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놓고 마주한 듯 닮아 있었다. 한 사람이 대답하면 마주한 사람은 ‘그게 바로 제 생각이에요’라고 응답했다.
피아니스트는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더욱 긴 설명을 이어갔다. 영화배우는 음악에 대해 설명할 때 목소리를 한 톤 더 높였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와 영화배우, ‘너무나 다른 장르의 두 거장을 한자리에서 인터뷰하는 게 가능할까’ 내심 걱정스럽던 마음은 첫 응답에 씻은 듯 사라졌다.
이날 특별인터뷰 자리에 백건우·윤정희 씨 부부는 바로 전날 기자와 만났을 때 입었던 옷을 똑같이 차려입고 나왔다.
“연달아 사진을 찍으셔야 하니, 옷이 다르면 혹시 방해가 될까봐 다시 입었는데요….”
삶의 순간순간, 이들 부부가 타인을 얼마나 섬세하게 배려하며 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각기 다른 예술 분야에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사람. 피아니스트 백건우(요셉마리·64) 씨와 영화배우 윤정희(데레사·66) 씨다.
백 씨는 지난달 새 앨범을 선보이며 내한 공연을 펼쳤다. 이른바 ‘건반위의 구도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백 씨는 26세 때 라벨의 피아노 전곡을 연주하면서 세계 연주 역사를 새로 써왔다. 이후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 바흐와 베토벤 등을 거쳐 이번엔 브람스와 깊은 교감을 나눴다.
윤 씨는 최근 개봉한 영화 ‘시’를 통해 전 세계 영화팬들의 가슴을 다시 한 번 더 파고들었다. 자신과 꼭 닮은 주인공 미자역을 열연하며 받은 호평은 여전히 그 열기를 뿜어내고 있다. 영화 ‘시’는 유럽과 북미지역 상영관에서도 곧 개봉된다.
이렇듯 너무나 다른 일을 하는데도 두 사람은 24시간 늘 함께 있다. 게다가 서로가 서로의 비서를 자청한다. 백 씨의 연습장과 공연장 뒤에선 늘 윤 씨가 대소사를 챙기며 기도한다. 윤 씨의 촬영장에선 백 씨가 든든한 매니저가 된다. 이번 영화 촬영 과정에서도 백 씨는 매일같이 대사 연습을 돕고, 영화제에서 입을 한복도 직접 고르고, 영화제 내내 캠코더를 들고 아내의 모습을 촬영해 윤 씨 팬들의 시선도 한몸에 받았다.
“저희는 모든 일을 함께해요. 연주곡도 시나리오도 같이 고르고, 요리도 청소도 똑같이 해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저희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20대 연인보다 더욱 다정하게 지내는 비결을 묻는 우문에 또다시 두 사람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게다가 윤 씨는 음악 없이는 하루도 못산단다. 그런데 백 씨는 하루라도 영화를 보지 않고는 못산단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을 ‘행운아’라고 부른다.
두 사람은 프랑스 유학 시절, 첫 눈에 반해 한 가족이 됐다. 1976년 당시엔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던 디바가 무명에 가까운 피아니스트와 사랑에 빠졌다며 대형 스캔들이 일었다. 하지만 이들은 주변의 시선엔 아랑곳없이 지금껏 솔직하고 소박한 삶을 이어왔다.
신앙에 있어서도 한마음이다.
“하느님은 늘 나와 함께 사시는 분, 친구와 같은 분입니다. 힘겨운 일이나 고통이 주어질 때면 ‘하느님께서 우릴 정말 사랑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더욱 많이 합니다. 고통을 통해 겸손을 선물해 주시지요.”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연주회가 끝나면 부부는 어디서든 먼저 성당을 찾는다. 지금껏 해온 연주여행이 꼭 성지순례와도 같았다며 본인들도 신기해한다. 그리고 그 일정에는 루르드성지 기적의 물과 묵주의 9일기도 책이 항상 함께했다.
특히 서로의 일에 대해선 온 마음을 다해 자랑스러워하고 존경한다.
백 씨는 영화 ‘시’에 대해 “이렇게 매력적인 영화와 주인공은 세계 영화사에서도 만나기 힘들 것”이라며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노력을 막고 또 중요한 질문은 피해가는 요즈음 세태 안에서, 이 영화는 자신과 삶에 대해 성찰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고귀한 삶을 최대한 성실히 살고자 하는 마음을 불어넣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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