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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강인춘 |
소현세자(昭顯世子;1612~1645)는 병자호란(丙子胡亂;16
36~1637)때 청나라에 인질(人質)로 끌려갔던 왕세자이니 곧 인조의 장남이다. 소현세자가 불행하게 인질로 선양(瀋陽 요동성의 도시, 옛이름은 奉天)을 거쳐 북경에 가서 전후 8년간을 포로생활을 했다. 그 때 북경 주재 독일인 신부 아담 샬(J. Adam Schall, 湯若望)에게 전도를 받고 귀국 시에 아담 샬이 저술한 책 주교연기(主敎緣起;교리서 5권), 진복성전(眞福性詮;복음서), 주제군징(主制群徵;신학입문 2권) 등과 기타 천문과학서, 지구의(地球儀), 천주상(天主像) 등을 가지고 왔다.
소현세자의 입당 구도한 사실이 정교봉포(正敎奉褒;1904년 상해에서 간행)에 기록되어 있다(이찬영, 한국기독교회사총람 93쪽).
그가 귀국 시(1644.11.26 북경출발) 중국인 환관(이방조, 장삼외, 유중림, 곡풍등, 두문방 등), 시녀들이 수행했는데 그들은 모두 천주교인이었고 추후로 선교사 영입까지 계획하고 돌아왔으나, 불행하게도 과로가 겹쳐 귀국한지 70일 만인 34세의 청년으로 별세하고 말았다(상게서).
그의 죽음과 함께 서적들도 모두 불태워버리게 되어 천주교 전래의 기회도 놓치게 되었다(한국사대사전).
소현세자가 생존하여 왕위에 오르게 되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좀 더 일찍 문물이 개방화 되었을 것인데 하는 역사의 아쉬움도 있다. 소현세자의 인질사건은 약소민족의 불행으로 애석한 역사의 한 토막이다. 우리 역사에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기독신문 ekd@kid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