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민 뒤 자녀를 갖게 되면 일평생 해야 될 중요한 역할중의 하나가 아빠의 역할일 것이다. 자녀가 가정에서 바르게 성장해서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때까지 아빠의 역할과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자녀의 평생과 함께 할 것이다. 이러한 아빠의 중요성 때문에 교회와 사회단체 기관에서 ‘아버지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바른 아버지상을 세우는 교육훈련을 제공해 왔고, 최근에는 이 프로그램을 더욱 널리 보급하기 위해 이 러닝으로도 개발된 것을 보았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도 4학년 학생이 되면 아빠캠프(Daddy Camp)라는 독특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개학이 되면 바로 시작되는 1박2일짜리 이 프로그램은 아이와 아빠, 단 둘이서 같이 시간을 보내는 프로그램이다. 지난 9월 4일, 5일 나의 큰 아들도 4학년 학생인고로 나도 이 프로그램에 참여케 되었다. 이번 아빠캠프의 주제는 ‘아빠와 같이, 아빠의 가치’였다.
#2. 사전 미션 수행하기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있는 예비모임에서 전달되는 두 개의 미션을 방학 중에 실천해야 한다. 첫 번째는 아빠와 아이 단 둘이서 여행하기인데 당일치기가 되던 며칠이 되던 둘이서만 다녀와야 한다. 두 번째는 공작용 나무를 나눠주는데 이것을 잘 깎아서 자동차 모형을 만들어 아빠 캠프하는 날 밤에 스피드 경주 부문이나 멋진 디자인 부문 시합에 참가하게 된다. 나는 첫 번째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8월 중에 아이와 물놀이를 다녀 왔다. 하루 종일 물속에서 놀았는데 검게 그을린 아이의 피부와 근육이 탄탄하게 붙어가는 허벅지 등을 보면서 건강하게 잘 자라는 아이의 모습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예비모임에서 있은 한 학습활동이 긴 여운을 주었다. 아빠들에게 백지와 연필을 나눠주고 현재 가지고 싶은 물건 5가지, 사귀고 싶은 연예인 5사람, 만나고 싶은 5사람, 현재 아주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 4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아이 이름을 적게 했다. 그리고 배를 타고 가다가 큰 풍랑을 만나게 되어 우선적으로 바다에 버려야 할 것, 또는 포기해야할 사람 이름 5개씩을 지우게 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지워나가다 보니 당연히 어떤 아빠든 맨 마지막에 남는 것은 자신의 아이의 이름이 되었다. 마지막 남은 하나의 이름, 자신의 아이 이름을 보는 순간 생겨나는 그 묘한 감정, 그리고 그 여운으로 두 달 뒤에 있을 아빠캠프를 준비하며 아이와의 추억 만들기 여행, 그리고 같이 자동차 모형 만들기 미션 수행은 시작되었다.
#3. 아빠와 함께하는 게임들
드디어 아빠캠프 첫날, 토요일 오후, 아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학교에 모인 아빠들이 빌려온 텐트를 학교 운동장 반별로 정해진 곳에 설치를 했다. 하룻밤을 보낼 집을 아이와 둘이서 짓는 것이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텐트가 세워지고 그 안에 짐을 정리해 두고 다음 순서를 기다렸다. 다음 순서는 4팀씩 1조가 되어 고리 던지기, 축구 골 넣기, 농구 3점 슛 넣기, 컵 쌓기, 판 뒤집기 등의 선택 게임과 아빠 얼굴에 분장해주기와 같은 필수 게임을 했다. 다른 또래의 아이의 친구들과 한 조가 되어 게임을 하다보니 집에서만 보던 내 아이의 모습과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이 친구들의 이름도 알게 되고 그 아이들의 아빠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서로 씩씩하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 좋았다. 필요한 모든 게임을 다 마치고 엄마가 싸준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시간의 순서 중 하이라이트는 단연 자동차 경주였다. 모든 아이와 아빠가 한달 이상 준비하여 만든 자동차를 가지고 나왔다. 경사진 레일을 타고 내려와 결승점까지 가장 빨리 달리는 차가 스피드 왕으로 뽑히는데 여러 번의 예선 끝에 제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를 뽑는 스피드 부분이 제일 인기가 있었다. 자동차 무게가 150그램을 초과해서 안 되고, 바퀴에 속도를 내기 위한 다른 장치를 해서도 안 되는 등 몇 가지 엄격한 규칙에 따라 각각 만들어진 자동차가 달릴 때는 아이와 아빠가 함께 집중하여 흥분하고 아쉬워하면서 좋은 교감을 형성해 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정성을 들여 멋있는 모형으로 만든 자동차를 뽑는 디자인 부분에 대한 시상도 많은 감탄을 자아내었다.
#4. 아빠의 유서
밤이 깊어지면 아이들은 교실로 들어가고 아빠들만 넓은 체육관에 남았다. 아빠의 유서쓰기 시간이 시작되었다. 유서를 쓸 때 느끼는 감정은 다 다를 것이다. 어쨌든 언젠가는 닥칠 현실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아빠입장에서 아이에게 절실하게 해주고 싶은 마지막 메시지를 남기는 시간이었다. 아빠들이 체육관 마루 바닥에 엎드려 한 시간여에 걸쳐 유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아이와 마주 보며 아빠들이 유서를 읽어주었다. 아빠의 모습도, 음성도 떨리고 있었고, 듣고 있는 아이의 태도도 진지했다. 그리고 진한 포옹으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 순간 나의 아들이 어딘가 어색해 하는 듯 했다. 그 어색함이 낯설지 않았다. 바로 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8년전 홀로되신 88세의 아버지와 어릴 때부터 그랬고, 지금도 단둘이 있으면 뭔가가 어색하다. 아들이 나에게 닮지 말았으면 하는 바로 그 모습을 쏙 빼 닮았다는 것이 영락없는 내 새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 꿈꾸기
프로그램이 끝나고 운동장에 쳐놓은 텐트로 돌아와 아이와 단 둘이 누웠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벌레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했다. 나직한 목소리로 아이의 할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북한 대동강변 작은 마을의 아주 부자집 아들이었는데 전쟁 통에 부모와 가족과 헤어져 남한으로 오게 되어 여기서 맨주먹으로 시작해 우리 가정을 이루게 된 것, 일본에 유학해서 배운 방송기술 때문에 한평생 방송국에서 일하신 것, 할아버지의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아빠의 어릴 때 꿈도 방송국에서 일하는 것이었던 것 등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내 아이의 꿈에 대해서도 들었다. 아들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순간 ‘다시 생각 좀 해보는 게 어때?’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아들은 학교대표 축구선수 선발 오디션에서 연속 2번 떨어지고 내년에 또 오디션 보겠다고 벼르고 있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최근에는 아예 자기가 자기반 아이들 끼리 축구팀을 만들어 주장을 맡아 학교 대표팀하고 게임을 붙겠다고 연습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집념을 무시하면 안 될 것 같아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려면 최소한 어학도 잘 해야 하니까 학교공부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를 위해 기도해주고 내일을 위해 꿈나라로 들었다.
#6. 참 좋은 아빠 상
새벽 5시 30분쯤 학교 자연학습생태공원에서 키우는 닭의 우렁찬 기상외침소리에 잠을 깼다. 이른 새벽 잠결에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를 들었는데 많은 비가 오지는 않았다. 늦잠이 특기인 아이는 아직 골아 떨어져 있었지만 6시에 교실로 모이게 되어 있기 때문에 아이를 깨워 교실로 들여보내고 텐트를 정리하고 짐을 꾸린 후 운동장 스탠드에 아빠들 끼리 모여 앉아 있었다. 마지막 정리 시간을 위해 아이들이 교실에서 나왔다. 각각의 손에는 ‘참 좋은 아빠 상’이라고 쓰여진 상장을 액자에 끼워서 가지고 나왔다. 여러 가지 색깔의 사인펜으로 직접 쓴 상장문구를 읽고서 두 손으로 아빠에게 정중하게 전달해 주었다. 마지막 정리를 위해 한 말씀하러 나오신 교목이 말했다. ‘아이의 할아버지들이 8․15와 6․25를 기억하듯이, 아이의 아버지들이 12․12와 광주민주화 운동을 기억하듯이, 오늘 모인 아이들이 오늘 아빠와 함께한 이 캠프를 잊지 않고 기억할 것입니다.’
#7. Epilogue
아이와 집으로 돌아 오면서 1박 2일동안 아빠들은 무엇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250여명의 아빠와 아이들은 정해진 규칙을 지키고, 서로 도와가며 작은 공동체를 만들어 나갔다. 그 가운데 아빠는 캠프에서 아이들에게 좋은 본을 보이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는 그것을 체험하며 학습했을 것이다. 앞으로 아이는 아빠가 보이는 본에 따라 좋은 습관을 갖게 되고, 성품을 형성하며 인생을 살아가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아빠들은 아이에게 무한한 지지를 보내며 아이들의 정서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 가운데서 아이들은 소속감, 가치감, 자신감, 안정감, 중요감을 느끼며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을 가졌을 것이다. 대부분 우리 아버지들의 대표적인 성격인 아이들에게 잘 표현하지 않는 마음을 이젠 좀 열어서 먼저 다가가는 아빠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의 격려, 후원 뿐만 아니라 자녀와의 올바른 소통이 자녀들에게 용기와 자신을 갖게 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첫댓글 저의 직장 지방행정연수원 e-News Letter에 실은 원고입니다.
똑같이 아빠 캠프에 참여해도 관전기(?)의 칼라가 전혀 다르군요.
기자가 리포트를 쓰는 것처럼 깔끔하고 그럴 듯하게 정리되었네요.
우리 애들은 절 닮아서리 논리력이나 발표력이 떨어지나 봅니다. ^^;
매달 하나씩 써야하는 e-News Letter의 저의 고정 컬럼 때문에 머리정수리 머리카락이 슝슝 빠질 정도로 머리를 쥐어 짭니다. 그래서 요만큼 나옵니다. 노마드님의 큐티하는 행복에 실리는 글을 보면 그 내공이 보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만약 유서를 쓴 다음에 하건이에게 읽어주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생한 체험을 공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