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의 등장과 5· 18 민주화 운동
10· 26 사태(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게 피살)로 당시 국무총리였던, 최규하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하다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됨(1979~1980) →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는 붕괴되었다. → 이 사건의 수사를 맡았던 국군보안사령관 전두환이 자신의 측근(노태우 등)을 모아,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감금하고, 정권을 장악함. 이를 ‘12· 12 사태(1979.12.12)’라고 한다. →‘12· 12 사태(12· 12 사건)’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이다. → 박정희의 피살로, 권력의 공백 상태를 밀고 들어온 것은 군인들이었다. 당시 보안 사령관으로 군대와 국내의 정보를 폭넓게 파악하고 있던 전두환과 일부 군부 세력은 반란을 일으켜 지휘권을 장악하였다.(1979. 12. 12. 군사반란) →‘신군부’라는 명칭은 12· 12 군사반란을 일으킨 하나회와 함께 쿠데타에 참여한 장성들을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군부와 구분하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하나회’는 1958년 육사 11기생인 영남 출신의 전두환, 노태우, 정호용, 김복동 등 7명이 친목모임으로 만든 ‘칠성회(七星會)’가 시초이다. 이들은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대통령의 지원을 받아 군부 요직을 장악했으며, 1962년 ‘하나회’로 조직을 확대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사망 직후 육사 11기, 12기생들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회’ 구성원들은 전두환을 중심으로 정예 인원을 규합하고, 12· 12 군사반란, 5· 18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는 다단계 쿠데타를 일으켜 정치권력을 장악했다.
2) 5· 18 민주화 운동
5· 18 광주민주화운동은,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을 요구했던 민주화 시위운동이다. → 5· 18 민주화 운동은 1980년 광주에서 시민들이 계엄령 철폐와 전두환 퇴진(신군부 퇴진), 유신세력 처벌을 요구했던 민주화 시위로, 광주에서 민주화 운동을 벌였다는 뜻으로 '광주 민주화 항쟁'이라고도 부른다. → 계엄령(戒嚴令)은 국가 비상시, 국가 안녕과 공공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헌법 일부의 효력을 일시 중지하고 군사권을 발동하여 치안을 유지할 수 있는 국가긴급권의 하나로 대통령(최고 통치권자)의 고유 권한이다. → 5· 18 민주화 운동은 반군부, 반독재의 민주화 운동이다. → 민주화란, 정치, 경제, 문화를 포함한 사회 전 영역에서 자유와 평등을 포괄한 민주주의의 원리들이 확산되고 심화되는 과정을 말한다. →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은 군대를 동원하여(무력으로), 5· 18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였다. → 5· 18 민주화 운동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의 토대가 되었다. → 전두환 등의 신군부는 5· 18 민주화 운동을 진압한 직후에,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전두환)이라는 초헌법적 기구를 두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 전두환 등의 신군부는‘사회 정화’라는 구실(명분)로, 언론사를 통폐합 하고, 뉴스를 사전 검열했으며, 삼청교육대를 운영하고, 민주화 시위를 탄압하였다.→ 이후 최규하를 대통령에서 사임(사퇴)시키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간접선거로 전두환이 대통령을 선출하였다(1980. 제 11대 대통령). → 전두환은 헌법을 ‘대통령 7년 단임과 대통령선거인단에서 대통령을 간접선거’를 골자로 하는 개정하였다.(제 5 공화국) → 이 헌법에 따라(간접선거) 치러진(체육관에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모여서 선거함) 대선(대통령을 뽑는 선거)에서 당선되어, 제 12대 대통령이 되었다(1981 ~ 1988. 그래서 체육관대통령이라고도 함). → 이 때 부터를 ‘제5공화국’이라고 한다. → 체육관에서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모여 뽑았기에, 박정희보다도 정통성이 약했다. 정통성이란, 통치를 받는 사람에게 권력 지배를 승인하고 허용하게 하는 논리적ㆍ심리적인 근거를 말한다. 쉽게 말해, 국민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을 말한다. 국민들이 직접 뽑은 것(직접 선거)이 아니니까, 정통성이 약한 것이다. → 전두환은 정권이 안정될 때까지 언론을 통제하고,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을 탄압하였으며, 강압적으로 반대세력을 탄압하였다. → 그 후 정권이 안정되면서, 약한 정통성을 만회(바로잡아 회복함)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유화정책(宥和政策. 상대편을 너그럽게 용서하고 사이좋게 지냄)을 폈다. → 교복· 두발 자유화, 야간 통행금지 해제, 해외여행 자유화, 각종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 프로 야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