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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기 싫은 날」의 외침을 들으라
김 민 휴
1, 짧은 만남, 긴 스승 - 김남주 시인
김남주 시인의 연보를 보았다. 1980년 12월 23일 남민전 사건으로 대법원에서 징역 15년 실형 확정. 광주교도소에 수감됨.
1988년 12월 21일 형집행정지로 투옥생활 9년 3개월 만에 전주교도소에서 출감.
나는 김남주 시인과 같은 해남에서 태어났다. 내가 처음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1976년 11월부터이다. 김남주 시인과 나는 고향이 같고 내가 시를 쓰고 있기 때문에 뭔가 좀 개인적인 인연이 있다던가 아니면 나 혼자라도 그를 따른 경험이 있달지 그것도 아니면 그의 사후에 그를 추모하는 행사에라도 참여했을 법하고 또 응당 그렇게 해야 도리일진데 아직까지는 그런 경험도 없다. 죄송할 따름이다.
1978년 나는 광주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 전통과 역사가 빛나는 광고문예반 반장이었다. 1978년 1월 10일경 선배들 졸업식이 있는 날 아침, 나는 1년 선배인 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역임한 김형수 시인으로부터 문예반장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이미 각이 없어져 모양이 흐물흐물하고 퇴색되어 노리끼리해진 교복 모자를 벗어 내 머리에 씌워주었다.
그 당시 내 머릿속은 온통 시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 다른 어떤 생각이나 교과 공부가 비집고 들어올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시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너무 부풀어 행복하고 괴로워서 머리가 빠개질 것만 같았다. 덕분에 4남 4여 중 막내로 태어나 객지에서 가난한 자취생활을 하며 극빈한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바로 2년 전인 고1 9월에 어머님을 잃고도 세상과 삶의 물정을 모르고 이제 막 각각 10번 내외까지 시리즈를 발행하고 있던 민음사시집, 창비시집을(당시 문지 시집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탐독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10.26, 12,12, 5.18 …. 걷잡을 수 없이 나라와 세상이 나빠져 피 끓는 젊은이들이 역사의 부름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시험에 떨어지고 나서 보니/동시에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4년 째 되고 있던 우리집은 완전히 조각조각 깨어진 난파선이 되어 있었다. 단박에 철저하게 단 한 끼의 식사, 단 하룻밤의 잠자리, 단 한 벌의 옷을 구걸하는 신세가 되었다. 철저하게 얻어먹고, 얻어자고, 얻어입고 하는 나는 점차 현실을 피하게 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나에게도 아직까지도 박달나무 방망이로 맞아 찢어진 이마의 흉터, 공수부대에 쫓기다 광주일고 담장에서 떨어져 깨진 앞니 등이 엄연히 남아 있다. 앞니 3개가 곧 빠질 듯 흔들리고 그 중 한 개는 끝부분이 택끊어지고 한 개는 금이 3줄이나 가 있어 곧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정신없이 버스 위로 뛰어 오르니 어떤 아줌마가 막 사오는 중인 노란수건으로 피가 흐르는 입을 막아주고, 버스 기사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아 차를 출발 시키고 나를 뒤쫓던 서너 명의 공수부대원들은 버스 꽁무니를 주먹으로 치며 아쉬워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해댔다.
지금은 이사를 가고 그 자리에 e-편한세상 아파트가 들어선 광천동 지금의 시외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건너편 송원고등학교 앞 공터가 당시엔 20번 버스 종점이었다. 종점에 내려 아무 집에나 들어가니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깜짝 놀라며 수돗가에 데리고 가 파묻은 얼굴을 닦아 주며 꼼짝 못하게 하더니 저녁을 차려 함께 먹자고 하셨다. 저녁을 먹으면서 보니 권투선수 박찬희 세계타이틀 2차 방어전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아래 자막으로 광주시내 9시부터 통행금지!! 문구가 계속 지나간다.
김남주 시인의 연보를 다시 본 이유는 이렇다. 5.18 이후 나는 개인적으로 생계/삶을 지탱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더불어 늘 역사 현장의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무르게 된다. 하지만 나로서는 뚜렷한 기억이 한 개 있다. 1983년 5월로 기억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의 이 기억은 연도가 올바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당시 김남주 시인이 교도소에서 잠시 휴가를 얻어 나오지 않았다면, 하지만 시간 이 외의 기억 내용은 정확하다.)
나는 금남로 YMCA 1층 마룻바닥에 앉아 있었다. 밖의 금남로에서는 시민들과 전경대가 밀고, 밀리고를 반복하며 투석전을 하고 있었다. 마룻바닥에는 2,3백 명이 앉아 있었다. 사회자의 소개가 있고 김남주 시인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난 그분을 이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았다.
김남주 시인이 물었다. "여러분! 여러분 앞에 있는 적이 누구입니까?"
마룻바닥에 앉아 있는 우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전경이요!"
시인이 다시 묻는다. "여러분! 저 전경들 뒤에 누가 있습니까?"
"전두환이요!!!"
"전두환 뒤에 누가 있습니까?"
"레이건이요!!!"
"레이건 뒤에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
"--------------?"
단 한 명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 때 우리는 무식했다, 이 때 김남주 시인의 일갈은 천둥벼락소리 같은 것이었다. 번갯불 같은 것이었다.
"여러분, 레이건 뒤에는 월가의 자본가들이 있습니다."
그의 이 한 마디는 지금까지 내 사유판단의 척도 그리고 인생걸음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 때 이후 근현대 세상을 읽는데 내가 혼란이나 혼동에 빠지는 일은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사족으로, 한 가지 더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녹색평론의 김종철 선생의 강조를 통해 알게 된 지금은 석유시대라는 것이다.
이제 교육은 총량의 덩치는 가장 크고 그 가지 수는 가장 세밀하게 분화된 돈벌이 상품이 되어 있다. 교육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호주머니 돈을 쪽쪽 빨아먹는 빨대이기도 하다. 오늘날 대학이 하는 일도 쪽쪽 빨아먹고 버리는 일이다. 김남주 시인이 내게 준 깨달음으로 「학원가기 싫은 날」을 둘러싼 최근 세상의 시끌시끌함을 한 번 생각해보고자 한다.
2. 진짜 잔혹한 날들의 사회 - 「학원가기 싫은 날」
학원가기 싫은 날/ 이 순 영
학원에 가고 싶지 않을 땐
이렇게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
이빨을 다 뽑아버려
머리채를 쥐어뜯어
살코기로 만들어 떠먹어
눈물을 흘리면 핥아먹어
심장은 맨 마지막에 먹어
가장 고통스럽게 -동시집 『솔로 강아지』에서
일거에 '잔혹 동시'로 명명이 되며 세상을 흔들고 있는 동시 작품이다. 먼저 나는 이 동시집이 세상에 나오게 된 우리 사회의 현실과 또 이 동시집이 세상에 나오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우리 사회의 현상에 대해 많은 대화들이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 동시의 시적 화자, 자아, 주체는 분명 올해 10살인 작가 이순영만이 아닌 오늘날 대한민국의 좁혀 말하면 초중고 학생이겠고, 좀 범위를 넓히면 어린이집 유치원생 그리고 대학생, 더 넓히면 상위 몇 프로인가에 못 끼는 우울한 군상들이겠다.
무엇보다 이 동시가 문학 작품으로 창작된 것만은 확실하지만, 단순한 창작품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동시는 쓰기의 결과물이 아니라 읽기의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이 동시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는 원이미지가 아닌 거울이미지이다. 다시 말해 이 동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 세상을 투명하고 선명하게 거울로 비춰주고 있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1980년대에 광주 YMCA 1층 강당 바닥에 모인 시민들, 거리에서 민주화를 외치던 시민들, 세상 수준의 향상과 인간존엄 정신의 심화를 위해 애쓰던 시민들이 문제 뒤의 문제, 적 뒤의 적을 몰라서 보였던 것과 같은 한계 때문으로, 또는 직접 대면하는 바로 앞의 대상이 엄마이니까 그저 엄마를 씹어 먹자고 한 것이다.
우리 앞의 적은 전경, 전경 뒤에는 전두환, 전두환 뒤에는 레이건, 레이건 뒤에는 월가의 자본가가 있다는 깨달음을 이 어린 시적 화자가 알아가며 더 좋은 그들의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도와줘야지 '잔혹동시'라는 묘비명을 써 땅바닥에 묻을 일은 아니다. 불편하고 두려운 시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선명하게 비춰주는 이 동시를 우리가 돌려 읽으며 무엇이 이렇게 우리 아이들을 힘들게 하고 있는가를 밝혀 바꿔가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볼 때는 이 세상이 전능한 힘을 가진 이 땅의 어른들이 만든 진짜 잔혹한 세상이 된다.
막말로 새끼에게 씹어 먹힐 죄를 짓고 있는 우리사회의 엄마들이 교육문제의 최종 책임자인가? ‘A양 아버지는 "일부 기독교·천주교 신자들이 동시집을 '사탄의 영이 지배하는 책'이라고 말하며 심한 우려를 표하고 있다"면서 "저희도 신자로서 심사숙고한 결과 더 이상 논란이 확대 재생산되는 것을 원치 않아 전량 폐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밝혔다.’(서울신문 기사 인용)라고 하는데 어찌 보면 사탄이 되어가는 우리들에게 하느님이 이 동시를 통해 경고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또, 이런 시선으로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미지 시는 이미 발표된 적이 있다.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을 인용해 본다.
갈라진 교육/심지현
오빠 내가 화장실 가다가 들었거든, 내일 아줌마가 우릴 갖다 버릴 거래.
그 전에 아줌마를 찢어발기자.
우리가 죽인 토끼들 옆에 무덤 정도는 만들어 줄 생각이야.
토끼 무덤을 예쁘게 만들어 주는 건 오빠의 즐거움이잖아.
아줌마는 가슴이 크니까 그건 따로 잘라서 넣어야겠다. 그년의 욕심만큼 쓸데없이 큰 젖.
여긴 아줌마가 오기 전부터 우리 집이었어, 난 절대 쫓겨나지 않을 거야.
너 시들지 않는 새엄마를 시기하고 있구나. 아버지가 무능해서 고생하는 예쁜 나의 새엄마.
그녀가 나를 버려도 괜찮아. 개처럼 기어가서 굶겠다고 말하면 그만인걸.
그게 안 먹히면 그녀의 가슴을 빨고 엄마라고 부르면 되지.
잠 설치는 아이를 달래는 척 밤마다 날 찾을지도 몰라.
자꾸 커지는 나를 본다면 오히려 그녀는 아이가 되겠지.
아, 못생긴 엄마가 떠나면서 주고 간 선물. 예쁜 우리 새엄마!
심지현 시인은 이 시적 표현의 발상에 그림형제의 잔혹동화가 영향을 끼쳤다고 했다. 당선소감, 심사평, 그림동화를 한 번 다시 읽어볼 일이다.
이 동시집에 대한 대화들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동시집 [솔로 강아지]를 서점에서 만날 수 있고, 우리가 좀 더 넓고 깊게, 각자 그리고 함께 우리의 삶과 사회를 성찰해 볼 수 있고,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2015.05.10>
첫댓글 김 시인의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사하는 바가 크고 한국사회를 민낯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