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닛시2(출 17:8-16)
르비딤 사건 이후에 이스라엘은 아말렉의 공격을 받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전쟁의 결과 이렇게 하도록 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14절).” 즉 이스라엘과 아말렉과의 전쟁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억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무엇일까?
신 25:17-18절을 보면 아말렉이 공격한 대상들은 이스라엘 무리 중에서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었다.
아말렉이 약한 자들을 공격했다는 것과, 16절의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라는 말씀의 성경 하단을 보면 ‘여호와의 보좌를 향해 손을 들었으니’라는 뜻으로 기록하고 있다.
즉 이런 의미다. 아말렉의 공격했던 약한 자들은 전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약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애굽에서 노예로 있었던 이스라엘을 생각해 보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아말렉은 사탄의 권세를 의미한다.
창 36:12절에 의하면 아말렉은 에서의 후손이라 한다. 그럼 에서는 어떤 인물인가? 에서는 식물 한 그릇으로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긴 ‘망령된 자’이다(히 12;16). 여기 ‘망령된 자’란 히브리어로 이교적이며 사악하며 신성을 더럽히고 불경스럽다는 뜻이다. 신성을 더럽히고 불경스럽다는 것은 이런 의미다. 하나님은 장자를 통해 메시야를 보내시고자 한다. 그런데 에서는 그 하나님의 뜻을 정면 거부한다. 그러므로 에서는(아말렉)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뜻으로 살고자 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끝까지 싸워 연약한 자들을 구원해 내시겠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겪은 출애굽 여정을 보라.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압제를 받고 있었다. 마치 아말렉이 이스라엘의 약한 자들을 치는 것과 같았다. 그 때 하나님은 유월절 어린양을 통해 바로를 굴복시키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셨다.
오늘 본문 말씀의 의미가 바로 그것이다. 단순한 전쟁 사건을 기록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통해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구원의 사건을 기록하고 기억하라는 의미다. 즉 산 위의 모세와 산 아래의 여호수아를 통해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연약한 자들을 구원해 내셨는가를 다시 한 번 상기시키시는 것이다.
성도는 세상에서 항상 아말렉과 같은 사탄의 공격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자들을 위해 싸우신다. 아말렉이 진멸하시기까지 싸우신다. 그리고 이미 그 전쟁은 십자가에서 끝이 났다. 다만 역사적으로 과정을 밟을 뿐이다. 연약한 자들을 위해 싸우시고 승리하신 승리의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리라(롬 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