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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사 정기법회
17.03.05.일(음력2.8)
영산불교에서 바라본 세계종교 ⁃ 각 종교의 깨달음을 중심으로
오늘은 정유년 절기로는 경칩(驚蟄)일, 부산분원의 정기법회일이면서 우리 교주 불세존 석가모니부처님의 출가재일입니다. 아주 뜻이 깊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먼데는 여섯 시간 일곱 시간 버스를 타고 오시는 분들을 포함해서 오늘 참석인원 수가 1,300여명 된다고 합니다. 오늘 처음 오신분들 손들어 주세요. 박수로 환영해주시기 바랍니다.(박수)
특별히 처음 오신분들과 지금 이 실황이 영상으로 제주분원에 송출되고 있습니다. 오늘 나와 주신 부산, 제주분원의 착한 신도분들 대단히 고맙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 부처님 출가재일에 즈음하여
내가 이 자리를 빌어서 가끔 소개를 하는데 우리 불세존은 너무도 위대하고 거룩하고 희유하신 어른이시랍니다. 그래서 삼계의 지존이라고도 하고, 전지하시고 만능자재하신 우주의 주(主)라고도 부릅니다. 그렇게 위대한 어른께서 오늘 출가를 하셔서 스님이 된 날입니다. 그런 날에 법문말씀을 듣고자 이렇게 와주신 우리 신도분들은 정말로 복이 많답니다. 그 부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계시거든요. 여러분은 너무도 복둥이입니다. 확실합니다. 이렇게 부처님을 평가하는 분은 일찍이 없었을 겁니다. 그 평가도 오히려 부족하지요. 우리 부처님은 그런 어른이십니다.
오늘 처음 오신 우리 신도분들, 석가모니부처님은 우리말로 입적(入寂) ‧ 돌아가셨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주인공(主人空), 그 주인공은 불신(佛身)을 얻고 불신과 계합해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로, 그리고 원만보신 노사나불로 계십니다. 그걸 아십시오. 이런 말이 나오면 항상 스님이 약간 부연해서 말씀드리는데 부처님 가신 이후로 2600년 동안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불신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불교가 그 거룩하신 우리 부처님이 제대로 소개되지 않아 일반종교와 레벨(level, 수준)이 같은 종교로 치부되고 있는데 죄송스럽습니다. 우리 부처님은 다른 종교의 교주들, 여기서는 정법이 아니기 때문에 외도(外道)라고 하는데
“외도의 교주들이 미래제가 다하도록 부처님의 불신을 사유해도 모를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부처님이 어떤 부처님인지 미래제가 다하도록 사유해도 몰라요. 우리 부처님은 그만큼 위대한 어른이셔요. 그 부처님을 교주로 모시고, 그 부처님께서 와계시는 현지사는 정말 어마어마하지요. 현지사는 부처님 교단이고 부처님 회상입니다. 이게 얼마나 어마어마한 이야기인지 알겠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스님이 우리 신도분들한테 복둥이라고 한 거예요. 복둥이지요.
오늘은 스님이 시간을 50분 안팎으로 씁니다. 그 이상은 말을 해도 여러분의 머리에 안 들어갑니다. 또 저도 연로해서 기진(氣盡)이 되고요. 그래서 50분 안팎으로 하는데 이 동영상 법문 한지가 오늘이 309회째 됩니다. 이정도 들었으면 이제는 이정도의 아주 중요한 주제 내용을 설법해 주면 많이 이해할 것이다 해서 그런 내용으로 법문할까 합니다. 다만 오늘 처음 오신분들, 좀 어려운 용어가 가끔 나오는데 그걸 해설까지 하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필요해요. 좀 죄송하지만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어려운 수준 높은 법문을 여러분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이해하기 쉽게 말해보고자 합니다. 그렇게 아시고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우주적 진리의 신불교인 영산불교에서 바라본 세계종교
⁃ 각 종교의 깨달음을 중심으로
오늘의 주제는 세계의 종교, 적어도 역사가 1000년 3000년 된 세계적인 종교, 한8개~10개 정도 됩니다. 그들이 포용하고 있는 종파 수까지 하면 수 만개 되지요. 그런 세계적인 종교의 교주들이 자기 제자들한테 역설한 핵심은 무엇이고, 그것은 바로 깨달음인데 왜 그 깨달음을 요구하는지에 대해 짚고 가겠습니다.
◼ 도교(道敎, 仙道)
도가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의 도교 경전을 보면 선행(善行, 착한일)을 한 번씩 쌓을 때마다 마음이 안정된다고 합니다. 잘 들으세요. 오늘 처음 오신분들이나 우리 신도분들에게 대단히 유익할 겁니다. 스님이 지금 도교 경전의 말씀을 끄집어내어서 말씀드리는데 ‘옳다!’해서 내가 말씀드리는 거예요.
선행을 10번하면 기력이 왕성해진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300번 선행을 쌓으면 지선(地仙, 땅에서 사는 신선)이 되고, 그러니까 하급신선이 되고, 1,200번 선행을 쌓으면 상급신선인 천선(天仙)이 된다. 신선하늘(제3하늘)에 가서 난다 그거요. 선도의 교주인 옥황상제, 조물주의 반열에 올려놓고 숭배하는 옥황상제(일명 상제)가 되기 위해서는 10,000번의 선행을 행하면 된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런데 단 한 번의 악행(惡行), 그러니까 살생한다든지 음주한다든지 거짓말한다든지 음행한다든지 하는 경우, 단 한 번의 악행으로 그때까지 쌓아온 모든 선행이 물거품이 된다고 합니다. 이것도 우리가 마음에 새겨둘 근리한 이야기입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지요.
자, 그래서 나는 여러분들이 하루에 선행을 한 가지 내지 세 가지 정도는 꼭 행해주시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에서는 이걸 가지고 좀 말하자면, 내가 지난 한두 달 전까지 육바라밀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또 그러기 전에는 팔정도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다 끝내지 못하고 자꾸 주제가 바뀌어 갔어요. 언젠가 다 해드리겠습니다.
선도도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요.
진정한 자아, 인간 본성을 만나는 것을 사실 목표로 해요. 그걸 깨달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맞아요. 그런데 인간의 본성, 진정한 자아와 만나려면 예비적으로 기본적으로 거쳐 가야할 과정이 있습니다. 여러분 기 공부한 분들 있지요. 선도 쪽입니다.
⁃ 기공단계(氣功段階)가 있고요. 그것도 다섯 단계가 있더라고요.
⁃ 그다음에 신공단계(身功段階)가 있어요. 몸, 이 몸의 가능성을 모두 얻을 수 있는, 몸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두 얻을 수 있는 신공단계 10단계가 있어요.
⁃ 그다음에 하늘 신(神), 귀신 신(神)자가 있지요. 그 신공단계(神功段階)가 있어요.
하늘사람들과 이야기도 하고, 무주고혼들과 이야기도 하고, 상당한 신통이지요. 그걸 얻을 수 있는 신공단계를 거쳐서
⁃ 마음 심(心)자, 공부 공(공)자, 심공단계(心功段階)로 들어가요.
그래서 진정한 자아와 만난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선도가 있고요. 선도는 그렇습니다.
우리 불법(佛法)에서는 이런 착한일 하는 것을 권장하지요. 보시 ‧ 지계 ‧ 인욕바라밀 등을 권장하지요. 하지만 반드시 갖춰야할 것이 있습니다. 선행이 바라밀이 되려면 갖춰야 되는 것이 있어요. 그것이 뭐냐?
⁃ 나(我)라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착한 일을 할 때 이기심이 끼면 안 됩니다.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 다더라.’하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진짜 선행이 아닌 거예요. 우리 불교에서는 그렇습니다.
⁃ 세상의 모든 법, 모든 세상사를 꿈으로 봐야 됩니다. 어려운 말로 하면, 불교적인 용어로 말하면 공(空)으로 봐야 됩니다. 꼭두각시놀음으로 보는 거예요.
⁃ 그다음, 반드시 갖춰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많은 중생을, 일체 중생을 내가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어서 기어이 모두 다 건지리.’ 하는 서원(자비)이 있어야 됩니다.
사실 우리는 서로 다른 인격을 갖춘 것으로 보지만 이치(理致)에서 볼 때 우리는 우주만물과 더불어 하나입니다. 한 덩어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해야 됩니다. 그래서 회향할 줄 알아야 돼요. 이걸 보개회향이라고 하는데 내가 지은 공덕을 모두 중생에게 다 베푼다(나누어 준다). 내가 수행하고 복덕을 쌓고 하는 모든 공덕을 내가 무상정각을 이루는데 회향한다, 모든 중생들한테 내가 지은 모든 공덕을 나누어 준다. 회향한다. 이런 생각을 해야 돼요. 이게 불교입니다.
그런데 도교에서는 그것이 없더라고요.
어쨌든 도교의 그 이야기는 일리가 있습니다.
자, 선행을 할수록 마음이 안정되니까 매일 한 가지 선행을 해라 그거라.
지금 온갖 번뇌로 망상으로 참 괴로워하면서 현생을 살아가는데 여러분 마음이 복잡하잖아요. 선행을 해라 그거라. 선행을 하면 그 복덕의 힘으로 안정이 되니까. 그리고 열 번의 선행을 하게 되면 기력이 왕성해진다. 그 복력으로 병고가 없어진다 그거요. 그건 맞는 말인 거요 이걸 유념하십시오. 아셨지요?
◼ 불교의 이단아, 선불교참선하는
지금 적어도 1000년 3000년의 역사를 지닌 세계적인 종교, 신도(교도) 수만 해도 10억 20억 30억을 거느리고 있는 세계적인 종교, 그 종교를 들여다보겠습니다. 그들의 종교마다 소위 깨달음을 요구해요. 선불교에서는 그걸 견성(見性)이라고 합니다. 깨달음을 요구해요. 또 조금 어려운 말로 하자면 공성(空性)을 체험, 공 체험을 요구해요.
이제부터 좀 어려운 말이지요? 오늘 처음 오신분들이나 불교 상식이 좀 적은 분들은 죄송합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 세계종교를 한번 쭈~욱 짚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불교와 비교를 해주려고 합니다. 그 교주들과 우리 부처님과 비교를 좀 하려고 해요. 앞에서 미래제가 다하도록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나 불신에 대해서 사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했지요. 전제로 말씀드렸지만 조금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고 싶습니다.
그 깨달음, 그쪽에서 다 방법이 있어요. 깨달음만으로는 그 교주가 하는 말대로 해탈, 다시 말해서 윤회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게 문제가 있어요. 여러분 이 말을 꼭 명심하십시오.
깨달음만으로 해탈할 수 있다?
윤회를 벗어나서 영원히 젊음을 유지 한 채 온갖 괴로움 고통 없이 행복하게 영원히 살 수 있다?
그런 해탈 열반에 들 수 있다?
나는 아니라고 봐요. 이건 대단한 지적입니다.
반드시 해탈열반에 들려면 물론 이 깨달음, 무엇을 깨닫느냐?
이 우주만물을 낸, 우주만물을 내고 유지시키고 진화하고 그러다가 그것이 파괴되어 거두어들이는, 또다시 그것을 반복하는 그런 본체가 있어요. 그걸 보는 거예요. 그걸 찾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불교에서는 그것이 바로 인간 내면의 본성, 인간 내면의 마음의 성품이라고 봐요. 마음자리라고 봐요. 그 마음자리를 보는 것, 우주의 대 원리 ‧ 이법인 자존자, 공(空), 본체를 보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그래요.
왜 깨달음이라고 하느냐 하면 그 본성자리는 우주의 대 원리, 그 힘을 지니고 있는 그 본체는 정말 희한합니다. 보면 희한해요.
어떤 정도냐? 이 세상에서 지금까지 못 봤던 거예요. 이 세상에서는 지금까지 못 봤어요. 그것이 드러난 경우(때)를 여러분들이 아주 알기 쉽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칠흑 같은 흑암동굴 속에서 오랫동안 갇혀 있던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흑암동굴, 아주 그냥 칠흑같이 어두운 흑암동굴 속에서 사는 사람이 한낮에 햇빛이 이글거리고 반사하며 내리쏘는 이 밝은 대명천지의 빛을 갑자기 보는 경우예요. 그 동굴에서 갑자기 튕겨 나와 그 밝은 빛을 볼 때 어떤지 압니까? 그때는 눈이 시려서 볼 수가 없어요. 그 경계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이거든요. 그래서 온갖 생각이 일어날 수 없어요. 죽어버려요. 그 경계입니다. 그게 깨달음의 경계, 견성의 경계입니다.
또 성리학(性理學)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해서 격물(格物), 물자체 ․ 본질, 그 본성이라고 할까 그 본성의 체험을 목표로 오랫동안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통해 사유해 들어갈 때, 그러니까 우주의 본체를 깨치려고 사유해 들어갈 때 갑자기 활연관통(豁然貫通)할 수 있거든요. 대오(大悟)할 수 있어요. 우주의 본성도 그래요. 인간의 본성도 그렇고요.
왜냐? 그래서 힌두교에서는 범아일여(梵我一如)라고 해요. 이 범(梵), 우주를 낳고 키우고 결국 거둬들이고 하는 그 공(空) ․ 공성(空性)과 인간의 본성을 같이 보는 거예요. 범아일여라고 합니다. 같은 것이라고 한지만, 우리 영산불교에서는 그건 그렇다고 긍정해주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달라요. 인간의 본성은 공성을 지닌 영혼체의 본성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다릅니다. 우리 신도분들 중에는 거기까지 아는 분들이 많아요. 그 자세한 이야기까지는 오늘 짧은 시간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찌나 강하던지 그 빛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서 그때는 온갖 번뇌 망상이 완전히 없어져버려요. 나(我)와 그 빛과 하나가 되어버리거든요. 그럴 때의 행복감 쾌감 희열이 정말 대단해요. 그게 견성입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지속이 되지 않습니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건 없어져버리게 되어 있어요. 일상으로 돌아오면 없어져 버린단 말이어요. 그것이 몇 초 몇 분 혹은 사람에 따라서…칸트는 그런 경계가 3일간인가 지속되었다고 하는데 그 지혜로 비판철학을 완성할 수 있었던 거예요. 어쨌든 그러한 경계를 생전 체험하지 못했다가 그런 경계를 체험한 후 일상으로 돌아와 그 잔영이 있어서 밤낮 그 생각을 하지요. 그래서 책을 쓰고 또 한 번 그런 경계를 맛보기 위해서 다시 새로운 화두를 갖고 공부를 해서 보림을 해가지 않습니까?
하여튼 그런데 그런 깨달음만 가지고는 해탈 열반에 들 수 없다. 윤회생사를 벗어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이 스님의 소견이어요. 우리 신불교의 소견이어요.
왜냐? 업장소멸이 되지 않고는, 윤회할 수 있는 업보가 남아 있는 한 윤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선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질, 그래서 그 삼악도의 과보를 받을 그 과보가 남아 있는 한, 업이 남아 있는 한 절대로 깨달았다고 해서 윤회를 벗어날 수 없는 거예요. 업장뿐만 아니라, 많이 빙의된 천마 용신 이매망량 원결영가들의 그 장해(방해) 때문에 윤회를 못 벗어납니다. 이것이 내 소견입니다. 그렇게 아십시오.
언젠가 불교방송이든가 라디오를 들으니까 ‘참선해서 해탈할 수 있습니까?’하는 질문을 하더군요. 그걸 대답하는 사람은 ‘그것이 뭐 질문이냐’고 하면서 해탈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업(업장)을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업장이 소멸되는 것 아닙니다. 절대 아니지요. 그래서 팔정도의 수행법으로 나가야 돼요. 팔정도의 수행법으로 나가야 정말 수다원이 되고 아라한이 됩니다. 선정에 들어가고 여덟 단계의 선정을 거쳐서 아라한이 되는 거예요. 윤회를 벗어나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우주만물의 본성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라한이 되는데, 아라한이 되기까진 윤회 안에 살아야할 업이 다 단절(소멸)되지요. 스스로 거기까지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어요. 자력이지만 아라한까지는 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아라한과를 구경각(究竟覺)이라고도 하지만 구경각은 아닙니다. 구경각은 붓다이지요. 불과(佛果)지요.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 욕심을 버려라! 착을 내려 놓으라!
우리 중생은 물 같으면 흙탕물입니다. 잡탕물입니다. 이걸 가라앉혀야 돼요. 그래야 거기다가 어떤 물체든지 갖다 대면 그 물상이 거울같이 비치잖아요. 그래서 이 수행이라는 것은 탐진치라든지 번뇌 망상을 잠재우는 일입니다. 닦아서 재우는 일입니다. 흙탕물을 흔들지 않고 바람의 영향도 받지 않게 가만히 놔둬보십시오. 시간이 가면 불순물이 가라앉아서 비치고 거울의 기능을 하잖습니까?
자,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온갖 욕심이라든지 성내는(화내는) 마음 등을 자꾸자꾸 줄여 가면서 잠재워 가면서 뿌리 뽑아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흙탕물을 오랫동안 놔두면 아주 맑은 물이 되듯이 우리는 그렇게 해야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방금 전에 처럼 탐진치라든지 이런 욕심을 내려놔야 되고요, 전번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모든 것을 버려야 됩니다. 버려버려야 돼요. 모든 집착까지 버려버려야 돼요. 욕심 내지 집착을 다 버려야 돼요. 이게 굉장히 어려운 말입니다. 욕심을 어떻게 내려놓느냐? 사람이면 다 재물에 대한 욕심 이성에 대한 욕심… 엄청나지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사람일수록 식색(食色)이 강합니다. 탁한 사람일수록 업이 지중한 사람일수록 그런다고요. 그런 사람은 도(道)를 수련할 수 없어요. 수도(修道)할 수가 없어요. 적어도 상당히 맑은 사람, 전생에 닦음도 있었던 사람들은 생각할 줄 알아요.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하잖아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생각해요. 죽음도 생각해 보는 거예요. 자기가 살아서 이제 죽는데 죽게 되면 어떻게 되나 하는 것도 생각해요. 사람은 그래요. 짐승은 식색밖에 모릅니다.
우리는 적어도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해서 공부를 한다고요, 신도가 된다고 하는 생각을 가졌으면 식색에만 골똘 한다는 것은 그건 아닙니다. 그건 삼악도로 빠지는 것입니다. 삼악도로 가는 거예요.
욕심을 내려놔야 돼요. 욕심을 내려놓는다는 건 참 어려워요.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하면 참 무리한 부탁이어요. 그러나 내려놔야 돼요. 이제 스님이 이쯤 되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처음 온 사람한테 욕심 내려놓으라는 법문 해버리면 다 도망 가버려요. 그것이 무슨 법문이냐 그거지. 욕심이 없으면 사람 아니지. 그런데 욕심을 내려놔야 되거든요. 온갖 욕심, 다섯 가지 욕심을 말하잖아요. 온갖 욕심 집착 때문에 흙탕물이 된다니까요. 모두 다 흙탕물이 되어 있어요. 그런 사람들한테 부처님 법문 해봤자 안 듣습니다. 귀에 안 들어와요. 생각하는 것은 돈 여자밖에 생각 안하거든요. 그래서 현지사 신도 될 자질을 갖추려면 적어도 지옥종자는 안 돼요. 삼악도 종자는 안 된다고요.
부처님세계에서는 종자를 이야기해요. 종자가 따로 있다는 거요. 그런데 대부분 지옥종자들이어요. 지옥종자들은 아무리 말을 해도 안 들어요. 지체 높고 문자공부 많이 했다고 해서 그것이 기준이 아니어요. 그 마음, 마음의 성품, 마음 씀을 보는 거예요. 얼마나 맑은가, 얼마나 깨끗하게 사느냐, 얼마나 윤리도덕을 지키고 사람답게 사느냐,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죽어버리면 사후세계가 있거든요. 사후세계도 우리가 가서 잘살아야지요. 잘사는 길은 욕심을 내려놓는 거예요. 욕심이라고 하는, 또 화내는 성질을 내는 그런 것을 내려놔라 그거라. 그것이 줄어들어야 돼. 아주 영 없어져버리면 정말로 바람직한 거예요. 거기가 목표지요. 내려놔야 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놔버려야 돼요. 모든 욕심 집착을 내려놔버려야 돼요.
내가 307회 부산 법문 때 이야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마을에서 이런 광경을 봤습니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나이는 40~50대쯤 되는 미친 사람인데 등에 푸대(자루)를 하나 짊어지고 다니더라고요. 마다리 푸대를 짊어지고 다니는데 이상하다 싶어서 우리 친구들이 모두 졸졸 따라다녀 봤어요.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묘한 짓을 하느냐? 어떤 쓰레기더미에 가서 그 푸대를 내려놓더라고요. 그 푸대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았습니다. 그 푸대 속에는 걸레조각 사금파리 잡스런 돌멩이 휴지조각…온갖 것이 다 들어있어요. 그런데 그 쓰레기더미에서 그걸 또 주워 담아요. 사금파리도 집어넣고 쓸모없는 돌멩이도 집어넣고 온갖 휴지 쓰레기도 집어넣어 가득 짊어지고 다니는데 아주 끙끙거리면서 다닌단 말이어요. 그러면서 거기다 더해서 짊어지니까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이거 두 번째 세 번째 이야기 했습니까? 겨우 짊어지면서 하는 소리가 ‘죽기보다 더하랴!’ 하면서 짊어진단 말이어요.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죽기보다 더 힘들겠느냐 그 말이어요. 무엇 때문에 그걸 짊어지느냐고요. 아무 필요 없는 쓰레기를요. 사금파리를 뭣 때문에 담아서 짊어지고 가느냐고. 그때 그걸 내가 참 잘 본 거예요. 그때 참 감동했어요. 그거 정말로 큰 의미가 있어요. 내가 그걸 잘 본 거예요. 그래서 출가를 했는지도 모른단 말이어요. 우리 승려라고 하면 내려놔야 돼요. 내려놓는 공부를 해야 되는 거예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공부를 해야 돼요. 내려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욕심 집착 등 모든 것들은 사금파리요 돌멩이요 휴지조각이요 걸레조각이라니까요. 그걸 왜 담아 힘들게 짊어지면서 무겁다고 끙끙 앓고 다니느냐 말이어요. 여러분 모든 욕심을 내려놔 봐요. 이 육신에 대한 애착까지 내려놔 봐요. 정말로 평안할 수밖에 없어요. 그 이상 평화로울 수 없어요. 확실합니다. 그것이 수행의 기본이고 출발이어요.
여러분들 머리 속에는 지금 참 많이도 쌓아 놓고 있어요. 온갖 그런 것들을 다 지니고 있다고요. 다 내려놔버려야 되는데 들어보면 어머니에 대한 아버지에 대한 남편에 대한 자식에 대한 돈에 대한… 전부 다 이것이어요. 그것은 다 사금파리고 휴지조각이고 돌멩이 덩어리입니다. 먼 생, 다음생 다음생을 볼 때 나에게 하나도 유익한 것이 아니어요. 그것 때문에 새로운 악업을 짓고, 고통을 받는 거예요. 내려놔버려야 돼. 오늘부터 탁 내려놔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해봐요. 그래놓고 더 내려놓는 공부를 해야 됩니다. 그러면 정말로 번뇌가 가시고 마음이 가볍고 날아갈듯 평안해질 걸요. 한번 그렇게 해봐요. 스님은 그걸 겪어서 아니까요.
▪ 깨달음에서 붓다되기 까지
《법화경》〈수량품〉을 보면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 부처님께서는 나유타겁 하고 아승지겁 전에 이미 마음 공부를 하셨습니다. 붓다가 되려면 백천만생을 아마 삼대 아승지겁이라고 해요. 그런 오랜 기간 동안 수행을 한 거예요. 적어도 살 도 음 망 주(殺盜淫妄酒), 도교에서 이야기하는 살생 음주 거짓말 사음, 거기다가 도둑질 도둑마음까지 버리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이 마음속에는 일체 탐하는 마음 탐욕스런 마음 성내는 마음 폭력적인 마음을 버린 정말로 선하고 착한마음 아름다운마음으로 수행을 한 분이십니다. 다겁생을 수행해서 붓다가 된 분이어요. 깨달음이라고 하는 과정을 거쳐서 붓다가 된 분이어요.
깨달음에서 붓다 되기까지는 백천 만리 억 만리가 됩니다. 붓다는 불신을 얻어야 돼요. 불신을 얻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부사의한 이야기예요. 불신을 얻게 되면 자기의 네(4)영혼체가 자기의 불신과 하나가 되거든요. 그러면 거기는 정말로 불사(不死)의 경지입니다. 미래제가 다하도록 젊음으로 지복의 복을 누리면서 영광을 누리면서 사는 거예요. 붓다가 되면 죽을 수 없어요. 그런데 이 세계적인 종교의 교주들은 깨달음에서 보살까지 가지도 못했습니다. 보살까지 갈수가 없어요. 깨달음을 얻어가지고 (외도)아라한이 되는 데까지만 해도 대단한 거요.
깨달았다? 우주의 이치를 어느 정도 알았단 말이어요. 우주의 이치를 어느 정도 체험했다 그거라. 봤다 그거라. 이치의 체성을 봤다 그거라. 그러면 이제 ‘아하! 이치가 이러하니까 내가 윤회를 벗어나서 영원한 열반세계에서 살려면 저렇게 내가 봤듯이 청정무구해야 되겠구나.’ 해야 되는 거요. 청정무구를 이상으로 해서 몸을 닦아가야 되는 거요. 몸과 마음과 행동이 청정해야 돼. 청정 청정으로 나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는 욕심 탐진치가 발붙이지 못해요.
그렇게 정진해나가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온 세상의 중생들을 내 형제로 보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투철해요. 그걸 보살의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무량한 복덕을 지어가면서 더 정진해 들어가는 거예요. 더 정진해 들어가면서 아라한삼매에서 이제 보살삼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부처님은 처음 보살이 되고 붓다가 되셨거든요. 처음으로 개척한 분의 고생은 말할 수 없습니다. 저 정글을 다 헤쳐 가신, 처음으로 개척하신 분이어요. 정말 탄탄대로를 만들 때까지는 한없는 형극의 길을 걸으신 분이어요. 전번시간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부처님은 그 이상 감내할 수 없는 온갖 난행고행을 하신 분이어요. 그리해서 보살삼매에 들 수 있었고, 스스로 삼매에 들어서 모든 마(魔)를 조복할 수 있었어요. 마음속의 마(번뇌마), 마음 밖의 천마 용신 이매망량 원결 등의 마들을 스스로 조복한 거예요. 그래서 백천삼매를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공부를 하셨고 급기야는 해인삼매에 들고 대적정삼매에 들 수 있는 공부를 하셔서 반야지혜를 완성했던 거예요. 그리고 실로 백천만생을 사시면서 중생을 위해서 공양 헌신했어요. 중생을 위해서 보살행을 하신 거예요. 보살도를 완성한 분이십니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를 완성하신 분이어요. 지혜바라밀(반야지혜)을 완성함으로서 무량광을 발명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것으로 불신을 만들 수 있었던 거예요. 이건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이 경지까지를 알고 법문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야 완벽한 법문, 하자가 없는 법문, 실수 없는 법문이 됩니다.
▪ 신근(信根)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부처님을 믿는 부처님이 계시고 얼마나 위대하시고 얼마나 큰 능력을 지니고 계신가를 믿어야 돼요. 부처님을 믿어야 돼요. 아주 돈독히 믿어야 됩니다. 그래서 신근(信根)을 실하게 해야 돼요.
신근, 믿는 뿌리. 신근을 세워놔야 됩니다. 여러분들의 신근을 세워야 돼. 신근이 확실하면 믿는 마음이 확실하면 다음생 되어도 그 다음생 되어도 이것은 조금도 퇴전이 없는 거예요. 그런 확고한 신념, 철기둥 신심이라고 하는데, 이 믿음을 여러분들은 꼭 지니고 돌아가셔도 정말 행복한 분이어요. 다음생은 부처님을 믿는 마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어떤 경계를 당하고 어떤 집안에 태어나고 어떠한 경우를 당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더라도 부처님을 향한 믿음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 믿음(신근)이 확고하기 때문에 그건 정법을 만나게 되어 있어요. 그 사람은 정법으로 가는 거요. 꼭 그래야 됩니다. 그래서 스님이 우리 영산불교대학 졸업식은 있지만 졸업은 없소. 죽도록 다니시오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젖어 있어야 됩니다. 법문도 이렇게 한 달에 두 번 정도 들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점으로 돌아가 버릴 수 있어요.
금방 집에 가서도 그냥 이 법문말씀을 다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가 버린 분도 있어요. 그런데 자꾸 법문도 듣고 공덕을 짓고 발원하고 참회하게 되면 신근이 생긴다고요. 우리 불교 교가에서 이야기하는 오근 중의 하나입니다. 기본이어요. 신근, 신근이 실하면 믿는 마음이 투철해지는 거예요. 실력이 생기는 거예요. 그걸 요구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에게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하는 것을 부탁합니다.
▪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
그다음에, 앞에서 이야기했지요.
무엇을 깨친단 말이냐? 그걸 다시 부연해서 말씀드리자면 우리 마음의 인간 본성자리를 향해서 깊이 사유하고 추구해 들어가서 그 본성자리를 보는 것. 본성자리를 봄으로서 깨달음이 오기 때문에. 그런데 그 본성이라는 것은 우리 생각하고 다릅니다. 우리 생각의 이전입니다. 그게 생각을 낳은 본체입니다. 이것을 의식이전이라고 해요. 또 우주만물을 낸 그 본체 ․ 공, 이것을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 하늘과 땅이 나누어지기 이전),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부모를 빌어서 명을 받아오기 이전 모습), 본래면목, 유무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자리라고 합니다. 유무 상대를 초월한 절대의 자리, 공의 자리, 언어도단하고 심행처가 멸한 자리, I AM, 소위 자존자. 그건 모양 그릴 수도 , 이름 붙일 수도, 붙들 수도, 얻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궁극적 실재라고 합니다. 좀 어려운 말로는 궁극적 실재라고 해요.
우리 불교라고 하지만 선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어 대자유인이 되어서 앉아 가고 서서 간다고 해요. 깨달음을 어떤 종교보다도 굉장히 강조합니다. 곧바로 인간의 본성을 향해 의심해 들어가서 그 의심 덩어리가 생기게 돼요. 자꾸 화두를 의심하고 의심하면 의단(疑端)이 생겨요. 의단이 커져서 한계에 이르면 터집니다. 터지게 되면 본성이 드러난다고요. 선불교에서는 그러면서 ‘마음이 부처다.’ 이런 말을 해요. ‘마음이 부처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건 참 위험한 말이어요. 즉심시불(卽心是佛), 심즉시불(心卽是佛), 마음이 부처라고 해요. 인격적 붓다(부처님)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큰 잘못을 범한 것이지요. 이건 용서 받을 수 없는 대망어이어요.
◼ 이슬람교(수피즘)
이슬람 쪽은 수피즘이 주목할 만한 이슬람의 한 종파인데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에 대한 깨달음을 얻으라고 했어요. 궁극적 실재에 대한 깨달음을 얻어서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금욕을 통해서 신비체험을 통해서 궁극적 실재에 대한 그 깨달음을 통해서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간다. 앞에서 내가 말했던 궁극적 실재, 그래서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면 존재의 근원처럼 영원히 산다는 거예요.
이슬람이나 선도나 그 교주되시는 분들은 제3하늘에 있고, 그 깨달음의 과정을 거치신 분들이어요. 상당한 분들이어요. 그러나 정법의 아라한은 아니어요. 정법의 아라한은 팔정도를 거쳐 가야 됩니다. 그래서 여덟 단계의 선정을 거쳐서 생사윤회에서 벗어나는 초기불교의 팔정도 수행, 그것이 위빠사나 쪽의 수행이어요. 위빠사나는 대단한 거예요. 성중하늘까지 날 수 있으니까 나는 평가한 거예요. 아라한까지 될 수 있으니까 평가해요.
◼ 유교 성리학(性理學)
유교의 한 파입니다. 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근본원리를 깨닫는 거예요. 앞에서 말했습니다. 우주만물의 본질을 이루는 근본원리 ‧ 도(道), 이것을 격물치지(格物致知)하고 즉물궁리(卽物窮理)해서 깨달아가는 거예요. 만물의 이치를 깨닫는 거예요. 그래서 궁극에는 나와 세계가 합일되는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성리학의 목표입니다. 거기는 다음생을 못 봤어요. 이게 상당히 문제가 있어요.
선도(仙道)에서는 장생불사(長生不死)를 염원 하는데 수도과정에서 사후세계를 확실히 보고 인정합니다. 힌두교에 버금가는(못지않은) 상당한 철학과 수행법이 있어요.
◼ 힌두교
힌두교는 스님이 아주 강조해서 많이 공부했을 겁니다. 아트만(atman)과 브라만(Brahman)과의 합일(合一)을 깨달음으로 봐요. 말하자면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와 인간의 본성이 같다고 해서 그걸 보는 것을 이상으로 해서 명상을 하는 온갖 수행법이 있는데 그중에서 요가 삼매를 공부하는 요가학파의 수행을 나는 평가해요.
◼ (인도의)자이나교
지혜와 복덕을 쌓아 해탈을 이룰 수 있는 데 자이나교에선 자기 욕망과의 싸움, 곧 고행을 통해 업을 소멸하여 윤회생사에서 해탈을 이룰 수 있다함. 비폭력ahimsa의 실천이 주요덕목.
◼ 기독교(영지주의)
기독교는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라고 하는데 초기 기독교이지요. 이단으로 몰려 나중에는 압살(壓殺)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에서 도저히 버티고 단체를 꾸려갈 수 없을 만큼 온갖 압박을 당해서 없어져 버렸는데 그 영지주의에 상당한 수행법이 있어요. 인간의 자아와 하나님의 신성을 동일하게 봤어요. 이건 상당한 거예요. 인간의 자아와 하나님의 신성, 말하자면 공성(空性)이지요. 인간 본성과 공성을 동일하게 봐요. 힌두교의 범아일여(梵我一如)와 같은 그 깨달음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우주 근원으로 추구해 들어가는 깨달음을 성취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몇 가지 소개할만한 그 사상이 있는데 너무 시간이 없으니까 그건 상세히 소개할 수 없습니다.
◼ 남방불교
남방불교는 방금 전에 말씀드렸지요. 인간 내면의 청정심 본자성을 깨쳐가지고 해탈열반에 든다는 사념처(四念處) 관법수행을 합니다. 존재계의 실상을 여실히 통찰하고 자신의 내면을 성찰하는 수행법이어요. 이거 대단한 거예요. 불교니까 부처님 가르침대로 하는 초기 수행법이어서 힌두교라든지 선도보다도 한 차원 높지요. 평가할 만한 수행법이어요.
◼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
유대 카발라,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라고 있습니다. 수행자는 우주와의 합일을 추구하지요. 우주외의 합일을 추구해요. 깊은 통찰과 끊임없는 관찰과 사색을 통해서 우주와의 합일을 추구하는데, 아주 주목할 만한 것이 애제자의 정수리(백회혈)에다가 신이 빛을 쏘아 주는(퍼붓는) 장면인데 그렇게 해서 그 자기의 하늘, 여호와가 있는 하늘로 수행자(애제자)를 데려가는 그런 법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그것은 과대포장 한 것이고, 하늘은 가겠지요. 4하늘 까지는 가겠지요.
◼ 테베트 밀교
티베트 밀교가 있어요. 이 몸이 곧, 이 몸 자체가 그대로 붓다다 그거라. 성불(成佛)이라 그거라 ‧ 불(佛)이라 그거라.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는, 이 몸 자체로 이 몸의 모든 가능성을 총 집합 활용해서 보신불을 만드는 비의(秘義, 秘法)가 있는데 나는 그것은 정법이 아니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필수적인 코스로 유가녀(瑜伽女)들과의 성(性)을 통해서 어떤 빛(자성광)을 얻어가지고 자기 영혼체의 복사체와 합일을 이루어서 보신(報身)을 만든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주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 보신(불신)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어요. 우리 불교대학 교수 법장 김〇〇의〈비교종교학〉에서 잘 쓰여 있습니다. 그걸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부분은 결정적으로 사마(邪魔)의 설(說)입니다.
◼ 초인들의 삶과 가르침
불멸의 영혼과 육체를 지닌 체 물질세계의 법칙을 뛰어넘는 기적을 행하는 히말라야의 초인들(성자들)의 가르침(말)을 스폴딩(베어드T.스폴딩)이라고 하는 미국인을 위시해서 11명의 탐험대가 1894년부터 3년6개월간 영적탐사를 통해 너무도 놀라운 일들을 기록해서 책으로 낸 것인데, 이걸 보면 기독교나 유대교나 이슬람교에서 이야기하는 하느님, 만물을 창조했다고 하는 하느님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그거라. 외부에, 저 멀리 하늘에 있다고도 하고 인격적으로 그려 놨는데 그것은 절대 아니다. 곧 하나님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다. 여러분 내면의 초인격적 존재이다. 외부에 인격적인 신을 섬기면 진짜 우상숭배에 빠진다. 그것은 성경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런 말을 자주 반복하고 있어요. 맞는 말입니다.
그래서 유대의 카발라라든지, 이슬람의 수피라든지, 기독교의 그노시티즘을 나는 그래도 평가해요. 그건 하늘은 갑니다. 5하늘 4하늘은 가요.
◼ 염불종
우리 불교의 염불종입니다. 면면히 내려오다가 끊겨졌지만 이제 민간신앙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데 염불은 서방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것은 대단한 거예요. 아미타불을 염불하는 거지요.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데 이 염불종을 평가합니다.
▪ 영산불교의 타종교에 대한 우수성
19세기 인도의 ‘라마 크리슈나’라는 종교인이 있었어요. ‘라마 크리슈나’,《21세기 붓다의 메시지Ⅰ》권에 있지요. 그분은 대단한 종교적인 천재였는데 도대체 불교와 자이나교와 힌두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가르침이 어떻게 다른 가를 알고 싶어서 몸소 차례로 입문해가지고 온 힘을 다해 수행한 결과 각 종교에서 이야기하는 궁극적 경지를 두루 체험했다고 합니다. 신비를 체험하고 삼매에도 들어봤습니다. 그래서 한마디 했어요.
“모든 종교는 근본에 있어서 하나다.”라고 선언 했어요. 똑같은 것이다.
했지만, 이건 아니지요. 우리 불교는 아니어요. 우리 신불교는 세계적인 종교하고 도저히 같은 반열에 놓을 수 없는 훨씬 차원 높은 철학과 사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종교에 따라서 깨달음의 강약이 있어요. 심천(深淺)이 있습니다. 활연대오(豁然大悟)라고 하면 강한 편입니다. 깊은 편이고요.
다른 여타종교를 신행하면서 그들이 말하는 수행법으로 수행을 잘한다면 욕계하늘은 갈 수 있습니다. 5하늘 4하늘 3하늘까지는 갈 수 있어요. 상제처럼 예수처럼 알라처럼 그만큼 더 수행을 성공시켜서 나간 사람은 그 하늘의 지도급, 그러니까 아라한, 정법에서 보는 아라한 수준, 혹은 외도수장을 나는 외도 보살급으로 봅니다만, 그 정도까지 갈 수 있어요. 그러나 그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 하늘 천인들이나 그 수장들은 반드시 퇴전할 날이 있어요. 그걸 말씀드립니다. 욕심과 다겁생으로 지은 업(業)이 있으니까요.
우리 보살인가 받은 사람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한, 지중한 죄업을 짓지 않는 한 불퇴전입니다. 타력으로 우리 부처님께서 정토보살과 조금도 다름없이 영체작업을 해놓았기 때문에, 곧 지혜와 자비 광명 등 그 모든 육신의(보살신의) 아름다움 전부를 작업을 통해서 인가하고 만들어 내놨습니다. 보살인가 받은 분들은 얼마나 축복인지 압니까?
◼ 증산도 ‧ 단군교(대종교) ‧ 원불교
우리 한국에 증산도와 단군교와 원불교라는 민족종교가 있지요. 이걸 그래도 내가 조금은 평가하는데 대종교와 증산도(甑山道). 이건 선도계열입니다. 대종교에서 말하는 천부경(天符經)은 상당한 철학이 있어요.
원불교는 유불선(儒佛仙) 장점을 딴 불교 쪽이어요. 그러나 철학과 사상은 그 소의 경전을 보면 다 들여다보이잖아요. 흠점이 너무 많잖아요. 평가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종교는 악을 멀리하고 선을 권장하는 면에서는 같아요. 악을 멀리하고 선을 권장해요. 이점에서는 긍정적이어요. 좋습니다. 그러나 불살생의 계율까지 말하는 종교는 인도에서 발상한 불교 힌두교 자이나교뿐이어요. 상당히 높습니다. 그걸 알아두십시오.
○ 깨달음으로 만으로는 윤회 해탈할 수 없다
19세기 인도의 신비주의자 ‘람티어스’가 있었습니다. 이분은 자기 존재의 실체를 깨달았어요. 상당히 강하게 깨달았더라고요. 우주 전체가 자기(자신) 속에서 움직임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우주이며 모든 것이 자신 속에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영원불멸하는 우주의 본체를 깨닫고 나는 무한한 브라만이 되었다고 사자후했습니다. 여기서 브라만은 우주 창조의 원리로 봐야 됩니다. 비인격으로 봐야 됩니다. 힌두교에서처럼 인격으로 보면 큰 잘못입니다. 이분은 상당히 깊고 강하게 깨달으신 분으로 보입니다.
다시 이야기하지만 깨달음으로서는 윤회에서 해탈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말씀드립니다. 저 외도에서 깨달았으면 반드시 우리 정법불교로 귀의해서 두타행으로 나와야 됩니다. 두타행으로 나와서 사음을 위시한 중계(重戒)를 목숨처럼 지키고, 이 육신에 대한 애착과 음욕에 대한 착을 떼어버려야 됩니다. 거기가 정법 아라한이어요. 그렇지 않고는 외도 아라한이지요. 우리 불교에 귀의하지 않으면 기껏해야 외도 아라한이라는 말을 해드립니다.
거듭거듭 이야기합니다. 동서고금의 철학 종교와, 기존의 종파불교에서는
⁃ 불신(佛身)을 모릅니다.
⁃ 청정법신을 몰라요.
⁃ 삼신설(三身說) 삼신관이 없어요. 몰라요.
⁃ 무량광을 절대 몰라요.
⁃ 인간의 본체도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생사관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 우주관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 극락정토 니르바나세계를 몰라요.
이 말을 해두고 싶습니다.
○ 외마에 의한 가짜 깨달음
내면의 자아, 소위 우주의 본체 본성자리를 보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이건 쉬운 일이 아니어요. 100만 명에 하나정도가 될 거예요. 왜냐하면 외마 때문에 그래요. 거듭 말씀드리는 외마, 천마 용신 이매망량 또 견성단계에 이른 수행인이 무고혼이 되어 빙의 되었을 경우 그것들의, 빙의된 외마들의 능력으로 깨달음의 경계를 체험하는 수가 있어요. 이건 가짜 깨달음이지만 그런 견성을 한 사람이 많다고요. 그래서 치병(治病)이라든지 예언 같은 약간의 신통을 부리면서 유사종교(類似宗敎) 신흥종교(新興宗敎)를 창시하는 그런 사람(교주)들이 있어요. 이건 극무간지옥에 가요.
○ 견성은 공부의 시작 • 외도는 정법불교의 보살이 될 수 없다
스승(최소한 외마를 떼어줄 수 있고 막아줄 수 있는)을 잘 만나야 됩니다. 깨달음의 경지에 갔다고 해도 이후가 중요합니다. 이후가 대단히 중요해요. 그래서 내가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라고 항상 말하는 거예요. 거듭 이야기하지만 반드시 여자를(이성을) 조심해야 되고, 불살생, 또 망어 중에서도 아주 무서운 망어가 있어요. 대망어를 조심해야 되고, 도둑마음이 없어야 됩니다. 두타행으로 나가서 선정에 들고 삼매에 들고 그래서 모든 착(着)이 뚝 떨어져 버려야 아라한입니다. 그래서 깨달음은 공부의 시작이라고 한 거예요. 견성은 공부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한 겁니다.
또 다른 종교에서의 깨달음의 경지에 갔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의 공부가 착실해야 됩니다. 정말 정진을 잘 해야 돼요. 공부해서 하자 없이 남은 생을 잘 보내야 돼요. 그러면 그 세계의 지도급 반열에 올라갈 것이고, 아라한이나 무루대아라한 급으로 보지요. 그러나 보살은 결코 외도에서는 나올 수 없어요. 외도가 감히 아미타부처님께서 창조한 저 극락세계에 갈 수 없어요. 갈 수가 없어요. 그 이유는
⁃ 부처님의 인가가 필요해요
⁃ 사중죄를 소멸해야 됩니다
⁃ 변녀성남(變女成男)해야 되고요
⁃ 자기보살 아기를 만들어놔야 됩니다
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이건 안 돼요. 그들의 교주 힘 가지고는 안 돼요. 절대 극락세계는 갈 수 없어요. 정법불교의 보살이 될 수 없어요. 이걸 말씀드립니다.
○ 애욕 ‧ 음욕을 경계하라
앞에서도 말씀드렸는데 애욕 ‧ 음욕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을 이겨야 돼요. 이것이 기본이어요. 수행의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이것을 꼭 유념해야 됩니다.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윤회생사 하는 것은 애욕 ‧ 음욕 때문에 그래요.《원각경》에 윤회의 근본을 이렇게 말씀해놓은 거예요. 맞는 겁니다.
우리 스님들은 말할 것 없어요. 음욕을 주체 못하고 이성을 직접 육체적으로 관계한건 퇴출이어요. 우리 교단에선 쫓아버려요. 직접 관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속으로 그걸 참지 못해서 저녁 내내 음행했다면, 스스로 자기가 사모하는 여자를 정신적 영적으로 생각하고 그와 간음(姦淫)했다면 용서하지 않습니다. 음욕은 가장먼저 끊어야할 경계해야할 대상이어요. 그러니까 수행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도분들은 가정 생활하면서 욕계하늘까지는 가요. 성중 아라한은 될 수 없습니다. 성중 아라한부터는 자력을 기반으로 한 부처님의 타력인데 부처님의 가피로 되어가요. 그렇지 않으면 큰 스승을 만나서 한평생 그 무서운 수행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깨달음의 경지에 올라가 가지고 선정 삼매에 들어야 됩니다. 그래서 윤회를 벗어나는 거예요.
○ 불신을 얻어야 붓다이다
거듭 이야기합니다.
우리 부처님은 외도 수장들이 감히 상상도 못한 보살 법위를 지나서 스스로 불신(佛身)을 얻어 붓다가 되신 분이어요. 이건 역사이후 처음으로 불신을 얻은 분이어요. 그래서 붓다 되신 분이어요. 이거 어려운 거예요. 기이 개척한 그 길을 가는 것은 쉬워요. 그다음 불과이룬 분들은 모두 개척한 길을 따라서, 부처님께서 가르친 수행법을 따라서 간 거요. 부처님의 가피를 얻어서 가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 부처님께서는 최초 성불을 하셨잖아요. 온갖 그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각고의 수행(뼈를 깎는 수행), 그것이 문제가 아니어요. 전번 법회 때 고행담을 이야기했잖아요. 그렇게 공부해서 불신을 얻은 분이어요. 이 불신, 지금까지 아무도 모릅니다. 불신을 얻어야 붓다입니다.
그래서 우리 부처님께서는 소위 반야바라밀(반야지혜)을 완성하신 분, 육바라밀을 통해서 반야지혜를 완성하고 복덕 자비를 완성했어요. 지혜와 복덕은 새가 날 때 필요한 양 날개입니다. 백천삼매 해인삼매 대적정삼매를 통해서 지혜를 완성했어요. 그래서 무아를 완성하고 보살도를 성만(盛滿)하고 무량광을 발명하고 불신을 얻은 분이어요. 이거 참 상상할 수 없어요.
이 복덕도 우주를 살만한 복덕을 지으신 분이어요. 우주를 살만한 복덕은 앞의 바라밀이야기에서 말씀드렸지요.
⁃ 나(我)라는 생각이 없어야 돼요. 이기적인 생각이 털끝만큼도 있어서는 안 됩니다.
⁃ 그러면서 이 세상을 공(空)으로 봐야 돼요.
⁃ 모든 중생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돼요.
⁃ 자기가 지은 공덕을 회향할 줄 알아야 돼요.
이거 참 어려워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것이 우주를 살만한 복덕을 짓는 일입니다.
오늘 처음 오신분들, 스님이 쉽게 한다고 했습니다. 고등학교 과정을 끝내고 대학교 철학이나 종교를 공부하겠다고 들어간 사람들이 4년간 공부를 해도 이런 깊이의 법문을 들어보지 못합니다. 이런 법문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득이 조금 어렵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여러 세계종교의 그 핵심과 깨달음을 이야기하려니까 좀 해설해 줘야 될 용어가 있는데 그걸 쉽게 해설 해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늘 처음 오신분들, 이 현지사를 다른 데서는 모르고 전혀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안타까운데 내가 쓴《붓다의 메시지Ⅰ‧Ⅱ》권을 꼭 정독하시고, 그동안 법문한 것을 책으로 10권 내놨는데 그것도 보시고, 그리고 우리 법장교수가 쓴〈화엄경 요의〉라든지 현지사에서 출간한 책들을 보십시오.
앞으로〈비교종교학〉이 나옵니다. 기이 출간된〈비교종교학〉과〈세계종교〉를 종합해서 보정한 개정판이 나오는데 그걸 꼭 구입해서 보시고, 법문하는 날 좀 나오셔서 열심히 들으십시오.
부처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했잖아요. 부처님께서 함께하신 자리라고 했잖아요. 이곳은 보통 자리가 아닙니다. 거기에서 여러분 복 많이 받아 가시고 업장 많이 씻으시고, 그런 현지사 신도가 되었으면 합니다. 10명이면 한5명은 또 정착을 못해 오지 않는다고 해요. 참 불쌍한 일이지요.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여러분 모두 다 잘살고, 다음생 잘살고, 그러면서 하늘가길 바랍니다. 하늘가기 어렵습니다. 대통령 되기보다 더 어려워요. 아래하늘인 5하늘만 해도 대통령 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워요. 그리해서 결국에는 윤회생사를 벗어나고. 좀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금강경》독송 공덕
날마다《금강경》1독씩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전에 참회하고 발원하십시오.
“부처님! 나 죽을 때 못된 병 얻지 않고 잠자듯 가는 것이 소원이옵니다.”
하면서 매일《금강경》을 1독씩 하십시오. 발원하고 자기가 지은 죄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그러면서 ‘우리 부처님께 정말 진심으로 귀의합니다.’ 하면서《금강경》1독 하십시오. 그러면 꼭 그렇게 됩니다. 금생도 형편이 풀리고, 편히 돌아가시고, 다음생 좋은 가문에 태어나시고, 정법을 만나 성중 아라한이 되고, 윤회를 벗어나고, 그리고 부처님 교단 만나 보살까지 됩니다.
이것이 진실(정말)이니까 유념하고 명심하고 마음에 새기고 돌아가십시오.
아셨죠?(박수~)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구원실성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천상천하무여불 시방세계역무비 세간소유아진견
일체무유여불자 고아일심귀명정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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