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인순 작가의 수필집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푸른사상 산문선 57).
가족을 향한 애정, 힘들었어도 아름다웠던 삶의 시간들, 자연의 생명력 등을 섬세하고도 유려한 문체로 그렸다. 따스한 모성과 짙은 정성이 배어 있는 작품들은 독자들에게 삶의 가치를 일깨우며 깊은 울림을 준다.
2024년 11월 25일 간행.
■ 작가 소개
제주에서 태어났다. 제주대학교 가정교육과를 졸업하고 40여 년간 교사 생활을 했다. 음식과 건강에 관심을 가지면서 원광디지털대학교 한방건강학과, 제주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여러 곳에서 강의를 해왔다. 2017년 『문학청춘』 신인상, 2020년 『에세이문학』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함께 쓴 책으로 『흔들리는 섬』이 있고, 『서귀포신문』에 ‘문필봉’과 『제주해럴드』에 ‘화요에세이’ 및 ‘오여사의 수랏간, 그 유혹’을 연재하고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꿈에서 깨니 ‘꿈틀거리다’라는 단어가 혈관을 타고 흐릅니다. 아름답고 힘들었던 순간을 품고 살아온 지난 일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나옵니다. 주방에서도 텃밭에서도 추억의 그림자를 밟고 꿈틀거립니다. 쓸쓸하다고, 따뜻한 봄을 기다린다고.
교직 생활을 마무리하고 음식 공부로 동분서주하다 수필이란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 친구와 지난 이야기를 하며 사랑을 나눈 지 7년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사랑이 늘 달콤했으면 좋으련만. 때론 얄궂을 때도 있었고 귀찮다고 등을 돌려 다른 길을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제야 제 길을 찾았습니다.
■ 추천의 글
바다와 땅이 함께 넘겨주는 척박한 생태환경에서 가족에게 덮쳐오는 생존 과제를 해결해나가며 살아온 사연이 여기 가득 담겨 있다. 장편소설로 엮는다 해도 다 삐져나올 서사, 시로 함축하기에는 지나치게 혼융된 서정 등이 편편으로 나뉘면서 작은 소재와 그것에 어울리는 단아한 이미지로 엮어 수필이라는 이름에 맞춤하게 놓고 있다. 수필로 입성한 때가 좀 늦은 게 아닌가 하다가도, 그동안 다른 양식으로 표현하지 않고 참았다가 이제 이렇게 내놓은 게 참으로 다행이다 싶다. 오인순의 글을 읽으면 수필이야말로 오인순 같은 사람이 써야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 박덕규(소설가·문학평론가)
작가의 글은 동글동글하면서도 말랑말랑한 촉감, 좋은 양분의 알찬 내면, 그 자체만으로도 모자람이 없다. 섬세하고 따스한 모성과 생명에 대한 배려와 짙은 연민과 정성이 그 바탕에 자리해 있다. 요리 전문가인 작가는 힘든 요리 과정의 깨달음을 통해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 삶을 갈등하며 아파한다. 그 순간을 품고 살아온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소중한 삶의 덕목들을 이끌어내어 서정적인 수필로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 복효근(시인)
■ 산문집 속으로
나는 매일 다른 변화를 주는 달빛을 좋아한다. 서쪽 하늘에 잠깐 나타났다가 숨어버리는 둥근 눈썹 모양의 초승달, 때가 되면 늑대를 울게 하는 보름달도 좋아한다. 보름달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온밤을 누리니 더욱 좋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거나 비어 있지 않고 둥글둥글하다. 모나거나 야박하지도 않고 어우렁더우렁 편안하다. 나는 그래서 나를 닮은 보름달을 좋아한다.
이제 며칠 있으면 어머니 기일이다. 기쁨보다는 아픔이 더 많았던 어머니, 잔물결 되어 흐른다. 다음 생에 어머니의 어머니로 태어나 보듬어드리고 싶다. 이생에서 못다 한 따스한 이야기가 서리달빛 아래 탁음처럼 들려온다. (「서리달에 부르는 노래」, 25~26쪽)
동백꽃 낙화에서 죽음을 연상할 수밖에 없는 제주의 아픈 역사가 애처롭고 눈물겹다. 초록 잎 사이사이에서 소리 없이 희생된 자들의 못다 한 말과 하지 못한 그 속울음이 들리는 듯하다. 언제면 뼛속까지 스민 상처와 아픔과 그리움을 밀어낼 수 있을까. 동백의 섬 제주가 눈발에 흘린 붉은 피와 눈물, 그 상흔을 짚으며 동백이 걸어온 길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동백꽃 피는 봄날」, 64~6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