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위원회 사이트를 들어가 법안 전문을 다운받았습니다.
( http://health.na.go.kr/ 들어가셔서 상단의 법률-의안 탭을 클릭하시고 좌측의 계류의안 탭을 클릭하시면 첫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합니다. )
관심이 있으신 분은 법안을 일독하셔도 좋지만 사실 그냥 법안만 보고 그 의도를 파악하는건 법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밑에서 제가 문제되는 부분을 옮기고 해설할테니 귀찮으신 분들은 그냥 제 글을 읽어 주시면 되겠습니다.
일단 법안에서 주장하는 건강관리서비스법 입법안의 취지는 '건강관리서비스'라는 신규 의료사업을 창출하여 일자리도 만들고 국민건강도 더 증진시켜 국민소득 늘리고 잘살아보세~ 라고 합니다.
와, 정말 의도가 좋아 보입니다. 훌륭합니다. 제가 엄청나게 싫어하는 자유선진당, 한나라당, 선진한국당, 미래희망연대 의원들이 이런 법안도 발의하네요. 제가 평소에 편견을 가지고 이들을 미워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돕니다.
하지만 평소 밉던 놈이 갑자기 착한짓 한다고 하면 일단 이놈 속셈이 뭘까 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는게 인지상정인거 아니겠습니까. 경험상 사람이 개과천선하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그럼 의심의 눈초리로 입법안을 좀 살펴보겠습니다.
일단 중요한 문제는 이 '건강관리서비스'를 받을 때 기존 의료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입법안 자체에서는 이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죠. 당연합니다. 일단 눈가리고 아웅은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현재 시행중인 국민건강보험법에서는 보험급여대상을 '요양기관'으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요양기관이라 함은
1. 「의료법」에 의하여 개설된 의료기관
2. 「약사법」에 의하여 등록된 약국
3. 「약사법」 제72조의12의 규정에 의하여 설립된 한국희귀의약품센터
4. 「지역보건법」에 의한 보건소·보건의료원 및 보건지소
5.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의하여 설치된 보건진료소
이와 같이 규정되어 있습니다.(국민건강보험법 제40조 제1항)
즉 가칭 '건강관리서비스법'에 의해 생겨날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체들은 국민건강보험법이 지정한 요양기관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법을 개정하지 않고 건강관리서비스법을 시행하게 될 경우, 건강관리서비스업체들의 의료행위는 의료보험적용대상이 되지 않게 됩니다.
보건복지위원회 위원들은 이 문제를 모르지 않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따른 국민건강보험법 추가개정안을 발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 좀 전후가 정리되지요?
건강관리서비스업체들에 대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게 되면 이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사보험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건강관리서비스란걸 그냥 안받으면 될게 아니냐? 라는 반론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근데 조금 생각해 보면 그럴 수가 없게 된다는걸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사소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단은 건강관리서비스법 입법안 내에 있는 독소조항들입니다.
입법안 제 4조 제 1항 및 4항을 봅시다.
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건강관리서비스를 통하여 국민의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이 효과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필요한 사업을 실시하여야 한다.
④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제2항 및 제3항에 따른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에게 필요한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할 수 있다.
이 조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하여 건강관리서비스를 받도록 유도, 혹은 강제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전염병이 돌거나 그런 우려가 있는 경우 국가나 지자체가 나서서 예산을 들여 건강관리서비스를 받도록 홍보하고 유도하거나, 일정부분 강제해도(예를 들어 신종플루에 걸렸던 사람은 일정기간 서비스를 받으며 경과를 관찰하도록 한다든지...) 해당 조항 때문에 문제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4항 보시면 재정지원도 가능하답니다. 재정지원의 범위나 목적을 딱히 명시하지도 않고 그냥 '필요하면' 가능하답니다. IMF때 기업에 공적자금 지원한거 다 말아먹고도 또 이런식의 법안을 만들겠다니 속내가 빤히 보이지 않습니까? 과잉지원된 자금중 일부는 과연 어디로 돌아갈까요?)
또한
제11조(건강관리의뢰서의 발급) ① 제2조제6호에 따른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사는 진찰 결과 만성질환을 보유한 것으로 판명된 자 또는 건강위험도 평가 결과 질환군으로 분류된 자에 대하여 지속적인 생활습관 개선 및 체계적인 건강관리의 필요성이 인정될 경우 이를 위한 건강관리의뢰서(이하 “의뢰서”라 한다)를 발급할 수 있다.
이것이 또 독소조항인데요, 이 조문의 의미를 말씀드리면 병원에 갔는데 체계적인 건강관리의 필요성이 있다고 의사가 판단할 경우에 건강관리서비스기관을 이용하도록 '의뢰서'를 발급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의료기관에서도 건강관리서비스 업체를 이용하도록 권유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나이 좀 드신 분들 중에 가볍든 무겁든 만성질환 한둘 없는 분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분들에게 의사가 '관리좀 받으셔야겠다'고 하면 정말 여유가 없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어지간하면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의뢰서 발급에도 비용이 들어가는데요(동조 제 4항) 이 비용은 당연히 의사 몫이 됩니다.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한다고 하는데 이 비용을 의사들의 쏠쏠한 부수입이 될 정도로 높게 잡으면? 당연히 의사 입장에서도 의뢰서 발급을 많이 해서 돈을 벌려고 하겠지요? 대형병원같은데서는 가능하면 의뢰서를 꼭 발급하도록 지침도 내려오고 그럴겁니다. 불보듯 빤하죠.
뭐 여기까지 말씀드린 독소조항들은 그냥 '사소한' 사유고요,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관리서비스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되는 '중대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건강관리서비스업이라는 블루오션에 뛰어들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생각해 보시겠습니까?
문제가 있는 곳에 답이 있다, 해답은 입법안 속에 있습니다.
입법안 제8조 제1항을 봅시다.
제8조(건강관리서비스요원의 범위) ① 건강관리서비스요원은 다음 각 호의 자로 한다.
1. 「의료법」 제5조제1항에 따른 의사․한의사 및 「의료법」 제7조에 따른 간호사로서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한 자
2. 「국민영양관리법」 제15조에 따른 영양사로서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한 자
3. 그 밖에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 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자격과 경력을 소지한 자
일단 그 밖에 뭐시기는 넘어가고, 영양사도 일단 넘어갑시다.
남는건? 의사, 한의사, 간호사입니다.
이사람들이 지금 뭘 하고 있죠? 의료법인을 운영하거나 의료법인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 의료법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교육만 이수하면 막 창출된 블루오션에 뛰어들 수 있게 되는 겁니다.
자, 지금도 여러 병원에서 각종 '클리닉'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본래는 그냥 진료소라는 의미였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장기관리가 필요한 환자들을 상대로 하는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클리닉이라고들 하죠. 요양기관인 병원에서 운영하는 클리닉 가운데 건강보험 급여대상질병의 클리닉들은 국민건강보험의 적용을 받기 때문에 함부로 비용을 올릴 수가 없습니다. 비용 과다계상 등이 의심되면 보험공단측에서 바로 태클 들어오니까요.
그런데, 저 입법안이 실제로 국회에서 통과되어 시행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병원에서 저런 클리닉들이 대거 분리되어 '건강관리서비스업'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영업을 시작하게 됩니다. 왜냐구요? 앞서 말했듯이 건강관리서비스업체는 국민건강보험법상 요양기관이 아닙니다. 비용을 맘대로 올려 받아도 보험공단에서 태클을 못 건다는 말입니다. 비용을 미친듯이 올려도 태클 들어올 데가 없네요? 와 행복한 일입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요.
그리고 그 클리닉들이 떨어져 나간 병원에서는 인원부족이든 뭐든 이유를 붙여서 통증관리, 비만관리 등등등 기존에 제공하던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게 됩니다. 법인 차원에서 진출할수도 있지만 의사들도 가능하면 보험공단에 쪼이지 않고 돈 벌수 있는 건강관리서비스쪽으로 진출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 이것은 장기적으로는 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유도하게 되는 일입니다. 지금만 해도 몇몇 돈되는 과에 의사들이 몰리고 있어 외과의사의 수술실력이 떨어지네 마네 하는 소리가 나오는데 저 법안이 시행되면 기존 외과의들마저도 수술 안하고 사람들 건강상담하고 관리해주면서 돈버는 건강관리서비스 하러 나가고 싶을겁니다. 여기에 나중에 건강보험 적용 안되는 영리병원이라도 허가해 보십쇼. 대학병원에서 교수를 목적으로 하는 의사들 빼고는 다들 영리병원 가려고 혈안이 될게 뻔합니다. 기존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원은 질이 떨어질거고, 혹여 기존 병원에서도 치료가 가능했던 병이 공공의료 서비스의 질적 저하로 인해 영리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해지거나 한다면? 일단은 살아야 되니 울며 겨자먹기로 사보험 들고 영리병원 가서 비싼 치료비 내야되는겁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기존 건강보험이 적용된 장기적인 치료나 관리를 받을 수가 없게 되고 별수없이 의사한테 돈내고 발급받은 의뢰서 한장 받아들고 건강관리서비스를 받으러 가야 됩니다.
서비스 받으러 가면 어떻게 됩니까? 엄청 오른데다 건강보험 적용도 안되는 서비스를 받아야 됩니다. 그 비용이 감당이 안되니 이용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사보험을 들어야겠네요? 이 또한 행복한 일입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요.
자 그럼 입법안을 또 한번 들춰 봅시다.
제14조(건강관리서비스 제공 내역의 발급) ① 건강관리서비스기관은 이용자의 요청이 있는 경우 건강관리서비스 제공 내역을 발급하여야 한다.
보험 가입해보시고 회사랑 아옹다옹좀 해보신 분들은 딱 감이 오실 겁니다. 사보험사가 건강관리서비스를 대상으로 한 보험가입자를 모집할 때 뭘 떼오라고 하겠습니까? 바로 이 건강관리서비스 제공내역이겠죠. 보험가입시 내놓는건 서비스 이용자의 동의가 들어간거니 비밀유지의무같은데도 걸리지 않습니다.
자, 사보험을 들려고 하니 건강관리서비스내역을 제출하라고 하네요? 어쩔 수 없이 제출하면, 너는 전에 비만판정을 받은적이 있어 위험하니 보험을 못들어주겠다, 아니 너는 고혈압으로 건강관리서비스를 받았지 않느냐. 그런 사람을 어떻게 가입시켜주느냐, 그래도 기어이 들겠다면 돈을 더 내라고 합니다. (저는 가장 낮은 수준의 예를 들었을 뿐이고요 식코를 보셨으면 여기에 대해 좀더 실감나는 이미지를 가질 수 있습니다.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더럽게 비싼 건강관리서비스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보기 위해 조금 덜 더럽게 비싼 보험료를 낼 수밖에 없습니다. 더럽게 비싼 건강관리서비스 비용을 받는 건강관리서비스 사업자도, 조금 덜 더럽게 비싼 보험료를 받는 보험사업자도 행복해지는 아주 훌륭한 윈윈의 입법안입니다.
그냥 환자만, 일반 국민만 불행해지면 되는겁니다.
이제 이 법안이 왜 사실상의 의료민영화라고 까이고 있는지 이해가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안되셨다면 제 글솜씨가 부족한 탓이겠지요.
어느정도 논리적 비약과 추측이 들어간 것은 사실입니다만 저렇게 될 개연성은 매우 높다고 보네요. 추측의 근거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한 경제적 메리트'이기 때문입니다.
뭐 역시 결론은 미운 놈은 뭘해도 미운데 미운짓까지 하니 정말 밉다는겁니다.
ps.
아 그리고 대한의사협회가 이 법안을 반대하고 있는데요 장기적으로 이익을 볼게 뻔한데 왜 반대하느냐에 대해서는 위에서 본
2. 「국민영양관리법」 제15조에 따른 영양사로서 건강관리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교육을 이수한 자
3. 그 밖에 건강증진 및 질병예방 등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한 자격과 경력을 소지한 자
들이 의료분야에 진입하게 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라고 사료됩니다.
특히 3번이 문제인데...대통령령으로(=MB 맘대로) 정하기만 하면 자격증 하나 따고 저 판에 끼어들 수 있다는거니 경계할수밖에 없겠죠. 진입장벽을 낮출수록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고, 대통령 입장에서는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고심 끝에 결단을 내렸느니 운운하며 언론에 거하게 홍보할 수 있는 껀수가 되니까요.
저 두 항목이 삭제되거나 축소되거나 하면 아마 반발 안할겁니다.
저자> WeRock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