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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심사평 -겨울호
고사목
이종건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요양병원으로
죽은 듯 죽은 것이 아니다
가로로 세로로 반듯함 그대로
눈과 귀는 구름에 묻히고
하늘에 입을 열고
듣거나 말거나 세상살이 오물오물 읊조림은
살아도 삶이 아니라고
창에서 아기가 자라고 어미 새가 먹이를 물어준다고
가장 춥고 가장 더워도 홀로 높은 곳에서 까맣게 탄다고
성장은 멈췄으나 산소를 흡수하고도 하루에 수십 번 죽는다고
구름과 비와 눈의 화살을 참고
무시로
식물이나 동물도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내내 하얗게 부비고
식물인 듯 아닌 듯 식물성으로 숨을 유지하는 공통점은
움직임을 포기하고
나고 죽음의 남다른 마음을 안고
그 꼭대기 고사목으로 우뚝하다
아픔도 없고 말도 없고 경청만 하다가
짧은 기간 백 년의 고독으로 낮은 숨을 쉰다
이젠 천둥도 번개도 찾아오지 않는다
남자의 유산
근육질의 남자가 웃옷을 벗은 채 하체는 수영복보다 짧은 팬티로 앞을 가리고
여자 연예인들 앞에서 팔뚝의 알통과 가슴의 근육을 씰룩거리며
그 남자의 오른 팔에는 낯익은 여자 연예인이 매달려 바둥거리고 있다
저녁 식사시간대 이 TV 프로의 마초 본능으로부터
순식간에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 사이
여자 시청자들의 수컷을 향한 시선이 흥건하다
가수든 댄서든 툭하면 상의를 벗어던져 야생적 비린내에 청중은 열광한다
푸릇푸릇 울퉁불퉁 부딪치는 물결이 하얀 거품으로 치솟아 내리는
나지막한 속삭임에 전신이 축축해진다
이 계절 눈꽃빙수가 녹은 우유 빛 달콤한 맛이 미끈거리고
여자의 몸에 착 달라붙은 어깨 파인 배꼽티, 핫팬츠, 털 한 오라기도 귀찮은
더위에 가릴 곳만 마지못해 가린 채
몸 밖으로 터져 나오는 암컷은
속수무책으로 내 눈을 세차게 잡아당기는 사이의 공기를 격렬하게 흔들어 놓는다
곳곳에 비릿한 젊음의 냄새가 사방으로 터져 나오는
펄떡이는 요동이 얼마나 오랜 일인가
늙고 죽는 것처럼 대대로 이어받는 이 바래고 폭력적인 유산은
일요일은 야생이 번식한다
어둠과 태양은 낮과 밤을 번갈아 밀당하며 영역을 다투고
공중엔 새와 바람의 전사들이 뒤엉켜 직진하고
땅에선 밀림이 하늘을 대적하듯 치솟는다
푸르디푸른 밀림 한가운데 한가하던 동물들은 피의 소리를 쫓아
한순간 쫓고 쫓기며 피바람을 일으키며
하얀 이빨이 부딪치고 대가리 뿔을 걸고 힘겨루기를 하고
피를 찢고 피를 핥으며
달아나는 먹잇감은 잇자국에 주저앉아 뜯기고
펄떡이며 흰 거품을 문다
세상살이 피를 먹고 광기를 먹고 풀 먹은 양을 잡아먹고 계약서를 찾아 더듬는다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송곳니를 세우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으르렁대며
포식 후 정글을 빠져나와 포효하며
일요일 새벽은 야만이 우글거린다
진주만을 공습하고 6.25전쟁을 일으키고 1.21 무장공비들을 침투하고 5.18 민주화 혁명이 발발하고
밤새 하얀 우울증에 시달리고 총부리를 향하여 월요병을 낳는다
숨을 죽이고 풀을 먹는다
풀을 죽이고 숨을 쉬고 잠이 들고
잠을 깨어 마주보며 집을 찾아가고
밀림의 일요일은 혼돈 속의 질서라는 정글의 법칙이 산다
당선소감
저는 무재주하고 부족한 태생이어서 30년을 배우고 30년간 돈을 벌었으나 남는 게 없고 다시 30년을 향하여 백세시대에 진입합니다. 이맘때 무재주하고 부족함을 만회하는 이음길을 모색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저 나름의 공감을 에너지로 채우려 합니다. 수필만 아니라 시를 통해서도 공감의 지평을 넓힌다면 저의 글과 삶은 이상계와 실재계의 양 축을 횡단하며 더 깊이 빠질 것입니다. 시를 배우면서 채찍을 원망하였지만 곧 죽비의 깨우침임을 알았습니다. 결국, 삶은 마디가 있어 백터가 변합니다. 마디는 잠시의 성찰로 인한 변화와 업그레이드입니다. 그 순간 제가 걷고 있는 시공을 발견합니다. 제가 이 시기 세상과 사유를 미학적으로 섬세하게 들여다보려는 의지를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의 시세계를 인정해주신 심사위원과 권대근 교수님께 감사합니다.
약력
35년 직장인으로 마감하고 『겨울신록1』을 출간하고, 에세이문예 수필로 등단함
한국본격문학가협회, 부산수필문학협회, 부산남구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겨울신록2』에세이집을 출간하고, 이번 에세이문예 시인으로 등단
아버지의 뒷모습
정창원
얼마 전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읽었다. 구례를 배경으로 빨
치산 출신인 아버지의 삶을 그렸다. 구례에서 어린 시절 추억이 아버지를 불러왔다. 아버지의 40주기 기일이 다음 달이다. 51세 젊은 나이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중등학교 교감 자격증을 어렵사리 취득하고 교감 발령도 받지 못한 채.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으시느라 빵 모자를 둘러쓰고 작은 마당에 얼어붙은 얼음덩이를 깨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큰아버지께서 6.25 전쟁 때 아버지를 대학에 보냈다. 할아버지는 어깨에 뿔난 사람(지게 지고 농사짓는 사람)이 최고라고 할 만큼 가난했다. 큰아버지는 말단 공무원이었고 큰어머니는 쌀장수를 하셨다. 큰집 8남매 식구가 먹고살기에도 빠듯한 살림이었다. 아버지는 중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틈만 나면 큰아버지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고 하셨다. 큰집 형 대학 등록금을 보내줘야 한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되새김하셨다. 아버지께서 구례중학교에서 근무하실 때였다. 술을 좋아하셔서, 거나하게 취하면 지인 집을 찾아가 술주정을 하셨다. 멀리 길거리에서 취객이 큰소리를 치면, 영락없이 아버지였다. 그때는 술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책이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비가 오는 날이면 봉북리 땅 고랑에서 구례중학교까지 꽤 먼 거리를 우산을 들고 가서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왔다. 아버지는 꾸지람보다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칭찬이 삶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네 남매의 교육을 위해 내가 5학년 되던 해에 아버지는 순천으로 근무지를 옮기셨다.
중학교 다닐 때, 집안에 이상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화투놀음에 빠졌다. 가정 여기저기에서 상처가 났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전날에도 어머니는 화투를 치시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으셨다. 아버지께서 아침밥을 챙겨주셨다. 나는 몇 달 동안 어머니와 일절 대화하지 않았다. 어머니 놀음 빚은 대추나무 연 걸리듯 늘어났다. 아버지는 밤중에 여수 공동묘지에 누워 계시는 할아버지께 두 번 다녀오셨다고 했다. 한번은 전혀 무섭지 않았는데, 두 번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으면 아버지는 한밤중에 외딴 산 공동묘지에 두 번씩이나 가서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했을까?
하정운 시인의 시구처럼 힘들고 슬픈 일이 있어도 아버지는 속으로 우셨을까? 교사의 아내가 화투놀음에 빠진 상황이 아버지 가슴 속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겼는지 상상할 수 없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에 네 남매는 한 명도 삐뚤어지지 않고 다행히 잘 자랐다. 각자의 목표에 일부 차질은 빚었지만, 자수성가했다고 자평한다. 어머니에 대한 원망 없이 수년간 네 남매가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다녔다. 어머니의 타고난 복이다.
아버지는 가정을 지키시려고 몸부림치셨다. 전라남도 민속에 관한 책『우리 조상의 빛난 얼』을
동료 교사와 함께 썼다. 편집주간인 장학사 친구가 교감승진 점수에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시골을 방문하여 옛날 흔적을 사진에 담고, 여름 내내 더위를 벗 삼아 마루에 상을 펴고 설명문을 썼다. 방학 때면 나도 사진의 설명문 쓰는 일을 도왔다. 교감 승진 시험이 있을 때 집 가까운 여관에서 공부하셨다. 중,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아버지께서 책을 쓰시고,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물론 가끔 술주정하시는 모습도 보았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께서 교복을 맞추자고 하셨다. 아들이 대학에 들어간 게 못내 자랑스러웠던 모양이다. 한 달에 한두 번 집에 올 때, 아버지는 엔지니어는 기술만 배우면 된다고 하시면서 데모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셨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광주시가 계엄 군인에 의해 봉쇄되었다는 소식을 들으시고 하숙집으로 한걸음에 달려오셨다. 계엄 군인이 도로 곳곳에서 차를 세우고 대학생을 색출해서 잡아갔다. 다음 날 새벽 아버지는 어렵사리 택시를 잡으셨다. 택시기사는 검문이 무서워 하숙생 3명을 한꺼번에 태워주지 않았다. 먼저 아버지와 내가 택시를 타고 담양으로 나왔다. 다시 하숙집으로 가서 아버지는 앞 좌석, 예비역 선배는 뒷좌석, 친구는 트렁크에 타고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해 광주를 빠져나왔다.
1762년 출생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자식들에게 편지를 썼다. 한순간에 양반 신분에서 몰락하여 폐족이 된 자녀가 자존감을 잃지 않도록 가르침을 주었다. 가문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책을 통해 지식을 얻고 지혜를 터득하여 한 단계 더 높은 인격체로 성장하라고 했다. 1948년 출생 김용택 작가는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작가의 눈으로 시골 생활을 그리며 그 속에 아들에게 전하는 말을 녹여 냈다.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새로운 각오를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라고 했다.
1933년 출생인 아버지는 글을 통해 어떤 가르침도 남기지 않았다. 흔한 밥상머리 교육도 없었다. 그러나 가정을 지키려고 혼신의 열정을 몸붓으로 쏟으셨다. 1960년 출생인 나는 아버지의 이러한 뒷모습을 보며 열심히 공부했다. 사회적, 경제적으로는 어느 정도 힘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보여줬지만, 정서적으로 따뜻하게 감싸고 소통하지 못했다.
큰아들은 직장에 다니며 대학원 졸업 논문 준비하느라 밤늦게까지 공부했다. 논문이 막힐 때마다 “아빠”하고 전화했다. 며느리를 통해, 아내를 거쳐 아버지의 성실한 삶을 존경한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작은아들은 대기업 인턴 자기소개서에서“아버지는 저의 롤모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한 회사에 30년 넘게 근무하셨는데, 성실함을 꾸준하게 유지하셨고 자기발전을 위해 항상 집에 오시면 공부를 하셨습니다.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 몸소 행동으로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라고 썼다.
두 아들에게 인정받는 나의 모습은 사실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 아버지는 이 세상에 계시지 않지만, 아버지의 삶의 모습은 나를 통해 어느결에 두 아들에게까지 이어져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이런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유산이다.
장맛비가 멎은 청명한 하늘 아래서, 아버지를 목타게 부르고 싶다.
“아버지, 아버지”
마지막 선물
최용석
“꿰에엑”괴성과 함께 녀석이 달려온다. 목을 길게 빼고 커다란 날개를 퍼덕이며 수면을 박차니 사방으로 물이 튄다. 우뚝한 황금빛 부리는 전투에 임하는 용감한 스파르타의 기병 같다. 평화롭던 개천이 일순간 혼란에 휩싸인다. 꾸꾸는 그렇게 요란한 행동으로 양정천을 사선으로 넘나들며 나를 환영했다. 갑작스러운 병고로 예닐곱 달 동안 양정천을 오가지 못하다가, 정년퇴직을 며칠 앞두고 작별인사라도 할 요량으로 녀석을 찾아왔는데 잊지 않고 기억해 주니 고맙고 놀랍다.
백 오십만 평의 현대자동차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아담한 하천 하나가 동해바다로 흐른다. 작은 물줄기들이 양정동에 모여서 개천을 이룬다고 해서 양정천이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회사에서 특별히 하천 주변을 잘 가꿔서, 철 따라 볼거리가 장관을 이룬다. 그 풍경이 보기 좋기도 하거니와 운동도 할겸해서 일부러 30여분 거리를 돌아서 출퇴근 했다.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는 개나리꽃과 금계국이 하천 양편을 길게 도열해서, 출퇴근하는 우리는 노란 제복의 사열을 받는 듯하다. 여름저녁 타오르는 붉은 노을이 수면에 잠길 때의 그 장엄함과, 햇살 좋은 가을날 샛노란 은행잎이 양정천에 비치면, 어느 것이 반영이고 어떤 것이 실물인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의 몽환적인 풍경이 연출되는 곳이다. 물속은 또 어떤가. 잉어와 가물치는 지천이고 그 크기 또한 만만치가 않다. 한 자짜리 잉어는 월척 축에도 끼지 못할 정도의 크기를 자랑한다. 밀물 때는 양정천 지류를 타고 올라온 전어와 숭어가 떼로 밀려와서 군무를 이룬다. 어종과 수량이 풍부한 것이 출퇴근의 잰걸음을 붙잡기에 충분하다.
이 별천지의 백전노장이 바로 꾸꾸라는 거위다. 그 큰 덩치가 독보적인 데다가 수륙양용을 오가는 전투력이 이곳 양정천에는 맞수가 없다. 몇 해전 까지만 해도 한 쌍이 다정하게 양정천을 오가며 노닐었는데, 언제부턴가 한 마리는 보이지 않았다. 혹자는 지난 홍수에 떠내려갔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병사했다고도 하고….
서너 해 전 오후 나절 퇴근 무렵, 동그마니 외롭게 천변에서 해바라기 하는 녀석이 가여워 보여 가만히 그 곁으로 다가갔다. 그랬더니 목을 길게 빼서 쌕쌕거리며, 협박하고 경계하듯이 날개를 퍼덕인다. 그 큰 부리로 나를 쪼아댈 듯 위협한 후 물 건너편으로 갔고, 거기서도 분이 덜 풀렸는지 한참을 꿱꿱거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자기 영역을 침범한 데 대한 항의인 듯하다. 처음에는 그 위세가 너무 대단해서 슬며시 뒷걸음질 쳤지만, 그날 이후 여름 한 철을 녀석이 좋아하는 먹이인 배춧잎이나 물풀을 흔들면서, 반려 견 어르듯 달래고 다정한 목소리로 공을 들였더니 녀석의 성깔이 조금씩 누그러들면서 급기야는 대여섯걸음 앞까지 다가오는 발전을 보였다. 특유의 기괴한 울음소리와 성품이 사납기에 좀 온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꾸웩 꾸웩” 울부짖는 소리보다 부드럽게 발음이 되는 꾸꾸라는 이름도 지어 주었다. 그날 이후로 양정천을 오갈 때마다 나는 꾸꾸를 불렀고 녀석은 예외 없이 “꾸웩 꾸웩” 소리를 지르며 물살을 가르고 큰 날개를 퍼덕이며 뒤뚱뒤뚱 걸음으로 다가와 내 주변을 서성이곤 했다. 그렇게 나는 삼사 년간 양정천을 사이에 두고 출퇴근길에 꾸꾸와 요란한 조우를 했다. 파란 수풀속에 좌정한 그 모습은 흰 도포를 입고 무념무상에 빠진 신선을 보는 듯하고, 노란 금계국 사이를 천천히 거닐때는 유럽 왕실 공주님의 행차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뇌혈관에 이상이 생겼다. 꿈결같이 아스라이 눈을 떠 보니 병원이다. 오후반 출근을 준비한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사이 반나절이 지났단다. 뇌혈관의 해마부분이 막히면서 부분적으로 기억을 상실했다는 의사의 진단이다. 일주일간 종합검사를 했다.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후유증이 남았고, 꾸준한 약물치료와 정기적인 검사를 요한다는 의사의 훈시와 협박이 있었다. 나는 지난 삼십 오 년을 주야간 2교대근무를 해왔었다. 일주일마다 바뀌는 수면시간과 식사시간을 용케 도 잘 버텨왔던 것이다. 그때는 열심히만 살면 되는 줄 알았다. 일의 특성상 공휴일에도 출근했다. 가장은 그래야 되는 줄 알았고 그렇게 살아왔다. 뒤돌아보면 미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못 본 몇 달 사이 꾸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멀리서 볼 때는 비단 손 결 같던 깃털이 움퍽움퍽 빠졌고 그 사이로 파리한 속살이 비친다. 빛 바랜 황갈색의 우뚝한 부리는 오래된 각 질로 들떠 있었고 안쪽의 돌기도 무뎌 져 보인다. 짧고 거친 다리에는 수많은 생체기가 남아 있고, 무엇보다 한쪽발의 물갈퀴가 기다랗게 찢어져 너덜너덜 한 것이 아닌가. 뭉실하고 넓게 갈라진 모양으로 보아 오래된 상처 같아 보였다. 한밤중에 족제비의 습격을 받았거나 날카로운 철조망에 걸려서 물갈퀴가 찢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근처에는 족제비도 철조망도 없기 때문이다. 공해와 생활오수에 계속 노출되면서 생긴 질병이 원인이거나, 예전에 가볍고 사소한 상처들이 나이가 들면서 노화현상으로 나타난 건 아닌지. 뇌경색 후유증으로 떨리는 손과 안과질환으로 장기간 복약하는 나로서는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찢어진 갈퀴로 재바르게 물살을 헤쳐나가자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 성치않은 몸으로 이 지역의 터줏대감으로 군림한 그 기백이 나를 숙연케 했다. 자신의 상처난 치부를 오늘 내게 보여줌으로써 꿋꿋이 병마를 이겨내라고 하는 꾸꾸의 마지막 선물은 아닌지.
이 시간 이후로 우리가 만날 수 없다는 걸 녀석은 알고 있다는 듯이, 예전 같으면 쉴세없이 구구거리며 입질을 해댈 텐데 오늘은 조용조용하다. 공장 굴뚝의 하얀 연기는 스치는 바람에 흩어지고, 꾸꾸는 날개죽지에 머리를 묻고 꾸벅꾸벅 졸고 있다.
[심사평]
이종건 씨의 시 <고사목> 외 두 편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시는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가치를 점한다. 무엇을 보느냐는 내용이나 소재에 그치는 차원이지만, 어떻게 보느냐는 그 주제와 표현방식까지를 포함하는 범주의 관점이기 때문이다. 사진 분야에서 피사체의 선택 이전에 카메라 렌즈의 성능과 촬영 기술이 요구되듯이, 시창작에서는 형상화의 능력도 필요하지만 우선 사물을 보는 인식의 눈이 더욱 요구된다. 문학의 출발점을 인식에 두는 이유도 그렇다. 다시 말해서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새롭게 보기’, ‘다르게 보기’, ‘낯설게 보기’가 요구된다. 이종건 씨의 <고사목>은 위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를 고사목과 상관화시키는 것은 사물을 정관하는 인식의 눈이다. 객관적 상관물을 이용하여 뜻을 전달하겠다는 시창작정신이 시인으로 첫 출발하는 자세로 매우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시적 화자는 오랫동안 병원에 누워있는 환자를 보고 있는 듯하다. ‘산소를 흡수하고도 하루에 수십 번 죽는다’나 ‘식물인 듯 아닌 듯 식물성으로 숨을 유지하는’ 등의 시구는 누워 있어도 움직임을 잃은 사람의 삶은 삶도 아니고 죽음도 죽음이 아니라는 절망적 판단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서서 고독한 시간을 멍하니 보내려면 환자나 가족들은 고장난 벽시계를 보고 있는 듯 느껴질 것이다. 백세시대에 와서 사회적 영역에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병상을 지키며 시간과 공간을 잠식하고 사는 사람을 시적 화자는 ‘고사목’으로 표현했다. 시적 화자가 마주하고 잇는 사람은 고통도 감정도 없이 남의 말을 경청만 하고 있는 수도승이다. 여생은 가로세로 눕는 대로 반듯하다. 이 시는 고령사회의 문제를 정조준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는 안정화된 정서 속에서 직조되어 세련된 미감을 자아내고 있다.
‘짧은 기간 백 년의 고독으로 낮은 숨을 쉰다/ 이젠 천둥도 번개도 찾아오지 않는다’라는 마지막 의미화는 이 시의 백미다. ‘짧은 기간 백 년의 고독’은 살아도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는 생환 불가의 환자를 둔 가족의 잠 못 이루는 심정을 잘 표백하고 있다. ‘천둥도 번개도 찾아오지 않는다’ 역시 절망과 고통의 흔적들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고사목을 지키고 선 가족들의 말못하는 고뇌를 짙게 드러내고 있어 공감을 자아낸다. 의식의 항아리에 고여있는 언어를 발효시키고 여과시켜 곰삭인 뒤에 퍼올린 진곡주라고나 할까, 절망적 상황을 구체화하기 위해 동원한 적절한 시어의 취사선택도 예사롭지 않거니와 그 시어를 연결하는 재치도 비범하다고 하겠다. 시인으로서 새 출발에 큰 박수를 보낸다.
정창원의 <아버지의 뒷모습>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아버지가 사라진 시대 들려오는 사부곡이라 눈길을 끈다. 작가는 결말부에 ‘아버지의 뒷모습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유산’이라고 썼다. 이런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은 작가의 아들들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그 아들도 작가에게 “아버지는 저의 롤모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한 회사에 30년 넘게 근무하셨는데, 성실함을 꾸준하게 유지하셨고 자기발전을 위해 항상 집에 오시면 공부를 하셨습니다.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 몸소 행동으로 저에게 보여주셨습니다.”라며 존경을 표했다는 것이다. ‘두 아들에게 인정받는 나의 모습은 사실 아버지를 통해 배웠다.’고 하는 작가의 고백이 자식에게 되물림되고 있어 감동을 준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다. 수필이 좋은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사람살이에 ‘정’이 필요하다는 작가인식이 형상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때 문학성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언어예술로서 수필의 문학성은 당연히 언어적 형상화에서 나오겠지만, 수필은 언어적 형상화 못지않게 작가의 내면 풍경과 체취 그리고 향기를 내는 인간미가 중요하다. 이 수필은 인식의 측면보다 작가의 인간적 측면이 더욱 부각되는 수필이다. 정씨는 아버지가 “전라남도 민속에 관한 책『우리 조상의 빛난 얼』을 동료 교사와 함께 썼다.”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한다.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가정의 가치와 부자지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어 훈훈함을 안겨준다. 대를 이어가며 이루어지는 부자지간의 서로 존경하는 마음을 수필 형식에 담아 절절한 사부곡으로 승화시켰다. 이 작품 역시 ‘정’의 문학인 수필적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수필의 백미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포인트를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설정한 것이고, 그 뒷모습을 ‘세상의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빛나는 유산’으로 의미화한 부분이라고 하겠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다. 정이란 인간의 영혼이 응결된 심성의 꽃이다. 맑은 영혼을 드러내는 투박한 그릇이요, 풋풋한 향기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인간애, 그것이 없는 수필은 이미 수필이 아니다. 인간학의 명제에 바로 답하지 못하는 작품은 이미 수필로써 실패한 것이다. 글은 그 사람이다. 무심히 내뱉는 말 속에는 이미 그의 인생관이나 처세의 방식이 드러나 있어,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 수필은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따뜻한 사랑이 녹아있다. 그렇다고 모든 수필이 사랑만 있다고 쓰여지지 않는다. 형상적 체험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최용석의 <마지막 선물>을 당선작으로 선한다. 원래 ‘마지막’ 이란 말이 형용사적으로 쓰인 수필은 대체적으로 모두 감동을 준다. 유한한 인생에서 마지막이란 말은 늘 애잔한 정서를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수필은 지장에 출퇴근하면서 만난 어떤 새와의 교감을 바탕으로 쓴 글인데, 동병상련의 감정이 녹아 있어 어떤 작품보다 아프게 읽힌다. 처음에는 자기 영역을 침범했다고 생각한 새가 최씨에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가깝게 잘 지내고 싶다는 최씨의 진심을 이해한 새가 다가오면서 서로간의 우정 아닌 우정이 싹트는데, 그 과정과 마무리가 진한 감동을 준다. 사람과 동물 간의 정이 내리는 빗줄기가 메마른 대지를 적셔 생명력을 주듯, 자연스럽게 배어나온다. “자신의 상처난 치부를 오늘 내게 보여줌으로써 꿋꿋이 병마를 이겨내라고 하는 꾸꾸의 마지막 선물은 아닌지.”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둘의 우정이 가슴 속으로 스며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수필은 정의 문학이자, 고급문학이다. 가슴에 깃들어 있는 사랑으로 의미화하고 있어 신선한 충격을 준다고 하겠다. “한밤중에 족제비의 습격을 받았거나 날카로운 철조망에 걸려서 물갈퀴가 찢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근처에는 족제비도 철조망도 없기 때문이다. 공해와 생활오수에 계속 노출되면서 생긴 질병이 원인이거나, 예전에 가볍고 사소한 상처들이 나이가 들면서 노화현상으로 나타난 건 아닌지. 뇌경색 후유증으로 떨리는 손과 안과질환으로 장기간 복약하는 나로서는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 찢어진 갈퀴로 재바르게 물살을 헤쳐나가자면 얼마나 애를 썼을까?”라는 대목은 수필의 문학적 성취를 견인하는 데 기여한 바가 크다. 문자언어를 넘어서서 작품이 풍기는 향기를 낸다고 하겠다. 이로 인하여 이 수필은 여운이 감도는 울림을 주기도 한다. 꾸꾸를 걱정하는 작가의 심경묘사는 끝없는 여운을 나타내고, 인간미를 부각시켜 향기를 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문단에 처음 나오는 작가는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여야 한다. 수필가는 ‘보이지 않는다’의 눈으로 어두운 세상을 비추고, 바람직한 사회의 거울이 되어 휘청거리는 가치를 바로 비추어 내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수필은 내용이 형상화 이상으로 매우 중요하다. ‘마지막 선물’은 반드시 있어야 할 당위적 가치를 주제로 내세우고 있는 글로써 심각한 환경오염 또는 생명경시 현상으로 생존의 위협을 받는 동물의 위기 상황을 고발하면서, 인정이 메마르고 각박하다고 알려진 우리 사회의 숨은 한 단면을 체험 수법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무엇보다도 이 수필은 수필문학이 갖는 본질적 특성인 ‘정’을, 생태적 합리성을 통해 더불어 함께 상생하는 가치덕목으로 승화시켜내었기 때문에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깊이 있는 사유와 형상미학의 구현에 신경 쓴 결과가 당선을 영광을 가져왔다고 하겠다.
■ 심사를 마치며
제77회 본지 신인상에 응모해 준 예비 작가분들 그리고 많은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특히 바쁜 일상 속에서도 문학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좋은 글을 써서 본지에 응모해 준 당선자들에게 감사함을 다시 전한다. 응모자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사랑, 인간애, 자신에 대한 성찰과 고백 등은 우리 사회를 건전하게 가꾸어 가는 데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이것이 우리가 문인을 배출하는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에세이문예 신인상에 응모하려는 분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지금부터 제78회 신인상에 대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누구나 겪는 경험보다는 자기만이 경험한 체험을 문하화하면 감동을 주는 작품을 창작할 수가 있다. 다음 회에도 많은 분들의 수준 높은 작품이 많이 응모되기를 바라며 심사평을 마친다.
심사위원 권대근(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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