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살전 2:11~13
오늘의 본문 13절 앞부분에 보시면 사도 바울의 끊임없는 감사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놀랍도록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비록 바울 자신은 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을 통해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한 인간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변화된 삶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보면서 바울은 정말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는 의미를 성경에서 예로 든다면 이런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보시면 사도 바울이 빌립보 도시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들어간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그 감옥에는 감옥문을 지키는 이방인 간수가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그 간수에게 예수 복음을 전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이 때 이 복음의 말씀을 들었던 감옥의 간수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이 간수의 마음에서 일을 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결국에 그 간수는 사도 바울을 자기의 집으로 데려가서 손발을 씻게하고 음식을 제공 받습니다. 그리고 물세례를 받습니다. 이런 간수의 모습이 곧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은 자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 간수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아니하고 사람의 말로 받았다면 이 간수는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안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하나님을 거절한 불신앙인으로 남았을 것입니다. 이런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느냐, 아니면 사람의 말로 받았느냐 하는 문제는 너무 중요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의 본문 중반절 이하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진정으로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말씀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여지고 나타난 신앙인의 모습들이 너무 아름답고 보기에 좋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날마다 끊임없이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는 사실은 너무 중요합니다. 왜 중요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만 그 하나님의 말씀이 받는 자들의 심령에서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받는 자들의 심령에서 일을 행할 때 그 사람의 심령이 하나님의 사람답게 변할 뿐만 아니라 변화된 신자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날의 기독교인들에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큰 문제 중에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분명코 머리 개념의 지식으로는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습니다. 물론 강단에서 전해지는 설교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 영상으로 전파되는 설교자들의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습니다. 여기까지는 별로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보다 더 중요한 아래쪽 가슴에서는 은근히 보통 사람들의 말처럼 인정하고 보통 사람들의 말처럼 받습니다. 그러다보니까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심령에서 일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일하지 않으니까 그 사람의 모습은 전혀 변화의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몸은 교회를 출입하고 있지만 그 사람의 영혼과 삶은 여전히 불신앙인처럼 살아갑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다시 말합니다. 지금 이 곳에 계신 여러분 모두는 성경의 말씀과 설교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습니다. 이렇게 인정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년 또는 수십년동안 교회를 출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속이나 밖으로 나타나는 모습들에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아직도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받는 것이지 영혼이 깃들어있는 가슴으로는 사람의 말처럼 듣거나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위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되지를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의 영혼과 삶은 여전히 지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하여 이사야 29:13절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사람의 계명으로 받았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합니다. 입술로는 얼마든지 기도하고 찬송합니다. 분명코 머리 개념의 지식과 이해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인정하고 받습니다. 제가 서 있는 이런 강단에서 전전해지는 말씀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래서 전해지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아멘으로 화답을 합니다. 아멘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씅으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실제에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편 보다는 거절하는 편을 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은 겉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인정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속에서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사람의 영혼가 삶은 여전히 미성숙한 지난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붙들고 사는 것입니다.
..“외치는 자 많건 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일고 헤메이며 탕자처럼 기진 하니 믿는 자여 어이할 꼬”...외쳐지고 들려지는 말씀은 쏱아지는 홍수물처럼 많지만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의 영혼과 가슴에 흐르는 생명수는 메말라있다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말처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이 교회에 속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과 동떨어진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매우 슬퍼하십니다. 뜻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슬퍼합니다.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서울의 강남에 있는 어느 대형교회의 핵심 장로가 음주운전하다 사고를 냈습니다. 피해자가 큰 부상을 당했는데 뺑소니를 쳤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교계 안팍에서 말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그 유명한 대형교회의 장로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동안 그 큰 교회의 장로교가 되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해지는 설교를 정말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들을 때마다 아멘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분의 삶은 하나니의 말씀과 멀리 떨어졌습니다.
어쩌면 이런 사람은 머리 개념의 겉으로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을 했을뿐이지 영혼이 깃들어 있는 가슴으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를 비롯한 여러분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자는 것입니다. 시람의 말처럼 받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 속에서 일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을 보다 더 복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더욱 풍상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