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요한 계시록과 성경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원문보기 글쓴이: 햇살
하나님께 영광을 원죄설의 진위를 조명합니다
1.원죄설에 대한 비판
공평하신 하나님에 대한 몰이해, 성경의 자구적 해석, 종교적 트라우마<spiritural trauma> 즉, 인간 죄성의 근본 원인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시작되었지만, 이후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되는 이유는 죄를 물려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두절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부재, 곧 사단의 영향 아래에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트라우마<trauma>: [의학] 재해를 당한 뒤에 생기는 비정상적인 심리적 반응. 외상에 대한 지나친 걱정이나 보상을 받고자 하는 욕구 따위가 원인이 되어 외상과 관계없이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원죄설을 종교적 트라우마라 명명한 까닭은 어거스틴이 원죄설을 주창하게 된 계기를 통해 쉽게 알수 있다
어거스틴은 "갓 태어난 유아도...물로써 구원하시는 주님의 은총에 의해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원죄의 죄책으로 인한 것"이라고 하였으며, "갓 태어난 유아들은 구원을 위해서 성별 되게 특별히 제정한 성례전을 통해 신자가 되지 않는다면 어둠(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의 원죄설은 당시의 많은 사람을 설득해 모든 인간에게 외적 통제, 즉 제국의 지지를 받는 교회가 필요하다는 관념을 심어주어, 로마제국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정치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며, 원죄설은 기독교 안에서 '아담의 타락'은 곧 '사람의 타락'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고, 기독교는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고 사회 현실에 항거하기보다 원죄와 복종을 강조하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
제국 교회가 아담의 타락을 사람의 타락으로 교리화(원죄설)하면서 갓 태어난 아기도 죄를 물려 받았음으로, 결국 모든 사람이 유아세례를 통해 로마제국의 질서에 복종하는 카톨릭 신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원죄설의 결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또다른 이교도의 교리인 무염시태가 등장하게 된다
무염시태 <immaculate conception>[천주] 성모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하는 순간부터 하느님의 은혜와 특권으로 원죄의 흠이 없이 보존되었다는 교리
결국 무염시태에 이르러 비기독교사<카톨릭 교회>는 초대 로마 교회와 달리 로마 제국의 질서를 위한 로마 이교도로써 그 정체성을 드러내고야 만것이다
2. 원죄는 없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개역개정역 로마서 5장 12절>
본문 말씀은 세상에 죄가 들어오매, 모든 육신이 죄의 주장, 영향아래 놓여 있음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의 육신 또한 이러한 세상, 즉 죄의 주장과 영향 아래 태어나셨으나 그분은 무염시태론이 주장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과 달리 특별히 깨끗이 태어나신 것이 아니요 다만 죄를 짓지 않으셨음을 분명 알아야 합니다
태어는 모체에서 철분을 가져다가 스스로 자기 피를 만듭니다 생명의 근원되는 피가 부모에게서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 모두 태아에 있을 때부터 스스로 만들어 내는 진리는 원죄설이 틀리다는 과학적 반증이기도 합니다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의 헬라 철학은 사람의 육적 죽음에 관해 아담의 선악과를 통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 있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이것이 원죄설의 시작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러한 카톨릭의 교리는 커다란 모순을 안고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 받은 사람의 육적 죽음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카톨릭의 교리와 신앙은 구원의 의미는 영혼의 구원을 주장하면서 결국 본문 말씀의 사망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비성경적인 종교적 교리에 그치고 만 것입니다
그들이 만든 사도신경에 본디오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 라는 절이 나오는데 모든 죄는 아담에게, 그리스도의 고난은 본디오빌라도에게와 같이 그들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육적 증거들로만 종교의 교리를 세움으로써 성경을 영적인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그들이 강요해서 만든 신자들과 더불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이루지 못하고 또한 성경을 읽고자, 간직하고자 하는 수천만의 생명을 무참히 짓밟으므로써 실상 그들이 누구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볼 줄 알아야 됩니다
1517년 마르틴 루터로 부터 시작된 종교개혁 가운데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존 칼빈의 원죄론을 통해 종교개혁은 다만 종교를 개혁한 사건이지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회복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교리와 신학에 의해 기독교는 이미 오래전 구속되어 버렸습니다 껍데기는 단지 껍데기 일 뿐 입니다
3. 죄에 대하여 그리고 원죄설의 진위 정리
사람은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죄는 선택의 결과 입니다 즉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라 하였습니다 <야고보서 4:17> 또한 믿음으로 쫓아 하지 아니한 모든 것이 죄라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14:23> 죄를 이길 능력은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님의 보혈밖에 없습니다 죄를 합리화 하여 죄를 가까이 하지 마시고, 날마다 죄가 문밖에서 두르릴 때에 죄를 물리치기 위해서 기도하십시요
신앙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삶, 곧 회복의 여정입니다 물과 성령으로써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듯,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이가 출애굽의 은혜를 입습니다 그러나 단지 애굽에서 나왔기 때문에 끝난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야할 곳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곳, 가나안 땅 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개역개정역 로마서 1:17>
죄성은 태어날 때 유전으로 물려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속하여 자라면서 형성 되는 것입니다 세살바기 첫째가 갓 태어난 동생을 시기하여 부모 몰래 꼬집는 것을 봅니다 그것을 보면서, 아 사람은 원래 악하구나 단정짓지 마시고 세살바기 첫째 한테 부모로써 소홀히 한것은 없는지 돌아보십시요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 죽인 것이 아담과 하와에게서 물려 받은 죄성 때문이 아닙니다 말씀에 기록되길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개역개정역 창세기 4:7>
결국 자신의 죄는 유전이 그 이유도 아니거니와 누구를 탓하고 변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지 않았다면 죄가 세상에 들어오지 않았을텐데 라는 어처구니 없는 몰지각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반역한 사단이 품은 생각입니다. 하나님 왜 그리 하셨습니까 라고 말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모두 죄인으로 태어난다, 죄의 속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라는 생각이 결코 성경적인 지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죄를 합리화 할 뿐 아니라 죄의 원인을 하나님께 돌리는 참으로 악한 생각임을 반드시 깨닫고 가슴에 새겨야 할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모르고 살았을 때와 주님을 만나고 나서도 저희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수 많은 죄들을 자기 합리화 하면서 부끄럼과 두려움없이 자행했음을 봅니다
마지막 때에 믿음을 보기 어렵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 세상이 악하여 수 많은 죄악들이 이루어 지고 있는 가운데 저희 행실이 그 죄들로 부터 얼마나 구별되어 있는지 헤아리기 조차 어려움을 봅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나 실상은 모두가 자기 육신만 위하고 천국만을 구하고 있으니 저희는 아직까지 살인자요, 더럽고 가증한 사람들입니다
주님, 부디 용서하시옵소서
간구하오니 저희를 불로 연단하소서
모세를 통해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바 가나안 땅에 입성하기 까지 하나님의 긍휼이 저희에게 임하시길 간구하나이다
우리 주 예수님 존함 받들어 기도 드립니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긍휼이 함께 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