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시먹는달팽이 2024 봄호]
김미희 연재 : 동시 레시피 소스/무생물의 생태계
∙모양: 주로 둥근 몸체를 가졌음. 크기는 다양하며 가끔 세모나 네모 등 다각형이나 날개형을 지향하는 개체도 있을 수 있음.
∙습성: 틈만 나면 굴러감. 타인의 의지를 반영해 움직일 때가 대부분임.
∙천적: 갯벌이나 모래밭, 진흙탕을 싫어하며 땅에 박힌 못, 압정 등 뾰족하고 날카로운 것들.
∙수명: 평균 수명은 오만 킬로미터이나 근육량에 따라 차이가 있음. 사후, 일부는 보일러 연료로 쓰이기도 하고 운동시설, 놀이터 바닥, 교통안전 시설물처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부활하기도 함.
∙먹이: 공기를 주식으로 함.
배고픈 타이어 구호 영상/김미희
여러분, 공기 좀 주세요
굶주림에 처한 이 타이어들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
하루에 풍선 하나만큼이면 충분해요
쌩쌩하게 부활하려는
이들의 용기를 응원해 주세요
∙진화: 두루마기 소매->고쟁이 속->호주머니->누런 봉투->헝겊 주머니->가죽(비닐)지갑->삼성(애플)페이
∙습성: 들어오고 나가는 것들에 까탈스럽거나 혹은 너그러울 수 있음. 이는 때와 장소,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서 보편적 성격이라 단정 지어 말하기 어려움.
∙수명: 휴대폰과 여타 첨단 기기에 일자리를 뺏기고 있으나 명품 샵이라는 울타리에서 극진한 보호와 대접을 받는 개체도 적지 않으므로 아직 멸종되기에는 이름.
∙먹이: 지폐, 동전, 카드, 명함, 영수증, 사진 등등 잡식성.
∙천적: 인간의 건망증 또는 변덕. 이로 인하여 분실물 보관소나 서랍 어딘가, 쓰레기통에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음.
멸종 위기/김미희
인공 지능 시대라나
수많은 직업이 사라지고
새로운 직업이 생겨난다
나는 어떻게 될까?
살아남으려면
하나를 넣으면 둘이 되게 하는
요술 단지를 찾아가 비법을 배워야 하려나
∙습성: 한자리에 붙박이려는 본능이 강함.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있을 거로 추정됨.
∙취미: 가끔 불행하게 인간의 발길질이나 놀잇감이나 화풀이 대상으로 발탁되면 포물선을 그리며 날기도 함. 서식지를 옮기고 싶을 때는 물 위에 점을 찍는 물수제비 체전에 참가하여 육지에서 물속으로 이사함.
∙특기: 동료들과 힘을 합치면 사람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염력을 발휘하기도 함. 이는 아래 깔린 동료들의 인내와 희생을 담보로 이루어지는 것임. 인간 이기심의 발로임을 인정하지만 돌멩이를 신적으로 우러르는 마음에 감동하여 자비를 베풂. 탑이 된 돌멩이들은 인간의 눈을 피해 반드시 정기적으로 위아래 순서를 바꿔야 함. 이는 돌멩이 노동권에 굵은 글씨로 강조하여 명시되어 있음.
∙신체 특징: 오감 중 청력이 특히 발달하여 인간의 마음속 소리를 들을 수 있음. 혹자는 이를 독심술을 겸비하였다 극찬함. 마음을 읽은 노력 덕분에 인류보다 살아남을 확률이 현저히 높음. (책 참고:‘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어 보시오.)
들어줄까 말까/김미희
탑이 되는 순간 돌멩이에는
귀가 달린다
귀가 달린 귀멩이들에게
소원들이 우글우글
~해주세요 ~해주세요
메아리치며 귀를 간지럽힌다
몹시 간지럽다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없다
어 어, 탑이 무너질 것 같다
에이, 그래 들어주자
한번 소원을 들어준 귀멩이는
다시 돌멩이가 되어 꿈을 꾼다
*김미희 littleg2001@naver.com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달리기 시합’으로 등단,
『어찌씨가 키득키득』 『예의 바른 딸기』,『동시는 똑똑해』
『외계인에게 로션을 발라주다』, 『마디마디 팔딱이는 비트를』, 『실컷 오늘을 살 거야』,『순간이 시가 되다, 폰카 시』,『폰카 시가 되다』,『놀면서 시 쓰는 날』,『뒹굴뒹굴 시 쓰기 좋은 날』 과 동화 『도토리 쌤을 울려라』 외 여러 권을 썼습니다
첫댓글 신선하고 재밌어요!! 🙌
오늘도 반짝이시길요~~
감탄^~^ 최고입니다 ᆢ 나의 명품 장지갑도 본연의 기능을 잃고 서랍에 감금당한지 오래 되었지요
장지갑이 백수가 됐군요 ㅠㅎㅎ
동시 레시피 소스를 손에 넣었으니 이제 제 동시가 좀 신선해지려나요? ㅎ잼납니다요.
재밌게 보아주셔서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