回想錄, 27 北京 관광
신록이 잔연(燦然)한 오월에
중국의 북경(베이징) 관광에 장대한 꿈을 안고 올 랐다.
문학 동아리 모임 일행은 인접 사회주의 국가를 간다는 게 즐거우면서도 우려심이 있었던 것 같다.
제주 공항에서 서울을 경유 북경 항공 길은 족히 3시간 소요된 것 같다,
북경 서우드 국제공항은 대륙의 징표 처럼 크기는 컫다.
우리 일행은 북경호텔에 짐을 풀었다.
북경은 중국의 수도이다.
중국의 상하이시 두 번째 큰 도시 이다.
그리고 700 여 년의 역사를 지켰다.
북경의 면적은 16,716 154 평방키로미터 로 제주도의 9배다.
인구는 21,716,000 명으로 경인지역 인구와 같다.
북경은 춘추전국시대의 연(燕)나라의 수도 였다.
원(元: 1271년), 명(明: 1368년)나라, 청(淸: 1644년) 수도였다.
모태통은 중국을 통일하고 북경을 수도로 정했다.
여기서 원(몽고), 청(만주족)의 이민족이 지배 했다.
첫날은 팔달령 장성(八達嶺 長城)은북경시 옌칭현에 있다.
필자가 갔던, 팔달령,
필자는 북경시내 북경 북부 덕승문(德勝門)에서 출발 고속도로를 타고 갔다.(약 1시간 소요)
고속도로 변에는 잘짜여진 도로와 고층 아파트가 줄비했다.
어쩌면 서울의 아파트 같기도 했다.
현지에 도착 우리는 4명이 1조되여 케이불카(cable car) 타고 장성의 망루까지 갔다.
인솔자는 장성 축성시 노역자 들이 죽으면 그 자리에서 돌(石)과 벽돌 속에 넣어 성벽이 무덤이 되었다 한다.
팔달령 장성의 일부는 명(明)나라 때 축조 되었다 한다.
만리장성은 약 6, 400km(10,000리)이다
중국하면 만리장성은 트렌드 마크(trend mark) 이다.
그시절 공사용 중기도없는데 등짐으로 1천 m 되는 산등성 줄기따라 성벽을 쌓다는 게 거대 했다.
허기사 우리나라도 북한산성, 강원도 바보온달 산성도 그렇다.
성벽은 견고해 성벽이며 망루는 쥐새끼도 넘지 못할 것 같았다.
구경꾼들은 외국인 대부분이었으며 성벽 위의 회랑은 서울 남대문 시장 바닥 손님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듯 이루고 있었다.
근데 산에는 민등산이라 우리 고성처럼 낭만은 없었다.
중국인은 만리장성을 자랑하지만, 우리나라는 마을 마다 성(城)이 있다. 그래서
성(城)의 길이를 풀어 연결하면 만리장성 보다 더 길다.
우리는 중국인에게 우월하다고 느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나라 성은 마을의 평화와 안녕, 그리고 외침을 막아주는 신앙에 가깝다.
이일 차는 이화원(㼢和園) 관광에 나섰다.
청 나라의 여름 궁전이다.
1750년 어머니 황태후 60세 생신을 축하하는 뜻에서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창경궁의 후원(비원:秘苑) 같은 곳이다.
중국 역사에서 황제의 권위를 누렸던 여자는 3 명이다.
한(漢)나라의 유방의 부인 여태후(呂太后), 당(唐)나라의 고종의 부인 측천무후(測天武后),
청(淸)나라의 문종의 부인 서태후(西太后)이다.
서태후의 본명은 예허나라(엽혁나람:葉赫那漤)씨다.
서태후는 자금성의 서쪽에 있다해서 서태후, 문종의 본처는 동쪽에 있다해서 동태후( 마음씨가 고왔다한다.)
필자가 서육궁, 저수궁 등 에갔는데, 궁앞에는 변성암, 퇴적암의 2m 크기의 자연석의 용상, 해태상, 등 구비해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창덕궁, 창경궁 만큼 아기자기한 면은 없어 보였다.
이화원은 만수산의 곤명호를 포함하고 있다.
곤명호의 오작교입니다.
면적은 약 2,9평방미터였다.
곤명호의 넓이는 여이도의 8배 크기였다.
만수산은 해발 60m 로 제주시 도두봉 만큼 하다.
곤명호는 바다처럼 넓어 만수산과 불향각(佛香閣)이 얼비친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불향각
불향각은 만수산 비탈 20m 가량의 기단을 쌓아 41m, 8각 4중 처마에 3층 목탑은 우아하고 위세가 커 보였다.
불향각을로 가는 회랑은 누각으로 지은 복도는 길이가 728m에 홍루몽(紅樓夢), 서유기(西遊記) 등 그림이 14,000 여 점이 그려져,
그림을 감상하려면 하루 종일 될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필자는 불향각을 구경하고 뽀트(boat)타고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3일차는 북경의 왕부정(王府井)거리를 투어(관광 )했다.
왕부정거리는 북경의 동천구 약 1,8km 를 말한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처럼 도로 양쪽에 하얀 천으로 된 포장마차는 일정한 규격(3m/4m)으로
칸칸이 한 줄로 늘어서 있었다.
다소 서울의 명동문화와는 다소 다른 것 같았다.
왕부정거리는 서울의 명동이라 부른다.
명동은 자유분망하게 문화와 정서는 아름답다.
외국인에게도 사람받는 곳이다.
왕부정거리 음식은 없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전갈, 쥐고기, 뱀고기, 등, 소, 돼지 고기는 기본이었다.
이는 먹거리의 대부분이 꼬치형태의 음식였다.
그, 식당, 기념품점, 잡화점 등 다소 전자 상가도 있었다.
필자는 중국술(빼갈)에 돼지고기 바베큐(barbecue)를 즐겨 먹었다.
4일차는 귀뚜라미 결투를 구경 갔다.
북경의 투어(tour) 중에 북경시내 가정집에서 한노인이
귀뚜라미를 키우면서 보람있는 모습이 좋았다.
우리는 일력거를 타고 약 300m 를 이동했다.
삭은 일천원 이었다,
팁(tip)으로 우가 돈을 1천원 줬더니, 인력꾼은 허리를 굽혀 서 너 번 인사를 받았다.
노인은 종지에서 키우는 귀뚜라미 2 마리를 핀센트로 꺼내,
가로세로 10cm 되는 사각 틀에 넣어 레스링 결투처럼 싸움을 하는 게 신기 했다.
노인은 뀌뚜라미 결투를 북경 TV에서 반영 되여, 인기가 대단했다고 자랑 했다.
그리고 그 행위를 신문 게재된 내용을 스크립 해 보여 주기도 했다.
필자는 볼일을 볼려고 화장실에 갔는데 재래식 이라 악취에 질려버렸다.
어쩌면 서울의 변두리 마을 (구룡마을) 처럼 낙후되여 있었다.
마지막 날은 북경의 외각, 은호동(銀䝞洞) 동굴을 찾았다.
들어가는 입구는 에스칼래트(escaiator)타고 들어 갔다.
길이는 4,5km였다.
동굴내부는 웅장하고 신비한 종류석의 형상이 대단 했다.
그래서 은빛여우와 같다 했다.
동굴에서 나오는 길에 관광상품 매점에는 먹거리도 있었지만, 경옥(jadeite)
으로 된 용 모습을 구매 했다.
또한 청동검을 구매하려는데,
매점 남성이 이것 보다 오래된 검이 집에 있는데
필자보고 가자는데 겁이 덜컹 낳다.
내 장기가(간(肝) 눈(目) 등 을 욕심 내는 것 아닌가 하고,
끝으로 백두산 관광에 나설려는 데
5월의 비가 억수같이 쏫아져 포기 하고 귀국 길에 올랐다.
글: 虎山
첫댓글 용천 좋은 여행다녀왔군요.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