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하다가, 말다툼하다가, 부부싸움을 하다가…. 홧김에 저지르는 범죄들이 연일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인들은 온갖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분노조절장애, 혹은 충동조절장애라는 어려움을 겪는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처럼, 바깥일들이 잘 풀리지 않으면 일단은 참았다가, 나중에 시간차를 두고 다른 대상과 장소에서 분노와 감정을 폭발시키게 되는 것. 혹시 나와 우리 가족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까.
#사례1) 20대 후반의 남성 이 씨. 원하는 명문대에 진학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어머니의 원망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마음의 상처가 깊어져 8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살던 그는, 모욕당하고 무시당한 순간이 떠오르면 거실에 갑자기 뛰쳐나와 가구를 부수고 욕설을 퍼부은 다음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집 안 곳곳은 파인 자국으로 가득하고 가구는 모두 폐품 수준이며, 식기는 모두 알루미늄이나 스테인리스 스틸 등 깨지지 않는 것으로 대체됐다.
#사례2) 외도 후 반성의 기미가 없는 남편 김 씨의 태도에 매일 싸움을 하는 부부. 단순한 폭언에서 시작됐으나 점차 상호 폭력으로 이어졌다. 아내 박 씨의 분노조절장애가 먼저 표출됐고, 싸움이 격화되는 과정 중에 남편도 분노조절장애가 됐다. 두 사람의 분노가 함께 폭발할 때는 베란다 난간에 매달리는 행위를 비롯해 자해, 살인 위협까지 벌어진다.
어떤 질병인가
분노조절장애는 화의 빈도와 강도가 통상적인 정도를 넘어 대인관계, 직업적 사회적 기능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말한다. 정신과적 진단은 ‘정신장애의 진단’의 기준을 따르는데 분노조절장애라는 진단명은 없지만, 분노와 관련된 진단명으로 ‘간헐적 폭발성 장애’가 있다.
이는 공격적 행동과 연관된 다른 질환 즉 성격장애, 조증, 물질사용, 머리 외상 등의 원인이 아니면서 심각한 폭력 행위나 재산 파괴를 초래하는 공격적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건이 간헐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다.
또한, 공식적인 진단명은 아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연관해 심리적 외상(trauma)이 분노에 직접적인 영향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독일의 정신과 의사 마이클 린든이 제안한 ‘외상 후 격분장애’가 있다.
이는 정신적 고통 이후 부당함, 모멸감, 좌절감, 무력감 등의 부정적 감정이 나타나며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믿음으로 인해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지속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분노조절장애에서 분노는 타인에게 악의적이고 계획적으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 분노를 표현하는 반사회성 성격장애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분노 폭발의 원인은
인간은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있는데, 이 욕망이 현실의 원칙에 위배될 때 쉽게 좌절하고 마음의 상처를 받게 된다. 상처를 받으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감정이 바로 ‘분노’다. 무분별한 분노는 스스로 억제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승화시키려 노력한다. 하지만 폭발적인 분노는 과도한 긴장 속에서 욕망, 좌절에 의한 분노가 커지거나, 그것을 억압하고 있는 자기 검열의 고삐가 풀릴 때 발생한다. 또한, 신경생리학적으로 두부(머리)외상, 물질남용,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이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음주 시 분노조절이 어려운 경우가 있는데 이는 알코올이 평소 감정을 억압하고 제어하는 전전두엽의 기능을 일시적으로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실제로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대부분 환자가 성장기에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성장한 경우인데 심각한 신체적 학대와 방임에 지속해서 노출돼 불안, 우울, 공포, 무기력감과 함께 엄청난 분노가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평소에는 억압된 분노를 느끼지 못하다가 트라우마 사건 자체나 이와 동반된 심리적 현실과 연관된 일상의 사건을 경험했을 때 분노가 폭발한다.
극단적인 예로 ‘넌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니? 네가 태어나서 내 인생이 망했어’와 같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부모의 말을 지속해서 들은 아이들의 경우이다. 당시에는 부모가 나를 버리거나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분노 표현은 못하지만 어른이 되어 어떠한 사건들이 이전 경험을 상기시킬 때 트라우마를 겪은 당시의 심리상태로 돌아가 분노가 폭발한다.
심호흡·간단한 운동 등 도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분노조절장애로 치료를 받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분노 폭발은 곧 마음의 상처를 의미하며,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에 치료가 집중돼야 한다. 스스로 노력해 자연 치유된다면 가장 좋지만 어려우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우선 분노를 참는 훈련이 중요하다. 일단 분노가 발생하면 주변 상황이 적대적으로 변해 그 자체가 상처가 되기 때문이다. 또한, 분노는 외부 요인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점 때문에 발생했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분노를 참는 대표적인 방법은 화나는 상황을 미리 파악해 피하고, 화나기 전에 심호흡하거나, 숫자를 헤아리고, 악력기 같은 손 운동기구로 운동하는 등 주위 전환법이 도움된다.
또 인지행동치료 기법으로 화가 났던 상황을 기억해 그 상황과 감정 사이를 잇는 부정적 사고를 도출, 의식적으로 변화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혼자 하기는 쉽지 않아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