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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호보암의 실수 / 성경 벌레
지난 월요일에 경기연회 감독 이취임예배가 성남에 있는 대원교회에서 있었습니다. 감독선거는 작년 시월에 있었는데 새로 경기연회 감독에 당선되신 목사님의 건강에 어려운 문제가 생겨서 회복을 기다리느라고 이취임예배가 늦어졌습니다.
경기연회 감독에 취임하시는 임은택 목사님이 취임사를 하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물어보아도 나는 즉석에서 대답하지 않고 대답을 좀 미루겠습니다. 한참 생각한 다음에 대답하겠습니다"
그 다음에 감독님은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나는 이런 지혜를 신학교에 다닐 때 김찬국(金燦國) 목사님에게서 배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대답하지 않고 대답을 좀 미루고 있으면 당장 대답하는 것보다 훨씬 지혜로운 대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일이 많습니다.
솔로몬이 죽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와서 청원을
합니다. 솔로몬 당시 솔로몬에게 대항하다가 애굽으로 망명했던 여로보암이 앞장을 섰습니다.
백성들은 "솔로몬이 우리에게 멍에를 너무 무겁게 했는데 그것을 좀 가볍게 해 주십시오"라고 청원을 했
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왕궁, 도시와 건축물을 짓고 화려한 통치를 하느라고 백성들에게 부역을 많이 시켰고 세금을 많이 거뒀습니다. 백성들이 이제 짐을 가볍게 해 달라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요즘 필리핀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피풀 무브먼트가 일어났습니다.
르호보암은 당장 대답을 하지 않고 사흘 뒤에 오라고 합니다. 잘한 일입니다.
그 다음에 솔로몬 왕의 신하였던 노인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그런데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자문을 버리고 또 자기와 함께 자란 어린 사람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습니다.
노인들은 백성들에게 좋은 말로 대답하라고 건의했습니다.
젊은이들은 "더 엄하게 통치하겠다고 대답하셔야 합니다"라고 자문했습니다.
잠언서 27장 9절에 친구의 충성된 권고는 아름답다는 말씀이 있는데 르호보암 왕의 친구들은 충성된 충고를 하지 않았습니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자문에 따르지 않고 젊은이들의 충고에 따랐습니다. 사흘 뒤에 백성들이 찾아 왔
을 때 포학한 말로 대답했습니다. 결정적인 실수를 한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나라가 둘로 갈라졌습니다.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새 왕으로 추대했고 겨우 두 지파만 르호보암을 따랐습니다.
잠언서 26장 28절에 "아첨하는 입은 패망을 일으키느니라"라는 말씀이 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르호보암의 실수는 어떤 것들입니까?
유익한 말은 체면이 손상된다고 따르지 않고, 듣기 좋은 말을 따랐습니다.
경험이 많고 깊은 지혜를 가진 노인들의 충고를 무시했습니다.
덕으로 자기의 체면을 유지하여 하지 않고 물리적인 힘으로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한 일 때문에 이미 그의 후손들에게서 나라를 빼앗을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르호보암이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더라면 나라가 갈라지는 일이 그 당대에는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르호보암 즉위와 거의 동시에 나라가 갈라지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르호보암은 역꾼의 감독관을 파견합니다. 아마도 "당신은 가서 엄격하게 감독해라. 아주 무거운 채찍을 사용해라" 이런 명령을 내렸겠지요. 백성들은 감독관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르호보암은 황급하게 수레에 올라 도망을 쳤습니다.
노인들의 말을 듣지 않고 말을 잘못했다가 밑천도 건지지 못했습니다. 즉위와 동시에 그만 죽을 쑤고 말았습니다.
오늘날에도 르호보암이 저지른 실수가 사회 여러 분야에서, 그리고 교회에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을 많이 봅니다.
통치자의 주변에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심각하게 들립니다. 르호보암 왕의 젊은 친구들 같은 사람들만 권력의 주변에 있다고들 말합니다.
7절에 나오는 노인들의 충고, "왕이 만일 오늘 이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그들을 섬기고 좋은 말로 대답하여 이르시면 그들이 영원히 왕의 종이 되리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거나 이런 말은 무시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풍부한 경험과 깊은 지혜에서 나오는 말들이 무시됩니다.
여러분과 저는 개인적으로 르호보암의 실수를 저지른 일이 없습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은 일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르호보암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첫째, 일을 할 때 신중하게 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현대를 '3S'의 시대라고 합니다. Sport, Sex, 남은 하나는 Speed입니다. 속도입니다. 무엇이든지 빠른 것을 좋아합니다.
컴퓨터도 빠른 것일수록 좋습니다. 음식도 패스트푸드점들이 잘 됩니다. 이렇게 빠른 것들만 따르다보면 신중한 것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신중한 것을 잃어버리면 실수하기 쉽습니다.
몇 주일 전에 야곱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곱이 세겜 땅에 사는데 딸이 그 땅 추장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야곱이 이 소식을 들었습니다. 성경은 창세기 34장 5절에서 이 소식을 들은 야곱이 한 일을 이렇게 전해 줍니다.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렵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이전 같으면 펄펄 뛰면서 당장 어떤 일을 저지르려고 했겠으나 믿음이 깊어진 사람 야곱은 이제 신중을 기합니다. 아들들이 돌아오기까지 기다립니다.
이렇게 신중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야곱은 이 불행한 사건을 계기로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믿음을 새롭게 하고 벧엘로 올라가서 처음 만났던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원래 세겜은 야곱이 살 곳이 아니었습니다. 벧엘이 살 곳이었습니다.
반대의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므리바에 이르렀을 때 백성들이 불평을 합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도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기가 막히는 불평이지요.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지팡이로 반석을 치는데 한 번 치지 않고 두 번 쳤습니다. 혈기가 솟았던 것 같습니다. 참고 신중하게 행동했으면 좋았을 터인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물은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일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중하지 못한 결과가 이렇게 안타깝고도 두렵게 나왔습니다.
중진 실천신학자 한 분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분입니다. 이 분은 자기 삶의 좌우명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 다섯 가지라고 말합니다. "널리 배우며, 상세하게 묻고, 삼가 생각하며, 분명하게 판단하고, 독실하게 행하라", 삼가 생각하며 -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신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판단과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도장을 보면 "여기가 앞입니다"하고 하얀 뿔 같은 것을 박아 놓거나 몸에 표시를 해 놓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급 도장일수록 그것이 없습니다. 그저 둥그렇습니다. 도장 전문가가 "목사님, 왜 그런 줄 아십니까?"라고 묻기에 "글쎄요, 고급 재료에 흠을 내지 않으려고 그렇겠지요" 했더니 그것이 아니랍니다. 중요한 서류에 도장을 찍을 때 어디가 앞인지 도장을 찬찬히 돌려가며 살피면서 여기에 도장을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다시 한 번 생각하라는 뜻이랍니다.
특별히 말을 할 때 신중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세 번 생각하고 한 마디 말을 하라는 뜻입니다.
지난 주간 어느 성도 댁에 심방을 가니 심사명변(深思明辯)이라고 써놓은 도자기가 놓여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하고 명확하게 말해라" 이런 뜻이겠지요. 이것을 "깊이 생각해야 명확하게 말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치시는데 서기관과 바라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예수님께 어떻게 말하겠느냐고 합니다. 율법에는 이런 여인은 돌로 치라고 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따라 돌로 치라고 하면 사랑을 어기는 것이 되고 치지 말라고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려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기 위해서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종교지도자들입니다. 백성들의 신앙생활을 바르게 지도하는데 힘쓰지 않고 자기들의 지식을 올가미로 삼아 이렇게 사람들 곤경에 빠뜨리려 하는 종교지도자들을 볼 때 예수님의 마음속에 분노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이 위선자들아!"또는
"이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아!"
소리가 나올 만 합니다. 그리고 당장 급한 것은 어떤 대답을 들려주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말없이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을 쓰셨다는 유일한 기록입니다. 이 때 무엇을 쓰셨는지 알 수 없지만 요한복음 8장 7절에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땅에 무엇을 쓰시는 동안 계속해서 채근을 한 것을 보면 아마 꽤 오랫동안 쓰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시간을 끈 이유 가운데 하나가 신중을 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다음에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그 사이에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하나씩 하나씩 나갔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신중하게 처리했기 문에 그 여인을 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신중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깨달음을 줄 수 있었습니다.
신중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예수님 자신도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잠언서 14장 15절에 슬기로운 자는 자기의 행동을 삼간다고 했습니다. 판단과 말과 행동을 신중하게 하여 르호보암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둘째, 경험을 존중해야 합니다.
솔로몬 때부터 왕을 모신 노인들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그 충고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큰 불행을 가지고 왔습니다.
1980년대 중반의 일입니다. 아마 1987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때 저는 방송국의 방송실무 책임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낮에 갑자기 민방위 본부에서 긴급 전통이 날아 왔습니다. 적기가 한국상공을 침범해서 폭격을 하고 있으니 이것을 방송을 통해 알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무렵에 두 번 그런 일이 있었지요. 한 번은 주일 낮에 중국 민항기가 납치범들에 의해 우리 나라 땅으로 들어와서 춘천 부근에 착륙한 일이 있었고 한 번은 역시 중국 비행기가 서해안쪽으로 해서 귀순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 당시에는 국영방송에서는 자동적으로 적기내습의 경보가 울리게 되어 있었고 나머지 방송들도 이것을 받아 방송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 긴급전통문을 받아들고 벌떡 일어나서 사무실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느 아나운서에게 이 방송을 하도록 하나?" 이 것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이럴 때 아나운서가 흥분하면 불난 데 기름을 붓는 것이 됩니다. 몇 명의 아나운서가 사무실에 남아 있었는데 각기 특징이 있었습니다. 저 아나운서는 발음이 정확하고, 저 아나운서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박력이 있고, 저 아나운서는 침착하고, 저 아나운서는 원고 없는 방송에 능하고,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결론은 '무조건 경험이 제일 많은 아나운서'였습니다. 경험은 이렇게 소중합니다.
모세가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에 나왔을 때 처음에는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했습니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모세를 찾아왔다가 이것을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이드로는 미디안의 제사장이었지요.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19: 17∼18), 경험이 많은 이드로는 십부장, 오십부장, 백부장, 천부장을 세우도록 합니다. 모세는 그 충고에 따랐습니다.
만일 모세가 경험 많은 장인의 충고에 따르지 않았더라면 모세와 백성들은 광야에서 재판하다가 다 죽었을 것입니다.
출애굽기 18장 13절을 보면 모세가 재판하느라고 앉아 있는데 백성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세 곁에 서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재판, 내일도 재판, 재판하느라고 행진할 틈이 없었을 것입니다.
경험 많은 이드로의 충고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행진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경험은 지식의 어머니입니다.
그 누구의 지식도 경험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특별히 신앙은 경험이 중요합니다. 성경 읽고 설교 듣는 데서 끝난다면 신앙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경험해야 성장합니다. 성경 말씀을 실제생활에서 적용하는 가운데서 겪는 여러 가지 경험, 신앙원리를 실제생활에서 적용하는 과정에서 겪는 경험이 우리의 신앙을 성장하게 합니다. 은혜도 경험해야 하고 은사도 경험해야 합니다. 듣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오늘 저녁에 신앙간증의 밤을 갖습니다. 간증이 왜 유익하고 은혜롭습니까? 신앙경험을 듣는 것이기 때문에 유익합니다.
우리는 그 경험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듣고 읽는 것은 간접경험, 제2의 경험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남의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 르호보암의 실수를 반복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셋째, 노인들을 존중해야합니다.
르호보암은 노인들의 충고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실수 가운데서도 실수였습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한경직(韓景職) 목사님은 노인들의 특징을 "완숙"이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노인들, 특히 신앙으로 일생을 살아온 노인들은 모든 것이 완숙한 분입니다. 곡식이 무르익는 것과 같이, 모든 실과가 붉고 혹은 누렇게 익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도 완숙하고, 기도하는 것도 완숙하고 습관도 완숙하고, 인격도 완숙해집니다.
청년 시대는 잘 믿는다고 하지만 때때로 시험받고 흔들립니다. 청년 시대에서 나이 많기까지 예수를 끝까지 믿은 분, 그런 분들의 신앙과 인격과 생각은 완숙해서 어떤 환난이나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최근에 어느 기관에서 신앙간증 모집을 심사해서 시상하는 일에 관여한 일이 있습니다. 최우수작으로 당선된 신앙간증이 내용이 아주 은혜로웠습니다. 그런데 간증을 쓴 분의 나이가 스물다섯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구대학교 특수교육과 졸업반에 다니는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이 간증이 이제 방송으로도 널리 소개되고 책으로도 나올 텐데 이 분이 앞으로도 변함없이 신앙의 길을 걷기를 바라지만 인생과 신앙의 승리는 후반부에 나는 것인데, 만일 뒤에 실수가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오랫동안 토의를 하다가 노년까지 계속해서 신앙의 길을 걷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최우수작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을 가진 노인들은 승리자입니다. 우리는 노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합니다.
지금 한 신앙간증 심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신앙간증은 심사를 해서 입선작들을 결정한 다음에는 바로 발표하지 않고 현장 확인을 한 다음에 발표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응모한 내용이 사실인가? 그 분이 과연 자기가 쓴 간증대로 살고 있나?', 주로 그 분이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에게 물어봅니다.
이번에 두 번째 당선작으로 내정된 간증의 수준이 아주 높았습니다. 심사를 마치고 얼마 안 있어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현장 확인을 해 보니까 안 되겠다고 하던데요, 간증내용은 사실인데 그 뒤에 실족했다고 하던 데요, 어떻게 할까요?" 빼는 수밖에 없지요.
김재준(金在俊)이라는 장로교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찬송가 261장 "어둔 밤 마음에 잠겨"를 작사한 분입니다. 이 분은 우리 나라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분입니다. 1901년에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분으로 5공화국과 6공화국 시절에는 이미 연세가 많았지만 변함없이 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이 때 이 목사님이 즐겨 쓴 말이 노서지곡(老鼠知穀)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늙은 쥐가 곡식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나라가 잘 되는 길을 알고 있으니 나이 많다고 무시하지 말고 내 충고를 들으시오"하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이 세 기둥은 예수님과 바울과 요한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가르침은 복음서 네 권에 기록되어 있고 바울 서신은 열세 권입니다. 그리고 요한문서는 요한복음, 요한1서, 2서, 3서, 요한계시록 다섯 권입니다. 다음 주일부터 2월 한 달 새벽기도회에서 요한서신을 강해하게 됩니다.
이 가운데 나이가 늙도록 활동한 분은 요한입니다. 요한문서들을 보면 깊이가 있고 오묘합니다. 요한 사도의 연륜이 그런 깊이를 주는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인 세대가 무시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컴퓨터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지식은 주어도 지혜는 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연세 많은 분들에게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쓸 때 제일 강조한 것이 연경화(年輕化)란 것이었습니다. 중국말로는 '닌찡화'라고 합니다. '나이를 젊게 한다' '젊은 세대들이 앞장서서 일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퇴출 현상 같은 것이 각 분야에서 일어났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연경화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퇴출되었던 원로 세대들이 다시 중용되어 오늘날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가진 대륙을 이뤄내고 있습니다.
레위기 19장 32절에는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센 머리는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말합니다. 이 말씀에 따라 노인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충고를 존중하기 바랍니다.
오늘날 르호보암의 실수가 반복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교회에서도 르호보암식의 실수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많습니다.
신중하고, 경험을 존중하고, 원로 세대들을 존중하여 르호보암의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조화와 안정을 이룬 원숙한 삶, 그런 가정, 그런 사회와 국가, 그리고 그런 교회를 이루는 일에에 앞장서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펴온 글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