龍山秋晩
이제현(李齊賢, 1287~1367) 고려 후기의 학자·정치가. 자: 중사(仲思). 호: 익재(益齋)·역옹(櫟翁). 시호: 문충(文忠). 원나라와의 관계에서 부당한 처사를 해결하는 등 활약하였다. 당대의 명문장가로 정주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조맹부 서체를 도입하여 유행시켰다. 공민왕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경주의 귀강서원과 금천의 도산서원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효행록》·《익재집》·《역옹패설》·《익재난고》 등이 있다.
去年龍岫菊花時 거년용수국화시
與客揮壺上翠微 여객휘호상취미
一逕松風吹帽落 일경송풍취모락
滿衣紅葉醉扶歸 만의홍엽취부귀
지난해 용수(龍岫)에 국화 피던 때에
벗과 더불어 술병을 들고 푸른 산허리로 올랐네.
한 오솔길에 솔바람이 불어 모자가 떨어지고
옷 가득 붉은 단풍을 묻히고 취해 부축받아 돌아왔네.
龍山(용산): 개성 일대의 산으로 보임. ‘龍岫’와 통용.
岫(수): 산굴·산봉우리. 菊花時: 국화가 필 무렵, 곧 늦가을.
揮壺(휘호): 술병을 흔들다 翠微(취미): 산허리의 푸른 기운.
一逕(일경): 한 줄기 오솔길. 吹帽落: 바람에 모자가 떨어짐. 풍류적 장면.
醉扶歸: 취하여 서로 부축해 돌아옴.
익재의 이 시는 자연은 선명하고 역동적이며, 인간은 취해 있고 덧없다.
특히 滿衣紅葉은 자연 속에 완전히 흡수된 인간의 모습이다.
단풍이 옷에 묻었다기보다, 가을 그 자체를 몸에 입고 내려오는 듯하다.
격정은 절제되어 있고, 감정은 풍경 속에 은근히 스며 있다.
--이 시가 좋아 현재의 필자 심정을 韻만 받아 읊어본다.-
次韻龍山秋晩 (26.2.25/ 耳堂)
八載投簪世味非
퇴임한지 여덟 해, 세상 맛이 예전과 다르다.
故人漸遠夕陽微
옛 사람들은 점점 멀어지고, 인생의 석양빛은 희미하네.
一庭松影供書畫
뜰의 소나무 그림자가 시·서·화의 벗이 되고
與友清談帶月歸
뜻 맞는 벗과 맑은 담론 나누고 달빛 아래 돌아온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