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제유배문학 김진규의 초가을(新秋·早秋) 오언율시(五言律詩) 6편 고찰>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미 앞서 거제도 유배객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거제유배문학 중에, 오언절구(五言絶句)와 칠언절구(七言絶句), 그리고 칠언율시(七言律詩)에 대해 장문의 지면을 통해 상세히 소개한 바가 있다. 이번 편에는 그 뒤를 이어 김진규(金鎭圭)의 초가을(新秋·早秋)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오언율시(五言律詩) 6편을 소개하도록 하겠다.
○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의 가을 시(詩) 6편은 숙종 시기 치열한 당쟁 속에서 유배와 소외를 겪었던 문인의 내면을 최고조로 보여주는 명작들이다. 지금부터는 이 6편의 구조적 특징과 시의 정서, 그리고 김진규 오언율시의 전반적인 문학적 특징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살펴보겠다.
먼저 (1) 가을 시 6편의 구조적 특징에 대해 알아보자. 김진규의 오언율시는 당나라 고전 시학의 정수인 선경후정(先景後情)과 치밀한 대구(對句)의 미학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다. 첫째① ‘선경후정’의 시선 확장 구조이다. [전반부(1~4구)]에선, 주로 초가을비(新秋雨), 나뭇잎 지는 산(木落山), 안개 낀 나무 사이의 달빛(烟樹間), 유리 같은 바다(霜海) 등 가을의 시·청각적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하며 고요하고 쓸쓸한 무대를 먼저 설정했다. [후반부(5~8구)]에선, 설정된 배경을 바탕으로 시인의 내면으로 급격히 침잠하거나, 반대로 무한한 자연과 우주로 시선을 확장하며 인간사의 시름을 초월하는 구조를 취했다. 둘째② 회화적 대칭과 감각의 조화(3~4구)를 이루었다. 율시에서 가장 중요한 함련(3~4구)에서 대구의 묘미가 빛났다. 예를 들어 「조추야좌」의 ‘창명반야등(창문은 깊은 밤에 등불로 밝히고) / 첨암신추우(처마는 가을비로 어둡다)’는 실내와 실외, 밝음과 어둠을 완벽하게 대조시켰다. 「신추관월」에서는 이슬 젖은 달빛(시각)과 벌레·시냇물 소리(청각)를 대칭시켜 독자가 가을밤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입체감을 준다.
두 번째로 (2) 시의 정서와 심리적 변화를 추구했다. 이 시들의 정서는 단순한 가을의 쓸쓸함(秋愁)에 머물지 않고, 고독 → 탄식 → 달관 및 초월로 이어지는 유배 지식인의 역동적인 심리적 승화를 보여준다. 첫째① 고독과 고립감이 인간관계의 단절로 이어졌다. 세상에서 버림받아 찾아오는 옛 친구가 없고(人無舊雨來), 시름을 나눌 이 없어(客意愁誰語) 외딴 마을(孤村)이나 외딴 골목(窮巷)에 갇혀 있는 절망적인 고독이 기저에 깔려 있다. 둘째② 유한함에 대한 탄식(늙음의 자각)이다. 흐르는 세월이 머리를 세게 재촉하고(流年催鬢髮), 이 몸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是身知有幾) 직시하며 느끼는 노년의 쓸쓸함과 무력감이 깊게 배어 있다. 셋째③ 안빈낙도와 도교적 초월로 정서의 승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김진규는 슬픔에 함몰되지 않았다. 궁벽한 고통 속에서 도의 맛을 즐기고(味道甘窮苦), 인간사의 영욕을 만고의 한 자락 파도(萬古一滄波)로 바라보며, 마침내 유배지를 신선의 섬(蓬壺)으로 재해석하여 자신의 시를 신선에게 들려주겠다(欲要衆仙聞)는 호방하고 고고한 지조로 정서를 승화시켰다.
세 번째로 (3) 김진규 오언율시의 문학적 특징을 살펴보자. 조선 후기 서포 김만중의 조카이자 척독·서화·문장에 모두 능했던 김진규의 오언율시는 당대 문단에서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그 문학적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① 두시(杜詩)의 완벽한 체화와 조선적 재해석이다. 조선 선비들은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를 전범으로 삼았다. 첫 편인 「신추우중」에서 보듯 두보의 시구를 그대로 가져와(의고·차운) 형식을 빌리면서도, 그 속에 담은 감정은 조선 후기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제도로 쫓겨난 ‘자신의 진짜 유배 현실’을 담아내어 가짜 흉내에 그치지 않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둘째②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감정이입 기법이다. 자연물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마구간에 갇혀 마음껏 달리지 못하고 여윈 말(櫪馬)을 보며 귀양다리에 묶인 자신의 마른 몸을 보고, 섬돌 밑 귀뚜라미(階蛩)와 외로운 새(獨鳥)를 보며 자신의 처지를 투영했다. 이는 사물과 시인이 하나로 녹아드는 고도의 문학적 장치이자, 선비 특유의 '정경융합(情景融合)'의 표현기법이다. 셋째③ 속기(俗氣, 세속의 기풍)를 배제한 청신(淸新, 새롭고 산뜻함)하고 고결한 시어를 사용했다. 김진규는 정치적 풍파를 겪었음에도 시에 격렬한 분노나 비굴한 원망을 거친 언어로 쏟아내지 않았다. ‘유리 빛 바다’, ‘하얀 이슬이 씻어낸 달빛’처럼 투명하고 맑은 시어를 사용하여 자신의 도덕적 결백함과 군자로서의 지조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문학을 통해 세속의 때를 벗겨내는(吟詩漸不俗) 문장가로서의 자주 의식이 돋보인다.
● 이번 지면에는 김진규(金鎭圭)의 수십 편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중에 초가을(新秋·早秋)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오언율시(五言律詩) 6편을 소개하겠다. 「신추우중(新秋雨中)」, 「추망(秋望)」, 「신추대주(新秋對酒)」, 「조추야좌(早秋夜坐)」, 「신추관월 도효불면(新秋觀月 到曉不眠)」, 「상해(霜海)」 등이다.
1) 다음 ‘灰’ 운목의 오언율시(五言律詩) 「신추우중(新秋雨中)」 ‘초가을 비가 내리는 가운데’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당나라의 대시인 두보(杜甫)가 지은 동명의 한시 「신추우중(新秋雨中)」의 시구를 가져와 형식과 운율을 빌리거나, 자신의 유배된 처지에 맞추어 재해석하여 읊은 차운(次韻) 혹은 의고(擬古) 성격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글은 숙종 시기 환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거제도로 귀양을 가서 지은 유배 문학으로, 비 내리는 초가을날, 고독함과 노년의 서글픔, 그리고 유배지(혹은 궁벽한 처소)에서의 쓸쓸한 심경이 잘 드러나 있다.
**「신추우중(新秋雨中)」**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客有新秋感 나그네는 초가을 쓸쓸한 감상에 젖어 드는데
人無舊雨來 찾아와 줄 옛 친구(舊雨)는 아무도 없구나.
流年催鬢髮 흘러가는 세월은 살쩍의 머리칼을 세도록 재촉하고
窮巷遍莓苔 외딴 골목 집에는 온통 이끼만 가득 피어 있네.
櫪馬如吾瘦 말구유에 매인 말은 나처럼 여위었고
階蛩共爾哀 섬돌 밑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너(귀뚜라미)와 함께 슬퍼하노라.
天涯又歲晏 하늘 끝 머나먼 곳에서 또 한 해가 저물어가니
此意轉難裁 이 쓸쓸한 마음은 갈수록 걷잡기가 어렵구나.
[주1] 구우(舊雨) : '옛날에 비가 올 때도 나를 찾아와 주던 친한 친구'를 뜻한다.
○ 내용인즉, 이 시의 문학적 배경은 두보의 시(杜詩)를 수용하여 지은 것이다. 조선 시대 문인들은 당나라 두보의 시를 문학적 최고 전범으로 삼아 필사하고, 그 시 형식을 빌려 시를 짓는 것을 매우 격조 높은 문학 활동으로 여겼다. 김진규 역시 자신의 불우한 정치적 처지(환국으로 인한 거제도 유배 등)를 두보가 평생 겪었던 고단한 삶에 투영하여 이 시를 완성한 것이다. 여기서 변치 않는 우정 구우(舊雨)의 미학을 담았다. 비가 내리는 흐린 날에도 나를 보러 우산을 쓰고 오던 참된 벗을 뜻하는데, 김진규는 권력의 정점에서 밀려난 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적막한 현실 속에서 이 고사를 통해 인간관계의 무상함을 씁쓸하게 드러내고 있다.
2) 다음 ‘養’ 운목의 오언율시 「추망(秋望)」 ‘가을날 멀리 바라보며’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맑고 쓸쓸한 가을날의 풍경을 담담하게 그리면서, 그 속에 담긴 시인의 고독과 감회를 노래한 한시다. 거제도 유배 시절을 비롯해 파란만장한 관직 생활을 거쳤던 시인이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며 느낀 쓸쓸함이 잘 녹아 있다.
**「추망(秋望)」**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淸秋眺望遠 맑은 가을날 멀리 바라보니
木落山氣爽 나뭇잎은 지고 산기운은 시원하구나.
晴天靜無風 갠 하늘은 고요하여 바람 한 점 없고
孤村炊烟上 외딴 마을에서는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네.
稻畦稍刈穫 논두렁의 벼는 조금씩 베어 수확하고
野色轉莽蒼 들판의 빛깔은 갈수록 아스라이 아득해지네.
蕭條聊極目 쓸쓸한 풍경 속에 애오라지 눈이 닿는 끝까지 바라보며
惆悵久倚杖 슬프고 실의에 찬 마음으로 오랫동안 지팡이에 기대어 서 있노라.
[주1] 망창(莽蒼) : 넓고 아득하여 푸르스름하고 희미한 모양.
[주2] 소조(蕭條) : 가을 특유의 가뭇하고 쓸쓸한 분위기다.
[주3] 추창(惆悵) : 슬프고 낙심하여 슬퍼하는 마음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선경후정(先景後情)의 구조를 보인다. 앞부분(1~6구)에서는 가을날의 맑고 쓸쓸하며 평화로운 농촌 풍경을 한 폭의 산수화처럼 담담하게 묘사한 뒤, 마지막(7~8구)에서 시인 자신의 슬프고 외로운 내면을 집약하여 드러내는 전통적인 한시 기법을 따르고 있다. 또한 하늘은 맑고(晴天), 산은 시원하며(山氣爽), 농촌은 수확으로 분주한데, 이를 바라보는 시인 홀로 '외딴 마을'처럼 고립되어 지팡이를 짚고 슬퍼하는 대비를 통해 유배객 의 고독을 극대화했다.
3) 다음 ‘歌’ 운목의 오언율시 「신추대주(新秋對酒)」 ‘초가을에 술을 마주하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숙종 시기 환국의 정치적 격변 속에서 거제도로 유배를 갔던 시인의 쓸쓸한 가을날의 고독, 늙어감에 대한 탄식, 그리고 유배지의 거친 바다를 보며 느끼는 끝없는 무상감을 술잔에 의지해 노래한 명작이다.
**「신추대주(新秋對酒)」**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客意愁誰語 나그네의 이 시름겨운 마음을 누구와 이야기하랴,
流年奈若何 흘러가는 덧없는 세월을 어찌 한단 말인가.
是身知有幾 이 늙은 몸이 살아갈 날이 대체 얼마나 남았으리,
此酒恐無多 이 술 또한 얼마 남지 않았을까 두렵구나.
時至羣虫響 때(가을)가 이르니 온갖 벌레 소리 요란하게 울리고
天空獨鳥過 높은 하늘에는 외로운 새 한 마리가 날아가네.
尊前漲海接 술잔 앞에는 넘실거리는 바다가 맞닿아 있는데
萬古一滄波 만고의 기나긴 세월 속에 그저 한 자락 푸른 파도일 뿐이로세.
[주1] 객의(客意) : 유배지에 홀로 남겨진 외로운 처지. 대화할 조력자나 벗이 곁에 없는 막막한 현실을 토로하고 있다.
[주2] 존전(尊前) : 술잔 혹은 술상 앞을 뜻함. 눈앞에 거제도의 거대하고 거친 바다(漲海)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공간적 배경을 제시한 것이다.
○ 내용인즉, 이 시는 먼저 공간과 시선의 점층적 확장을 꾀했다. 시 전반부(1~4구)는 시인 자신의 내면과 눈앞의 술잔이라는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다 후반부(5~6구)에서 주변의 벌레 소리와 하늘의 새로 시선이 넓어지더니, 마지막(7~8구)에 이르러서는 끝없는 바다와 만고의 세월이라는 거대한 우주적 공간으로 확장되며 슬픔을 초연함으로 승화시켰다. 또한 거제도 바닷가에서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이 시는, 당쟁으로 인해 남해 먼 섬으로 쫓겨온 지식인의 실의를 고독한 새와 거친 바다를 통해 매우 격조 높고 웅장하게 그려내어 죽천 김진규 시 세계의 정수를 보여준다.
4) 다음 ‘麌’ 운목의 오언율시 「조추야좌(早秋夜坐)」 ‘초가을 밤에 홀로 앉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초가을 밤, 유배지의 적막함 속에서 등불을 켜고 책을 읽으며, 세속의 영욕을 초월하여 도(道)를 즐기고 마음의 평안을 얻으려는 선비의 고결한 내면세계를 담담하고 깊이 있게 그려낸 명작이다.
**「조추야좌(早秋夜坐)」**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獨坐對殘書 홀로 앉아 낡고 해진 책을 마주하고
悠悠覽千古 아득히 먼 천고의 세월(역사)을 유유히 굽어보네.
窓明半夜燈 한밤중 켜놓은 등불에 창문은 환하게 밝아오고
簷暗新秋雨 처마 밑 어둠 속에는 초가을 비가 내리는구나.
居閒愛寂寞 한가롭게 지내며 이 적막함을 사랑하고
味道甘窮苦 도(道)의 맛을 음미하니 이 빈궁한 고통도 달게 여겨지네.
蕭然娛一室 쓸쓸하고 맑은 이 한 칸 방에서 스스로 즐기니
不覺非吾土 이곳이 내 고향 땅이 아님을 깨닫지 못하겠노라.
[주1] 잔서(殘書) : 오래되어 군데군데 훼손되거나 낙장이 있는 낡은 책
[주2] 소연(蕭然) : 군더더기 없이 맑고 텅 비어 쓸쓸한 모양
○ 내용인즉, 이 시는 실내와 실외의 완벽한 대조(3~4구)를 이룬다. 창문 안쪽은 한밤중의 등불로 환하게 빛나고, 처마 바깥은 초가을 비가 내리며 어둡다. 이 '밝음(明)과 어둠(暗)', '내부와 외부'의 시각적 대칭은 두보를 비롯한 옛 시인들이 애용한 고도의 회화적 기법으로, 시인의 내면적 투명함을 돋보이게 한다. 또한 초월과 달관의 정신이 담겨 있다. 이전의 시들이 가을날의 쓸쓸함과 무상감을 깊이 탄식했다면, 이 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환경이 어떠하든 내 마음이 도를 향해 있으면 그곳이 곧 낙원"이라는 군자의 지조와 정신적 승리를 보여준다. 격정적인 환국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학문적 깊이를 잃지 않았던 대학자 김진규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5) 다음 ‘刪’ 운목의 오언율시 「신추관월 도효불면(新秋觀月 到曉不眠)」 ‘초가을 달을 바라보며 새벽에 이르도록 잠들지 못하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초가을 밤, 유배지나 시골 처소에서 떠오르는 달을 보며 밤새도록 거닐고 사색하는 시인의 모습을 그렸다. 자연의 고요하고 맑은 풍경에 동화되어 세속의 번민을 떨쳐내고 마음의 평안과 한가로움을 얻는 과정이 아름답게 묘사된 작품이다.
**「신추관월 도효불면(新秋觀月 到曉不眠)」**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卧看凉月生 누워서 서늘한 가을 달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보다가
起來望東山 (달빛이 하도 고와) 일어나 동쪽 산을 바라보노라.
白露洗淸輝 하얀 이슬은 맑은 달빛을 깨끗이 씻어내고
蒼蒼烟樹間 달빛은 안개 낀 나무들 사이로 푸르스름하게 비치네.
百䖝夜皆鳴 온갖 벌레들은 밤새도록 모두 소리 높여 울고
小澗亦潺湲 작은 시냇물 또한 졸졸졸 흘러가는구나.
行吟不覺曉 시를 읊조리며 거닐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는데
蕭散思自閒 마음이 소탈하고 맑아지니 생각마저 절로 한가롭구나.
[주1] 잔원(潺湲) : 물이 잔잔하게 흐르는 소리나 모양을 뜻하는 의성어·의태어다.
[주2] 소산(蕭散) : 얽매임이 없이 맑고 시원스러운 상태
○ 내용인즉, 이 글은 먼저 동적 움직임과 감정의 변화가 이어진다. 시의 흐름이 '눕고(卧) → 일어나고(起) → 바라보고(望) → 거닐며 시를 읊는(行吟)' 시인의 구체적인 행동을 따라 전개된다. 달빛에 이끌려 밖으로 나와 자연의 소리를 듣는 과정이 매우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리고 시각과 청각의 정밀한 조화를 이룬다. [3~4구]에서는 이슬 젖은 달빛과 안개 낀 나무라는 '시각적 이미지'를, [5~6구]에서는 벌레 소리와 시냇물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배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초가을 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뛰어난 회화성을 자랑한다. 마지막으로 달관의 미학이 있다. 잠 못 드는 밤은 대개 수심과 고통의 시간이 되기 쉽지만, 김진규는 이를 자연을 감상하고 마음을 정화하는 '한가롭고 소탈한 시간'으로 승화시켰다. 유배나 소외의 고독을 예술적 풍류로 다스렸던 선비의 고결한 지조가 돋보인다.
6) 다음 ‘文’ 운목의 오언율시 「상해(霜海)」 ‘서리 내린 바다’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대문장가인 죽천(竹泉) 김진규(金鎭圭 1658~1716)의 작품으로, 『죽천집(竹泉集)』 권3(卷之三)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가을 바다와 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도성(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유배객의 쓸쓸함이 깔려 있으며, 이를 세속을 초월한 신선 세계(풍류)에 대한 동경과 안빈낙도의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선비의 고결한 기상이 잘 나타나 있다.
**「상해(霜海)」** / 김진규(金鎭圭 1658~1716)
霜海琉璃色 서리 내린 가을 바다는 유리 빛깔처럼 투명하고
秋山錦綉紋 가을 산은 비단에 수놓은 듯 아름다운 무늬를 이루었네.
蓬壺隣淺水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거제도)은 얕은 바다에 이웃해 있고
京國渺浮雲 임금님이 계신 도성(한양)은 떠도는 구름 너머로 아득하기만 하구나.
世棄那妨遠 세상이 나를 버렸으니 멀리 떨어진들 무슨 상관이랴,
身閒幸絶紛 몸이 한가해지니 시끄러운 세상일과 끊어진 것이 오히려 다행일세.
吟詩漸不俗 홀로 시를 읊조리니 내 정신도 점점 세속의 때를 벗어나
欲要衆仙聞 이 시를 저 신선들에게 들려주고 싶구나.
[주1] 상해(霜海) :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의 차갑고 맑은 바다. 그 바다가 마치 투명한 유리구슬처럼 빛난다고 묘사하며 웅장하고 깨끗한 시각적 배경을 제시했다.
[주2] 봉호(蓬壺) : 도교에서 신선이 산다고 전해지는 삼신산 중 하나인 봉래산을 뜻함. 여기서는 거제도를 말함.
○ 내용인즉, 이 시는 유배지를 신선의 세계로 재해석하여 묘사했다. 유배는 본래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형벌이지만, 김진규는 자신이 갇힌 거제도의 바다와 산을 '유리 빛 바다', '비단 같은 산', '신선의 섬(봉호)'으로 미화했다. 이는 불우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문학적·정신적 승리를 거두려는 선비의 자존심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선의 이동과 정서의 승화를 꾀했다. 시 전반부(1~4구)는 눈앞의 가을 바다에서 시작해 멀리 한양의 도성으로 시선이 확장되며 아련한 그리움을 남겼다. 그러나 후반부(5~8구)에서는 세속의 미련을 과감히 털어내고, 오히려 고립된 환경을 '신선과 소통하는 고결한 공간'으로 승화시키는 대문장가다운 호방함을 자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