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2주일 강론 [무실동성당]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님[용소막성당 주임신부]
찬미 예수님.
반갑습니다. 저는 용수막 성당에서 왔고요. 정남진 안드레아 신부라고 합니다. 네 저희와 함께 미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느님과 또 주임 신부님, 저희를 따뜻이 맞아주신 우리 형제자매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제가 왜 왔는지 아시죠? 제가 비록 모금을 위해서 이곳에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미사에 하느님의 말씀과 강론이 쏙 빠져버리면 안되겠죠.? 그죠? 하지 말까요? 짧게만 강론를 하고 나서 다음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거룩한 변모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물론 이 변모 이야기는 신학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사건이고 우리에게도 우리 신앙에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부분이지만 저는 이 변모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쫌 다른 생각을 또 해 봅니다. 예수님이 저렇게 거룩하게 변모하신 것이 우리 인간에게는 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나는 그러면 어떻게 저런 거룩한 변모의 빛을 내며 살 수 있을까라는 부분이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참 인간이시며, 참 하느님이셨지만 동시에 참 인간이셨던 분이시죠. 그렇다면 이 변모 사건 때 예수님에게서 이렇게 나왔던 빛은 참 하느님의 빛이면서 동시에 참 인간이 가지는 빛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인생의 모든 어떤 삶의 모습 중에 하느님이 만드신 참 인간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때가 과연 언제일까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1번 갓 태어난 아기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2번 우리가 생각하는 청년의 모습 3번 가장 성숙하고 가장 이렇게 완성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노년의 모습 세 가지가 있는데, 여러분들은 이 세 가지 중에 어떤 것이 하느님 모상에 가장 가까운 인간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 1번이다. 계속 손이 착착착착 올라오고 손 내리시고 2번이다. 1번은 몇 번 안 되시네요. 3번이 제일 많으신 거 같은... 그 부활 얘기하다가 어떤 할머니가 이러셨대요 신부님 저희가 부활을 하면 몇 살 때 모습으로 부활을 합니까? 그래서 글쎄요 할머니는 몇 살 때 모습으로 부활하시면 좋겠습니까? 지금 모습으로 부활하시면 어떠세요? 그랬더니, 뭐라고 하셨을까요? 할머니가 지금 모습으로 부활했다면, 저는 부활을 안 하겠습니다. 언제로 부활하고 싶으세요? 물었더니, 18살 모습으로 부활하고 싶다고 이러셨다는데..
저는 1번 2번 3번 중에 1번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정답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저만의 생각이죠. 그런데 왜 1번이라고 생각했냐면 한 번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저쪽에서 갑자기 아주 어린 갓난아기가 등장을 했습니다. 100일짜리밖에 안 되는 요만한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그 눈 보는 버림 있잖아요. 초점도 잘 맞지 않는 근데 아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이고 예쁘다 아이고 귀엽다 그냥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아니 얼마나 귀엽길래 저렇게 사람들이 난리가 나나 하고 봤더니, 또 막상 그렇게 예쁜 얼굴도 아니에요. 그런데 아기가 그냥 아기라는 이유로 주변에서는 빛이 나는 거 그 아이뿐만이 아니지 아기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빛이 나 저는 어쩌면 예수님께서 거룩한 변모 때 바라셨던 빛이 이런 빛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엄마가 귀여운 갓난아기를 안고 있어요. 이때 기쁨을 가져다주는 이가 누굴까요? 바로 아기겠죠. 이 아기야말로 이 엄마에게 구원자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아기가 돈을 잘 벌어서도 아니고 착한 일을 해서도 아니고 재밌게 뭐 말을 해서도 아니고 그냥 존재 자체로 그냥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을 주고 기쁨을 주는 엄마의 얼굴에 빛이 나게 만드는 구혼자라는 거예요. 많이 잊고 살지만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요 한 사랑도 빠짐없이 다 그런 갓난아기였습니다. 지금은 마치 세상 근심 다 치고 있는 것처럼 무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중년 아저씨도요 한때는 빵끌빵클 소리는 한 살짜리 아기였다라는 거예요. 이거는 사실 지금도 우리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악의나 다름없어요. 나이가 몇이든 상관없습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바라보실 때 우리는 그저 갓난아기에 지나지 않죠 우리는 자체로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있는 그런 작은 아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라는 겁니다. 우리가 성인들을 생각할 때 어떤 성인들이라고 생각하면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지 중후하고 아주 묵직한 어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은 아기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아기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봉쇄 수녀원에만 가보세요. 수녀님들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뿜어나와 어떤 광채가 나오느냐? 뭐 이렇게 화장을 잘해서 반짝반짝 물광이 퍼져나올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의 빛, 아기와 같은 얼굴 빛이 뿜어져 나오죠. 그 모습을 보면서, 아! 저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해 인간 본연의 모습이구나. 우리가 지금 그런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면서 너무나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많아서 그럴지 모릅니다. 그 모든 것들을 하느님 앞에 다 내려놓고 그저 우리 본래의 모습 아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봐요.
이 사순시기를 보내면서도 그저 고통만을 생각하면서 무겁고 어떤 근심 어린 그런 표정으로 이 사순 시계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광야를 걸어가면서 우리 자신을 만나고 우리 자신의 진정한 아기와 같은 모습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오히려 이런 시기일수록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에는 웃음 가득함을 잃지 않고 그럼 우리 자신의 순수하고, 아기와 같은 그런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잠시 묵상하시겠습니다.
무실동 성당 제대
[ 강론 요약 ]
예수님의 변모와 인간 본래의 모습
• 예수님의 모습이 변모한 이유
• 거룩한 변모는 하느님 모상에 가까운 모습
• 인간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변모할 부활
우리가 회복해야 할 본래 모습
• 사람들이 아기 주변에 모여드는 이유
• 아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엄마에게 구원자
•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갓난아기
사순시기는 우리 자신을 만나는 시간
• 고통만을 생각하지 말고 우리 자신을 만나자
• 순수하고, 아기같은 본래의 모습을 찾아야
• 사순이라는 광야를 걸어가며 우리 자신을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