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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18회동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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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스크랩 이번엔 안산으로,
나그네 추천 0 조회 108 09.10.18 05:19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 토박이들에게 서울에 안산이 어디 있냐고 물어 보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대개는 "경기도 안산 아냐?" 하며 되묻기 일쑤다.

 

 물론 그 자락에 살았거나,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다르겠지만,

그 만큼 안산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산(鞍山)!!!

안산은 산이 크고 높다거나 아니면 유명한 역사적인 유적이 있다거나 풍치가 뛰어난 그런 산은 아니다.

이름에서 보듯이 정상이 말의 안장 같이 생겨서 안산이라는 이름이 붙은 듯한데,

 

 산 정상에는 최근에 복원한 봉수대가 있고,

산기슭에는 봉원사와 그 아랫 자락으로 연세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가 있다.

 

 반대편 너머엔 서대문 구청이 있는 정도다.

 

 난 인왕산에 올랐을 때 본 안산을 오르고 싶어 관련자료를 여기저기에서 찾았지만,

그런 자료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인왕산 정상에서 본 안산

 산 정상 오른쪽에 한강에서 내뿜는 분수가  높이 솟아 오르는 게 희미하게 보인다.

 

 그래서 전전긍긍 하던 터에, 

손님과 식사를 하다가 우연히 등산 이야기가 나와 안산 이야기까지 이어졌는데 자기 집이 그쪽이라 자주 간다며 가고 싶다면 안내를 하겠단다.

 

 이런!!

이런 횡재가 있나.

나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맙단 말을 했다.

당장 가고 싶으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2호선 아현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오면 그기에 5번 마을 버스가 있으니 그걸 타란다.

그러면 자기가 종점에서 기다리겠다고,

 

 아침 일찍 일어나 토스트를 구워 배낭에 집어 넣고 집을 나섯다.

마을버스 5번 종점에서 그와 9시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시키는대로 해서 05번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5번 버스가 오질 않는다.

그 동안 3번과 6번 버스는 몇대나 지나갔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 정류장의 안내판을 보니 6번 정류장이다.

다시 그 앞으로 가보니 그긴 3번 정류장이 아닌가?

앞뒤를 아무리 돌아 다녀도 5번 정류장은 보이질 않는다.

 

 이런 낭패가 있나.

약속시간은 다 되어 가는데,

 

 잘 못하면 첫 약속에서 시간을 어기는 무례를 범 할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그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리 찾아도 5번 정류장이 없다고,

 

 그는 웃으면서 2번 출구를 나와서 뒤로 돌아 오른쪽 길로 죽 따라 오면 5번 정류장이 있단다.

 

 허 그참,

처음부터 그렇게 알려줘야지ㅉㅉ..,

 

 난 오늘 처음 알았다.

마을 버스는 정류장이 번호별로 다르다는 사실을.

다른 곳은 그렇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약속 시간이 20분이나 지나고,

그는 약속대로 종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난 아무말도, 변명도 하지 않았고,

그도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서로가 미안하니까.

 

 그는 산을 오르는 길이 여럿 있는데 이화여대 사회관쪽 코스로 올라 가잔다.

난 잘 모르니 그의 의사에 따를 수 밖엔,

 

 이대 사회관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는 추계예술대학이 있다.

예전엔 듣도 보도 못한, 아니 최근에도 들어 보지 못한 학교다.

건물도 크고 멋있는데, 이건 나중에 다시 알아보기로 하고,

 

 이대 사회관에서 엘리베이트를 탓다.

4층에 있는 자판기에서 나는 향긋한 커피향이 나를 그냥 가게 내버려두질 않는다.

 

 기숙사를 지나는 오솔길에는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 같이 5~60대로 보이는 사람들이다.

 

 허허 그참

나이가 5~60십은 되야 건강이 뭔지를 알게 되나 보다.

 

 

     

                                                       안산의 등산로 이정표

 

 "애완동물 출입금지"라고 큼직하게 써 놓았다.

혹시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봐 영문으로 까지...

 

 한 5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송아지 만한 큰 개를 데리고 올라간다.

그것도 개 목줄도 묶지않고 풀어 놓은 채,(이 아주머니는 까막눈인 모양이다.)

 

 우리는 걸음이 빨라 그 아주머니 곁을 지나 가야 되는데 개가 자꾸 눈에 거슬린다.

아주머니가 눈치를 채고 "개가 순해서 물지 않는다"며 선수를 친다.

이건 우리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그랬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닌가?

 

 그 옆을 지나가면서 왜 여기에 개를 데리고 다니냐고 못데리고 오게 되어 있는데..라며 혼자 말을 했더니

아주머니는 그걸 알아 듣고 "7년째 데리고 다닌다"며 꼭 오래 데리고 다녔기 때문에 괜찮다는 투로 말을 한다.

 

 속에서 욱하는 게 치솟았지만 참고 그냥 넘어갔다.

이것도 나이 탓이리라.

예전 같았으면....

 

 좀 더 오르니 안산 이정표가 나온다. 

 

 

     

                                              조망대를 지나 봉수대로 가는 길

 

 얼마 오르지도 않았는데 벌써 정상의 봉수대가 370m밖에 안남았단다.

이건 등산 코스라기 보다는 정말 산책길 아닌가?

오른쪽으로 가면 체력 단련장이고,

 

 

   

                                                   안산의 체력 단련장

 

 이 작은 산에도 체력 단련장이 10여곳이나 된다.

이 어찌 서울 시민들이 건강하지 않겠는가?

건강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하겠지?

 

 

     

                                                            산 중턱에서 본 안산의 모습이다.

     인왕산에서 봤을 때 보다 바위들이 더 멋있는데, 여기도 바위를 타는 산님들이 보인다.

 

 

    

                                                정상에 있는 봉수대.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 아직 돌에 이끼도 안끼었다.

여기에도 땀을 흘리며 올라온 사람들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던가 아니면 경치를 즐기던가 한다.

 

 

      

                                                정상에서 본 인왕산

                                    그 뒤로 북악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일제시대 때 악명 높았던 서대문 형무소.

 

 지금은 형무소는 운영하지 않고 유적으로만 남아있지만 일제시대 때는 수 많은 우리 독립투사들이 악독한 고문을 받고 죽어나간 곳이다.                                                

 

 

     

                                                     안산 정상에서 본 북한산의 비봉 능선

 

  왼쪽 첫번째 봉우리가 족두리봉이고, 작은 봉우리3개를 지나 향로봉, 뽀죽하게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봉이다. 그 오른쪽으로 작게 보이는 게 사모바위고,

 

 정상을 돌아 내려오는 길에는 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정자가 많다.

산 자락을 돌면 정자가 10여개나 된단다.

그렇다고 다 돌아 볼 수도 없고,

 

 

   

                                                           무악정

 

 여긴 산이 낮고 완만하여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다.

요즘은 정부에서 자전거를 많이 권장하니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왼쪽 뒤엔 자전거 타는 아주머니도 보인다.

 

 그러나 낮은 곳에 있다 보니 정자위에 올라가도 숲에 막혀 전망이 좋지 않다. 

 

 

      

                                                           장수정

 

 

     

                                                           능안정

 

 인간의 이기심이란 끝이 없는가 보다.

그렇게 애완견을 데리고 오지 못하게 해도 꼭 데리고 오는 사람이 있다.

오늘만 벌써 두사람째다.

(이 아주머니도 까막눈이겠지?)

 

 아주머니의 후안무취의 뻔뻔스런 얼굴을 보는 그 자체가 부담스러워 옆길로 돌아서 올랐다.

나도 아직 수양이 덜 된 모양이다.

만인(萬人)을 사랑 할 수 있도록 좀 더 수양을 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이름도 없는 정자가 나오고 그 바로 옆에 약수터가 있다.

이름하여 石泉.

 

 역시 여기도 약수터가 많은데,

하나같이 붉은 글씨로 부적합이라고 찍혀있다.

 

 

     

                                       예전에 유명했다는 석천 약수터

 

 지금은 손이나 씻고, 세수나 하는 곳으로 퇴락해 버렸다.

예전엔 이런 약수터가 많아 별도로 물병을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는데,

아쉬운지고...

 

 

     

                                             검사 결과가 부적합이다.

 모르긴 해도 깊은 곳에서 나오는 약수는 아직 괜찮은데 얕은 곳에서 나오는 게 문제인 듯하다.

 

 우리는 그 이름없는 정자에 앉아 가지고 온 배낭을 내려놓고 먹을 걸 꺼냈다.

그도 싸온 빵과 과일을 꺼낸다.

 

 배가 고프던 참이라 토스트 한조각이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없어져 버린다.

막걸리를 가져오지 않은게 아쉬웠지만 하는 수 없고,

얼음물을 꺼내 한 모금 마시니 배가 남산 만큼이나 불러 온다.

 

 우린 정자에 누워 잠시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항상 거치는 이야기 코스,

정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자식들 이야기까지,

 

 그러다가 배가 부르니 잠이 오는데 그가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잘 수도 없고,

안되겠다는 생각에 벌떡 일어나 다시 물 한모금 마시고 배낭을 짊어졌다.

 

 다음 목표는 봉원사로 하여.

 

 봉원사(奉元寺)는 신라 진성여왕 때 도선국사가 현 연세대(연희궁)터에 처음으로 지었던 것인데 이후 고려시대에는 고려말 공민왕대에 활약한 태고(太古) 보우(普愚)가 크게 중창하여 도량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봉원사는 한국불교의 전통 종단인 태고종의 총본산으로서 전법수행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바 대중은 50여명, 신도는 10만을 헤아리며,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단청) 이만봉과 제50호(범패) 영산재보존회가 있다.

 

 여기는 개화승 이동인(李東仁)이 5년간 머물면서 1884년 갑신정변의 주요인물이었던 김옥균·서광범·박영효 등과 교류하여 개화사상의 전개와 보급에 일익을 담당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동인 - 구한말 개화파의 대표적인물로서 봉원사에 주석하며 중의 신분으로 수차례 일본을 내왕하며 김옥균등에게 일본과 서양문물에 관한 지식과 개화사상에 눈을 뜨게하는 직접적인 역할을 했으며 신사유람단의 일본행에도 결정적 막후역할을 하고 개화운동에 많은 활약을 했다.)

 

그런데 이 절은 특이하게도 절집에 일주문이 없다.

  

    

                                                      봉원사 대웅전

 

    

                                                       대웅전 불당

                        협시불로 약사여래도 보이고, 불상 뒤의 탱화도 아주 멋지다.

 

   

                                                        봉원사 현판

이 건물 기둥에 조선말의 명필 김정희가 쓴 "청련시경(靑蓮詩境)", "산호벽루(珊湖碧樓)란 글도 있다.

 

    

                                                        약사여래상

  약사여래는 손에 약병을 들고 있는 게 특징인데, 그 보다는 배광을 더 강조 한 것처럼 보인다.

 

    

                                                   봉원사 사가 비

           절에 寺歌가 있는 건 처음 보는데 애국가 같이 후렴도 있고 참 재미있다.

 

    

                                                        삼천불전

                               여기는 비로자나불과 삼천불을 모시고 있다.

 

    

                                                  400년 된 느티나무

 

 늙어 고목이 된 느티나무 아래엔 한 할머니가 초점없는 눈으로 먼 사바세상을 바라 보고 있다.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두고 가야 될 애증의 사바세상을 아쉬워하고 있을까?

 

 저럴 때 나라면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증은 한이 없고,

 

 태고종은 사찰의 개인소유 인정과 승려의 결혼문제를 자율에 맡기고 있으며 출가를 하지 않더라도 사찰을 유지 운영할 수 있는 재가교역자제도인 교임제도를 두고 있다.

 

 쉽게 말하면 중이 아니더라도 사업으로서의 절을 운영 할 수 있고,

중도 결혼하여 가정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결혼을 한 중들을 대처승이라하는데 여기는 대처승들이 살고 있다.

따라서 대처승들이 사는 집이 절 바로 밑에 있다. 

 

    

                                            절 아래 있는 대처승들의 집   

                                      

 이 대목에서 일본 불교를 한번 들여다 보자.

일본은 메이지 시대[明治時代:1868~1912]에 국왕을 중심으로 한 국수주의가 대두하면서, 신도(神道)와 불교를 분리시키고 불교를 배격하는 운동이 전개됨에 따라 불교는 국교적 위치를 상실하고 침체기에 들어갔으며, 메이지 정부의 명에 따라 승려들의 대처(帶妻)가 일반화되었다.

 

 일본불교는 전반적으로 종파적 성격이 매우 강하고 종파의 개조(開祖)에 대한 숭배가 성하며 계율준수의 전통이 사라져 승려들은 대부분 결혼을 하고 사찰들도 대다수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

 

 이건 우리나라의 태고종과 무엇이 다른가?

너무 똑 같지 않은가?

 

 일찌기 석가모니는 수도자의 여자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자의 옥문에 남자의 성기를 집어 넣는 것은 독사의 입에 성기를 넣는 것과 같다"고,

(오래 전에 읽은 것이라 어디에서 본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럼 이 대처승들은 도대체 뭔가?

부처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또 불교에서 말하는 空이라는 건 뭔가?

 

 중이 재산과 가족을 가진다는 건 재물에 집착 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중이 수도를 하는 건 집착의 고리를 끊기 위함도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자기의 집착 고리도 끊지 못하고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대중의 집착을 제도 할 수 있다는 걸까?

너무 어려워 난 잘 모르겠다. 

 

 "色卽是空, 空卽是色"(색즉시공, 공즉시색)

모든 건 인연에 따라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 아닌가?

 

 절집을 나와 대처승들의 집을 지나면서 조선 중기에 고명했던 지족선사 생각을 했다.

 

 지족선사는 30년간 지족암을 지키며 면벽수행과 중생제도라는 두가지 화두속에 존재하는 간극을 어떻게 메울 것 인가를 고민했던 진정한 불제자로서 당시의 송도 사람들은 그를 생불이라며 존경 했었다.

 

 그런 그를 황진이는 요즘말로 꼬실려고,

자기를 청상과부라고 속이고 "뜻한바 있어 불제자가 될려고 찾아 왔으니 거둬 달라"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애원을 했단다.

 

 깊은 산속에서 속세와는 연을 끊고 살아온 선사는 난데없이 찾아온 절세미녀의 출현에 자기의 눈을 의심하며 관세음보살만을 되뇌이고 있었다.

 

 풍경소리도 그치고 밤은 깊어만 가는데,

요염한 황진이의 육체만이 흔들리는 등불 아래서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런 황진이의 몸매를 훔처 보며 선사는 처절하게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요염한 황진이의 교태앞에 결국 선사는 자신과의 싸움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

 

 30년 수도가 일순간에 공염불이 된 것이다.

소위 말하는 십년 공부 도로아미 타불이 된 거다.

열반의 세계에 귀의하려던 선사는 오욕이 뒤끓는 육체의 야차로 변하고 말았던 것이다.

 

 목적을 달성한 황진이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암자를 빠져 나왔겠지만,

선사는 법복도, 염주도 버리고 황진이를 찾아 헤매었단다.

 

 그 후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황진이와의 만남이,

이상속에 머물고자 했던 한 인간으로 하여금 현실에 눈을 돌릴 계기를 제공한 건 아닐까?

 

 황진이는

그 시대를 산 뭇 남성들의 애간장을 태우고,

또 실제로 수많은 남성들과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그의 화려한 미모와 요염한 자태,

대단한 글솜씨와 가무에 무릅을 꿇지않는 남자가 없었으니 황진이의 주가는 하늘을 찌를 수 밖에,

(근대의 마리린몬로 같았을까?  아니 그녀와는 비교 자체가 어불성설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까지 그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는 남자가 있었으니,

바로 화담 서경덕이다.

 

 야사에는 황진이가 화담을 유혹코자 갖은 노력을 다 해도 별 효과가 없자,

한번은 비 오는 날을 택하여 비를 흠뻑 맞아 몸에 옷이 착 달라붙은 요염한 자태로 화담을 찾아 갔단다.

옷이 젖었다는 핑게로 하룻밤을 같이 지내게 되는데,

 

 밤은 이슥하고 구름 걷힌 하늘엔 달이 한없이 밝은데,

여인의 몸은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고,

교교한 달빛 아래 욕정을 이기지 못해 몸부림 치는 여인을 손안에 두고도 화담은 꿈쩍도 하지않으니,

 

 진이는 문득 화담이 성적인 능력이 없는 고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화담의 음경을 슬그머니 만저 보았단다.

그랬더니 그기에는 중의를 채알처럼 받치고 서있는 거대한 돌기둥이 잡히더라나?

허허... 그 역시 하나의 남성 이였음이라.

 

 화담과 황진이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게 많다.

이는 황진이가 화담을 사랑한 만큼 화담도 황진이를 생각했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그런 그도 흐르는 세월을 잡지 못하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녀는 죽어서까지 범부들을 후린다.

백호 임제는 황진이의 소문을 듣고 그녀를 찾아 갔으나 그녀는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술과 잔을 들고 무덤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시를 한 수 지어 황진이를 애도 한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웠는다.

홍안은 어디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 하노라."

 

 이 시조도 국어책에 나온거다.

"잔잡아 권할 이 없으니.. "라는 건 요즘 내가 혼자 소주 마실 때 자주 활용하는 거고.

 

 임제는 조정의 벼슬아치로서 체통없이 한낱 기생을 추모했다 하여 결국 파면을 당하고 만다.

허허.. 여색을 지나치게 밝히면 패가망신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명심해야 할 사람 많다.

 

 황진이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아마 천한 기생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주가가 높았어도 구전만 될 뿐 기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녀를 찾아 그녀가 산 시대로 들어 가 보면,

그녀의 삶이 손에 잡힐 듯하고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아 무한한 애정이 느껴진다.

이 이야기는 언젠가 다시 올릴 기회가 있으리라 믿고,

 

 또 옆길로 빠졌다.

다시 대처승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한번의 파계로 수십년 쌓아 온 모든 걸 버리고 사라진 중은 뭐고,

아예 공개적으로 장가를 가서 처자식을 데리고 사는 중은 뭔가?

갑자기 머리기 복잡해지며 질끈질끈 아프기까지 해온다.

 

 시원한 약수를 찾아 한 모금 마시며 머리를 식히고,

나무 그늘의 의자에 걸터 앉아 한참을 쉬었다.

그런 생각에 빠져있는 넋놓고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동행인에게는 어떻게 비췄을까?

 

 그런 나를 보고만 있던 그는 정보를 하나 더 준다.

근처에 있는 백련산에 백련사란 절이 있는데 그기도 태고종이라고,

 

 난 그기도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오후 늦게 약속이 있다며 미안하지만 혼자가면 안되겠냐고 한다.

 

 순간 나는 어떻게 할까를 망설였으나

혼자 갈 수 있으니 괜찮다고, 오늘 너무 고마웠다고 인사를 했다.

 

 시계를 보니 이제 겨우 1시를 넘고 있다.

그에게 가는 길을 물어 다시 산책로를 올라 서대문 구청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기도 중간 중간에 체력단련장도 있고, 정자도 있다.

 

 내려가는 길엔 수련과 연꽃이 있는 연못도 만들어 놓고, 개울도 만들어 놓았는데 어디서 끌어 왔는지 개울에는 아주 맑은 물이 흐른다.

 

 개울은 경사가 심해 물이 빠르게 흐르니 그냥 내려가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흐른다.

어릴 때 뛰어 놀던 고향 앞들의 개울이 눈에 아른거린다.

 

 또 동심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엔 작은 물고기도 많았었지.

피래미나 미꾸라지, 붕어도 잡고.

또 물막이 놀이도 하고, 멱도 감고,

 

 나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온다.

♪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들판을....♬

 

 

 그 물은 홍제천으로 흘러 들고 있었다.

그곳에는 물레방아도 만들어 놓고, 황포를 단 황포돗배도 띄워 놓아 나름대로의 옛모습을 재현한다고 했는데, 

 

 글쎄,

그게 어찌 그리 어설프고 조잡한지.

그기다가 관리까지 안되어 쓰레기는 여기저기 널려있고, 장치의 부품은 부서지고 없어지고,

 

 차라리 없는게 더 좋지 않을까?

물 비린내와 물 썩는 냄새가 숨을 못 쉬게 하는데,

위로 지나가는 내부순환로의 차량 소음까지 한몫을 더한다.

 

 홍제천의 징검다리를 건너 큰길로 올라가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백련사 가는 길을 물었다.

오른쪽 길을 따라 주욱가다가 신호등 삼거리에서 서대문 등기소 옆길로 오르란다.

 

 백련사 가는 길은 백련사가 종점인 마을 버스가 있다.

난 그걸 타고 싶었다.

다리가 그렇게 하라고 보챈다.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내부에서 싸움을 하기에,

할 수없이 내가 타협안을 내놓았다.

올라 갈 때는 걸어가고 내려 올 때 버스를 타기로 ,

 

 오르는 길은 꽤나 가파르다.

길 옆에 늘어선 연립주택들이 고급스러워 보인다.

바로 뒤엔 숲이 울창한 산책로가 있는 산이 있어 좋고 정원에 심어 놓은 소나무도 예쁘고,

 

 서대문 문화회관을 지나니 언덕에 홍연초등학교가 있다.

저 심한 경사로에 어린이들이 오르내릴려면 얼마나 힘들까?

 

 아스팔트 포장길을 죽 따라 올라가니 백련사 이정표가 나온다.

 

 

   

                                                                              백련사 이정표.

 

 여기서 백련사까지는 300m란다.

난 우선 주변 조망을 보고 싶어 조망명소에 들리기로 하고 조망명소로 발길을 돌렸다.

 

 여기 역시 산이 낮아 조망명소라고는 하지만 숲에 가려서 경관이 좋지 않다.

겨우 보이는게 안산인데 그것도 나무사이로 겨우 얼굴을 내민다. 

 

   

                                         백련산 조망명소에서 본 안산 .

 

 실망스럽지만 방법이 없고,

여기도 역시 체력단련장이 여기 저기에 있다.

 

 능선을 타고  한참을 오르다가 백련사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내려가는 길은 전부 콘크리트로 만든 계단으로 되어 있어 무척 지루하다.

 

 

    

                                                    백련산 능선에서 백련사로 내려 가는 계단.

 

 계단이 꽤 많은데 몇개나 될까?

부산 용두산 공원의 194개의 2배쯤은 되겠지?

 

 이 백련사는 태고종 사찰로 신라 경덕왕 때 진표율사가 창건 했으며 창건시의 이름은 정토사였단다.

그 후 세조 때 백련사로 개칭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이 절은 태고종 답게 서울시장의 허가를 받아 재단법인으로 만들어 놓았다.

따라서 이사장과 고문도 있고 상무, 감사등이 있으며 일반 법인과 같이 운영 한다.

 

 

   

                                   백련사 입구에 세워 놓은 대시주 공덕비들.

 

 이건 절에 시주를 많이 한 사람들을 위해 세운 공덕비다.

 

 예나 지금이나,

절이나 교회나,

돈을 많이 내야 귀빈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건 어찌 그리 똑 같은지...

 

 시주를 많이 했으니 그는 벌써 저승의 극락에서 윤회의 고리를 끊고 영생을 누리고 있을 텐데,

이승에 있는 이 공덕비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이건 너무 속보이는 것 아닌가?

 

 

 

    

                                                   백련사 일주문

 

 이 절엔 일주문이 있다.

태고종 총 본산이라는 봉원사엔 없었는데,

 

 일주문엔 삼각산정토백련사라고 쓰여 있다.

내가 보기에는 삼각산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산 줄기가 이어진 것도 아니고.

이건 왜 그랬을까?

이놈의 궁금증은 언제 쯤 고칠 수 있을까?

 

 요즘은 어딜가도 주차 때문에 전쟁을 한다.

여기도 예외없이 조그만 틈만 있으면 절 안팍을 가리지 않고 주차를 해 놓았다. 

대처승들의 것이리라.

 

 

    

                                     일주문 안에 있는 대처승들의 집.

 

 여기도 계급의 차별화가 있는 건가?

이 빌라는 꽤 고급스러워 보이는데 안에는 지붕에서 물이 샐 것 같은 오래 된 집이 많이 있다.

(사진을 찍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잘 나오질 않아서 싣지 못했다)

 

 

   

                            대처승들의 집에서 한복 정장을 하고 나오는 여인.

 

 한복을 입은 모습이 우아하다.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친인척 누군가의 결혼식엘 가는 것 같다.

뒤의 불당에는 산사음악회를 알리는 프랑카드를 달아 놓은 게 보인다.

 

 여기선 대중 활동도 많이 하는 것 같다.

10월 x일부터 안치환, 그시기, 머시기 하는 가수 초청 음악회도 연다고 쓰여 있고,

그러고 보니 백련사에서 음악회라던가 뭐 그런 거 하는 걸 TV에서 본 것 같다.

 

 

    

                                 정장을 한 남자와 나름대로 차려 입은 할머니

 저들도 앞의 아주머니와 같이 결혼식에 참석코자 하는 사람들 같다.

 

 

   

                                                           법고각

 

 이 절에서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이 법고각이다.

법고각에는 불교에서 말하는 불전사물(佛前四物)이 있는데 이는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범종(梵鍾)을 말한다.

    

 이 불전사물은 일반적으로 법고각이나 범종각에 봉안되는데,

1. 법고는 짐승을 비롯한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2. 목어는 물속에 사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3. 운판은 공중을 날아 다니는 중생과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제도하기 위해,

4. 범종은 천상과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아침에28번, 저녁에 33번을 친다.

 

 이는 모두 소리를 통한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에게 전해 해탈성불을 염원하는 교화에 의미를 두고 있다.

아침, 저녁예불 때 법고,목어, 운판, 범종의 순서로 친다.

 

 

   

                                      부처님께 절을 올리고 있는 여인.

 

 몇배나 올릴까?

몇배나 올리는지 궁금해서 사실은 그걸 세고 있었는데,

20배가 넘어가고 30배쯤 되니 지루해서 더 못 세겠다.

그래서 난 일어서고 말았다.(이그~  참을성하고는,)

 

 108배를 하겠지?

절이 끝나고 나면 제대로 앉지도 못할거고, 최소 며칠은 걷기도 힘들거다.

 

 그래도 마음은 엄청나게 편하겠지?

불력(佛力)으로 소원을 들어 줄거라는 작은 희망도 있기에....

 

 혹시나 절 올리는데 방해가 될까봐 그녀 몰래 조심조심 사진을 찍었다.

일이 잘못 되면 내가 바가지를 쓸 수도 있을테니. 

 

 일주문을 나설 때까지 대처승이라는 단어가 마음 한구석을 떠나지 않는다.

 

 백련사를 돌아나오는 길은 그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침 마을 버스가 도착해서 시동을 켜 놓고 있다.

곧 떠날 것 처럼.

 

 올라 갈 때 나에게 약속 한대로 내려 올 때는 버스를 탓다. 

난 마을 버스를 타고 내려 오면서도 줄곧 대처승을 화두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대처승, 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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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09.10.18 05:19

    첫댓글 블로그 "만수쉼터"에 있는 걸 퍼 왔음.

  • 09.10.20 05:54

    참 재미있네요 어쩜 그리 소년같은 마음으로 사시오 황진이와 서경덕 이야기 책한권 읽는 느낌이네

  • 09.10.20 10:19

    나그네님은 서울의 근교 산을 헤매이고 다니네요 , 부러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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