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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뜻-묵은 곡식 의문의 문서인 율법 아래 있는 헛 맹세 하는 자. (마 5:33-42)
할렐루야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웃님들 안녕하세요 인사드립니다
계속해서 오늘 이 시간에는 앞선 시간에 마태복음 5장 32절의 말씀으로 전해드린 누구든지 버림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 버림받은 여자 실체- 귀신의 처소가 되어버린 음녀 제단 이 땅의 교회 말씀 편에 계속 이어지는 말씀으로
https://cafe.daum.net/xlrur/OGe4/301?svc=cafeapi
이 시간에는
계속해서 마태복음 말씀 이어가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마태복음 5장 33절-42절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5장 33절-42절의 말씀을 오늘 함께 합니다. 또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쫓아 나느니라.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빰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고발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아멘. 아멘.
이제 이렇게 어제도 얘기했지만 우리 물고기 어부 이렇게 저가 그 비유로 예수님이 계시했다는 그 말씀을 듣고는 지금 이렇게 읽을 때 약간 느낌은 있으시죠? 어떻게 좀 감이 와요? 예. 예. 안 오죠^^ 안 오면서 온다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조금은 오시죠. 조금은. 예. 그게 그러게^^ 예. 그래서 자, 그래서 예수님이 아, 예수님은 왜 이렇게 비유로 얘기하고 가셨는지 몰라요. 머리도 안 좋은 우리한테 비유로. 물론 성령께서 알려주셔야 아니까. 안 그랬으면 벌써 다 파헤쳐 가지고 별짓 다 했을 테니까요. 예.
자, 그래서 성령께서 알려주셔야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고 예, 그래요. 그래서 33절에 보니까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라. 아 옛사람에게 말한 거래요. 옛사람. 그 옛사람은 율법 아래 있는 이스라엘 자손들. 제사장 나라의 자손들인데 그들에게 말을 했는데 헛 맹세하지 말라 했데요. 헛 맹세. 왜냐하면 그들은 율법의 계명을 지키면서 우리 많이 했잖아요. 뭐 주여하고 그냥 울면서 통곡하고 뭐 어떻게 뭐 뭐 열방을 회복해 주세요. 뭐 선교해 주세요. 뭐 이렇게 막 맹세하고 이게 사명이라고 했는데
그런 헛 맹세하지 말라는 거예요. 헛 맹세. 절대 헛 맹세하지 말라. 왜? 네가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다. 그러니까 네가 맹세한 것을 주께 지켜야 되는데 네가 헛 맹세를 하게 되면 주께 지킬 수가 없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킬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왜? 헛 맹세를 하기 때문에 왜? 새사람이 아니고 옛사람이기 때문에. 거꾸로 얘기하면 이렇게 되는 거예요. 자, 그래서 그렇다면은 결국 주께 지킬 수 있는 맹세는 뭐냐 하면 사랑의 사랑의 계명 외에는 지킬 수 있는 게 없는 거예요.
이 사랑의 계명은 성령이 우리를 이끌어서 그 계명을 완성시킨단 말에요. 그 율법의 계명은 사람이 지키려 그래요. 십계명도 지켜보려 그래요. 그 우상 숭배하지 마라. 네. 우상을 절대로 안 섬기겠습니다. 그런데 우상을 안 섬기고 이제 율법의 규례에 따라 제사도 지내고 양도 잡고 다 했어요. 하는데 이렇게 보니까 저기 금덩어리를 이렇게 세워놨어요. 그런데 저게 자꾸 눈에 밟혀 이렇게 왔다 갔다 이렇게 하면서 그러다가 나중에 뭐냐 하면 아, 아버지에게 최고 좋은 걸로 해야 된다 그러고 딱 가까이 가서 그걸 놓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거라고 금으로 막 삐까번쩍하게 이렇게 해가지고 나중에 그게 아버지가 돼버린 거예요. 아버지. 금신상이 아버지가 아버지 이렇게 돼요. 지금 그렇게 돼 있어요, 안 돼 있어요? 다 그렇게 돼 있잖아요. 그래 거짓말하지 말고 진짜로 다 그렇게 돼 있어요. 왜? 왜 헛 맹세를 하냐 하면 이 사랑의 계명을 지킬 수 있는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이 사랑의 계명은 복음의 아들에게만 주어지는 계명이에요. 그러니까 이 율법의 계명은 혼의 생명들에게 종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그들은 의문의 문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뜻을 이해할 수가 없어요. 사람의 지식으로 그것을 깨닫고 그러다 보니까 뭐가 돼요? 결국은 윤리 도덕적인 삶을 살라고 강조하게 돼요. 하나님의 삶은 하나님의 삶은 윤리 도덕적인 삶을 살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하늘의 삶을 살면 그 안에 이 윤리 도덕적인 것은 하나님의 법 아래 다 있는 거예요. 그게. 아, 간음하지 말라니까 아, 뭐 영적 숭배하지 말라는구나. 그럼 우리는 개판으로 살아도 돼. 그러고 막 살아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예수님은 오셔가지고 개판으로 사셨어요. 개판. 예수님이 오셔갖고 아 나는 뭐 이 사랑의 계명만 지키면 되니까 나는 뭐 상관없어 그러고 막 엉망진창 보이는 사람마다 어이구 너무 이뻐 보인다 그러고 살고 이렇게 이렇게 살았어요. 예수님은 하늘의 그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고 또 이 땅의 이 사람의 지식 이 땅에 사람이 살아가야 되는 그 삶에도 본이 되는 거예요. 아시죠? 예. 그러니까 자 그래서 이 주께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킬 수 있는 것은 옛사람으로서의 주신 그 헛 맹세로는 지킬 수가 없다.
그렇다면은 그 주께 지킬 수 있는 맹세는 결국 성령이 오셔야 맹세를 우리에게 주는 그 사랑의 계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다는 거예요. 아시겠죠? 자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얘기하셨어요 3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는데 도무지 맹세하지 말어. 너희가 뭐 기도하고 예배하고 뭐 뭐 제사 지내는데 하늘의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하지 마. 그렇게 그 하나님의 보좌야 하나님은 그런 기도 안 받어. 그런 예배 안 받어 그래도. 아, 무슨 소리냐고 주께 찬양한다고 막 그래요.
그러면서 속에서는 오늘 헌금 얼마나 들어왔냐 이렇게 이거 밖에 생각 없어요. 그러니까 이 자체를 성령은 다 알고 계신다는 거예요. 우리 안에. 그러니까 그런 헛 맹세를 헛 맹세를 하늘에다가도 하면 안 되고 땅에다가도 하지 말라 하나님 발등상이다. 땅에 했다가는 너희는 멸망 당해 그냥 밟혀버려. 거기다가 예루살렘에도 하지 말라 예루살렘은 만왕의 왕이 있는 성이야. 거기다가도 하지 말라. 그렇다고 너희가 너희가 왜 너희가 그 맹세하는 걸로 그 능력으로는 머리로 그렇게 하는 것은 너 그 머리 터럭 하나도 희고 까맣게 할 수 없대. 아무것도 응.
그러니까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아니다. 옳다 옳다 아니다 아니다 하는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쫓아 난다. 자 이 얘기는 무슨 얘기였느냐 하면 바울이 이 비밀을 깨달은 게 바울이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강건해진다는 거예요. 자신도 겉사람과 속사람의 본질을 알았던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율법의 계명을 따르고 율법 아래서 능통하게 그 하나님의 법을 지켜가는데 지켜 가는데 뭔지 자기 안에 만족함이 있을 수도 없고 또 뭔지 모르게 그도 의에 주리고 목이 말랐는데 그것이 하나님이라는 그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에
그걸 계명이었기 때문에 그걸 지키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던졌는데 나중에 성령이 와서 인을 딱 치고 나니까 자기가 했던 모든 행위는 겉사람의 삶을 살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속사람 안의 본질은 영의 생명인데 그 영이 눈이 떠 있지 않고 눈이 감겨져 있고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걸 알 수가 그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도 없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와서 전했던 그 모든 말씀은 자기가 이해도 할 수 없었고 그것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가 섬기는 율법 아래서 섬기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그 행위에 하나님의 일에 반한다 생각하니까 그들을 핍박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성령의 인을 딱 받고 나니까. 이 바울의 고백이 로마서 7장 16-25절에 이렇게 고백을 해요. 우리도 똑같은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도 사람의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령의 세례를 받기 전에는 똑같아요. 바울이 이렇게 증거했어요.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자 이렇게 얘기해요.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게 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한다는 거예요. 그렇다면은 율법의 선한 것은 자기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럼 자기가 원해서 율법 아래서 열심을 냈던 것은 율법의 선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왜 율법의 선이 아니 하면 율법으로는 부활할 수 있는 생명이 안돼. 생명의 양식이 안돼. 그런데 본인이 율법 아래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라고 그렇게 좇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죄의 권능인 율법 아래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서 내가 오히려 예수를 믿는 자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때 오는 자기의 그 자괴감 그 뭐랄까 자기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정말로 섬겼는데
나중에 이 진리를 깨닫고 나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 편에 서있는 거예요. 이거에서 오는 충격은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어마어마했을 거예요. 그래서 이 지금 로마서 7장 16절-25절에 이렇게 기록하는 거예요.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아, 내 속 안에 이 죄가 있는 걸 알았어요. 속의 죄. 그 얘기는 뭐예요? 내 안에 있는 속사람이 영적인 눈이 깨어있질 않았기 때문에 예수가 누군지도 몰랐고 하나님의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자기가 미혹돼 가지고 사람의 지식에 미혹돼 가지고
자기가 열심을 냈던 것이 죄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죄가 결국은 이 진리를 모르니까 사람의 지식을 쫓고 종교 교리를 쫓고 종교 철학을 쫓아서 오다가 나중에 보니까 이거는 사람의 관원의 지식을 따랐던 것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 거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바울이. 그게 죄였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깨닫고 나서 내 속 곧 내 육신의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도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않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그런데 이 바울이 악을 행하려고 했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뜻을 온전히 따르기 위해서 자기가 열심을 내었던 거예요. 내었는데 성령의 인침을 받고 진리의 성령이 오셔서 기름을 담아 놓으니까 자기가 열심히 했던 게 선이 아니었고 악을 행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 오는 충격이 어떻겠어요? 그래 여러분은 충격이 없었죠. 별로^^ 워낙 죄도 안 짓고 사셔가지고 워낙 충격이 없죠^^ 네. 그런데 바울은 이렇게 충격이 심했대요. 충격이 그러면서 이렇게 얘기해요.
만일 내가 원하는 바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했는데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는데 한 법을 깨달았는데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아, 나는 내 마음은 선을 행하려 그랬는데 한 법 한 법을 깨달았는데 그게 내 안에 악이 함께 있는 게 느껴졌다는 거예요.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자 자기의 속사람의 본질을 알았던 거예요 이제.
자기가 이 겉사람과 속사람에 대한 본질을 알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아, 자신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려고 하는데 내 지체 속의 죄의 법 아래로 자신을 미혹해서 걸로 끌고 간다는 거예요. 이게 왜 끌려가냐 하면 진리가 충만히 부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내 안에 빛이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고 기름이 충만하지 않기 때문에 미혹되다가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이 죄의 법이 그러니까 나를 자꾸자꾸 정죄하게 되고 판단하게 되니까 나를 끌고 가니까 자기가 하던 그 습성에 자꾸 끌려가는 거예요. 이거예요. 새벽 기도 열심히 하고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받는다. 죄를 사함 받는다. 그 원리는 그 말씀은 아는데. 이 죄의 근본을 모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미혹되는 거예요. 나는 예수 믿어. 당연히 예수 믿어. 그런데 예수 믿는데 하는 행동은 악한 행동만 해요. 예수는 믿는데 아버지의 뜻을 모르고 하는 거예요. 지금 이 땅에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뭐냐 하면 내가 들은 게 사람의 지식 교리로만 들어서 배웠기 때문에 내 안이 그것을 잡아당기는 거예요. 그런데 나의 마음은 정말 아니 정말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고 싶은 거예요. 우리도 다 그랬어요. 그런데 이 진리가 없다 보니까 자꾸 내 안에 사람의 지식으로 준 교리가 나를 끌어당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정죄해요. 너 왜 기도 안 해? 너 왜 회개를 안 해? 그러니까 자꾸 그게 맞는 것 같아. 응. 맞아. 또 어저께 또 뭐 한잔 먹은 거 잘못했어. 내가 또 마누라하고 싸운 거.
아, 나 이게 습관 돼 갖고 안 되네요 아버지. 내 이 악한 마음을 버려야 되는데. 이게 죄인 줄 아는 거예요. 왜? 죄의 근본을 알려줄 수 있는 이 땅의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 죄의 근본은 이 성령 외에는 알려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지식으로만 배워가지고 가득 있으니 이게 진리는 없는 데다가 자꾸 마음은 아닌데 하는데 이게 자꾸 잡아당기니까 이 싸우면서 자기를 자꾸 죄의 법 안으로 끌고 가는 거예요. 이걸 알았다는 거예요 이 바울이. 여러분도 이걸 아셔야 돼요. 왜냐하면 내 속사람이 아직 강건해져 있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바울이 이 바울이 그걸 깨닫고 나니까 자기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내가 이 법을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가지고 내가 이것을 벗겨 죄에서 자유하고 벗겨 나올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거예요. 나를 내가 구원할 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나를 선한 길로 가려고 발버둥 쳐도 안되는 거예요. 왜? 진리가 없기 때문에. 성령이 이끌어주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이 깨달은 게 뭐냐 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나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그러니까 바울이 깨달은 건 아, 내가 겉사람과 속사람이 육신과 내 안에 있는 속사람의 영의 생명의 본질이 다르구나. 그러니까 내 겉사람의 육신은 자꾸 육체의 소욕을 쫓아가니까 영의 소욕을 쫓아갈 능력이 없어. 육신의 겉사람은. 그런데 내가 성령의 인침을 받고 나니까 내 안에 속사람의 영이 열리기 시작하고 깨닫기 시작하니까 자꾸 나는 영의 소욕을 쫓아가려니 내 겉사람이 육의 소욕으로 잡아당긴다는 거예요. 이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더 강력하게 성령의 기름 부음을 통해서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안에다가 집어넣고 14년을 돌려가지고 완전히 껍데기 벗겨가지고 나오니까 그제서야 이제 뭐예요?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이 돼버렸어요. 성전이 되니까 그때부터는 바울이 로마서 8장에 8장에 그랬잖아요. 결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결코 정죄함이 없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이게 죄에서 자유해져 버렸어요. 그 얘기는 뭐예요? 육체의 소욕을 따르던 그가 영의 소욕으로 따르는 새 생명으로 거듭나버린 거예요.
이제 그의 삶은 영의 소욕을 따라 영의 소욕을 따라 하나님의 법을 좇아가는 거예요. 복음의 법을 따라가는 거예요. 바울은 이것을 철저하게 느꼈기 때문에 자기가 겉사람으로 그 종교 행위를 했던 것은 율법 아래서의 행위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성령의 인침을 받고 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때는 복음의 아들로서 세워져서 예수님의 몸과 연합 그분과 한 몸으로 연합을 이룬다는 것을 알았다는 거예요. 그가 자신이 예수님의 몸이었다는 거죠. 그래서 바울의 고백서는 성령 안에서 한 몸이고
내가 주를 시인할 수 있는 것은 성령 외에는 주를 시인할 수가 없다. 주를 모르는데 이 땅의 교리 이 땅의 지식으로 가르친 주. 그럼 그 주는 그냥 지식으로 배웠어요. 그런데 본인이 그 주는 성령이 말을 하게 한 것은 내가 그분의 몸이라는 거예요. 몸. 내가 그 주님의 몸이라는 거예요. 몸. 그래서 주님도 후사고 영광 보좌 아들의 영광 보좌에 앉는 자이고 나도 보니 후사고 우편 보좌에 앉는다.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되면 나도 가야 되는 거예요. 왜냐하면 한 몸이니까요. 이게 영생의 길이고 진리였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 땅에 이 교리 유대 종교 교리 율법 아래에서 그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의 그 교리로 배워가지고는 배웠던 것은 맨날 그 성전 가서 제사드리고 응. 거기 가서 뭐 바치고 헌물하고 봉사하고 이러고 응. 그 저 뭐야 복음으로 오신 예수님이 전했던 그 복음 믿는 자를 핍박하러 다니고 이게 선인 줄 알고 다닌 거예요. 그런데 성령을 통해서 깨닫게 되니까 자신이 그 법 아래로 죄의 법 아래로 죄의 법으로 끌려가는 걸 보면서 이걸 누가 나를 건져줄 수 있느냐? 그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보내는 보혜사 성령이 인을 치면서 그것을 깨닫게 하고
자기를 이 죄와 사망에 법에 매였던 자신을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자유케해줘 버린 거예요. 이 고백을 하는 거예요. 로마서 8장은 바울이 아시겠죠? 우리도 반드시 동일한 고백이 있어야 돼요. 우리라고 바울보다는 그래도 우리도 깨끗해 이러는 게 아니에요. 똑같아요. 우리도 육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겉사람과, 속사람 안에서의 그 하나님의 법을 따르는 그 생명의 본질을 깨닫고 나는 영의 생명이면 반드시 성령이 나를 영의 소욕 그 영생의 소욕을 좇아가게 만든다는 거예요. 내가 갈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아시겠죠? 자 그래서 이제...
오늘 이 시간에는 마태복음 6장 33절-42절의 말씀으로 옛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하신 의미 계시의 말씀으로 복음의 그림자 의문의 문서인 율법 아래 있는 제사장 나라의 조상인 이스라엘의 자손들- 이 하나님의 영의 비밀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수 없는 이 땅에서 난 자 혼의 생명들 이 옛사람들에 대한 계시의 말씀을 찾아 전해드리고 있습니다만 글이 길어지는 관계로 하여 이어지는 말씀은 아래의 늦은 비 소리 직강 세미나 방송을 계속 이어보시면 더욱 상세하게 빠른 이해를 도우실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하여 복음의 참빛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오셔서 전하여주신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인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신 이 반드시 영이요 생명이시며 영존하시는 말씀이신 참 예수님 이 예수님이 전하여주신 새 언약의 진리의 말씀을 좇아 이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시는 모든 분들이 다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할렐루야-
생명의 빛- 성경 진리의 말씀 듣기
https://www.youtube.com/watch?v=8hn7U3wToNw&t=14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