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_귀농을 하는 목표를 분명히 하라
제법 많은 이들이 돈을 벌기 위해 귀농을 마음먹는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귀농은 도시에서 누리던 사회적 지위, 경제적인 수익 등을 포기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돈을 버는 것에 대한 기대치는 높게 잡지 않는 것이 좋다. 그 대신 자연에서 가족과 함께 여유로운 삶을 사는 것에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과 충분히 논의를 하여 같은 가치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해지기 위해 선택한 삶이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서로 부딪친다면 귀농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2_3년간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을 준비해가라
농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면 3년간은 특별한 수입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귀농 초반에는 정착할 땅을 알아보고, 집을 수리하고, 농업장비를 마련하는 등 일련의 기본 조건을 갖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게다가 농사로 수익을 내는 것은 단시간에 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3년간은 특별한 소득 없이도 먹고살 수 있는 생계비가 필요하다. 자녀가 대학생이라면 등록금 등의 비용이 필요할 것이고, 독립을 했다면 그 비용은 제외하는 식이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집이 있다는 가정 아래 그 외적으로 필요한 자금은 보통 5천만원 전후다.
3_집을 구할 때는 아이들의 학교 거리를 생각하라
최근 들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귀농 인구가 늘고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아이들의 교육이다. 자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마음에 귀농을 선택했지만, 막상 현실이 되면 어려움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농촌은 학교가 많지 않다. 그래서 등·하교를 부모가 책임져야 할 경우가 많은데, 이를 농사와 병행하는 게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학교 통학버스 동선을 고려해서 집을 구하는 것이 좋다.
4_농촌에서도 문화생활은 가능하다
귀농을 결심하는 이들이 염려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문화생활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산다고 해서 각종 공연이나 전시를 때마다 찾아다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지자체에서 농촌의 문화생활에 대한 배려를 많이 해서 무료 공연이나 영화 상영 등의 기회가 많아졌다.
5_의료시설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농촌은 의료시설이 낙후되어 있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다. 하지만 KTX 등의 교통수단의 발달과 인근 도시의 첨단 의료시스템 등으로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분위기다. 오히려 땅을 밟으며 살기 때문에 잔병치레가 줄어들어 도시에서 살 때보다 병원에 갈 일이 없다. 도시보다야 불편할 수 있지만, 생각의 차이다.
6_부업이 될 만한 것을 준비하라
농사를 통해 돈을 버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고소득을 올리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많이 일하기 위해서 농촌을 선택한 것은 아닐 터. 농사를 적당히 지으며 삶의 여유를 느끼려면 농업 이외의 부가 수입이 필요하다. 펀드 투자라든지, 글쓰기, 개인 작업 등 찾아보면 많을 것이다. 귀농을 결심하고 나서 수입원을 모조리 다 끊기보다는 원격으로 가능한 일거리를 가져가는 것이 좋다. 그렇다고 해서 농촌에서 사는 데 엄청난 비용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농촌에서는 한 달에 50만원 정도면 먹고살 만한 수입이다.
7_낭만적인 풍경만을 좇아서는 안 된다
귀농을 결심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연에서 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집 앞으로는 강이 흐르고 뒤에는 야트막한 산이 있어서 아침마다 눈이 즐거워지길 바란다. 하지만 절경 속에 집을 짓는다면 현실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논이나 밭에서 농사를 짓고 소득을 내야 하는데 깎아지른 절벽이나 산, 강으로 둘러싸인 곳은 그럴 만한 공간이 없다는 말이다. 멋진 풍경도 좋지만, 매일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현실적인 여건을 따져야 한다.
8_농촌의 사계절을 경험한 뒤 판단하라
귀농을 결심한 이들이 판단의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농촌의 일부만을 봤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회사 산악회 때 우연히 경험한 전봉산 일대가 너무 좋아서 귀농을 결심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바로 그곳에 집을 짓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지만, 예상치 못한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막상 겨울이 되니 2미터가 넘는 눈이 쌓인다거나, 도시에서처럼 누군가가 눈을 치워주는 것도 아닌 상황에 부닥치면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너무 추워서 여름을 제외하고는 불을 때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경우의 수를 다 고려한 다음에 귀농을 결심해야 한다.
9_새로운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도시에서 다른 거주 공간으로 이사할 때는 부동산 복비만 내면 끝나지만, 농촌으로 이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귀농은 일종의 이민이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결심할 때 그 나라의 언어, 문화 등을 고려하는 것처럼 농촌으로의 이주 역시 고려해야 할 것들이 많다. 농촌은 농촌만의 촌락 구조, 공동체 삶이라는 사회 문화적인 특성이 있다. 집과 땅과 돈이 있다고 해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농사는 서로 도와가며 교류하는 과정이기에 주변 이웃들과 얼마나 잘 융화할 수 있는지가 귀농의 성공 포인트다.
interview “귀농도 교육이 필요하다”
채상헌 교수(천안연암대학 친환경원예과 학과장)
과거 한 차례 귀농 열풍이 불 때가 있었죠. 바로 IMF 직후였습니다. 그 당시 1년에 8천~9천 명씩 귀농을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모두 도피형, 생계형이었습니다. 하지만 준비하지 않은 귀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대부분 다시 도시로 돌아왔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농촌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상처가 있죠. 그러던 시기가 있었기에 농촌 지역 어르신들은 아직도 귀농을 하는 이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계십니다.
최근 들어서는 그때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실패를 했다는 낙인을 찍고 귀농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친환경적인 삶, 여유 있는 삶 등을 이유로 오래전부터 귀농을 생각한 이들이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도시 생활의 지위와 경제적인 이득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을 기꺼이 선택한 이들이죠.
전문으로 귀농교육을 하는 대학인 여주농업경영전문대학교, 한국농수산대학, 천안연암대학에는 몇 년 전부터 30~40대 학생들의 비율이 늘고 있으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전문 농업교육을 받기 위해 몰려듭니다. 농업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죠.
중요한 것은 귀농이 삶의 한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결코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가족과의 합의,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고히한 뒤 귀농을 결심했다면 그때부터는 현실입니다. 교육을 받으면서 귀농에 실패할 확률을 줄이고 더욱 효율적으로 정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특히 농식품부에서 지정한 귀농교육 총괄기관인 천안연암대학 귀농지원센터(041-580-1049)에서는 온라인을 통한 무료 강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막연하게나마 귀농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 같은 강좌를 적극 활용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좀 더 구체화된 뒤에는 각종 전문학교나 연수원 등을 통해 생산과 경영에 대한 경험을 미리 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같은 교육과 경험만이 성공적인 귀농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주말 농장을 새로운 일터로
싱싱블루베리농원의 안길우(38) 대표는 5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는 일상의 연속이었다. 이 시대의 가장이라면 누구나 그러하듯, 자신의 삶도 가족을 위해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별다른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인한 회사의 잦은 구조조정은 안 대표에게 또 다른 계획을 세우게 했다. 바로 농업이었다.
“농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되던 시기였어요. 그때 저도 직업을 농업으로 바꾼다면 희망이 보일 거라 믿었습니다. 또 자연에서 일하고 살면서 일상을 여유롭게 보내고픈 마음도 컸고요. 여러 가지 대안을 놓고 고민하던 중 부모님과 주말마다 가꾸던 주말 농장을 농원으로 바꾸어 시작하게 됐습니다.”
안 대표의 가족은 주말마다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주말 농장을 찾곤 했다. 특히 그의 가족은 농업을 해보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주말 농장을 가꿔오면서 기본적으로 나무나 작물에 대한 경험을 쌓은 상태였다. 주말 농장으로 매입한 토지가 있었기 때문에 귀농 준비는 한결 수월했다. 많은 고민 끝에 고소득 작물인 블루베리를 주력 상품으로 결정했고, 본격적인 농원 일을 시작했다. 한 그루에 2만5천원 하는 묘목을 800여 그루 심었고, 그 곁에 벌통도 들여놨다. 블루베리 수정은 벌들이 하기 때문이다. 또 남는 농원 부지에는 배나무, 사과나무 두어 그루도 심고 텃밭에는 들깨와 참깨, 고추와 더덕을 심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귀농과 안 대표의 경우는 다르다. 농촌에 집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수확기인 6월에서 8월까지 석 달 정도만 농원에서 생활하며 지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자연이 좋고 도시가 싫어 직업을 바꾼 것도 귀농’이라며 귀농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집과 직장을 모두 옮겨야 하는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귀농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됐어요. 저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며 용기도 얻었고요. 무엇보다 모두의 걱정거리는 귀농 비용이었죠. 농토에 작물을 키우는 데는 재배 관련 물품부터 판매까지 돈이 안 드는 것이 없어요. 물론 각 시의 군청, 농정과 기술센터에서 귀농인을 위한 여러 혜택을 주지만, 그것도 쉽지 않아요.”
안 대표는 각 지역별로 귀농인에 대한 혜택이 다르다며 귀농을 계획 중이라면 우선 자신이 원하는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역을 찾으라고 조언한다. 그 후 구체적인 재배 품목과 토지 규모 등을 계획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합리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귀농의 가장 큰 지지자는 가족
“농원 일을 시작한 뒤로 항상 아내와 함께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회사에 다닐 때는 바빠서 아이들 얼굴 보기도 힘들었지만, 요즘은 날마다 놀아주고 있고요. 또 일손이 부족할 때는 부모님과 여동생도 찾아와서 예전보다 가족들 얼굴을 더 자주 보게 됐죠. 이런 점도 귀농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죠.”
안 대표가 귀농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그를 지지해준 것은 그의 가족들이다. 아홉 살 어린 아내 민경 씨도 흔쾌히 그의 뜻을 따랐다. 해본 적 없는 농사일을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도시 생활에 익숙하던 그들에게 농촌이 조금은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농원 일을 시작한 후로 안 대표는 집안일을 적극적으로 돕게 됐다. 아내도 똑같이 일을 하는데 자신만 집안일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미경 씨는 이러한 변화가 싫지 않다.
“남편과 함께 하루 종일 일하는 것이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와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는 남편을 볼 때면 참 잘했다 싶고요! 블루베리 농원으로 가족들이 자주 모이게 된 것도 좋아요. 사실 산다는 게 별거 아니잖아요. 가족들과 맛있는 것 먹으면서 건강하고 지내는 게 행복이니까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것은 무척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하지만 안 대표는 막연한 환상을 갖고 농촌으로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도시로 가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그래서 귀농 후 자신이 겪게 될 현실적인 문제를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주변에서 귀농하려는 사람들이 저에게 문의를 많이 합니다. 그중 대부분은 전원생활에 대한 환상에 치중한 경우가 많아요. 농촌 생활은 보이는 것과 다른 부분도 많아요. 저는 매일 잡초와의 전쟁을 치릅니다. 흙투성이가 되지요. 또 낮에는 벌레들과 씨름해야 합니다. 물론 이제는 익숙한 일과가 되었지만요.”
앞으로 안 대표 부부의 계획은 주변 농가들과 연계한 체험 사업을 여는 것이다. 다시 도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으며,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 간에 대화가 많아졌다”는 것이 귀농 생활이 가져다준 가장 즐거운 변화라고 입을 모으는 이들 부부. “개구리 잡으러 가자”는 두 아들과 함께 농원 문을 나서며 활짝 웃는다.
낡았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한옥집에서 귀농인 손병용(41) 씨를 만났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그는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스리 잡’을 가진 이색 인물로 신문에 소개될 만큼 다방면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다. 대기업 과장으로 재직하며 바와 식당을 운영하던 손 씨가 인적조차 드문 고향에 다시 내려오게 된 것은 ‘앞으로의 비전은 농촌에 있다’라는 생각에서였다.
농업에 대한 공부가 우선돼야
지난 2008년 3월부터 6월까지 4개월 동안 손 씨는 한 대학에서 연 ‘도시민 귀농 정착과정’에 참가했다. 전 일정 동안 합숙을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귀농 준비부터 정착 후의 과정까지 현실적인 부분을 배울 수 있어 매우 유익했다. 또 귀농을 계획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계획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 더욱 뜻깊었다. 하지만 막상 고향에 내려와 귀농 생활을 시작했을 때 부딪힌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고 어려웠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편이죠. 부모님께 토지와 산을 물려받은 상태였거든요.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터전과 토지를 찾는 과정을 생략할 수 있었죠. 그래서 많은 돈이 들지는 않았어요. 또 귀농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부에서 일정 부분 지원해주는 창업후계 농업경영인에도 신청을 했고요. 생각보다 빨리 선정되어 5천만원을 3% 이율로 대출받았어요.”
귀농 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농사를 지을 땅을 확보하는 일이다. 알아보면 토지임대나 구입을 희망하는 귀농인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으니, 충분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 농업 지식이 부족해서 가장 힘들었던 손 씨는 앞으로도 꾸준히 읽어야 할 농업 관련 책이 많아 걱정이란다.
“지난해부터 사과나무 묘목을 기르고 있어요. 앞으로 4년 후에 첫 열매를 수확할 수 있고요. 또 벼농사도 짓고 있습니다. 벼 같은 경우는 지난해에 첫 수확을 했는데, 정말 신기했어요. 7톤을 생산해 정미소에 팔았죠. 앞으로 벼농사는 줄이고, 과수원과 임야개발 쪽으로 확장할 계획이에요.”
손 씨가 가꾸는 과수원 입구에는 비닐하우스로 만든 작업실이 있다. 각종 농업 전문서적부터 개집 등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장비와 농기구 등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그는 귀농 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아래로는 마을 전체가 내려다보이고, 볕이 좋은 날에는 월악산 정상도 보인다. 꼬리를 흔들며 그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는 진돗개 ‘대박이’의 집도 그가 직접 만든 작품. 작업실 앞 앵두나무에 열린 앵두를 따던 손 씨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지낼 수 있는 것이 귀농 생활의 가장 큰 매력”이란다. 매일 아침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오는 일도 그가 기다리는 일과 중 하나다.
잊고 지내던 가족의 소중함
현재 손 씨는 올해 일흔일곱인 부친과 한 집에서 지낸다. 고향에서 생활하기로 결심한 후 아버지와 함께 살 집부터 새로 지었다. 위로 누나 넷을 둔 그는 한 번에 가족들이 모두 내려와도 비좁지 않을 만큼 집을 크게 만들었다. 평소에는 바빠서 자주 모이지 못하던 가족들이 그의 귀농 덕분에 자주 고향집을 찾게 된 것, 이 또한 귀농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아버지가 혼자 지내셨을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죠. 제가 함께 있는 지금도 잘 챙겨드리지 못하는데…. 이렇게 아버지와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가까이 지내는 시간이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요. 아직은 싸울 때가 더 많지만요.(웃음)”
무엇보다 그가 귀농 생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던 데에는 어릴 적 친구들의 도움이 크다. 복숭아를 재배하려고 했을 때도 이웃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사과로 바꾸었다. 요즘 이상기온으로 인한 농작물 피해가 크기 때문에 재배 농작물을 선택할 때도 무척 신중해야 한다.
“일 마치고 친구들과 마당에 모여서 돌판에 삼겹살을 구워먹기도 해요. 또 텃밭에서 고추랑 상추도 따먹고요. 죽 농촌에서 생활해온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요.”
현재 그의 아내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와 서울에서 지내며, 큰아이는 중국에서 유학 중이다. 갑작스럽게 농부로 변신한 아빠의 모습에 아이들은 어떤 반응이었냐고 묻자 “다들 좋아해요. 큰아이는 힘들게 일하지 말라고 하더군요”라고 말한다. 다시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가끔은 세련된 모습이 그리울 때도 있다고. 그럼에도 과수원에 앉아 음악을 듣는 시간만큼 행복할 수는 없기에 이곳을 떠나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매일 새벽 4시 40분에 일어나서 과수원 일을 시작하는 손병용 씨. 마을 어르신 중에는 새벽 2시부터 일을 하는 분도 있어서 늦잠을 자면 눈치가 보인다. 앞으로 과수원을 확장하고 근처 산도 개발할 예정. 또 한옥집을 민박으로 운영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떤 일이라도 해보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귀농에 성공할 수 있어요. 그 전에 정착한 귀농인을 찾아가 며칠이라도 함께 생활해본 후 결정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겠지요. 앞으로 제가 가꾼 곳으로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혼자만 좋은 구경하는 건 재미가 없으니까요!”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저희에게 주어진 것은 다 쓰러가는 집 한 채와 밭이었습니다. 좁은 방에서 네 명이 함께 살았죠. 지금은 집 안에 있는 화장실도 개조해서 샤워도 할 수 있게 만들었어요. 담도 다 허물어가고 쥐똥이 널려 있던 최악의 상태였는데, 1년 사이 도배도 하고 가구도 여기저기서 주워오면서 조금씩 사람 사는 집의 구색을 갖춰나갔죠.(웃음)”
동네 주민과의 융화가 성공의 핵심
1년 전 이곳에 도착해 덩그러니 남겨진 이들.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1년 뒤의 삶이 달라지는 게 바로 농촌의 삶이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던 이들은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품앗이’를 시작했다.
“초반에는 준비된 게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재배한 작물이 있어야 수확도 하고 팔아서 수익도 얻잖아요. 그게 없었으니 정말 궁핍하게 생활했죠. 안 되겠다 싶어 다른 마을로 품앗이를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농사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포도로 유명한 상주답게 가장 먼저 포도 농장의 주인을 도우면서 재배과정을 배웠다. 그 사이사이 고추, 고구마, 콩, 배추, 옥수수 등의 농사도 조금씩 지어봤다. 난생 처음 해보는 농사이니만큼 결코 만만할 리 없었다. 그렇게 1년 동안 농사를 경험하고 적응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도시에서 살다온 이들이 적응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의외로 동네 주민들과의 융화였다.
“농사 자체도 엄청난 체력이 필요한 일이라 물론 힘들었죠. 새벽 5시면 하루를 시작하는 사이클도 적응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요.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신경 쓰였던 건 이곳에 사는 분들과 친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저희 위로 바로 60대 분들이세요. 젊은이들이 거의 없죠. 게다가 낯선 이들에 대한 배타적인 시선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앞으로 저희가 살 곳인데 동네 분들과 친해져야 하잖아요. 어울리려고 열심히 해도 잘 안 받아주셔서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죠.”
아무리 좋은 의도로 농촌을 찾았다고 해도,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불청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먼저 주민들에게 다가가고, 그곳의 보이지 않는 규율을 잘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대부분 나이가 많은 분들이라 해가 갈수록 농사의 규모가 조금씩 줄어들어요. 그만큼 농사는 힘에 부치는 작업입니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힘쓰는 일이잖아요. 농사일 도와드리고, 읍내로 나가실 때 차 태워드리고…. 도와드릴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도와드렸더니 이제 조금씩 인정해주시더라고요.”(한승환)
“도시랑은 하루의 사이클이 전혀 달라요. 해가 조금만 떠도 너무 더워서 일을 못하니 꼭두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는 분위기입니다. 설령 우리가 늦잠을 좀 자고 싶다고 해서 우리 방식대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날 수도 없어요. 괜히 동네 분들에게 농촌에 놀러왔다는 인상을 줄 수 있거든요. 제때 일하고, 밥 먹고, 동네 분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더라고요.”(김진탁)
감자, 고구마 등의 작물과 각종 쌈 채소를 경험 삼아 키우고 있는 이들. 그동안 재배한 작물은 온라인 사이트(sj-4man.co.kr)를 통해 판매하며 수익구조를 갖춰가고 있다. 조금씩 기반을 닦아가면서 이제 각자의 진로를 고민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유기농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은 김진탁 씨는 농업 쪽으로 자신의 길을 결정했다. 한승환 씨는 아직 여러 가지 대안을 두고 고민하는 중이지만, 유학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귀중한 인생 경험을 하고 있다.
“도시에 살 때는 누려보지 못한 정신적 여유를 누리고 있어요. 하지만 농촌 생활에 환상이라는 건 없습니다. 일주일만 살아봐도 알게 될 거예요. 여기서는 누가 대신 해줄 사람이 없기에 뭐든 만능이 되어야 해요. 제 눈에는 모두가 맥가이버거나 초인이에요. ‘돈이면 된다’는 것도 통하지 않죠. 결국에는 자기가 다 해야 하거든요. 저의 목표 또한 뭐든 다 척척 해내는 경지에 오르는 것입니다.”(한승환)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 다니다가 힘들 때마다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어야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건 ‘귀농’과 ‘귀촌’을 착각하고 하는 말인 것 같아요. 전원주택을 짓고 텃밭 정도만 가꾸는 삶과 농사를 직업으로 삼는 건 다르거든요. 여유로운 삶을 생각하고 쉽게 내려왔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김진탁)
/ 여성조선
취재 박주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