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 취소되어 집에 있던 중
모TV방송국의 '국립공원을 찾아서' 프로그램의 경주편을 보다가
점심 먹고 남산 지도 한장 들고 경주행 버스를 탔다.(5월 10일 토요일)
남산은 경주시의 남쪽에 솟은 산으로
금오봉(468m)과 고위봉(494m)의
두 봉우리에서 흘러내리는 40여개의 계곡과 산줄기들로 이루어진 산으로
수 많은 유적, 유물들이 있는 노천박물관이다.
이러한 경주 남산은 1968년 경주의 7개 지역과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5년 사적지, 2000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각각 지정되었다.
지금까지 남산 여러 곳을 다녔지만
아직도 가볼 곳이 너무 많은 곳이다.
오늘은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11번 시내버스를 타고
통일전 주차장에서 하차, 남산동 탑마을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 출발하여 남산기슭에 있는 보물들을 찾아보면서
경주국립박물관까지 트레킹하기로 한다.
남산리 삼층석탑(보물 제124호)
이 탑마을에 있는데 양피못 가기전 도로변에 있다.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탑 형식으로 두 탑을 동서로 배치하였으며
동탑의 높이는 7.04m, 서탑의 높이는 5.55m이다.
신라시대 사람들의 돌 다루는 솜씨를 엿볼 수 있다.
동탑에서 서탑 방향으로
아름다운 작약꽃이 손님을 맞는다
서출지
연꽃으로 유명한 곳인데 잡초가
무성하다.
잡초를 조금 손질한 것 같기는
하지만...
통일전 방향 도로를 따라 가면 좌측편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이 연못이 사금갑(射琴匣)의 전설이 간직된 서출지이다.
'488년 정월 대보름에 소지왕이 천천정(天泉亭)으로 행차하였다가
쥐가 사람소리로 까마귀를 따라가라 하여 무사(武士)에게 뒤쫓게 하였다.
무사가 까마귀를 좇아 남쪽 피촌(避村)에 이르자 까마귀는 사라지고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와 봉투를 올렸다. 그 겉봉에는'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씌어 있었다.
왕은 한 사람이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고 열어보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자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요, 한 사람은 임금을 뜻한다고 하며
왕에게 봉투를 열어볼 것을 청하였다. 왕이 봉투를 열자
그 안에는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갑을 쏘라는 글이 씌어 있었다.
왕이 활로 거문고갑을 쏘니 그 안에서 궁주(宮主)와 승려가 정을 통하다 나왔다.
왕은 궁주와 승려를 처형하고
매년 정월 상해일(上亥日), 상자일(上子日), 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정월 보름을 오기일(烏忌日)이라 하여 까마귀에게 약밥을 지어 공양하였다.
그리고 노인이 나왔던 연못을 서출지라고 불렀다.
신라 21대 왕인 소지왕의 암살을 방지하였다는 설화이다.
통일전은 입장료 성인 500원인가 하는데 관람은 생략
통일전 앞을 지나자 이런 도로가 나온다.
일종의 둘레길 형태로 도로를 따라 만들었다 하는데
이 도로는 중간에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졌다가 불곡입구에서 끊어진다.
정강왕릉 가는 길
도로의 표지를 따라 산속으로 약 200m를 가면 신라 제50대 정강왕릉이 있다.
헌강왕릉 가는 길
정강왕릉에서 다시 내려와서
도로를 따라 약 100m 정도 가면 신라 제50대 헌강왕릉이 있다.
헌강왕릉
헌강왕과 정강왕은 형제라 하는데
죽어서도 이웃하여 묻혀 있다.
계속하여 둘레길을 걸으면 곧 화랑교육원이 나온다.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였을 커다란 소나무 한그루
오늘도 농부들을 기다리며 말없이 서 있다.
메타쉐쾨이어 나무가 예사롭지 않다 했는데
이곳이 경북산림환경연구원이다.
주변에는 울타리를 쳐 놓고 문을 통제하고 있어 살짝 들어 갔다.
집에 와서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예약을 받아 견학이 가능하다고 한다.
수국
작약꽃
아카시아
어, 자주색 아카시아도 있네
나무이름 통과
해당화도 한창이고
이팝나무 거리
잎이 날 때부터 빨간 단풍나무
이런 연못도 잘 가꿔 놓고
황금메타쉐콰이어
메타쉐콰이어
편백나무인가?
입구도 출구도 모를 넓은 땅에 수많은 나무들이 있어
탐방하면서 휴식하기에 좋은 곳이다
야생화 화원도 운영한다고 한다.
산림연구원이 지나니 길은 끊어지고 차도가 나온다.
연구원 개울을 따라 돌아가면 갯마을이 나오는데
마을사잇길로 보리사 안내표지를 따라 가면
산쪽으로 가는 비탈길이 나온다.
보리사
미륵곡 석조여래 좌상(보물 제136호)
보리사경내에 있다.
신라시대의 보리사터로 추정되는 곳에 남아 있는
높이 4.36m, 불상 높이 2.44m의 석불좌상으로
현재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석불 가운데 가장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는 보물이다.
작약꽃에는 개미가 많네
다시 시멘트 마을길을 걸어간다.
곧 탑골마을이 나오고 이 마을에서 옥룍암으로 간다.
마을 가운데 개울을 따라 난 남산등산를 따라
약 300m정도 가면 옥룡암이 나온다.
옥룡암 좌측 뒤에 오늘의 세번째 보물 탑곡마애불상군이 있다.
탑곡 마애불상군(보물 제201호)
신라시대 작품으로 자연석인 9미터정도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 면 모두에
거의 빈틈없이 여러 상들이 조각되어 있는데
만다라적인 조각이 회화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면
오른쪽면
후면
왼쪽면
뒤에 있는 탑인데 설명이 없네
다시 마을로 내려오니 다시 둘레길이 나타난다.
길을 따라 약 300미터정도 가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남산등산로 표지가 나온다.
이 등산로를 따라 약 800m쯤 가면
오르막이 시작되고 다시 가파른 길에 계단이 나오고
산죽이 무성한 대숲 오른쪽에 오늘의 네번째 보물이 있다.
불곡 마애여래좌상(보물제198호)
이 부처는 높이 3m, 폭 4m 정도 되는 바위에
높이 1.7m, 폭 1.2m, 깊이 0.6m의 감실을 파 그 안에 새긴 것으로 불상의 높이는 1.4m 정도이다.
감실은 입구가 아치형으로 되어 있고 석굴의 느낌을 주는데
단석산의 석굴사원, 군위 제2석굴암과 함께 석굴 양식의 변천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또 작은 바위 속에 새겨진
이 석불좌상은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신라의 것으로 보이며
현재 남아 있는 남산의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한다.
다시 하산하여 박물관으로 가는데 여기서부터는 험난한 길이다.
둘레길은 끝이 나고 인도도 없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약 600m를 가면 양지마을로 건너는 다리가 나오고
이 다리를 건너 좌측편 시멘트길을 따라 걷는다.
그런데 다른 지역은 둘레길이 잘 만들어져 놓았는데
경주는 왜 지금까지 둘레길을 만들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지금 일부 만들고 있는 도로보다는
남산 자락을 따라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람이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오솔길을 만들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다리밑을 통과하니 경주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길 양옆에는 황량한 황무지인데 발굴중이라 출입금지구역이다.
경주국립박물관은 과거에는 입장료를 받았으나
지금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박물관에 오랜만에 왔으니 그냥 갈 수 없어 야외 및 실내의 모든 전시실을 둘러본다.
에밀레종으로 더 잘 알려진 성덕대왕신종
뒷뜰에는 다보탑과 석가탑의 모형이 있다.
내부는 눈으로만 본다.
그리고 지금 동쪽 전시실에는 천마총의 유물들을 특별전시 하고 있다.
화려한 신라 금관
누가 감히 1500여년 전에 만들었다고 하겠는가?
박물관 견학을 마치니 저녁 일곱시가 넘었다.
그리고 gps를 보니 이동거리가 15.3km, 소요시간 5시간 42분
오늘은 1500여년 전
이땅에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선조들의 화려한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우리나라가 또 다시 찬란한 문화융성이 일어날 것이라 기대해 본다.
새로 얻은 남산지도를 집에 와서 보니
내가 걸은 길이 경주문화유산 답사코스 중 2번 동남산 산책코스에 포함된 길이다.
그리고 경주남산연구소(http://www.kjnamsan.org/) 에서는
공휴일과 주말에 경주남산유적 답사 프로그램은 운영하는데
코스별 50명을 신청 받아 무료로 운영한다고 한다.
다른 코스는 이 프로그램을 따라 참여해 보고자 한다.
그러나 코스 면면을 보면
대부분 기존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하므로
경주시와 경주국립공원에서는
보다 걷기 좋은 둘레길을 개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첫댓글 멎져부러요 자연은 역쉬 아름다워
행님 사진 많이 올려주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