경우:‘멘탈(정신)+붕괴=멘붕’ 등이 있다. 최근에 광고 중에 ‘보고서만 받으면 묵혀두는 당신 국장인가, 청국장인가’ 등도 유사한 발음과, 성질(보고서를 묵혀두다, 오래 묵혀 발효시키는 청국장)을 이용한 언어유희이다.
언어유희는 다른 의미를 암시하기 위해 말이나 동음이의어를 해학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방법으로, 말이나 문자를 소재로 하는 유희를 의미한 1차적으로 저급한 낱말놀이를 시에 적용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미칠 수도 있다. 언어유희를 단순하게 해학을 목적으로 관심을 끌어보려는 것 보다는 시에서는 다중의 의미를 표현하고 새로운 의미로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언어유희여야 한다. 따라서 그러려면 낱말에 대한 세심한 사고와 낱말의 소리들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토대로 한 언어유희에서 차츰 해학의 목적과 독자의 상상력과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는 영역으로까지 언어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아이러니의 한 변형으로서 언어유희는 단순한 말장난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풍부한 기지와 날카로운 어조로 풍자의 형식으로 독자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는 왕족인 벽계수를 유혹하고자 지은 시조인데, 상대방을 유혹하는 재기가 돋보인다. 중의적 표현으로 덧없는 인생을 즐기자고 넌즈시 권유하는 기녀의 솔직한 호소력이 드러난 작품이다. “청산리(靑山裡) 벽계수(碧溪水)야/수이 감을 자랑마라/일도창해(一到滄海)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하니 수여간들 엇더리.”라고 벽계수는 푸른 산속에 흐르는 푸른 시냇물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왕족의 벽계수와 동음이의어로 중의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와 같이 언어유희를 이용한 시에는 시어 속에 또 다른 언어가 숨어있다. 따라서 하나의 언어가 내포하는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언어 속에 숨어있는 언어를 찾아내야한다. 언어유희는 언어의 시각적 이미지의 효과보다는 청각적 이미지의 효과를 강조하여 낱말의 소리에 민감해지는 현상에 근원을 두고 있는 것이다.
3) 현대시에 활용한 사례
가) 이상의 경우
① 두운과 각운의 반복법에 의한 언어유희
이상의 시는 같은 문장을 반복하는 시 구성이다. 이는 일상의 지루함과 정체에 대한 절망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 언어유희 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동일한 운을 반복적으로 적용하여 리듬감을 살려 시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오.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하오.)
제 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 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4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5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6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7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8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 9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0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1의 아해가 무섭다고 그리오.
제12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제13의 아해도 무섭다고 그리오.
십삼인의 아해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 그렇게 뿐이 모였소.
(다른 사정은 없는 것이 차라리 나았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운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그 중에 1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 아해라도 좋소.
(길은 뚫린 골목이라도 적당하오.)
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소.
-이상의 「烏瞰圖-詩 第一號」 전문
이 시의 시제를 오감도(烏瞰圖)'는 원래 건축용어인 조감도(鳥瞰圖)인데, 여기에 새 “조”를 형태상, 발음상 유사한 소리를 내는 까마귀 “오”로 재치 있게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하늘에서 새가 내려다본다는 의미의 그림을 이상이 까마귀가 내려다본다는 의미의 그림으로 재치 있게 바꿔놓고 있다. “조”대신 “오”로 음운을 대체시켜놓았다.
두운과 각운을 반복적으로 적용하여 지루함과 불안과 두려워하는 마음을 심화시키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② 띄어쓰기의 무시와 비문법적인 언어유희
띄어쓰기를 무시하고 시 한 구절의 종결어미를 “소”로 각운을 살렸고, “꽃나무”의 반복함으로써 비문법적인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벌판한복판에 꽃나무하나가있소. 근처(近處)에는 꽃나무가하나도없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를 열심(熱心)으로생각하는것처럼열심(熱心)으로꽃을피워가지고섰소.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爲)하여 그러는것처럼 나는참그런이상스러운흉내를내었소.
-이상의 「꽃나무」 전문
행과연을 구별하지 않고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것은 초현실주의 자동기술법을 활용하여 꽃나무는 이상적 자아라면, 화자인 나는 현실적 자아이다. 현실적 자아와 이상적 자아의 괴리감과 갈등 상황을 “나는막달아났소”라고 내면의식을 이미지화하여 병치시키고 있다. 자아의 분열에 대한 공포감을 모순적 상황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한 시이다.
③ 한자 표기 대체를 통한 언어유희
띄어쓰기의 무시하는 등 언어 논리를 해체시켜 표현하는 이상의 시는 초현실주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시 경향을 보이지만 이 시에서 “어항”을 한자어로 “魚항”이라고 대체하여 현실과 동떨어진 낯선 “물고기”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血管에는 달빛에 놀란 冷水같은 피가 흐르고, 원통하고 이즈러진 心臟에는 생명의 징조가 아니라 소멸해가는 자신의 육체를 냉철하게 바라보며 절망하고 탄식한다. 그러면서도 싱싱한 생명을 지닌 “물고기”를 떠올리면서 한 낱말을 단순히 한자로 대체하는 언어유희 기법을 활용하여 새로운 인식을 전달하고 있다.
달빗이내등에무든거적자욱에앉으면내그림자에는실고
초같은피가아물거리고대신血管에는달빗에눌랜인冷水
가방울방울젓기로니너는내벽돌을씹어삼킨원통하게배
곱하이즈러진헌겁心臟을드려다보면서魚항이라하느냐
-이상의 「素英爲題」 일부
이 시는 부정하고 무정한 여인을 사랑한 화자가 고통스런 내면상황을 비유로 표현한 작품이다. 소영을 사랑한 화자는 고통과 설움으로 점철되어 있다. 화자는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소영의 방종과 거짓 앞에서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소영은 화자의 지순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생활을 해옴에 따라 화자는 고통에 이지러진 내면을 어항처럼 무심하고 매정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소영위제(素英爲題)」는 이러한 어긋난 사랑과 그런 두 사람의 관계의 고통스러운 내면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다. 화자의 내면의 고통을 섬뜩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표출한 비유법이 경이롭다.
④ 동음이의어의 언어유희
동음이의어는 같은 음이나 뜻이 서로 다른 낱말이다. 여러 개의 의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다성성을 지닌 중의적인 표현으로 애매성과 다의성으로 의미를 확장시키는 효과를 유발한다.
내두루마기깃에달린정조뺏지를내어보였더니들어가도좋다고그런다. 들어가도좋다던여인이바로제게좀선명한정조가있으니어떠냔다. 나더러세상에서얼마짜리화폐노릇을하는세음이냐는뜻이다. 나는일부러다홍헝겊을흔들었더니窈窕하다던貞操가성을낸다. 그러고는七面鳥처럼쩔쩔맨다.
이상의 「危篤-白畫」 전문
이 시의 “窈窕하다던貞操가성을낸다. 그러고는七面鳥처럼쩔쩔맨다.”에서 “요조(窈窕)”와 “정조(貞操)”, 그리고 “칠면조(七面鳥)” 등 “조”자로 끝나는 시어를 선택하고 있다. “조”라는 같은 발음의 시어의 배열을 통해 그 뜻이 모두 다르나 같은 발음으로 끝난다는데 독자에게 새로운 재미와 리듬감을 주는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시의 대부분에서 “말꼬리 잇기”라든가 “패러디 기법”, 「二十二年」에서 “前後左右를除하는唯一의痕跡에 있어서”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시행은 “이십 년”이라는 자신의 나이, 그러니까 자신의 생애를 전후좌우에서 제하고 남는 유일한 흔적인 “十 ”은 기독교의 신을 표상한다와 같이 “긴것/ 짧은 것/열十자”의 “파자놀이”, “수와 수식”, “도상 이미지”를 통해 대립과 분열, 성과 죽음, 새로운 시도 등 다양한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한 시로 내면세계를 표현했다.
나) 김승희의 경우
① 비슷한 발음의 낱말을 연속적으로 배열한 언어유희
김승희 시도 다양한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한 시가 많다. 그 중의 비슷한 발음의 낱말을 연속적으로 배열하여 발음의 유사성에 의해 새로운 재미와 의미를 확장하기 위한 언어유희를 적용한 시를 살펴보기로 한다.
도미가 도마 위에 올랐네
도미는 도마 위에서
에이, 인생, 다 그런 거지 뭐,
건들거리고 산 적도 있었지
삭발한 달이 파아랗게 내려다보고 있는 도마 위
도미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도미는 도마 위에서 맵시를 꾸며보려고 하지만
종말에 참고문헌과 각주가 소용이 될까?
비늘을 벗기고 보면 다 피 배인 연분홍 살결
그래도
고종명에 참고문헌과 각주가 소용이 되느니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
도미가 도마 위에서
도미가 도마 위에서
몸서리치는 눈부신 몸부림
부질없는 꼬리로
도마를 한번 탕 치고 맥없이 떨어져
보랏빛 향 그윽한 산천
-김승희의 「도미는 도마 위에서」 전문
도미를 요리하기 위해 도마 위에 놓는 상황을 통해 생명과 죽음에 대한 사유를 감각적으로 묘사한 시다. 이 시에서 “도미”와 “도마”는 같은 음의 낱말을 연속적으로 배열하여 “도(刀)”라는 “칼”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타의에 의해 목숨이 다하는 순간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물방울이빨랫줄에조롱조롱”구절에서는 띄어쓰기를 무시함으로써 죽는 순간의 긴박감을 고조시키고 있고, 물의 이미지로 눈물방울이 빨랫줄에 매달려 있는 경각에 달린 상황의식을 언어유희로 죽음의 순간을 삶의 연속성으로 확장시켜놓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② 한글 파자(破字)놀이를 통한 연어유희
파자(破字)놀이는 원래 한자의 자획(字劃)을 분합(分合)하는 과정을 놀이화 한 것이다. 한자의 자획을 나누거나 합치거나 하여 알아맞히는 수수께끼 놀이다. 한자의 뜻글자로 구성된 한자의 특성에 따른 풀이를 함으로써 여러 가지 의미의 놀이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데 김승희는 한자에서 파생된 놀이를 한글로 파자놀이를 실험했다. 그의 기발한 재치와 기지, 그리고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언어감각으로 창조해낸 파자놀이는 언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확장시킴은 물론 독자들에게 재미성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일상>이란 낱말을 고요히 들여다 보네
고요히 끓고 있는 못沼같은 일상
풍경에 울타리를 치고
아무나 다 잡아먹을 수 있을 것 같은
고요한 익사
<일상>이란 낱말을 고요히 들여다보네
ㄹ은 언제나 꿇어앉아 있는 내 두 무릎의 형상을 닮았네
일상은 어쩌면 우리더러 두 무릎을 꿇고 앉아
자기를 섬기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도 같네
무릎을 꿇고
상이 용사처럼 두 무릎을 꿇고
ㄹ로 두 다리를 포개고 앉아 있으라고
그러면 만사 다 오케이라고
<일상>이란 낱말을 더 들여다보네
(일상은 역사보다 더 오래되고
전쟁보다 더 많은 상이 용사들을 낳은 것)
ㄹ을 한번 움직여보네, 바퀴처럼, 썰매처럼
밀고 가보네, ㄹ을 달리게, ㄹ을 구르게, ㄹ을 구루마처럼
굴리며 굴려가 막 밀어보네.
제 속도에 취하여 ㄹ은 즐겁게 굴러가고 즐겁게 달려가네
절벽이 있는 데까지 굴러가서
절벽 아래엔 절이 있거나 벽이 있거나 하겠지만
ㄹ은 멈출 수가 없어 아래로 곧장 굴러 떨어지네
너무 멀리 온 거야, 이렇게까지 올 줄은 몰랐어,
웃다 만 반 조각의 얼굴을 허공 중에 설핏 남기며 분해된 ㄹ은
투신 자살, 혹은 미필적 추락으로
<일상>이 ㄹ을 잃어버린 날
땅위에선 국경선이 모두 지워지고
아담의 목에 걸린 사과는 사과나무로 돌아가고
뱀의 뱃가죽에선 허물이 떨어져 승천이 돋아나고
여인의 밥상으로 붉은 황토의 푸른 보리밭이 침투하고
시계는 침대가 되고
침대는 시계가 되고
바다가 침대가 되었기 때문에
남자는 여자가 되고 여자는 남자가 되고
아이는 왕이 되고
-김승희의 「<일상>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면」 전문
언어놀이를 통한 낯설게 하기 기법을 적용한 시이다. 〈일상〉이란 낱말에서 한글 자음 ‘ㄹ’의 형상은 사람이 마치 무릎을 꿇고 있는 자세다. “ㄹ은 언제나 꿇어앉아 있는 내 두 무릎의 형상을 닮았”다거나 “일상은 어쩌면 우리더러 두 무릎을 꿇고 앉아/자기를 섬기라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는 것”같은 상이용사로 비유하는 재치가 기발하다. 이처럼 한글의 자음 ‘ㄹ’의 형태에서 기발한 착상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화자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고, 다른 한편 일상의 틀에 갇힌 우리들에게 무릎을 꿇고 조아리는 자세에 대해 우리들로 하여금 깊은 생각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따라서 〈일상〉에서 과감하게 ‘ㄹ’를 빼버려야만 ‘이상’의 자유를 얻을 수 있고,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되돌아갈 수 있다는 논리는 시인의 놀라운 시적 직관을 언어유희로 드러내 보인다.
언어유희적인 언어적 일탈을 우리들이 “<일상>에서 ㄹ을 뺄 수만 있다”는 가정으로 일상성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우리들의 위축된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켜 놓았다.
③ 동음이의어 언어유희 “멍”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낱말 “멍”의 동음이의어와 유사발음의 연상 작용을 활용하고, 또한 차용과 풍자로 언어유희를 통해 재미성과 상상력을 확장시킬 수 있다. 김승희 시 「멍」과 최승호의 「멍 때리기 대회」를 예시로 들겠다.
비닐 하우스에서 생산되어 팔려온
시금치는
그렇게 푸르지가 않다.
무언가가 크게 잘못되어
심하게 멍든 것 같은 표정을 줄 뿐이다.
바람이 되다만 사랑이
희망이 되다만 낙망이
새벽이 되다만 절벽이
혁명이 되다만 울부짖음이
저런 정박의 멍이 된 것일까?
푸른 멍이 자신의 상처를 이길 수
없을 때
멍은 멍에가 되어
한밤을 개집 속에서 슬프게 울부짖어야 한다.
멍
멍.멍
멍.멍.멍.
멍멍멍 울부짖는 엄을 나는 기르고
싶지는 않았다.
사랑이 되다만 멍들이
새벽이 되다만 절벽들이
개벽이 되다만 희망들이
다른 언어로 꽃피어남(울기)을
찾을 때까지
나는 더 멍들의 멍에를 걸머지고
이 토막난 변시체 같은
희망의 빈민굴을 좀더 사랑할
작정이다.
멍들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를 멍들게
하는 것들을 좀더 질기게
비웃어 주어야만 하기 때문에
멍이 멍.멍을 초월하는
그 어떤 아름다운 반동을 낳을 때까지.
-김승희의 「멍」 전문
이 시에서 “멍든”, “희망”, “멍”, “멍에”, “멍,멍” 등 “멍”의 동음이의어와 “멍”이란 말이 들어있는 낱말을 효과적으로 배열한 언어유희 기법을 활용하여 사회를 풍자하는 등 상상력을 확장시켜놓고 있다.
멍 때리기 대회가
2014년
서울광장에서 처음 열렸다
나는 참가하지 않았지만
뇌에 수북한 생각들을 거북털처럼 쏟아놓고
멍게나 해삼처럼 단순해진 뇌를
멍하게
멍청하게
광장에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멍하니 멍청하게 산다는 것은
멍게와 해삼에게나 가능한 일
멍
멍청해지려고
우리는 무척이나 애를 쓴다
-최승호의 「멍 때리기 대회」 전문
이 시도 서울과장의 집회를 「멍 때리기 대회」로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하여 사회풍자한 시이다. “멍”, “멍게”, “멍하게”, “멍청하게” 등 멍이 들어간 시어를 적절하게 배열하여 언어유희로 재치 있게 사회를 풍자하고 우리들에게 재미성과 상상력을 확장시켜놓는다.
다) 기타 언어의 해체하여 의미를 확장시킨 언어유희 기법
언어유희기법은 비유, 상징, 역설, 풍자 등과 함께 어울려질 때 그 효과와 기능이 확장된다. 많은 시인들이 언어유희기법을 적용한 시를 쓰고 있다. 초현실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현대시에서도 언어유희 기법은 중요한 기법 중의 하나이다. 특히 우리 한글은 언어를 해체하거나 언어의 형상을 본떠 얼마든지 언어유희 기법을 참신하게 창조해낼 수 있는 언어이다.
언어를 분해하면 새로운 의미의 언어가 만들어지고 그 언어를 다시 결합하여 의미를 확장시킬 수 있다. 김관식의 「나비」를 예로 들어보겠다.
나
비다
구름 동동
하늘 떠돌다
되돌아올 줄
정말 몰랐다
팔랑팔랑
꽃을
찾아다닐 때
나를
잊었다
그땐 정말
눈물
흘릴 줄
전혀 몰랐다
비틀비틀
낙하하는
나비
나
비다
-김관식의 「나비」 전문
이 시는 “나비”라는 낱말을 “나”와 “비”로 해체해 두 낱말이 갖고 있는 의미를 이미지로 전개하여 다시 통합하고 분해하여 상상력을 확장시켰다. 언어를 해체하여 분해하고 결합한 언어유희 기법이다. “나비”가 “나”라는 주체적인 존재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라는 물의 이미지로 해체하여 물의 순환과정과 주체의 상실감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시이다. 나비가 하늘을 날아 다니다가 떨어지는 상황과 구름이 하늘에서 동동 떠다니다가 비가 되어 땅으로 떨어져 생명을 키워내듯이 삶과 죽음은 순환된다는 연기설을 바탕으로 주체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시다.
4) 에필로그
이상에서 언어유희 기법은 광고에서 카피라이터들이 호기심과 집중도를 자극할 목적으로 동음이의어의 활용, 궁금증을 유발하기 위한 유사발음어,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살리기 위한 반복어, 일부 낱말의 형태를 변형시켜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변형어, 의미를 단순화시키는 축약어. 등을 활용하여 광고 문안을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다. 그리고 현대시에서 언어유희는 다양한 시적 표현을 위해 많은 시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법이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시에서는 시적인 상상력을 자극시킬 낱말의 해체와 재결합 등 새로운 의미를 확장하는데 언어유희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이밖에도 시인의 노력과 역량에 따라 한자와 한글의 자모, 활용도, 의미 등으로 새로운 의미를 독창적으로 창조해 새로운 방법의 언어유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언어유희 기법의 역사는 길다. 오래 전부터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의 시나 소설, 오페라, 연극, 영화 등에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미디어 광고, 각종 유인물, 플래카드, 게시물 등 우리들의 생활 현장에서도 널리 생활화 되고 있다. 현대시에서도 새로운 언어를 창조하고 해학으로 시에서 멀어져 간 독자를 유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언어유희 기법의 활용도가 높다.
첫댓글 장문의 글 올리시느라 수고 하셨습니다.
향필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