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덩치가 큰 해석입니다. 산지는 잘 모르겠 습니다. 해석 역시 남해나 서해의 섬마다 특징이 다 다르다고 하더군요.
특별한 문양이 없는 단순한 주체와 배경이 멋진 모암 속에 들어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해석은 허리가 잘룩한 칵테일 잔이나 낮은 접시 모양의 검은 흑단류의 좌대가 어울립니다. 위 해석은 볼이 볼록한, 혹은 엉덩이가 두꺼운 좌대형태에 얹어 보았습니다. 둔해 보이기는 해도 안정되게 돌을 받쳐주는 느낌이 좋습니다.
수석 좌대를 만드는 과정은 언제나 새로움과 익숙함 사이에서 벌어지는 즐거운 갈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돌을 선택하고, 나무를 다듬으며, 비록 터무니없이 부족할 때가 많지만, 고요한 사색과 치열한 창작이 뒤섞인 순간을 경험합니다. 수석 좌대 작업은 단순히 돌과 나무를 결합하는 기술적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자연과 인간, 전통과 창조, 틀과 자유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탐구의 과정입니다. 이 작업은 자연을 깊이 이해하고, 인간의 감각과 이성, 그리고 창의성을 한데 모으는 행위로서, 다채로운 세상을 재해석하는 과정과 닮아 있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다채로운 색깔로 빛납니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현상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도 그대로 투영됩니다. 우리는 감각과 경험, 그리고 이성이라는 도구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지만, 이러한 도구들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각 개인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환경, 문화, 그리고 개인적 경험에 따라 다르게 형성됩니다. 따라서 진리란 단순한 하나의 빛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들이 어우러져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스펙트럼일지도 모릅니다.
수석 좌대 작업에서도 이러한 인식론적 탐구는 분명히 드러납니다. 돌을 고르는 과정은 단순히 물리적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수많은 돌들 중에서 어떤 돌이 나를 부르는지 귀 기울이며, 그날의 기분과 영감에 따라 손길이 닿는 돌이 달라집니다. 돌의 선택은 나와 돌 사이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마주하는 과정과도 닮아 있습니다. 한 번 선택된 돌은 나에게 다가와 속삭입니다. "나를 어떻게 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나는 돌을 세우기도 하고, 눕히기도 하며, 이리저리 돌려보며 돌이 숨기고 있는 표정을 찾아냅니다. 세심한 관찰 끝에 돌이 자리 잡을 방향과 각도가 정해지면 연출이 완성되고, 비로소 나무를 선택할 준비가 됩니다.
돌을 중심에 두는 작업은 인식론적 고민과 맞닿아 있습니다. 젊었을 때 나는 옳음과 마땅함에 늘 쫓기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 기준과 목표는 쫓아다녀도 쉽게 잡히지 않았고, 그 간극은 늘 나를 괴롭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당위성과 선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준도 범위도 점차 느슨해졌고, 선택과 판단의 기준점이 흐릿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러한 혼란과 자기부정의 순간들은 쉽게 극복되지 않았지만, 뒤늦게 조화로움이 조금씩 찾아왔습니다. 절대적 기준 속에서도 상대적인 당위성을 인정하는 것이 조화의 밑바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수석의 세계에서도 이러한 상황은 반복됩니다. 우리는 흔히 옳고 그름의 기준을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돌이 숨기고 있는 이야기와 표정을 이해하는 과정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경험을 제공합니다. 상대주의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을 받아들이도록 우리를 이끕니다. 돌의 형태와 무게, 질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그 속에서 새로운 미를 발견하려는 태도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열린 마음을 상징합니다.
나무를 고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무는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돌을 받들고 그 미를 극대화할 동반자입니다. 돌의 무게와 질감을 떠받칠 만큼 단단하면서도, 돌의 강렬함을 부드럽게 품을 수 있는 나무를 찾아냅니다. 나무의 재질과 두께를 고려하며 손끝에 닿는 촉감을 느끼는 순간, 돌과 나무의 조화가 시작됩니다. 이는 서로 다른 가치와 관점이 어우러지며 균형을 이루는 조화의 상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조화는 단순히 두 요소가 어우러지는 상태를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빛을 발합니다. 수석 좌대를 만들며 나는 자연스레 질문을 던집니다. "이 돌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해, 조화로운 삶을 추구하는 노력으로 이어집니다. 돌과 나무의 조화는 단순히 둘을 잘 맞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개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살리는 일입니다.
수석 좌대 작업은 전통과 창조 사이의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중국, 일본, 한국의 수석 좌대는 각기 다른 미적 철학과 전통을 반영하며, 돌과 좌대의 관계를 독특하게 정의합니다. 중국의 좌대는 화려함과 웅장함을 자랑하며, 전통 문양과 상징성을 강조합니다. 일본의 좌대는 절제된 미를 강조하며, 돌의 자연미를 돋보이게 하는 단순한 배경으로 기능합니다. 한국의 좌대는 이 둘의 조화를 추구하며, 화려함과 단순함이 균형을 이루는 독특한 미학을 보여줍니다.
전통은 안정감을 주고, 역사를 담아내며, 우리를 깊이 뿌리내리게 합니다. 반면 창조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며, 우리를 변화와 도전에 노출시킵니다. 돌과 좌대를 통해 전통과 창조의 균형을 추구하는 일은 곧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과 유사합니다. 상대주의는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할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지만, 지나친 주관성은 조화를 해칠 위험을 낳습니다. 따라서 전통적 기준과 상대주의적 관점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수석과 좌대의 관계는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의 축소판과도 같습니다. 진리란 고정된 점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거대한 유기체처럼 살아 숨 쉬는 것입니다. 수석 좌대 작업은 진리와 조화, 그리고 창조를 탐구하는 예술적 여정입니다. 돌과 나무, 전통과 새로움, 절대와 상대 사이의 긴장과 조화를 통해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갑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늘 자신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상대주의는 다시 이어 묻습니다. "하지만 다른 이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조화로움은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렇다면, 함께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에 답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비로소 진리와 조화를 향한 길 위에 서게 됩니다.
초보자에 불과하지만 수석 좌대를 만들며 나는 단순히 돌과 나무를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각과 가치를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어우러져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을 경험합니다. 이는 삶의 본질과도 닮아 있습니다. 조화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대주의적 관점과 전통적 기준의 균형을 찾아야 하듯, 우리의 삶도 다양한 시각과 가치를 이해하고 공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진리와 조화, 그리고 창조의 깊이를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