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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세계화 담론에 대한 반성과 제언
명 법
서울대학교 강사
<국문초록>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회를 계기로 본격화된 ‘한국불교의 세계화’ 담론은 1990년대 이래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세계화에 의해 추동된 대응 담론의 하나이다. 그것은 글로벌시대에 살아남기 위하여 한국정부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 기획에 발맞추어 조계종단에서 불교포교를 위해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방향 못지않게 세계불교의 한국화도 존재한다. 1990년대 이래 세계 여러 불교전통이 유입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남아시아 불교전통과 티벳 불교전통의 유입이 두드러진다. 한국불교와 남아시아, 티벳불교 사이의 직접 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발단은 서양에서 불었던 남방불교와 티벳불교의 열풍이므로 이 현상은 지역문화의 상호 교류라기보다 주류문화의 세계화로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 지역불교의 세계성은 서양에서 형성되고 세계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불교가 해외에 알려지게 된 계기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지만 한국불교는 이민사회나 미국의 주류 사회에서 소수에 불과하다. 한인 이민사회에서 기독교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나 최근 한국불교는 주류사회에서의 불교 붐에 힘입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재외한인에 대한 포교는 한국인의 정체성 확립과 한국문화의 세계화, 그리고 한국 사회에 끼치는 이민자들의 종교적 사회적 영향력 때문에 소홀히 되어서는 안 된다.
서양의 주류사회에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으나, 한국불교는 숭산 스님의 경우를 제외하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불교를 서양에 알리기 위해서는 1960년대의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서양문화를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한국불교를 변용해야 한다. 이를 위하여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미국인 불교지도자들과 세계적인 문제들을 함께 해결하는 연대를 맺어 지속가능한 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방안 중에서 한국불전의 영역사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무엇보다 난해한 직역체에서 벗어나 서양인이 이해할 수 있는 번역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한글로 쓴 법문을 영역하는 것도 대중화를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번역 작업이 스즈키가 했던 것처럼 국가주의적 의도로 한국문화를 신비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한국불교를 왜곡할 뿐 아니라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이 간화선이며 그것이 우수한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그 우수성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한국불교를 일방적으로 전달하기보다 한국불교가 처한 다종교, 다문화적 상황 속에서 새로운 불교를 형성하는 과정을 통해 세계불교에 하나의 전범이 될 수 있다. 전통과 현대, 지역문화와 주류문화가 만나고 충돌하고 혼융되는 세계화의 보편적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이 문제의 해결을 통해 한국불교는 세계불교를 위한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그 밖에 서양 대학생을 초청하여 한국불교를 체험하게 하는 프로그램의 개발, 비구니승가의 복원이나 환경문제 등의 사안에 대하여 서양불교인들과 연대하는 방법, 간화선 외에 염불, 사경, 예참 등을 소개하는 것이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한 방안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국불교를 세계화하려면 무엇보다 한국불교 내부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전통과 현대를 조화시키고, 다종교·다문화 속에서 불교적 가치를 확립하며, 시대와 소통하는 새로운 승가상 확립이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요청되는 선결과제이다.
주제어: 세계화, 한국불교, 정체성, 미국불교, 해외포교
1. 시작하며
한국불교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 여러 해 흘렀다. 지금까지 이 논의는 한국불교 우수성과 세계화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발언들과 그 증명으로서 외국인, 그것도 북미나 유럽에서 초청된 인사들로부터 한국불교의 우수성과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과연 그들이 전해주는 것처럼 한국불교가 서구에서 환영받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줄 사람들만 불러 모아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런 의구심이 전혀 근거가 없지 않은 것은 한국불교 세계화에 대한 낙관적 전망에도 불구하고 그와 반대되는 주장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류황태는 「깨달음에 대한 태도로 본 한국불교의 세계화」에서 “미국 지성 속에 한국불교가 존재하는가”라고 강한 의심을 제기하였다. 그는 미국 도서관에 비치된 한국 불서의 빈약함을 일례로 들면서 “한국은 여전히 은둔의 나라”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혹자는 숭산 스님의 성공을 예로 들어 그의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숭산 스님의 경우를 제외하고 한국불교가 서양에서 성공했다는 어떤 객관적인 자료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더구나 숭산 스님의 입적 이후 미국 백인사회에서 관음선종의 교세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미국에서 한국불교의 인지도가 낮다는 류황태의 지적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한국 신문에서 실리는 “‘파란 눈의 스님’을 언급하면서 한국의 불교가 세계로 뻗어나간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기사”는 혜민 스님이 주장했듯이 국내용에 불과한 것일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국불교 세계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낙관적 전망보다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들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반성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한국불교를 세계화할 수 있을까? 단순히 세계를 향해 뻗어가기만 하면 그만인가? 그래서 세계 곳곳에 ‘대한불교조계종 지부’를 세우면 그것으로 충분할까?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주장하면서 마조와 임제를 들먹이는 논자들은 또 어떠한가? 도대체 중국불교, 일본불교와 구별되는 ‘한국불교’는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답하기 위하여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세계화 현상’에 대하여 먼저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은 최남선 이래 지금까지 계속 논의된 주제이다. 김상현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이루어진 ‘한국불교의 정체성’ 담론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일련의 연구를 통해 잘 밝혀주었다. 이 논문들은 ‘한국불교의 세계화’ 담론이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점을 비판하였다. 조성택은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하여 무엇보다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한국불교의 특징을 통불교로 규정하는 기존의 학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한국불교의 정체성’ 담론은 한국불교의 우월성을 고집하는 그 국가주의적 성격 때문에 한국불교에서 발생한 변화, 특히 타 불교 전통의 영향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편협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려는 야심찬 기획인 ‘한국불교의 세계화’ 논의 이면에는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본격화된 세계화 논리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세계화는 세계 여러 불교전통의 유입을 가져왔는데, 그것은 불교계에 적지 않은 변화와 파장을 가져다주었다. 이처럼 한국불교 내부에서 발생한 세계화 현상을 ‘현상으로서의 세계화’라고 부르겠다. 지금까지 한국불교에 대한 종교사회학적 연구는 대부분 한국불교에서 발생한 변화를 내적 원인으로 설명하였을 뿐, 세계화의 관점에서 한국불교에 나타난 세계화의 영향을 연구한 논문이 거의 없고, ‘한국불교의 세계화’ 논의는 ‘한국불교를 어떻게 하면 세계적인 불교로 만들 수 있는가’라는 논의에만 집중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불교를 세계화하기’ 기획은 바로 한국 사회에서 발생한 ‘현상으로서의 세계화’에 의해 추동된 대응 담론의 하나이다. 이러한 논의를 ‘프로젝트로서의 한국불교의 세계화’라고 부르겠다. 하나의 종책 과제로서 그것은 앞에서 언급한 ‘한국불교의 정체성’에 대한 비판적 논구들이 지적하듯 한국불교를 단일한 특징을 가진 정태적인 것으로 파악했으며 한국불교에서 발생한 변화의 측면을 무시하였다. 이 글은 지금까지 한국불교의 정통성 담론과 세계화 정책이 형성된 배경에 존재하는, 한국불교에 미친 세계화의 영향을 살피고 지금까지의 해외포교의 한계가 무엇인지 분석해보고자 한다. 아울러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불교를 세계화하기’의 방안에 대해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하겠다.
2. 현상으로서의 한국불교의 세계화
한국불교 세계화 논의가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는 사실은 이 논의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잘 보여준다. 2002년 한일월드컵 대회는 여러 측면에서 한국 사회를 재정의하였다. 월드컵은 1990년대 이후 한국 사회에서 퍼져나간 세계화의 흐름을 수용하는 입장에 머물지 않고 그 흐름에 대응하여 대한민국을 세계무대로 도약시키려는 국가적 프로젝트의 하나였다. 그것을 계기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문화상품이 개발되었고 한글, 한식, 사찰음식, 한의학 등 전통문화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모색되었다. 그 중 불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가브랜드로 선정되었다. 예를 들면, 템플스테이는 월드컵 기간 동안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하여 한국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면서 월드컵 경기도 관람하는 관광 상품으로서 개발되었다. 당시 전국 33개의 사찰에서 외국인을 유치하였으며 2008년 현재 전국에 87개의 사찰로 확대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관광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2004년 조계종에서는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을 발족시키고 국고보조를 얻어 템플스테이를 위한 인력양성과 숙박시설 개선 등에 투자하였는데, 이렇게 정부의 지원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주경 스님이 지적하듯이 “이 사업이 단순한 사찰 생활의 소개에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 전통문화 형성의 큰 축을 형성해 온 불교문화 체험을 통해 내·외국인에게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인식시키고, 나아가 세계적인 문화관광 상품으로 개발할 수 있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연등축제, 사찰음식 등이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선정되었다. 이처럼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글로벌시대에 살아남기 위하여 한국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세계화 기획에 발맞추어 불교의 생존과 세력 확대를 기하는 조계종단의 기획 중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세계화는 서구 주류문화, 특히 미국문화가 전 지구적 차원으로 퍼져 나가는 현상을 말한다. 앤소니 기든스에 따르면 세계화란 국경을 초월하여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기술, 문화 등의 상호교류와 상호연계성이 빠르게 강화되어 가는 현상인데, 개별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자본과 금융, 통신, 문화상품 등의 생산, 유통, 소비의 경계 설정이 상실되어가고 모든 분야에 걸쳐 교류 공간이 전지구적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세계화는 주류문화에 의한 문화의 동질화라는 문화 제국주의가 아니라 세계화로 인해 문화의 탈영토화가 진행되어 중심부 문화가 주변부 문화로, 지역문화가 세계문화로 이동하는 쌍방향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기든스는 세계화 과정 가운데 한 국가의 문화정체성이 훼손당하고 붕괴되는 것이 아니라 그 정체성이 변화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이 형성되기도 한다고 보았다. 세계화에 따라 다국적 자본이 한국에 들어와 상업적이고 획일적인 대중소비문화를 확산시키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한국문화의 지역적 특수성이 강조되고 그 특수성 속에서 보편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발생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 프로젝트는 바로 한국의 지역성을 강화하고 그것을 전 세계에 확대시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90년대 이후 세계화의 흐름이 가시화된 한국에서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방향 못지않게 세계불교의 한국화도 존재한다. 무엇보다 남아시아 불교 전통과 티벳불교 전통의 괄목할만한 성장을 목도할 수 있다. 90년대 중반 이후 비파사나(Vipasyana) 수행법을 비롯한 다양한 불교수행 방법들이 밀려들어왔으며 서양에서 개발된 여러 수행방법들이 역수입되었다. 최로덴에 따르면, “이는 기존의 한국 불교(학)에서 한계를 느낀 여러 수행자와 연구자들이 80년대 말 해외로 눈을 돌려 공부한 결과로 들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교 관련 서적의 번역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수행자들이 선지식을 찾아 미얀마와 스리랑카, 티벳 망명지가 있는 인도로 떠났다. 또한 티벳과 미얀마 등에서 온 승려들에 의해 사찰이 건설되었으며 2009년 10월에는 “대승 선불교의 심장부 한국불교”에 남방 테라와다 상가가 설립되기까지 했다. 이 운동을 주도하고 한국 최초의 상가라자로 추대된 뿐냐산또 스님은 해인사, 대흥사 주지를 역임한 조계종 스님이라는 사실은 한국불교 내에서 발생한 균열이 얼마나 깊은지 잘 보여준다.
그런데 이 현상은 지역문화 간의 상호교류보다 주류문화의 세계화로 이해되어야 한다. 남아시아와 티벳 불교전통이 한국으로 유입될 수 있었던 것은 80년대 이후 서양에서 불었던 비파사나 수행과 티벳불교 붐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서양 주류문화에 의해 형성된 이들 지역불교의 세계성 덕분에 이들 전통이 한국으로 침투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티벳불교 열풍을 일으켰던 달라이라마의 세계적 명성은 그의 노벨 평화상 수상으로 형성된 것이며 틱낫한은 그의 영어 저서의 한국어 번역에 의해 한국에 소개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 연구된 불교학과 불교 관련서적이 한국에 수입됨으로써 인도, 티벳, 남아시아 등의 불교전통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 사실 불교학은 미국과 유럽에서 일어난 인도학과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영국제국주의 지배 아래 위기에 처했던 스리랑카 불교가 부흥하게 된 것도 미국인 헨리 스틸 올코트 덕분이었다. 한국불교가 남아시아, 티벳 등 지역불교와 직접적인 교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접촉이 가능했던 것은 서양의 주류문화의 세계화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지난 10여 년 동안 종단 바깥뿐만 아니라 종단 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한국불교는 서양을 통해 재구성된 불교의 역습으로 정체성의 혼돈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불교의 한국화는 한국의 수행전통에 대한 반성과 정리의 필요성을 일깨웠으며 ‘한국불교의 정체성’ 역시 심각하게 도전받았다. 그 결과 조계종 교육원에서 2005년 이래 간화선을 선양하기 위하여 간화선을 발간하고 간화선 중흥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세계화 논의는 또한 국제적 교류의 확대를 불러왔다. 법장 총무원장 스님의 미국방문을 비롯한 한일, 한중일 불교도대회 등 국제 교류가 확대되었으며 현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도 “한국 선불교에 대한 위대함을 세계 속에 널리 알리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해외 지역별 한국 불교 네트워크 구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한 승려들의 의식에서도 괄목할만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조계종 중앙종회 교육분과위원회와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불교의 세계화가 필요하다고 인식하는 승려의 수가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이를 위해 전담인력 양성(44.7%)과 종단의 국제역량이 강화되어야 한다(22.2%)고 지적하고 있다.
지금까지 조계종단은 이에 대한 특별한 대책 없이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거나 서양의 불교 붐을 국내포교를 위해 활용해왔다. 그러나 세계화는 한국불교의 우월성을 세계에 알리는 일방적인 방향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세계불교의 한국화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양방향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종책 과제를 입안할 때 양방향의 변화를 동시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해 세계불교 속에 한국불교를 편입시켜 문화의 다양성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한국불교 속에 세계 불교의 다양성을 수용하는 우리들 자신의 열린 자세가 먼저 요구된다.
3. 이민사회에서의 한국불교
한편,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조계종단과 정부의 정책과제로 추진되기 이전부터 현실적인 필요에 따라 요청된 것이기도 하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한국인들의 세계적인 이산, 즉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관련이 있다. 다시 말해 한인들의 전 세계로의 이산과 더불어 한국불교도 전 세계로 진출하였다. 1965년 미국 이민법 개정 이후 한인들의 이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2008년 기준, 재미 한인의 인구는 134만4,267명으로 전체 아시안 인구(1,341만3,976명)의 10%를 차지하며 중국, 인도, 필리핀, 베트남에 이어 다섯 번째 많은 아시아 이민자를 기록하고 있지만 한국불교는 미국사회뿐 아니라 이민사회에서도 소수 종교에 불과하다.
이는 전통종교를 보존하고 전통종교를 중심으로 결합하는 다른 아시아 이민 집단과 다른, 한인 이민 사회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한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전통종교의 확산을 수반한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의 아랍계 이민의 증가는 이슬람의 확산을 가져와 기독교사회와 마찰을 일으키고 있고 미국에서의 라틴계의 증가가 가톨릭 신자의 증가를 초래했고 아시아로부터의 이민은 불교가 미국에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불행히도 한인의 세계화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동반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인들은 이주한 이후 10년 내에 모국에서 믿어온 종교를 버리게 됨”에 따라 한인의 이산은 기존의 불자들마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 내 한인 사회에서 기독교는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그것은 이민사회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기독교 세력 확장에도 큰 영향을 미쳐왔다.
한인 이민은 초기부터 기독교와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다. 기독교 선교사들의 존재는 초기 하와이 이주로부터 한국인 기독교인 외에도 전체 한국인 이민사회의 발전과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Matty Wegehaupt에 따르면, 기독교는 한인들로 하여금 ‘한국인임’을 유지하면서도 동양에서 서양으로 건너뛰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한인들은 기독교를 통해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믿었기 때문에 일본인이나 중국인들과 달리 전통적인 종교를 쉽게 버릴 수 있었으며 그 결과 “지배세력의 종교에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한국인들”이 다른 어떤 민족보다 미국 시민권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는 미국 내에 한국 불교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까닭이 부분적으로는 한국인들이 서구에 합치하기 위해 서구의 종교를 선택하여 적응하고 수용한 결과라고 보았다.
또한 Matty Wegehaupt는 조선시대의 불교 억압과 관련된 한국불교의 제도적인 약점과, 특히 미국이나 기독교와 대비가 되는 불교의 상징적인 힘이 허약함이 다른 아시아 이민자들보다 한인 이민자들이 “전통적이고 종교적인 문화에 대하여 관심이 훨씬 적은”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특수한 사회학적이고 심리학적인 배경 역시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는 열망을 부채질하고 기독교로의 개종을 촉진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다시 말해 제국주의의 지배나 독제체제 아래에서 고통 받았던 한국 현대사 때문에 “미국과 연계된 기독교는 올바른 한국의 성장을 위한 정치적, 경제적인 그리고 심지어는 정신적인 길로 등장”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미국 주류사회에 동화되려는 한인 이민자들의 강력한 열망이 궁극적으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한편으로 한인 이민사회에서 전통적인 종교적 정체성이 쉽게 허물어진 데에는 19세기 이래 이래 유교와 불교의 사회적 기능의 한계도 그 원인이다.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사회적 활동과 가족 내의 사적 활동은 구분되지 않는다. 유교질서는 가족 질서와 사회 질서를 연계시킴으로써 사회 전체의 안정을 꾀하였다. 불교가 유교적 세계질서에 이질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갈등을 빚었지만, 조선조에는 불교의 사회적 영향력이 미미하여 사회 구성단위인 가족이나 향촌 공동체와 연계되지 못했다.
이민자들이 한국의 전통적인 향촌사회에서 이탈하여 선진 산업사회의 임금노동자가 되었지만 미국 주류사회에 쉽게 동화되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허용된 사회적 삶의 공간은 이민공동체로 제한되었다. 향촌적 신분질서를 근거로 하는 유교는 이민 사회의 변화된 사회관계 속에서 더 이상 종교적으로 기능할 수 없었다.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는 열망과 더불어 교회는 이민자들의 종교적 사회적 정체성의 빈 공간을 빠르게 채워나갔다. 교회는 이민사회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민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며 나아가 그들의 사회적 삶을 가능케 하는 공간이다. 이처럼 교회는 종교적인 이유뿐 아니라 사회적인 이유로 이민자들의 사회에서 급속히 그 세력을 확대함에 따라 교회는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뿌리 뽑힌 한인들에게 종교공통체일 뿐 아니라 사회적 이익집단이며 문화적 동질집단이 되었다.
한인교회가 배타적으로 집단의 동질성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방식은 미국의 한국불교에 두 가지 어려움을 강요한다. 첫째, 한인교회가 구축한 공동체적 성격을 싫든 좋든 모방해야 한다. 버스웰이 지적했듯이 한인 사찰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년 여성 불자들의 헌신적인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들은 미국에 오기 전부터 불자였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사찰을 찾는다. 만약 한국사찰이 미국 주류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한인들에게 한인교회가 제공하는 것과 같이 사회적 자아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주지 못한다면 한국에서 새로 이민해오는 불자를 제외하고 미국에서 한국사찰의 신도수가 늘어나기를 바라기 어렵다. 한인교회의 인프라를 따라갈 수 없겠지만 부족하나마 한인불자들의 네트워크를 조직해서 중년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과 청소년들까지 포교할 수 있도록 신행단체를 조직하고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대부분의 한인에게 이민의 목표는 자녀 교육이다. 기독교는 이민사회뿐 아니라 미국사회에서도 주류이기 때문에 부모가 불자라 하더라도 자녀들은 학교에서 기독교적인 환경에 둘러싸이게 된다. 왕따 되기를 각오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부모의 종교를 따르기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다른 아시아 사찰들조차 이민 2, 3세들의 참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비추어볼 때, 한인 2, 3세들에 대한 포교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국적 사고와 생활방식을 배운 이들에게 그들의 부모처럼 헌신적으로 사찰을 지원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한국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유지되는 사찰 운영과 신행 방식, 그리고 특히 여성에 의존하면서도 여성차별적인 사찰문화는 다음 세대 한인들에게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이민사회에 불교를 전파하는 일은 다음 세 가지 의미에서 흔히 ‘한국불교의 세계화’가 염두에 두는 ‘파란 눈의 불자’를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첫째, 한인들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필요하다. 한국전통문화의 70% 이상이 불교문화이다. 재외 한인들이 기독교 교회를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최근 한인 교회에서 한글학교나 풍물패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피상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독교 교리와 신행형태는 한국 문화정신을 이해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갖기 때문이다. 또한 장차 세계화가 더 진행되어 문화적 다양성과 관용이 확대될 때,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그들의 혼성적 정체성은 그들의 경쟁력이 될 것이다. 현재 불교문화라는 이유로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는 한인사회에서 무시되고 있지만, 한국문화, 특히 서양에서 각광을 받고 있는 불교문화에 대한 체험은 재외 한인들의 주류사회에서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양에서 활동하는 학자나 예술가들에게 한국문화가 그들의 독창성의 원천이 되고 있는 예를 볼 때, 재외 한인은 주류문화의 경험과 함께 한국적 정서와 가치를 이해할 수 있는 혼성적 상황은 서양 주류사회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할 수 가능성을 제공한다.
둘째, 이민사회는 해당 지역에 한국문화를 알리는 교두보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한인 2, 3세들이 주류사회로 진출할 것이다. 한국과 한국문화 역시 이들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될 것이다. 불자 한인 2, 3세들이 학술, 문화, 스포츠, 정치, 경제 등 사회 모든 분야에 진출할 때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그다지 어렵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셋째, 한국 사회 내에서의 불교의 존립과 세력 확대를 위하여 재외 한인들에 대한 포교가 필요하다. 재외 한인들은 일방적으로 모국에 의존하지 않는다. 더구나 한국처럼 강한 서구지향성을 갖는 나라에서 재외 한인, 특히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의 한국 사회에 대한 정치, 사회적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다. 세계화를 통해 주류문화가 확산되고 심화될수록 서양에서 교육을 받은 이민자들의 모국에 대한 영향력이 확대될 것이다. 최근 역이민과 조기 유학생들의 귀환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의 국내 활동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한 예로 대중문화 부분에서 활동하는 재외한국인들을 보면 그들이 한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 장차 세계는 더 압축되어 국내와 국외의 구분이 거의 무의미해질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미래의 혼성적 공간에서 이들의 역할도 확대될 것이다. 그 영향력은 서양의 주류사회뿐 아니라 모국에도 행사될 것이다. 지금까지 서양에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한국사회의 지도적 계층이 되어 이들을 통해 기독교의 세력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재외 한인에 대한 포교는 국내에서의 한국불교의 존립을 위해서도 시급하다 하겠다.
이 점에서 불교의 장래는 그다지 나쁘지 않다. 유의영은 “이전에는 불교 신자였다가 기독교에 다니다가 다시 불교로 되돌아오는 사람들이” 1980년대 후반기에 급속히 증가하고 있는 사실을 보고하였는데, 거기에는 한국 사찰의 증가와 기독교 교회에서 느낀 괴리감, 그리고 미국 주류사회에서 점점 커져가는 불교의 위상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 대학에는 불교 관련 강좌가 개설되어 있으며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강좌이다. 초중〮등학교에서 기독교가 주류이지만 대학교와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상황이 역전된다. 미국에서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교육 받은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민자의 입장에서 볼 때 불교는 주류문화를 대표하게 된다. 따라서 주류사회에 편입하려는 열망을 가진, 대학을 진학 불교인 2, 3세는 아시아적 〮등 속에 있었던 구시대적 유물이 아니라 가장 새롭고 진보적인 종교로서 불교를 만나게 된다. 비록 그들의 종교가 기독교라 하더라도 대학에서 불교 강좌를 듣는 학생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문제 이들의 불교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신행으로 연결시키느냐, 그리고 그들이 이민사회로 되돌아가거나 한국으로 귀국했을 때, 그들이 미국에서 접한 불교를 지속시켜 줄 사찰과 스님들, 그리고 문화적 공감대를 나눌 집단이 한국에 존재하느냐이다. 어떤 형식이든 서양에서 불교와 접촉했던 한국인들을 한국불교의 울타리 속에 포용할 수 있다면 한국불교의 장래는 밝다고 하겠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의 불교의 존립을 위하여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 세계의 한인사회에 주류를 이루는 기독교 세력에 대응하여 한인사회 내에서 불교를 확산시키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또 이민사회의 포교를 그 사회의 주류 계층에 대한 포교와 어떻게 연계할지, 한인들의 지위 개선에 어떻게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지 등의 문제가 다각도로 검토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는 서양의 주류사회에 대한 포교의 발판이 될 뿐 아니라 ‘기독교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한국 사회에서 불교가 어떻게 대응해가는가’와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4. 변화된 미국불교의 지형
유의영이 들고 있는 한국불교의 “미국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경로인 불교 지도자, 민족 사찰, 학자 중에서 숭산 스님의 불교 포교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한다. 숭산 스님의 불교 포교는 백인을 상대로 한 개종불교로 분류되는데, 일본을 제외하고 백인을 상대로 한 포교에서 이처럼 성공적인 경우도 없다. 특이한 점은 숭산 스님의 센터가 이민사회의 한인에 의해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불교를 선호하는 서양인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선사들이 처음 백인을 상대로 포교에 나섰을 때 일본 이민사회에 기존에 있던 사찰에서 시작한 것과 대조적인데, 아마도 미국에서 한국불교의 열악함이 숭산 스님이 한인들과 별개로 서양인 포교에 나서게 된 원인이 아닌가 한다. 대체로 개종불교가 발전하면서 아시아 이민불교 공동체에서 분리되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일반적인 흐름이긴 하지만 한국불교처럼 양자의 관계가 소원한 경우도 드물다.
한국불교는 이민불교에서도, 서양인을 대상으로 한 포교에서도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인상이다. 아직까지 숭산 스님의 해외포교가 ‘한국불교 세계화’의 롤 모델이 되고 있다면 그의 성공에 대하여 좀 더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과연 그의 불교가 한국불교의 수행법을 바르게 전달했는지, 현대 서양사회에 제대로 적응했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숭산 스님의 탁월한 교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후 교세의 위축이 두드러지고 주류사회와의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원인을 생각해보도록 하자.
첫째, 미국의 불교 환경의 변화이다. 미국의 불교 환경이 초기 비트세대나 히피세대와는 급격히 달라졌다. 숭산 스님이 활동하던 시절처럼 스승의 개인적인 카리스마에 의지하던 불교의 시대는 서양에서 사라졌다. 1960년대 이래 불교 공동체에서 이들 카리스마적 지도자들에 의해 야기된 몇몇 스캔들 이후, 스승의 무제한적 권위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다. 불교지도자들의 수행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 그리고 개인의 무제한적 권력을 제한하는 집단 지도체제의 확립, 지도자와 일반 신도 사이의 위계질서에 대한 거부, 여성 불교지도자의 등장 등 새로운 미국적 승가체제가 확립된 지 오래다. 비트, 히피 세대의 Crazy Zen, 즉 마약과 섹스, 도덕적 방종 등 일탈 행위가 더 이상 용납되지 않으며, 선불교에서 강조했던 ‘깨달음’의 매력은 틱낫한과 달라이라마가 강조하는 자비와 평화의 메시지로 대체되었다.
또 합리주의적 사고에 따라 지도자들에게 무조건적인 보시와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납득할만한 가르침이 주어질 때만 그 권위를 인정한다. 지도자의 권위는 존중되고 있지만 엄격한 도덕적 잣대에 따라 그의 지도력이 평가된다. 또한 달라이라마가 보여준 친화적이고 소탈한 지도자의 모습은 서양에서 티벳불교 붐이 일어나는 데 기폭제가 되었다. 이제 요구되는 불교지도자는 카리스마를 가진,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힘든 존재가 아니라 공동체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현실적인 가르침을 주는 자이다.
따라서 승려의 권위를 강조하는 한국불교 스타일은 더 이상 통용되기 어렵다. 해외에서 한국불교를 포교하려는 승려들에게 나타나는 가장 큰 문제는 독선과 배타적 태도, 그리고 권위주의이다. 이 문제는 단지 영어를 잘한다거나 미국에 산다고 해결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한국 비구 비구니들이 한국불교를 한국계 미국인들이나 미국의 주류 문화와 분리시키고 있는 문화적인 격차를 잘 처리할 만큼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오랫동안 한국불교와 관계를 맺고 있는 버스웰의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한국불교를 서양인에게 전달할 때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템플스테이와 같이 한국에서 시행되는 외국인 대상의 포교 프로그램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오랜 세월 한국불교에 체질화된 권위주의는 한시 바삐 청산되어야 한다.
둘째, 현지화의 문제이다. 미국불교의 역사는 시카고 종교회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더라도 100여년이 흘렀다. 미국불교는 아시아에서 불교를 수입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초기에 소수의 예술가나 지식인들이 관심을 갖는 대안 종교에서 80년대 이후 대중적인 종교로 탈바꿈했다. 새로운 신행 공동체가 나타났으며 불교 명상센터가 소도시에도 세워지고 리트릿 센터에서는 주말 안거 프로그램이 시행되고 있다. 대학에 다양한 불교 강좌가 개설되었고 불교서적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며 불교음악과 영화, 비디오 뿐 아니라 최근 유튜브 자료까지 도처에서 자료들이 넘쳐난다. 이제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쉽게 불교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미국불교 지도자들은 초기 일본선사들로부터 전법을 받은 제2세대, 3세대의 미국인들이다. 이들에 의해 아시아의 스승들에 의해 전해진 불교가 점차 미국적인 형식과 내용을 갖추어가고 있다. 한 예로 버니 글래스만의 젠피스메이커 활동을 보자. 이 그룹은 일본에서 건너온 마에즈미 선사로부터 일본의 조동종과 임제종이 혼합된 형태의 선법을 전수받았으나 지금은 일본종단에서 독립하여 버니 글래스만을 중심으로 마에즈미 선사의 제자들이 모여 젠피스메이커라는 새로운 종파를 창설하였다. 지금 이 종파와 일본불교와의 관계는 상징적으로 남아 있지만 운영은 완전히 독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활동도 일본불교와의 관계보다 다른 미국 불교 그룹과의 연대에 치중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트릿 리트릿은 버니 글래스만이 시도한 독창적인 명상 프로그램인데, 도시 부랑자 구제 사업을 오랫동안 했던 그의 사회 참여적 성격이 명상과 접목된 새로운 형태의 명상 프로그램이다. 또한 아우슈비츠와 아프리카에서 시행되는 명상 리트릿은 서양에서 중요한 이슈가 된 아우슈비츠 유태인 학살과 아프리카 문제를 이슈화하여 평화의 메시지와 참선을 통합한 형태이다. 한편 하버드 신학대학과 협동으로 불교 사회운동가를 양성하는 과정도 개설하여 신세대 불교 지도자를 배출하고 있다.
서양인을 대상으로 포교할 때 일정 정도 한국불교의 변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어떤 부분이 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결국 이러한 변용이 서양문화에 안착있는 데 성공적이었는지 여부는 훨씬 훗날 후계자들의 성공과 실패에 의해 판가름될 것이다. 버스웰은 숭산 스님이 미국 주류문화와 한국불교를 조화시키기 위해 많은 부분을 변형시킨 것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지금 현 시점에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숭산 스님의 제자들이 미국에서도 상당한 지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주류사회에서의 활동이 미미하다는 사실이다.
초기의 일본선사들은 서툰 영어에도 불구하고 미국 젊은이들을 모을 수 있었지만, 지금 미국 젊은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아시아의 큰스님보다, 이해하가 쉬운 말로 설명해주는 서양인 지도자들이 운영하는 선센터를 찾는다. 그러므로 ‘한국불교를 세계화’를 홀로 떠맡는 숭산 스님과 같은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긴 어렵다. 최근 대표적인 한국 사찰에서 해외 포교에 관심을 갖고 시설 투자를 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바 있다. 설사 한 두 명의 지도자가 한국불교를 알리는 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여러 스님들의 협력 없이 확산시키기 어렵다. 한 두 명의 탁월한 승려들의 개인적 지도력에 의지하는 포교는 한계가 있다.
서양의 불교 환경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이미 백여 년 동안 축적된 경험과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에 불교를 전파하려면 먼저 서양불교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미국불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초기 아시아의 승려들은 어떻게 전법을 했으며 그들의 공과 한계가 무엇인지 연구해야 한다. 또한 미국인은 어떤 필요에서 불교에 관심을 두는지, 그에 맞추어 변용된 서양의 불교가 어떤 장점이 있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 충분히 검토하고 이해해야 한다. 또한 불교에 관심을 갖는 미국의 교육받은 중산층과 교류하기 위하여 그들에 버금가는 문화적 소양과 안목, 그리고 미국문화에 대한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우수한 불교를 알리겠다는 일방적인 태도를 버리고 그들의 불교도 배우겠다는 열린 자세이다. 이런 자세로 일회성 문화공연이나 법회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형태의 교류와 관계 정립을 모색해야 한다.
5. 한국불전 영역의 문제
2004년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1차 세미나가 열렸고 2009년 ‘간화선 세계화의 전망과 <간화선> 영역의 의의’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개최되었다. 이 세미나를 통해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안되었다. 진월 스님은 “세계불교도우의회나 세계종교연합 등 국제종교기구의 회의와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서구의 여러 불교 또는 종교단체와 연대해 공동 사업을 펼칠 것”을 제안했다. 미산 스님은 한국불교관련 영문서적 발간, 해외대학 한국학과 석·박사과정 학생에 대한 지원, 한국불교학자들의 어학능력 강화, 한국불교 수행공동체문화의 세계화, 인터넷을 통해 해외 포교 활성화 등 거의 모든 가능성을 아우르는 한국불교의 세계화 방안을 제안하였다.
그 중에는 이미 시행된 사업도 있는데, 조계종에서 2007년 착수한 한국전통사상서 간행 사업은 신라시대부터 19세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대표적인 고승들의 찬술서 중 주요 저술 69종을 선별해 한글번역본과 영역본을 각각 13권씩 총 26권으로 출간하는 방대한 프로젝트이다. 한국불전의 영역은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제안할 만큼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 작업은 불교학 발전에만 도움 되는 것이 아니다. 한국불교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의 제고를 위해서도 출판만큼 강력한 수단은 없다.
한 가지 지적할 점은 한국불전 영역의 기초가 되는 한글 번역의 문제이다. 아직까지 우리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된 우리말 대장경이 없다. 동국역경원에서 번역된 한역 대장경의 직역된 한문체 한글은 난독에 가깝다. 다른 번역본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한글 번역본보다 한문 원전을 읽는 것이 더 쉬울 때도 있다. 이는 불교 개념과 한자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문 번역도 마찬가지인데, 한문을 바로 영역을 하더라도 텍스트 이해 수준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만식이 지적하는 대로 “승려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대중을 설득하려고 하고 서양의 불교 연구자들은 전통적 경험에 뿌리박은 불교를 체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한글 번역본 뿐 아니라 영역된 번역본도 “소수의 전문가 그룹에게만 흥미의 대상이 되는 심원한 텍스트이면서, 고통스러울 정도로 현학적인 직역이며, 불쾌할 정도로 어렵거나, 독자에게 학문적이고 전문가적인 해석을 부과하는 서문과 주해로 무장되어” 있게 된다. 이런 번역본을 통해 한국불교학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과 같은 훈고학적 해석과 축자적 번역을 바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승가교육은 재고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중적인 포교를 위하여 어려운 한문체나 불교 용어를 사용한 경전 번역 외에도 쉬운 한글로 쓰인 법문의 번역도 권할만하다. 달라이라마와 틱낫한의 성공은 바로 그들의 저서가 가지고 있는 대중성에 기인한다. 부처님의 언어도 산스크리트어가 아니라 그 시대의 지방 언어였다. 그런데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은 언어만 현대적이라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인과 소통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아무리 현대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현대인에게 이해되기 어렵다.
현대적 번역을 위해 류황태는 일본인 D.T. 스즈키를 롤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만큼 스즈키의 번역은 서양에서 불교 붐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과연 스즈키가 한국불교 번역을 위한 롤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그의 번역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언어 실력 때문만 아니다. 그가 서양적 개념에 맞추어 불교 용어를 이해 가능한 형태로 번역한 점을 배워야한다. 그런데 그의 성공은 그의 번역가로서의 능력 못지않게 선불교를 일본의 국가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아시아 문화를 일본문화로 전유할 수 있었던 그의 선동자적 능력에 기인한다. 따라서 스즈키가 서양에 선불교를 알린 공로도 인정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선불교가 쇠퇴한 데 대한 책임도 물어야 한다. 그가 신비화시킨 ‘사토리’ 때문에 깨달음은 일본인에게만 가능한, 인종적인 것이 되었으며 전쟁과 국가주의에 대한 그의 협력은 선불교의 윤리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비판을 낳았다. 그가 제시했던 것처럼 수행의 효용이 왜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가에 대한 회의가 선불교의 퇴조를 이끌었다.
그러므로 스즈키를 롤 모델로 삼기 전에 몇 가지 물어야 할 점이 있다. 그가 국가주의를 위해 동아시아 불교를 전유하고 왜곡했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해도 좋은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이 시대에도 스즈키의 방법이 통용될 수 있는지 물어보아야 한다. 필자는 이미 선불교 문화를 전유하는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그러한 태도는 불교문화를 정태적인 것으로 고착시켜 역사적 발전을 부정하며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영원불변한 본질로 규정함으로써 한국불교가 당면하는 현실적 과제를 외면하게 만든다. 이 위험성은 앞서 ‘한국불교의 정체성’ 논의가 갖는 문제점을 지적한 학자들도 지적한 바다. 스즈키가 동아시아 불교, 특히 선불교를 가장 일본적인 것으로 전유하고 일본문화와 착종시켜 버린 방법으로 한국문화와 선불교를 등치시킬 수 있을까? 이미 선점된 논리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겨진 여지가 별로 없기도 하지만,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스즈키의 전유에 의해 일본불교의 타자가 되었듯이 또 다른 타자를 만들어내는 그의 논리를 되풀이해야 할까?
한국불교를 서양문화보다 우수하고 근대문명이 낳은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이미지 메이킹 하는 스즈키의 방식이 매력적이긴 하지만, 스에키 후미히코가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불교를 포스트모던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나 진부할 뿐 아니라 “진부하고 형편없는 만큼 한층 더 횡행하기 쉽고, 전말이 좋지 않으며, 위험하다.” 스즈키의 동아시아 불교에 대한 해석과 일본 국가주의를 위해 선불교를 전유했던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오도된 부분을 바로잡는 데 노력해야 할 일이지 스즈키를 롤 모델로 삼아 국가주의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계화뿐만 아니라 한국불교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6. 새로운 연대를 위하여
‘한국불교의 세계화’ 프로젝트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한국불교의 전통은 간화선이다. 간화선이 중국에서 발생했지만 현재 한국에서만 실천되는 수행법이라는 점에서는 그 독창성에 대한 요구는 타당성이 있지만, 최로덴의 다음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국불교가 참선만으로 세계화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난 것 같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세계화란 화두와 관련해 현대 영국 불교의 대중화가 가지고 있는 그 실질적인 형식과 내용이다. 우리가 우리에게 자문해야 할 것은, 현대 영국 불교가 그 대중화 과정에서 명상과 연구, 정신적 경험, 불교의 이론적인 면을 가지고 젊은이들에게 파고 들어가고 있다는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세계화를 염두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대중화의 과정을 충분히 거쳤는지 아니면 검증하고 형식화하여 나눌 준비가 됐어 있는지를 당연히 점검해 봐야 한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이미 변하고 있는 세계의 흐름 속에 무엇을 가지고 나간다는 것인지 재차 삼차 점검해 봐야 한다.
간화선을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현재 “수행자들의 삶과 수행이 일치하지 않고 있는” 간화선 내부의 문제 때문에 조계종단에서조차 간화선에 대한 반성이 일어나고 있는 점과 그 밖의 수행법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는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간화선이 가장 완벽하고 문제가 없는 참선법이며 그래서 한국불교가 가장 우수하기 때문에 세계화해야 한다는 논리는 지양되어야 한다. 설령 간화선이 가장 우수하다고 믿더라도 그것이 왜 우수한지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실천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그러한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면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정체성이란 물 흐르듯 주변의 환경에 따라 그 길을 바꾸는 것이다. 세계화를 위해 가장 우수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완벽하지 못한 것이 세계화될 수 없다는 논리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문화란 서로 교류하고 충돌하면서 변화하게 마련이다. 따라서 세계화의 논리를 한국불교 내부와 외부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불교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그 문제의식을 통해 세계불교에 공헌하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세계화가 가져온 시간과 공간의 집약은 전 세계에 동일한 문제를 부가하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위기가 지구 전체에 여파를 남기고 한 지역의 환경 재앙이 전 지구 환경에 영향을 주는 이 시대에, 한국불교의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과 현대, 지역문화와 주류문화가 만나 충돌하고 혼융되는 세계화의 보편적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이다. 전통적인 신행체계가 유지되고 있는 한국에서 불교가 세계불교를 자기화하고 전통을 현대화하여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를 해결해간다면 그것은 현대사회에서 여러 지역에서 불교가 마주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하나의 롤 모델이 될 수 있다. 위기가 곧 기회이다.
아시아의 불교국가 가운데 아직까지 한국만큼 근대와 전통의 갈등, 다종교사회 속에서 종교 간의 갈등을 겪어본 국가는 없다. 전통종교의 힘이 미약하고 서양의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는 한국에서 불교가 경험하는 현실, 즉 다문화적 다종교적 현실은 어떤 의미에서 대단히 서구적인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불교는 전통의 힘이 강력한 남아시아 불교국가들보다, 심지어 일본불교보다 더 서양과 동시대적 환경 속에 노출되어 있다. 전통 불교는 도전받고 있고 새로운 불교는 아직 모색 중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한국불교가 한국인의 종교적 구원과 사회적 구원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그리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불교가 세계불교를 수용하고 혼용해가며 동시에 현대성의 문제에 대응하면서 타종교와 교류하는 회통성은 곧 동일한 문제를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여러 지역문화에 새로운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회통’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말하는 고착화된 정체성이 아니라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는 융합의 힘을 말한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회통’을 한국불교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메타적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중요한 점은 일방적인 태도가 아니라 대화하려는 자세이며, 나아가 그들에게서도 배우겠다는 자세이다. 우리의 불교 역사가 더 오래되기 때문에 우리가 더 발전했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19세기 이해 서양에서 연구된 불교학의 성과를 받아들이고 불교 수행의 역사를 배워야 한다. 서양문명의 토대 위에서 그들이 어떤 필요와 관심에서 불교를 수용했는지, 또 어떤 오류가 있는지 깊이 이해해야 한다. 또한 그들과 연대하여 현대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불교적 해석과 해결의 실마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처럼 이해하고 포용하는 태도를 취할 때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공감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줄 것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필자의 짧은 경험을 통해 보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현재 미국사회에서 불교를 가장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곳은 대학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대학과 고등학교에서 불교를 처음 접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불교에 호감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를 불교를 통해 해결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에서 수강했지만 점차 불교에 공감하여 불자가 되거나 심지어 출가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이들은 한국불교 포교의 블루오션이다. 많은 학생들이 티벳불교를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한국불교에도 기회가 없지 않다. 그 중에서 가장 빠르고 성공적인 방법은 그들을 한국에 초청하여 템플스테이를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대만의 불광산사도 미국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여름방학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다. 숙식과 프로그램 비용은 전액 불광사에서 부담한다. 몇몇 장학생에게는 비행기 비용까지 제공하고 있다. 애틀랜타 대학에서 실행하는 장학생들을 위한 해외 연수 프로그램 중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 격년에 한번 방문하는 한국 사찰에서의 템플스테이라는 사실을 비추어볼 때 아이비리그나 동부 명문 사립 리버럴 아트 칼리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여 한국사찰에 초청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그 결실을 보게 될 것이다.
둘째, 서양에서 활동하는 불교 그룹과 연계하는 방법이 있다. 지금까지 조계종단이 추진하는 국제교류는 주로 친목 도모가 그 목적이었다. 그러나 서양 불자들 중 단지 친목을 위해 조계종과 교류하려는 단체는 없다. 그들과 교류하는 방법은 서양불교에서 관심을 가진 이슈들을 통해 연대를 맺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남아시아 불교국가와 티벳불교에 비구니 승가를 복원하는 것이 최근 서양 여성불자들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이 문제의 발단이 서양 여성들에 의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적 스승을 찾아 아시아를 찾았을 때 서양여성들은 아시아의 전통불교 승단이 여성들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은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여성들은 곧 그들 자신과 남아시아와 티벳 여성들을 위해 비구니 승단 복원을 국제적으로 호소하기 시작했다. 달라이라마도 이에 관심을 가지고 2006년 함부르크에서 티벳 비구니 승단 구성을 위한 대회를 열었지만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 못하자 서양 여성 불자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필자가 참석했던 2008년 미국종교학회 불교분과에서도 비구니승가의 복원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지난 2004년 한국에서도 세계여성불자대회를 개최하여 한국비구니 승단의 존재를 세계에 과시하였다. 전국비구니회에서는 격년으로 세계 각국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할 뿐 아니라 함부르크 대회도 참석하는 등 다양한 국제 교류를 해왔다. 그러나 세계 각처에서 비구니 승단 회복을 위한 한국 비구니 스님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비구니 승가 부흥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경주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 서양 여성 불자와 여성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는 이 문제에 한국 비구니스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면 단지 비구니승단 회복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서양여성 불교지도자들과의 연대도 강화될 것이다. 이 활동은 곧 한국불교를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는 일이며 또한 세계 각처에서 한국 비구니스님들의 활동 공간을 넓혀줄 것이다. 그밖에 환경문제와 빈민구제 등 지구적인 사안에 대하여 서양의 불교 단체나 또는 종교연합체 등과 연대하여 활동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셋째, 간화선 외에 한국에서 신행되고 있는 여러 가지 다른 전통 수행방법을 전수해야 한다. ‘한국불교의 정체성’ 논의가 오도시킨 바처럼, 조계종은 선종이며 화두수행만 한다는 이야기와, 통불교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양한 전통이 따로따로 실천된다는 것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 예로 능엄주 독송이 성철 스님에 의해 제창되어 현재 몇몇 선방에서 계속 실천되고 있다. 염불, 주력, 사경, 예참 등 다양한 수행법이 한국에서 실천되고 있는 것처럼 서양에서도 실천될 수 있다. 서양인들이 명상에 관심을 갖는다고 해서 다른 수행법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염불, 사경, 주력에 대한 관심도 점점 증가하고 있는데, 필자가 참여한 몇몇 불교행사에서는 서양인들이 일본식 염불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으며, 관음선종에서도 천수경을 독송을 하고 있다. 예상 밖으로 염불에 대한 미국 불자들의 호응도 크다. 따라서 간화선만 특화시키지 말고 그 밖의 수행법을 소개하는 것도 좋겠다.
그와 관련하여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다. 미국에서 한국불교 염불이 몇 차례 공연되었지만 종교행사라기보다 문화행사로 기획되었다. 그것은 한국 전통음악의 하나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미국의 불교 그룹에 알려지지 않았으며 염불의 종교적 의미와 특징도 이해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이 행사는 뉴욕이나 워싱턴 D.C., LA 같은 대도시에서만 공연되고 정작 미국 불교인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뉴잉글랜드 지역이나 캘리포니아, 버몬트, 뉴욕주에 위치한 대학이나 불교 센터에서 공연된 적이 없다. 만약 염불 공연이 이런 곳에서 종교행사로서 기획된다면 그 종교적 성격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불교의 현대화 없이 한국불교의 세계화도 없다. 전통의 자기 해석과 현대적 변용이 없이 더욱 현대적인 서구와 또 다른 주변인 지역에서 불교를 전파할 수 없다. 이와 같은 문제 해결은 한국불교 자체의 변화가 없이 불가능하다. ‘프로젝트로서의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현상으로서의 한국불교의 세계화’, 즉 한국불교에 발생한 세계불교의 한국화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한국불교가 현대적 세계와 교류할 수 있을 만큼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모색하고 새로운 승가상을 확립할 때 국내 포교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세계불교와 교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만 우수하고 정법이기 때문에 우월한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려는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는 그 어느 곳에서도, 심지어 한국 내에서도 자리 잡을 곳이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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