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서당화상비」에 의하면 원효스님이 이곳에서 70세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2. 당 신라국 황룡사 원효의 전기[唐新羅國黃龍寺元曉傳]
스님 원효는 성이 설씨이며 동해의 상주 사람이다. 어린 나이에 슬기롭게 법에 들어가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받았는데 노니는 곳이 정해짐이 없었다. 의미의 경계를 용맹히 격파하고 문장의 진영을 씩씩하게 가로질러 날래고 굳세게 전진하여 앞에서 막음이 없었다. 삼학에 모두 통달하여 그 땅[신라]에서 이르기를, 만인을 대적할 만하다고 하였다. 정밀한 의해가 신의 경지에 들어간 것이 이와 같았다.
일찍이 의상법사와 함께 당나라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니 현장 삼장의 자은의 문을 흠모한 것이다. 그 인연이 어그러지자 마음을 쉬고 노닐었다. 얼마 안 되어 말하는 것이 사납고 함부로 하였으며 행적을 보이는 것이 빗나가고 거칠었다. 거사와 함께 주막과 기생집을 출입하였으며, 지공처럼 금칼과 쇠지팡이를 지녔다. 혹은 소를 지어서 『잡화』(『화엄경』)를 강설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거문고를 뜯으며 사당에서 즐기기도 하였다. 혹은 여염집에서 자기도 하였으며 혹은 산이나 강가에서 좌선하기도 하였다. 그 뜻대로 형편에 따르니 도무지 일정한 법식이 없었다. 그때 국왕이 백좌인왕경대회를 설치하고 두루 큰스님을 찾았다. 본 고을[상주]에서 명망을 들어 그를 천거하였으나 여러 스님들이 그 사람됨을 미워해서 왕에게 참소하여 받아들이지 않게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의 부인이 머리에 악성 종기가 났는데 의사의 노력에도 효험이 없었다. 왕과 왕자, 그리고 신하들이 산천의 영험한 사당에 기도하여 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어떤 무당이 말하기를, “만일 다른 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약을 구해오면 병이 치료될 것입니다” 하였다. 왕이 곧 사자를 보내어 바다 건너 당나라에 가서 그 의술을 구해 오게 하였다.
넓고 깊어 어두운 물속에서 홀연히 한 노인이 나타나 파도를 타고 배 위에 뛰어올라서는 사자를 맞이하여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궁전의 장엄함과 화려함을 보고 용왕을 알현하였다. 왕의 이름은 금해였는데 사자에게 말하였다. “그대 나라 왕비는 청제 의 셋째 딸이다. 우리 궁중에 전부터『금강삼매경』이 있었으니 이에 두 가지 각(覺)이 원만히 통하고 보살행을 보인것이다. 이제 왕비의 병에 의탁하여 증상(增上)의 인연을 삼아 이 경을 부쳐서 그대 나라에 출현시켜 유포하고자 할 따름이다.”
이에 30장쯤 되는 중첩되고 흩어진 경전을 사자에게 주면서 다시 말하기를, “이 경전이 바다를 건너는 도중에 마구니의 장난에 걸릴까 두렵다”고하였다. 왕이 사람을 시켜 사자의 장딴지를 칼로 찢어서 그 안에 [경을] 넣고 밀랍 종이로 봉하고 약을 바르니 장딴지가 예전과 같았다.
용왕이 말하기를, “가령 대안성자에게 차례를 매겨 꿰매게 하고 원효법사를 청하여 소를 지어 강의하고 풀이하게 한다면 왕비의 병이 낫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을 것이다. 가령 설산의 아가타약①의 효력도 이보다 더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용왕이 전송하여 바다 위로 나와서 드디어 배에 올라 귀국하였다.
① 아가타(阿伽陀, agada)는 불사약(不死藥)으로도 불린다.
그때 왕이 듣고서 기뻐하여 곧 먼저 대안성자를 불러서 차례대로 묶게 하였다. 대안성자는 헤아리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형색과 차림새가 특이하였으며, 항상 저자거리에서 구리로 만든 발우를 두드리며 “크게 편안하시오, 크게 편안하시오[大安]”라고 외쳤기 때문에 대안이라고 이름 한 것이다. 왕이 대안에게 명하니 대안이 말하기를, “그저 경전만 가져 오십시오. 왕의 궁궐에는 들어가기를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대안이 경전을 받아 배열하여 여덟품을 만드니 모두 부처님의 뜻에 합치하였다. 대안은 “속히 원효에게 가져다주어 강의하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은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원효가 이 경전을 받은 것은 바로 본래 태어난 상주에 있을 때였다. 사자에게 말하기를, “이 경전은 본각과 시각의 두 가지 깨달음으로 종지를 삼습니다. 나를 위해 소가 끄는 수레[角乘]를 준비하여 책상을 두 뿔 사이에 두고 붓과 벼루를 비치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소가 끄는 수레에서 『소』를 지어 다섯 권을 만들었다. 왕이 요청하여 날을 정해황룡사에서 강설하기로 하였다. 그때 박덕한 무리들이 새로 지은『소』를 훔쳐가 버렸다. 이 사실을 왕에게 아뢰어 사흘을 연기하여 다시 적어 세 권으로 만들었으니 이를『약소』라고 한다.
좋은 자료라 퍼 온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