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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언니와 달리 친탁을 했다. 내가 어린 시절부터 언니와 비교될 때 종종 듣곤 하는 소리였다. 사실 그런 비교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생각 없는 어른들이야 별다른 뜻을 갖고 한 말도 아니겠지만, 대체로 아빠보다 엄마에의 애착이 큰 어린아이에게 그런 무심코 던진 한 마디가 세상의 전부까지는 아닐지라도 한 귀퉁이쯤 뜯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더군다나 비교대상이 있는 경우엔 더 말할 것도 없겠다. 언니는 엄마를 닮았지만 나는 아니라니! 이건 만일 내가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지 않다면 지지리도 운이 없었다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가정 중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나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아빠를 닮게 혹은 엄마를 닮게, 라는 협소한 선택지에서의 운조차도 따라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보라, 내 바로 앞에 당첨권을 뽑은 언니라는 작자가 있지 않은가.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언니는 정말이지 엄마를 빼다 박았다. 찐빵처럼 둥글넓적한 두상이며 도톰하고 색이 선명한 입술이며 유달리 조그마한 귀까지. 심지어 엄마는 키가 작고 언니는 발육이 빠른 편이었던 터라, 이미 언니가 초등학교 고학년이던 시절에는 엄마와 체격마저 비슷해져서, 가족인 나조차 조금만 멀리 떨어져 있으면 두 사람을 제대로 분간해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사실 상술한 묘사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두 사람이 그리 화사한 외형인 것은 아니다. 애당초 어떤 놀라울 정도의 미모를 동경하지도 않고 말이다. 그렇지, 사실은 다만 그렇게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학시절의 친구는 그렇게 말했었다. 당시엔 그다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언제까지고 어린애로 있을 수만은 없으니, 그래, 인정이다. 발달심리학 같은 건 전혀 공부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개인적 차원에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다. 나는 동성의 부모를 흉내 내어 자기역할을 설정하는 일반적 어린아이, 딱 그것이었다. 나는 나의 엄마가 되고 싶었다.
02.
좋은 것 나쁜 것 가릴 것 없이, 우리가족에서 엄마의 유전자는 대개 나보다 2년 먼저 태어난 언니의 몫이었지만, 비참하기 짝이 없는 유전의 수탈 속에서도 언니가 내게 베풀어준 일말의 자비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구내염이다. 엄마가 만성적으로 앓고 있는 구내염을 언니는 전혀 겪어본 적이 없다. 반면 다른 부분에선 엄마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나는 이미 구내염과 일심동체이다.
그래, 바로 이거다. 엄마와 나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나는 이 영위에 관해 내 자매로부터 배타적 독점권을 누리기까지 한다.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땅 없이 방랑하던 민족이 처음으로 자신들만의 영토를 갖게 된다면 필시 이런 기분이리라. 비록 정착한 땅은 아무도 탐을 내지 않는 척박한 무주지이긴 할 테지만 말이다. 그러나 저 가자 지구를 보라. 같은 땅을 두고 싸우는 것만큼 처참한 일도 없다. 무한을 소유할 수 없는 인간은 소박한 등짐에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아아, 모친과의 유대를 꽃피워주는 구내염은 지복이어라.
03.
따위의 헛소리를 할 수 있는 때는 필시 입 안이 멀쩡한 시절이다. 철학적 질문을 던져보자. 구내염이란 무엇인가? 구내염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아직 한 번도 구내염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못 들어봤다. 그러나 적어도 죽을 만큼 아프다. 구내염 때문에 죽을 일이야 없겠지만 구내염 때문에 죽고 싶어지는 통증이다.
통증은 특히나 입술의 바로 뒤에 기포가 생겼을 때 최악으로 치닫는다. 입술을 스치지 않고 음식물을 섭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식 행위가 행복은 주지 못 할망정 고통의 발원이다. 옛 성인의 말대로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 그 자체가 고통이니라. 특히나 한국인의 밥상은 구내염과 상성이 좋지 않다. 어쩌다 우리는 매운 음식을 선호하게 되었단 말인가.
「어째 닮아도 그런 것만 닮고 말이야.」 엄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한다. 세상엔 구내염에 무지한 이들의 무정한 평가가 난무하지만 그 어떤 것도 이보다 매몰차진 않다. 고통을 공유하는 이로부터 듣는 핀잔이라니.
그리고 사실 내가 멋대로 점유해버린 이 관계란 외교적 인정을 받지도 못 했다. 내가 우리 엄마와 언니의 유사성에 관해 질투를 느끼는 것의 일부만큼이라도 언니에게 질투를 유발시키지 못 한 것이다. 사람이 살 수도 없는 해상 바위를 놓고 자신에게 영유권이 있는 섬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이란 말인가. 다음은 내가 한창 동시다발적으로 만연한 구내염들로 고생하던 열 살의 여름에 언니로부터 들었던 말을 발췌해본 것이다.
「엄살은. 그게 무슨 죽을병이라도 된다니?」
04.
사실 내가 열 살이던 그 해는 내 전체 인생을 통틀어서 상당히 중요한 분기점이 되는 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그 해는 우리 가족이 도심부의 전세 아파트를 비로소 떠나 교외의 마당 딸린 빨간 벽돌집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해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이 집에서 다음 집으로 이사하기 전까지 단란한 삼 년의 시간을 보냈고 어쩌면 이 시기는 내 생애의 가장 찬란한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간사한 인간은 가까이 있는 행복에는 눈이 머는 생물인지라 당시엔 그런 자각이 없었다고 말하겠다. 오히려, 언젠가 자세히 말할 기회가 있겠지만, 학교의 교실 내에서 공공연히 구가되던 소녀로서 자신의 찬란함이 시골 토양의 농후한 거름냄새에 의해 서서히 손상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러한 인상에 강하게 영향을 준 건 이 시골의 또래 아이들이었다. 사실 지방민의 사정을 잘 모르는 서울사람들의 미디어에 의해 창조된 시골 아이들은 도시 아이들에 비해 순박하다는 잘못된 이미지가 당시의 내 머릿속에도 박혀있었으므로, 되레 영악함이란 단어의 의미를 느끼기 전이었던 내게 있어 그 아이들은 사람 아닌 어떤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 여름에, 이름도 모르는 동네의 남자아이가 입병을 낫게 해주는 약이라며 내게 권했던 것은 껍질을 벗긴 개구리였음이다. 그야 살면서 개구리 고기의 영양성분 따위를 알아볼 기회는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정말로 개구리가 구내염에 좋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렇다한들 그게 다 무슨 의미람. 나는 내가 먹은 것이 개구리란 사실을 알자마자 그날 먹은 것을 모두 게워내야 했고 그 후로 동네에선 이름도 모르는 아이들에게 개구리를 먹은 아이로 낙인 찍혔다.
「개구리 반찬! 개구리 반찬! 점심으로 개구리 반찬!」
빨간 날이면 울타리 밖에서 들려오던 그 노래를 우리 자매는 들어야만 했다. 그런데 나야 억울하고 분한 기분이 들어도 이게 다 나의 멍청함에서 비롯된 일이니 속으로 삭힐 따름이지만 무고한 우리 언니는 무슨 죄란 말인가. 더군다나 지금껏 내가 말을 좋게 해서 그렇지 우리 언니란 인간은 제법 호전적인 기질―이 역시 엄마의 그것을 물려받은―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문제에 침묵할 사람이 아니었다.
관개수를 가둬둔 저수지로 향하는 언덕이 있었는데, 그 중턱에 교회가 하나 있었다. 놀잇감이 전무한 시골에서 교회란 대개 일요일마다 아이들의 놀이터 겸 탁아소가 되기 마련이다. 바꿔 말하자면, 동네 꼬마 누구건 간에 일요일에 교회에만 가면 찾아낼 수 있다는 소리다. 그 여름이 끝나가던 무렵 언니는 교회를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에 ‘공교롭게도’ 내게 개구리를 선물했던 왕자님이 있었고, 언니는 한창 예배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 왕자님의 고간을 호쾌하게 걷어차곤 유유히 교회를 빠져나왔더랬다.
신성한 교회의 예배시간에 이토록 불경스러운 일이 발생했으니, 마을 전체에 소란이 이는 것은 당연했다. 언니에겐 방정맞다느니 불량배라느니 하는 온갖 수식어가 덧씌워졌고 부모님은 그런 언니를 데리고 그 남자아이의 집을 찾아가 고개를 숙어야 했다. 이 사건은 체면을 중시하던 당시의 우리 부모님은 물론이거니와 성인이 된 언니에게도 수치스러운 역사로 기억되는 모양이다. 허나 세 사람은 알까. 이 과정에서 남모르게 이 말괄량이에게 연정을 품은 아이가 있었음을 말이다. 이것 참, 내가 구내염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 하는 기득권의 대변인인 이 여자를 사랑한다고 말하게 될 줄이야…….
이리하여, 구내염이란 내게 범성애적 상사병의 통증을 동반하는 만성질환이 된 것이다.
05.
그러나 언니의 고고하고 충만했던 정의의식에도 불구하고 이미 개구리 뒷다리에 걷어차이는 타박상을 입은 나는 이후로도 동네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언니의 그런 고매한 기사도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나는 그 기이한 마을의 기이한 아이들로부터 도망쳐 온화함의 시간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그 첫 정착지라고 한다면 바로 <안단테>일 것이다.
사실 이전까지 우리 집 책꽂이엔 소설이나 동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 단 한 권도 없었다. 단상을 채운 건 전부 고루한 위인전들뿐. 그건 우리 자매는 물론이거니와 엄마아빠까지도 책이란 걸 별로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던 탓이다. 그나마 언니가 이따금 책을 읽기는 했는데, 타고난 천성인지 엄마로부터의 강요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는 몰라도 언니는 어릴 적부터 돈 버는 일을 자신의 소명처럼 여기던 사람이어서, 아직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어린애가 읽는 책들이란 게 죄다 재테크나 기업경영에 관한 것들뿐이었다. 나는 이미 언니를 흠모함에 언니의 그런 독서 취향을 비판할 생각일랑 추호도 하지 않았지만, 돈이란 단어는 언니에게 있어서와 달리 내게는 단 한 줄이라도 책을 읽게 만들기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았다. 내겐 외려 소파에 앉아 차가운 표정으로 그런 책들을 읽고 있는 언니의 모습 그 자체가 더욱 흥미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학교 도서관 같은 데를 가게 된 걸까. 자세한 사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거기서 내 첫 보금자리를 발견했다. 그건 학교 도서관에 비치된 책이었지만, 대담하게도 나는 그것을 훔쳐 달아났다. 그러나 그것은 죄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책은 애초부터 나에게 도둑맞을 운명에 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증명으로,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아무도 내가 도둑질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 했다. 사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도서관엔 책 자체가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이용하는 학생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렇게 자신의 첫 보금자리로 삼았던 <안단테>가 훌륭한 작품이냐고 이제 와서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그때까지 소설이란 걸 전연 접해보지 못 했던 내 입장에선 문장들 사이에 짙게 배어있던 슬픔이 나와의 어떤 유대를 느끼게 했다. 빗방울이 조나단의 이마를 두드릴 때면 멀쩡한 입 안에서도 상처가 벌어지며 피가 흐르는 구내염의 통증이 재발한 것만 같았다. 불행하다. 어째서 내 생애의 통증들은 이다지도 사랑스럽단 말인가!
나는 <안단테>를 읽고 또 읽었다. 맑음은 문장의 보랏빛을 더욱 선명하게 대비시켰고 흐림은 소설 속 피아노 선율과 공명했다. 나는 나의 엄마와 언니 이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름다움이란 것을 목격했고, 두 사람을 흠모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사랑했으며, 어쩌면 그것을 손에 잡았노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나는 작가도 아닌 것이 이미 그 세계의 주민이고 주인이었다. 그 세계 속의 나는 더없이 아름다웠노라고 자부한다.
06.
아름다움, 통증, 사랑. 이 세 단어가 동의어가 아님을 깨달은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따라서 그 이전까지 나의 삶이란 아름다움의 추구인 동시에 사랑의 갈구였고, 또 같은 의미에서 자학을 마다하지 않음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열 살에서 열한 살로 넘어가던 그 겨울은 내게 추한 것처럼 여겨졌다. 볼썽사나웠다. 그 시기에 내 몸은 지극히 건강했던 것이다. 그 흔하던 입병도 감감무소식이었고, 심지어 불과 두어 달 만에 신장이 십 센티 가까이 자랄 만큼 영양상태도 좋았다. 그렇게 완성된 건강은 내 생활에서 미학과 애정을 앗아가는 것이었다. 아무리 멍청한 나라도 첫눈이 내릴 즈음엔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내 생의 최고 가치였던 그것들을 되찾을 필요가 있었다. 나는 아름다워야 했고, 사랑을 확인해야 했으며, 따라서 아파야 했다.
다행히 깊어가는 겨울은 내게 건조함이란 구원을 내려주었다. 건조함에 내 입술이 갈라지고 갈라진 입술에서 피가 날 수 있음을 자각한 첫 겨울이었다. 입술이란 부위는 묘한 것이다. 이미 아름다움과 사랑의 성질을 갖고 있는 것이, 구내염의 그것처럼 고통의 발원이 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삼위일체가 아니겠는가. 나는 내 입술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물론 그것은 일종의 자학이었지만, 그렇다고 투박하게 진행해선 안 될 것이었다. 지천에 널린 것을 아름다움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나는 섬세하게 갈라진 입술을 물어뜯었고, 찔끔, 하고 커피 한 방울 떨어진 자리에 얼룩 번지듯 조금만 터져 나오는 출혈을 즐겼다.
그것이 아프고, 아름다운 행위임은 그 시절의 내겐 굳이 증명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이어서 그것이 사랑의 행위라는 것도 증명되었다.
「또! 어휴, 입술 좀 그만 물어뜯으랬지!」
엄마가 불같이 성을 내며 내 등짝을 때리곤 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이 여성이 나를 바라봐줌이 아무튼 좋았다.
07.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혹여 한 가지 오해가 발생했을까 걱정되는 부분은 우리 아빠에 관한 것이다. 우리 가족 전체와 아빠 개인의 명예를 위해 우선 말해두자면 나의 부친은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다. 차라리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편이 진실에 가깝다. 다만 사랑스럽지 않다. 나는 아빠에 대해 그다지 아름답다는 인상을 받은 바도 없으며, 엄마와 달리 아빠는 매로 훈육하는 성격도 아니었던 터라, 그 시절 나의 이상 세계 주민으로 발돋움하기엔 아빠에겐 자격이 부족했다.
그러나 시민권까진 못 되더라도 영주권 정도는 수여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비록 아빠 자신이 내가 추구하던 것들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었을지라도, 그것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은 명백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세계의 왕으로서 그 공훈을 공명정대하게 평가하고 치하할 의무가 있다.
아빠의 공훈이란 나와 언니를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공주님으로 대우하며 키워낸 것인데, 언니의 경우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의 경우에, 그것은 나로 하여금 초등학교에 처음 들어갈 무렵에 교실 안의 모든 아이들로부터 칭송을 한 몸에 받게 만든 찬란한 과업임이 밝혀졌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는 낙후된 원도심 가정의 아이들이 모이는 곳이었고, 물론 규모도 그리 큰 학교는 아니었지만―한 학년에 백 명 쯤 되는 학생이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모습이 천편일률적으로 꾀죄죄했던 것은 우연치고는 꽤나 기적적이었다 말하겠다. 철이 없던 내 입장에서도 그런 기적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는데, 내가 살던 성 밖에 있는 사람들을 그때 거의 처음 본 것이었던 탓도 있지만, 더 중대한 이유는 그 아이들이 나를 보던 선망의 눈빛이었다. 선망의 눈빛, 그것은 자신과 다른 것을 보는 자의 눈빛이곤 했다.
그러나 당혹감은 곧 무한한 자기애로 귀착했는데, 가정에선 아무도 탐내지 않는 협소한 땅 위에 깃발을 꽂고 기만적 정신승리나 일삼던 아이가 교실에선 미국 대통령 쯤 되는 대우를 받게 되었던 탓이다. 나는 나를 멀리하는 학우들의 시선이 즐거웠고 내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 하는 그 애들을 업신여기기까지 했다. 나는 그곳의 왕이었고, 나아가 조물주였다.
위상의 변화로부터 인간은 모든 사물에의 인식 근원이 되는 공간과 시간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간과 시간의 총체는 곧 우주이다. 그 시절의 나는 언젠가 다가올 죽음을 대비해 스스로의 묘비명을 지어보곤 했는데, 심사숙고 끝에 입선된 후보는 다음과 같았다. 「칭송받음, 그것이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우주였노라!」
비정하게도, 나는 우매한 민초들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나는 그 먼지 날리던 교실에서 지저분한 코흘리개 아이들로부터 제왕으로서의 자질과 의무를 배운 것이다. 아름다움! 나는 그것이 내 우주의 모든 것의 이론임을 일찍이 깨달았다. 나는 저 아인슈타인도 해내지 못 한 과업을 한국 나이로 고작 여덟 살이던 시절에 이뤄낸 위대한 천재였다.
08.
빅뱅과 우주팽창의 기원도 얼추 밝혔으니 다시 열한 살의 겨울로 돌아가보자. 신년이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점이다. 입술이 붉고 축축하게 물들었다. 아뿔싸.
깨달은바, 나는 이론에 있어선 천재적인 인재였지만 몸을 가누는 재주는 빈말로라도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미술에 아무리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한들 선 한 줄 제대로 못 긋는 이를 화가라 칭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 아침에, 부르튼 입술을 물어뜯었을 때 직감한 것은 이것이 내 미학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통증이란 것이었다.
나는 때마침 하얀 옷을 입고 있었는데, 근사한 붉은 무늬가 옷을 염색해나가는 모습을 나는 가만히 지켜보았다. 솔직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잘 이해하지도 못 했고 기억나지도 않는다. 좀처럼 아침밥을 먹으러 오지 않는 딸내미를 부르러 방까지 행차한 엄마의 비명소리만을 희미하게 기억한다. 여전히 남아있는 아랫입술을 꿰맨 하얀 자국만이 이 기억이 허구가 아님을 증명해주고 있다.
09.
스스로의 미학을 배신한 대가는 생각보다 거대한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우리 아빠에겐 정신과 의사인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나의 예술이 이 배불뚝이 아저씨에 의해 폄훼당한 것이다. 우리 부모님은 나와 같은 천재를 낳은 것치곤 당신들 스스로는 천재성을 갖추고 있지 않았던 터라 이러한 선동적 비평을 걸러들을 만한 능력이 없었다. 아아, 비극이어라! 고작 단 한 번 실수했을 뿐인데 찬란하기 그지없던 나의 오후시간이 블라인드 쳐진 영문 모를 방에서 영문 모를 아저씨와 영문 모를 이야기나 주고받는 시간으로 타락해버릴 줄이야!
그러나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했던가. 결과적으로 이 오후시간들로 인해 내가 이 절망적인 전장조차 영웅적, 아니 신화적 서사시의 무대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한 자질을 갖고 있었음만이 증명된 것이었다. 우리 부모님조차 멋들어지게 속여 넘긴 이 선동가를 상대로 나는 멋지게 싸웠다.
「이건 우리 학교에서 유행이에요. 우리 학교 여자애들이라면 누구나 입술을 물어뜯어요, 그런 것도 몰라요? 잘 나가는 여자애들은 누구나 입술을 물어뜯을 줄 알아야 해요. 그런데 그걸 하지 말라뇨, 만일 내가 왕따를 당한다면 아저씨가 책임질 건가요?」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무리」라든가 「습성」 같은 어휘를 아직 사용하지 못 했던 것이 지금도 못내 아쉽다고 생각한다. 만일 내가 조금만 더 책을 많이 읽었었노라면―책을 읽지 못 했던 것도 이 오후시간 탓이었다!―좀 더 수월하게 이 의사를 설득할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나는 이때부터 인간적 이상향을 균형감각에서 찾고 있었다. 합리적이면서 관용적인, 민감하면서도 담대한. 그것이야말로 인간됨이 아니겠는가. 나는 본능적으로 그런 사람을 선호하곤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의사는 내가 살면서 처음 겪어야 했던, 내가 가장 싫어하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합리적이지도 않은 주제에 꽉 막힌 고집불통. 그렇다. 나는 장엄하게 투쟁했노라. 그야말로 서사시의 영웅처럼, 비장한 햄릿처럼! 그러나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상대와 입씨름을 하는 일은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이 배불뚝이 대머리 사기꾼은 내게 소아 우울증이라는 영문 모를 진단을 내리곤 그것을 우리 부모님에게 일러바쳤다. 나와 정면승부로는 이길 자신이 없으니 비겁하게 도망친 것이다. 이것 참, 나는 여전히 이 승부에서 질 것 같은 생각이 조금도 들지 않았지만, 진이 다 빠진 것은 사실이었다. 참회한다. 나는 이때 태어나 처음으로 불의와 타협했다. 내 머리에 이상이 있다는 날조된 사실을 진실인 양 여기기로 하고 얌전히 약을 받아먹었다.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나는 이 타협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 이제 막 열한 살밖에 안 되었던 그 해 겨울에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다짐했다. 뼈저리게 후회했노라, 다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노라,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독불장군과 결투하지 않겠노라!
나는 입술 물어뜯기를 그만두었다. 이제 곧 봄인 탓도 있었다.
10.
내가 나의 초등학교 시절을 내 인생의 황금기라고 기억하는 데에는 몇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지만, 중고교 시절에는 있을 수 없는 사학년, 나아가 오학년과 육학년이 이 시절엔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학제의 무엇이 좋으냐고 묻는 것은 넌센스다. 학년이 곧 지위였던 모든 학창시절을 되짚어보라. 우리는 늘 고학년이 되기를 희망했고, 중학교 일학년이나 고등학교 일학년은 결코 이 사회에서 칠학년이나 십학년으로 대접받지 못 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시금 일학년이었다.
이상의 설명은 우리가 사학년이 됨이 얼마나 찬란했던 순간이었는지를 상기시키기에 충분했으리라 생각한다. 보라, 이 초등학교라는 조직 내에서 나보다 멍청한 후배들이 세 세대에 걸쳐 분포하고 앞으로도 두 해 동안 나에게 남아있는 것은 상승곡선뿐이다!
그러나 보장된 미래에 안주하는 인간은 도태되는 법이다. 낮은 곳의 민심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높이 있는 자의 처세가 아니겠는가.
내 눈에 띈 건 이따금 학교 도서관에서 마주치던, 당시 2학년이던 안이었다. 북방계의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칼과 색이 탁한 눈동자가 인상적인 아이였는데, 나는 종종 그 애가 도서관에 와서 멀뚱히 앉아있거나 읽지도 않는 책을 꺼내 갖고 와선 베개로 삼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이것이 환경의 중요성이구나, 하고, 나는 그러한 낱말들을 알기도 전에 의미부터 체득할 수 있었다. 나의 빛나는 직모와 비견될 만한 머리칼을 가진 아이가 지성의 ‘지’자도 습득하려 하질 않으니 말이다. 여기서 두 번째 의미의 체득이 이루어졌다. 인의(仁義). 그래, 나는 그 애와 같은 미의 나라의 주민으로서―그리고 주인으로서, 이 애를 가르치는 일이 나의 소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얘, 도서관에 왔으면 책을 읽어야 하는 거야.」
나는 읽고 있던 문고판 <위대한 개츠비>를 덮으며 말했다. 그 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때가 처음으로 그 눈동자의 탁함이 불분명한 초점 탓임을 알 수 있었다.
「못 읽는 걸 어쩌라고요?」
후배라는 입장과 육안으로 파악되는 체급 차에도 불구하고 그 애는 당돌하기 그지없는 투로 쏘아붙였다. 그리고 그때 그 새된 목소리가 고요한 도서관의 적막을 가르는 경이를 나는 보았다. 높지만 칙칙한 음색. 가능만 하다면 빼앗아 갖고 싶을 만큼 강렬한 목소리였다. 사실 그때 그곳엔 나와 안 둘뿐이어서 이미 조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목소리가 세상의 다른 잡스러운 소리들을 지워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아마 정신없는 시장바닥에서 그 애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한들 또렷이 구분해냈으리라, 그리고 아마 마찬가지로 사랑에 빠졌으리라.
아아, 그때 그 애를 무시하고 지나쳤더라면, 그 목소리와 또 다른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하고 지금도 간혹 생각한다.
11.
안은 독서 장애를 앓고 있었다.안은 원도심의 조그마한 오피스텔에서 어머니와 둘이 살았고, 이학년은 정오가 되면 수업이 모두 끝났지만, 안은 어머니를 기다려야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학교 도서관은 안에게 좋은 쉼터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안은 고양이보다도 잠을 많이 자는 아이였기 때문에 늘 조용한 곳을 필요로 했다. 그 애는 수업이 끝나면 마치 유령처럼 교내를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삼사학년 수업이 끝날 즈음이면 아무도 없는 도서관을 찾았다. 이건 나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사위가 조용한 도서관에선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마치 부둣가에서 듣는 파도소리처럼 들린다. 안은 그러한 평화로운 소란을 좋아했다. 안은 모래사장에서 소라껍질을 줍듯이 두꺼운 책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무 책이나 좋은 것은 아니다. 안 역시 다만 나와 다른 형태였을 뿐이지 책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 애는 책을 신중히 골랐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양장본 <꿈의 해석>만큼 좋지 않았다. 왜 그런 책이 초등학교 도서관에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아무튼 안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 애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프로이트의 헛소리 같은 강연을 가장 진중하게 들어주는 아이였다. 다만 꿈결에 들은 내용을 눈을 뜨는 순간 망각할 뿐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곤한 자세로 잠든 여성을 우리 외할머니의 영결식 이후로 본 바가 없었다. 외할머니의 영결식이 있던 그날은 시월이었고, 가을바람이 불었고, 하늘도 청명하니 날씨는 아주 좋았고, 세상은 무채색이었다. 나는 사실 너무 어리기도 했고 그때까지 외할머니를 만나본 적도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 죽음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내 기억 속의 세상이 탁하게 기술되어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이 내 기억 속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외할머니가 내게 보여주던 풍경이다. 그 조그마한 아이도, 어쩌면 돌아가신 외할머니와 정반대의 대척점에 살아있다고 봐도 좋을 안도, 내게 동일한 풍경을 보여주곤 했다. 안은 아주 조그맣게 숨 쉬었다. 동물이 몸에 지니고 있는 독은 대부분의 경우 그 동물의 먹이에 있는 독소가 체내에 축적된 결과인데, 안의 숨결에도 다소간 그런 속성이 있었다. 늘 책을 베개 삼던 그 애의 숨결엔 오래된 책 냄새가 배어있었다. 시각으로 제대로 인식하지 못 하는 인쇄된 잉크를 그 애는 그렇게, 나 같은 것보다도 훨씬 꾸준히, 나름대로 음미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른 물 위에 둥실둥실 떠있어. 그렇다곤 해도 연안이야. 정신을 차리고 조금만 걸으면 바닷가 마을이지. 마을엔 중세 유럽의 시계탑처럼 생긴 높은 탑이 하나 있고, 연분홍빛 벽돌들은 아주 음침해. 그 탑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듯도 해. 하늘은 다이아몬드의 질감이고, 늘 석양지는 붉은 빛이지. 초승달 모양 모래사장 가장자리를 따라 하염없이 걸어. 이따금 중절모를 쓴 신사가 다가와 예의바르게 인사하고, 나는 그 사람이 내 아빠가 아닐까 생각해. 그러나 우리 둘 다 아무런 말없이 스쳐지나가고, 나는 가택들이 모여 있는 절벽의 반대편으로 걷고, 어쩌면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하지만, 끝내 정해진 구역 밖으로는 결코 나가지 않아. 마을 어귀엔 조그마한 찻집이 하나 있고, 나는 거기에 들어가고 싶지만, 끝내는 망설이다 들어가지 못 해. 나는 거기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 집은 아주, 아주 조용해서, 다시 잠들기 좋아. 나는 꿈속에서 다시 잠들고, 그러면 현실의 내가 잠에서 깨.」
우리는 어느 높은 건물의 옥상에 있었고 안은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 얘기를 들려준 바 있다. 안은 그 시절부터, 그러니까 우리가 처음 학교 도서관에서 만났던 그 시절부터 그런 꿈을 꾸고 있었다고 했다.
안은 오후 네 시가 지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에 가서야 어머니가 안을 데리러 오던 것이었다. 나는 종종 안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교정을 빠져나가던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불현듯이 안의 어머니가 아직 많이 어리고, 제법 겁이 많으며, 창부이고, 흡연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안의 어머니와 한 번도 대화해본 적이 없었지만 그 초췌한 얼굴의 부르짖음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문득 깨닫고 보면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눈 기분이 들곤 했다.
12.
카오스. 또는 오비이락. 세계는 우연적 구성물이다. 그래서 이따금 전혀 독립적으로 보이는 사건들, 심지어 일견 배타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난다 해도, 그것 역시 세계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것이다. 그러니까 가령 내가 오학년이 됐다는 이유로만으로 우리 언니가 중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 등이 그렇다. 이만한 부조리가 또 어디에 있을 성 싶지만 이 역시 세계가 내포하는 하나의 가능성이었고, 심지어 발생한 사실이다! 제기랄.
「이해할 수가 없지 않아? 동생이 여전히 학교를 다니는데 언니가 졸업해버리다니 말이야!」
우리는 학교 운동장 구석의 놀이터를 걸었다. 내가 안을 내 정교회의 사도로 삼은 이후로 우리는 종종 그렇게 했다. 이월이었기 때문에 바깥은 여전히 추웠고 운동장 모래 위론 키 작은 서릿발이 희끄무레 올라와 있었다. 겨울방학도 아직 끝나지 않았던 시점이라 운동장은 아주 한산했다. 우리는 운동장과 놀이터의 경계를 그어놓은 폐타이어들을 징검다리 삼아 걸으며, 빨간 줄무늬 엄지장갑을 한 짝씩 나눠 끼고 두꺼운 코트 아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겨울공기 탓에 입술이 얼얼했지만, 아이스크림의 달콤함 앞에 그깟 동상이 대수겠는가. 그리고 사실, 비로소 익숙해졌던 안의 냉담함엔 동장군이나 아이스크림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야 언니 혼자 나이 드는 건 아니니까.」
안은 내 눈도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그 눈은 이미 아이스크림에 매혹된 눈이었다. 안은 아이스크림을 먹는 속도가 매우 느린 부류에 속했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안은 여름보다도 되레 겨울에 먹는 아이스크림을 선호했다.
그러나 무심해 보이는 태도에도 불구하고 안의 지적은 타당했다. 나는 아무런 반론도 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사실 안이 타당하다는 것을 나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커다란 슬픔에 잠겨 있었기 때문에 불합리한 의구심에 잠식될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이것이 하나의 거대한 음모인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신이 됐건 사회가 됐건 나의 천재성을 질투한 이들에 의해 사랑하는 여인과의 결별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여태껏 스스로의 천재성이 이토록 원망스러웠던 바가 있었던가. 아아, 나는 심지어 차라리 그저 평범해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쩐지 나 때문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끔찍한 일에 말려들었다는 생각이 들어.」
「그건 모르는 일이지. 어쩌면 애초에 언니가 사랑한 그 사람들 모두 한통속이었을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래, 어쩌면 심지어 그럴 수도 있겠지. 그치만 넌 어떤데?」
「나? 나야 그럴 리가 없지.」
「그래. 너만은 그럴 리가 없지.」
안은 거의 기계적으로 대답하곤 했다. 귓바퀴를 꿰뚫는 그 차가운 목소리의 다짐이 나는 미칠 듯이 기분 좋았다.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한들, 나는 이 열렬한 나의 신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13.
물론 학교라는 공간에서의 이별이 나와 우리 언니의 사이를 끝내 갈라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언니가 학교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은 내가 쉬는 시간마다 찾아갈 공간이 없어졌다는 의미였다.
그때부터 나는 교실에 늘 잠을 자는 아이가 되었다. 사실 한 번도 학교에서 잠을 자기는커녕 졸아본 적도 없지만, 수업시간이 아니고서야 늘 책상 위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하지 않게 되었다.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 여전히 안이 있기는 했지만 차마 하급생들의 교실에 자존심도 없이 행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나는 엎드렸다. 깊게 잠이 들어 교실 안의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깨닫지 못 하는 체하였다. 그러면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 교실의 사람 같지 않았던 그 아이들이 내가 자는 척만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어떤지는, 나로선 알 길이 없다. 다만 나는 이따금 책상 위에 엎드린 나를 두고 뒤에서 낄낄대는 소리를 듣곤 했다.
「쟤는 꼭 새우 같은 눈깔을 하고 있잖아!」
누군가 그렇게 외치자 너덧 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공식적으로는, 나는 그 험담을 듣지 못 했다. 따라서 그러한 것들은 내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사자인 내게는 말이다.
참 공교롭게도 그 시절은 내 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사다운 교사, 담임다운 담임이 활약하던 시기였다. 나는 이 담임을 여전히 「건」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나의 기면증을 이상하게 생각한 건이 어느 날 불쑥 우리 집으로 찾아온 것이었다. 나 참, 요즘 세상에 통보도 않고 가정방문을 하는 교사라니. 아무튼 그렇게 오학년이 된 이후로 두 달 남짓을 힘겹게 견디던 내 노력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엄마아빠의 눈물을 뽑아내고 말았으니 말이다.
여담이 되겠지만 이때 나는 울고 있는 엄마아빠를 보고서도 조금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외려 더 없는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교실 안의 주인공인 나는 정작 아무렇지도 않은데 멜로 영화 관객이라도 된 양 오열하니 말이다. 나는 다만, 내 부모지만 손님을 앞에 두고 이게 무슨 주책들이란 말인가, 하고 조금 창피했을 뿐이었다.
14.
그 시절 내 담임이 파괴한 것은 단지 우리 가정의 평화뿐만이 아니었다. 그 방문은 언제부터인가 내 몸속 여기저기를 기다니던 조그마한 갑각류 벌레와 같던 의심을 확증으로 만들어버리는, 그러니까 그 벌레를 나의 피부 바로 아래에 불룩 튀어나온 움직이는 종기의 형태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나는 그런 의심이 내 팔뚝이나 목덜미를 타고 기어 올라와 눈 밑 광대뼈 부근이나 콧잔등에서 선명하게 바동거리는 모습을 목도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것은 곧 내가 믿던 세계의 붕괴였다고 할 것이다. 애써 그 조짐을 부정해오던 시민혁명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 세계의 왕이었으니, 공화정의 도래는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 나는 이 교실에서 아무에게도 선망 받지 않게 된 것이다. 갑자기!
이제 머리를 책상에 처박는 행위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뒤에서 목을 쳐달라고 애원하는 것이었다. 웃돈을 얹어줄 터이니 부디 한 칼에 끝내주시게! 그 무렵 내 별명은 어느덧 새우눈깔, 또는 보다 짧게 줄여서 새우로 굳어져있었다.
「꼬맹이들은 멍청하지, 선생들은 제 생각만 하지. 별 수 있겠니? 결국 너 혼자 안고 가는 거란다, 동생아.」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엔가 언니가 한 말이었는데, 나는 그 말을 통해 언니 역시도, 비록 내가 아는 한 아무런 사건도 없었지만, 나와 같은 길을 걸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하기야 똑같은 가정에서 자라 똑같은 학교를 다녔는데 먼저 산 언니를 제쳐두고 나만 이런 처사를 겪었을 리야 없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니에게 어떠한 상담도 요청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중학생이 된 언니는 세상에서 제일 바쁜 사람이었으니까. 나는 그 시절 언니가 장래에 가구업자라도 되려는 줄만 알았다. 눈에 띄는 책상이란 책상은 일단 모두 앉고 보았으니 말이다. 학교고 독서실이고 학원이고 집이고, 아무튼 책상이 있는 곳이 곧 언니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아무튼 언니는 대단했다. 영어도 잘하지, 수학도 잘하지, 무엇보다 ‘도덕’ 과목은 늘 만점이었다.
「사실 도덕은 수학이랑 한 과목이야. 이차방정식만 잘 풀 수 있으면 도덕쯤은 식은 죽 먹기지.」
언니의 이 말을 내가 온전히 이해했던 것은 언제쯤이었던가. 그 말을 이해했을 때에야 비로소 나는 우리 언니의 위대성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그 즈음엔 이미 나 자신이 천재였다는 환상에서 깨어난 이후였으니 더더욱. 그렇다, 결국 윤리, 인간 무리의 이치란, 한 변이 영이 되는 다항식의 인수분해인 셈이다.
15.
육학년이 시작되었고, 칠월이 저물 무렵엔 아빠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제 나와, 언니와, 엄마로 구성된 우리는, 어쨌든 아주 많이 슬펐다. 어쨌든.
16.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다. 당시에 나는 여전히 잘난 체를 하고 다니긴 했지만 아직은 너무 어려서, 복잡한 세상사의 인과관계를 모두 이해하기엔 부족함이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내 짐을 정리해야 했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나 <댈러웨이 부인>이나 <카스테라>나. 그런 책들이 내 짐들의 전부이긴 했지만 아무튼 그것들을 책장에서 빼내 상자에 넣고, 다시 상자에서 빼내 책장에 넣는 일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무슨 연유에선지 책장도 이전보다 작아져있었던 탓에.
새로 이사한 집은 아파트였다. 언니는 넌지시 그것을 ‘임대주택’이라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임대주택이든 뭐든 나는 일단 이 아파트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쨌든 오래 전 우리 가족이 살던 도심부의 전세 아파트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물론 그런 생각은 이사를 하고 이틀 만에, 그곳이 사람보다 바퀴벌레에 최적화된 공간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라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가 셋이 된 이후에도 엄마는 결코 청소를 게을리 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건 이미 구조적인 문제였다. 어느 날엔가 같은 엘리베이터를 탄 아주머니의 얘기를 들어보니, 이 아파트를 지을 때 방역을 하지 않은 흙을 그대로 사용해서 바퀴벌레를 없앨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는 몰라도 아무튼 나는 엄마에게 이 집에서 바퀴벌레를 몰아내는 것은 무리라고 충언했다. 엄마는 막내딸의 조언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하면 바퀴는 잡을 수가 없지. 급할 땐 과감하게 내려치는 습관을 들여야 돼.」
내가 바퀴벌레가 인간과 더부살이하는 생물이라는 것을 알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바퀴벌레 퇴치 전문가였던 안은, 마치 반백년 쯤 산 사람인 양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나는 그 애가 그렇게까지 으스대며 무언가를 일러주는 일을 그때까지 본 바가 없었기 때문에 조금 어이가 없었다.
어쨌든 시도 때도 없이, 그러나 주로 안식의 시간이 되어야 할 오밤중에 벽면과 천장을 쏘다니던 그 검고 날렵한 녀석들이 그 시절 내 주적이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중력을 거부하는 핵실험적인 경거망동을 일삼던 이들의 도발이 내 침대의 영공을 지나가지 않게 함이, 이 시절 나의 가장 큰 투쟁이었으리라. 내가 수면장애를 앓기 시작한 시점이 정확히 어느 때부터인지는 잘 알지 못 하지만, 적어도 이 승산 없던 투쟁이 병세를 최악으로 치닫게 했음은 분명하다. 벽면을 기어가는 소리. 그것에 무척이나 예민해진 내 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체득된 몇 가지 기술이 있다. 침대 스프링보다 더 좋은 탄력으로 누운 자세에서 튀어 오르기, 인간 시각의 이차원 표상을 초월한 고차원적 십육방위 경계태세, 형광등을 켜두고 잠들기.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어졌던 탓인지, 이 시절은 또 나의 오랜 친구와 가장 돈독하던 시절이라고 말할 것이다. 입병을 달고 살았다. 동시에 여섯 군데에 기포가 생겼던 퍼스널 레코드도 이 시기에 작성되었다. 거식증이라고까지 말할 것은 아니지만 입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이 고통스러우니 나는 눈에 띄게 말라갔다.
그런데 이 시절의 입병이란 내게 참 이례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이제까지와는 달리, 그것들이 통증으로서 아름다움이 결여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가 겪은 첫 번째 분리불안이었다. 그것은 여전히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질환이기는 했다. 부쩍 말라가는 나를 보곤 여전히 내가 가장 사랑하던 이 여인은 연민의 눈빛을 보내곤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아름답다고 느꼈는가? 통증이, 아니 심지어 엄마의 사랑조차 내겐 그다지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 하는 것으로 분리되었다.
이건 과학의 패러다임이 뉴턴 역학에서 상대성이론으로의 이행을 요구하는 수준의 변화였다. 그때까지 아름다움이 여전히 내 우주의 모든 것의 이론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것을 내 나름대로의 과학체계 내에서 공고히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반례가 발견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름답지 않은 통증, 아름답지 않게 받았던 사랑이 그것이었다. 우주란 도대체 무엇인가? 오래 전에 해결됐다고 믿었던 난제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내겐 무언가 새로운 이론이 필요했지만, 불면증으로 혼란된 나는 그런 것을 찾아볼 기력조차 없었다.
17.
난제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산란기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고 알려진 연어가 낚시꾼의 낚싯바늘을 무는 것은 자연계의 소소한 미스터리 중 하나이다. 불나방보다 더한 욕심쟁이들인 것이다. 흥미도 없는 것을 일단 물고 본다니 말이다. 그래, 그 끝에 참혹한 죽음을 맞는 것도 결국 자업자득인 멍청이들이다.
열다섯이던 시절의 나를 동물에 비유하자면 이 녀석들이 안성맞춤이겠다. 나는 욕심 많은 연어였다. 흥미도 없는 것을 일단 입에 물고 보았다. 그건 본능적 욕구였고, 미스터리였다. 그러나 그것 자체에의 욕구는 아니었음만은 말해둬야 할 것 같다. 나는 다만 안이라는, 이 나의 가장 충실한 심복과 한 번이라도 더 똑바로 눈을 맞추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절에 별달리 흥미도 없으면서 안이 가져오는 담배를 한 개비씩 입에 물곤 했다. 담배 연기를 들이마시는 일은 내겐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매번 처음 연기를 들이마실 때처럼 기침이 났다. 풀떼기를 건들건들하게 입에 물고 있는 모습도 내겐 뭐 그리 대단할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학급의 다른 아이들처럼 이런 초라한 행위에 무언가 도전적인 성취감을 느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유일하게 매혹적인 것이라곤 어느 날 조잡한 고양이 프린트에서 관능적 기호로 바뀌었던 레종의 심볼뿐이었다.
안은 이제 겨우 육학년이었지만 이후로도 줄곧 안을 따라다니던 퇴폐적 척력은 이미 완성되어있었다. 나는 우리가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노라고 생각하지만 나로선 안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고 그 애는 언제나 하고픈 말이 많지 않아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그 애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 그러면 나도 한 모금, 부모의 행동을 모방하는 갓난쟁이처럼 그 모습을 흉내하곤 했다. 우리 둘 다, 제아무리 어른스러운 체를 해봐야 어린애는 어린애였기 때문에, 늘 끝까지 타지 못 한 꽁초가 애처롭게 버려지곤 했다. 어디서 가져오는 것인지는 몰라도 안은 담배를 거의 자유롭게 가져올 수 있었고, 우리는 구겨진 꽁초 따위엔 아무런 미련이 없었다.
18.
중학생이 되고 얼마 지나자 나와 내 또래 아이들은 모두 구역질나는 모습이 되어갔다. 내게 그 애들과 무언가 공유하는 감정이 있었더라면 아마 자기혐오뿐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탄성을 잃어버린 스프링처럼 길게 늘어져선 제 모습으로 돌아가지도 더 이상 늘어나지도 못 하는 긴팔원숭이 같았다. 서로의 못난 부분을 지적하는 데에 밖에 정신이 없던 그 교실엔 도대체 무슨 재앙이 일어났던 것인지. 너와 나의 몸뚱이에서 풍기는 비린내에 욕지기를 느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체하며 그 교실에 있곤 했더랬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초등학교 시절부터 몸에 익은 고립도 나쁘지 않았다. 내 주변은 무척이나 깨끗했고 나는 정말이지 교실에서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무언가 말을 하면 다들 진기한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탄성을 내뱉으며 수군거리곤 했다. 때로는 쉬는 시간에 내게 다가와서 일부러 저열한 단어들의 뜻을 말하게 하곤 나의 타당한 대답을 웃음거리 삼던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분해서가 아니라 정말 단순하게, 뭐가 그렇게 우스운 것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뭐 궁극적으로,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몇몇 아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 담배를 구걸하러 은밀히 말을 걸기 시작했다. 물론 개중 다시 몇몇은 위협하는 말투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몇몇은 아주 친절했고, 비굴했고, 어쩌면 내게 의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는 그때를 제외하면 나의 또래 아이들로부터 그런 언어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물론 나는 돈만 지불하면 안을 통해 얼마든지 담배를 구할 수 있었으므로 그 애들에게 싸구려 천국을 제공해줄 수 있었다. 나는 점점 더 그 애들이 나에게 의지해오던 것을 느꼈고, 나아가 내가 아주 가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인 양 느꼈다. 어쩌면 나는 먼 옛날에 잃어버렸던 선망의 눈빛을 다시금 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내 착각이어서, 나의 밀수 행위가 학교 측에 들킨 그날에 가서 나의 충신이라고 여겼던 그 아이들은 곧장 나를 배신해버렸다.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나는 비록 사교성은 최악이었어도, 우리 언니와 같은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덕인지 성적도 그럭저럭 괜찮았던 데다가 선생님들이 보기에 무언가 사고를 칠 것 같은 학생도 아니었던 탓에 파급력은 더욱 컸다. 이 일이 세상에 들킨 순간에 그런 그림을 상상하지 못 했던 것도 아니지만 나는 결국 엄마가 학교까지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들 앞에서 나를 다그치는 장면을 목격해야 했다. 물론 나도 상황파악이 안 될 만큼 바보는 아니었기 때문에 고분고분 용서를 빌었다. 누구에게? 고개를 들 기회가 별로 없었던 탓인지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나는 용서를 빌었다. 다만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안을 지켜내야 했기 때문에, 담배를 어디서 구했느냐는 질문엔 일절 함구해야 했다. 추궁은 끈질겼지만, 내가 내 푸석푸석한 머리칼을 한 움큼 쥐어뜯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으리라 다짐했던 순간엔 다들 입을 다물어주었다. 나는 스무 살이 채 되지 않았던 어느 날엔가 원형탈모를 앓기 시작했고 내 손에 의해 뽑혀나간 그 자리의 머리칼은 무슨 짓을 해도 다시 자라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19.
얼가니새는 어미가 알을 둘 이상 낳으면, 가장 먼저 부화한 맏이가 뒤늦게 부화한 동생들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 죽게 두는 습성이 있다. 어미가 가져다주는 먹이가 여럿이서 나누기엔 모자란 탓이다. 혼자 남은 맏이는 먹이를 독차지하고, 그렇게 살아남은 성체 얼가니새는 따라서 대체로 그 어미의 첫 번째로 부화한 알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여기에 인간적 윤리는 개입할 여지가 없다. 작은 둥지 안 세계에서 가장 먼저 부화한다는 것은 생존에 있어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힘의 격차이다. 힘의 논리에 따라 생존 가능한 것만이 생존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다. 그러니까, 협소한 내 마음에 처음으로 부화한 얼가니새처럼 비집고 들어온 안의 기억이 다른 감정들을 밀어내 끝내는 뙤약볕 아래에서 죽게 만드는 것조차 내게는 어찌 할 도리가 없다.
열여섯이 되었고 비록 한 해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다시금 안과 같은 학교에 있을 수 있음에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 즈음에 이미 나는 안에 대한 나의 사랑이 단순히 친구 없음에서 연원하는 의존증세를 아득히 넘어섰음을 자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 애 앞에선 아무렇지 않은 체하였지만 끊은 담배에 대한 생각조차 거의 나지 않을 만큼 폐부를 텁텁하게 채우는 응어리진 서러움이 있었다. 그 차오르는 오수가 허한 맘을 채워주는 만족감이었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중학교로 진학한 이후 안은 생각보다 학급 내에 잘 녹아든 것 같았다. 물론 대부분은 안이라는 사람보다는 안이 갖고 있는 퇴폐적 분위기에 취한 철없는 꼬맹이들이었지만, 그래도 몇몇은 여전히 글을 읽기 힘들어 하는 안을 도와주려 애썼다. 물론 안은 어느 쪽이든 귀찮게만 생각할 뿐이었지만 그러면서도 굳이 밀어내지는 않는 것이 그 애의 성미였다. 덕분에 나로선 안과 어울릴 시간이 되레 더 줄어든 것 같았다. 나에겐 그 애들로부터 안을 찬탈해낼 권리가 없었다. 사실 나는 안이 나라는 존재 역시 귀찮게 생각하고 있을 뿐임을 진작부터 알았다. 나에게로 향하는 악감정들을 모른 척하는 일은 훨씬 이전부터 특기였으니, 개의치 않았을 뿐이다.
그렇다, 나는 언제나 나에 대한 안의 감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난 네가 좋은 것 같아. 객관성을 갖추기 위해 첨언하자면, 물론 나도 아직 내 성적 지향이 확립되기엔 다소 이른 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을 따지고 들자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잘 모르는 상태로라도, 우선 말하는 거야.」
나는 마루야마 겐지의 『밤의 기별』을 읽고 있었다. 말을 하면서도 책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고, 아직 문학에 대한 독해력이 부족했던 탓에 『밤의 기별』을 전후 세대 특유의 피해망상 증세의 발원이라고 오독하고 있었고, 그럼에도 문장 한 줄 한 줄은 참 매력적이라 여기고 있었고, 안이 내 고백을 어떻게 여길지에 대해선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언젠가도 한 번 들었던 말이었다. 그건 그 애의 입버릇 같았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에 있었다. 나는 교복 치마가 더러워질지언정 언제나 보도블록 끝자락에 걸터앉는 일에 주저함이 없었다. 안은 좀처럼 도착하지 않는 버스에 좀이 쑤셨는지 몸을 배배 꼬며 제 몸집만한 팔자 동선을 따라 무한히 산책하고 있었다. 연일 지구온난화로 인해 짧아진 겨울이 화두였던 무렵이었다. 봄볕이 따사롭다 못해 뜨거웠다. 태양빛을 눈부시게 밀어내던 질 나쁜 종이의 하양에 나는 눈을 감았다. 이카로스의 추락을 예감케 하는 뙤약볕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몸을 웅크리는 것이 특기이니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도 비행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20.
안은 결국 나는 물론이요 그 어떤 여자도 사랑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그러한 지향보다도 더 이전에 그 애에겐 의욕이랄 것이 거의 없었다. 나는 안의 권태로움이 글을 못 읽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사고는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일 뿐 내뱉는 것이 없다. 까만 잉크로 나타나는 글자는 사건의 지평선 쯤 되리라. 안에게는 자기 사고를 타인과 구분해주는 그 테두리가 부재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무제한적이라 할 만큼 수용적이었고, 무엇이든 그러려니 했다. 그래서 권태로웠고, 무기력했고, 이따금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연인이 되기로 했다. 그렇다곤 해도, 바뀌는 건 말뿐이었다. 나는 방과 후 하굣길에 배스킨라빈스에 들러 바나나 쥬빌레를 주문하는 것만큼 안을 갈구했고 그 애는 길거리에서 시제품의 시식행사를 벌이고 있는 태도 불량의 회사원이었다. 돈 한 푼 오가지 않은 거래엔 계약서 따위도 작성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도 난 챙길 건 전부 챙길 거야. 네가 받아들이기로 한 이상 이제는 어쩔 수 없어.」
그해 여름에 나는 처음으로 안의 방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누추한 공간이었다. 우리의 ‘임대주택’보다도 작았고, 누렇게 뜬 벽지엔 벌레들의 배설물로 보이는 검은 점들이 찍혀있었고, 먼지 냄새인지 무엇인지 모를 퀴퀴한 냄새가 났고, 그럼에도 눈으로 보기에 설거지나 청소는 비교적 잘 되어있는 편이었고, 하나뿐인 창문을 가린 커튼, 커튼의 자수가 아주 예뻤다. 파란 천 위로 하얀 꽃들의 뭉치가 솜사탕처럼, 끝나지 않는 한여름의 적란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하늘을 대신하듯. 내가 그 커튼을 젖히려고 하자 드물게도 안이 만류했다. 다른 세계로 빨려 들어가고 말거야. 안은 아무 말도 않았지만 가볍게 내 손목을 낚아챈 그 애의 손떨림이 마치 그런 종류의 두려움을 전하고 있는 듯했다.
「어둑어둑한 형광등이 문제인 것 같아. 새로 하나 사다 갈아 끼우면 방이 훨씬 밝아지긴 할 거야.」
내가 창가로부터 물러서며 말했다.
「갈 줄 알아?」
「그 정도야, 뭐.」
우리는 동네 슈퍼에서 길이가 짧은 형광등 하나를 사왔다. 비록 안의 집을 밝히게 될 형광등이었지만 내가 한 제안이었으므로 내가 돈을 냈다. 연인으로서 나의 첫 선물인 셈이었다. 안의 집엔 의자가 하나도 없었으므로 우리는 교과서들을 쌓아올려 발판 삼기로 했다. 나는 책을 밟는다는 행위에 고지식한 저항을 느꼈지만, 안은 그런 건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내게 말했다.
「어차피 제대로 읽지도 못 하는데 뭐.」
발바닥이 까무잡잡해진 하얀 양말로 나는 안이 교과서들로 쌓아올린 공든 탑을 짓밟았다. 그탑은 놀랍게도 내가 낮게 까치발을 들고 형광등을 간 후 바닥으로 내려올 때까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형광등을 새로 간 덕분에 방은 아주 환해졌고, 날씨 안내를 대신하는 커튼도 조금 더 맑은 내일의 날씨를 예보하게 된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보답해야 하지?」
「키스해줘.」
안이 물었고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여전히 어린애들이었던 우리는 무얼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나마 두 살 즈음 많다고 자부하던 내가 손을 뻗어 안의 오른손과 나의 왼손을 깍지 끼었을 뿐이다. 나는 이번엔 내 손이 조금 떨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조금 전과 달리 안의 손끝은 차분했다. 사실 손뿐만 아니라 그 애의 몸 전체가 새로 간 형광불빛의 밝은 세례를 받아 성자처럼 우뚝했다.
내가 잠시 멈추어있자 안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다만 잘 모르는 동물을 만질 때처럼 경계하며 다가와 먼지 입을 맞추었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안의 혀가 힘 있게 파고드는 것을 느꼈고, 그 혀끝이 미처 스스로도 깨닫지 못 했던 어금니 밑 구내염 자리에 맞닿는 순간엔 소스라치게 놀라 나도 모르게 깍지 낀 안의 손을 으스러트릴 듯 힘을 주고 말았다. 그것은 명백한 거부반응이었으나, 되레 안은 나의 반응을 아랑곳 않고 잇몸의 다른 부분과 미묘하게 질감이 다른 구내염 난 자리를 집요하게도 괴롭혔더랬다. 그건 일종의 치킨게임이었고, 끝내는 버티지 못 하고 내가 먼저 떨어졌다. 아픈 것을 참지 못 한 바는 아니었다.
「첫 키스는 비릿한 피 맛이 나는구나?」
안이 입맛을 다시듯 자기 입가에 묻은 타액을 핥아내며 말했다.
「그건 내 입병 탓이야.」
「그런가? 그럼 언니는 어떤 맛이 났는데?」
어떤 맛? 나는 조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맛이라는 개념에 맞추어 생각하려고 보면 무언가 일전에도 경험했던 유사한 맛이 있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 그러고 보면 그 일도 마른장마와 무더위가 지속되던 어느 여름의 일이었다.
나는 안과 마찬가지로 천천히 입맛을 다시고 약간 흐트러졌던 옷매무새를 정돈하며 대꾸했다.
「혹시 개구리 먹어본 적 있어?」
21.
어째선지 나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여름방학이 끝이 났음에도 집밖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설마하니 좁고 벌레가 들끓는 우리의 임대주택에 애착을 갖기 시작했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누구도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안과 다시 만날 날만을 고대하다가 맞이한 열여섯도 의미가 무색했다. 더 이상 내게 나이는 의미가 없었다. 학교를 가지 않는 동안 불규칙한 생활을 반복했다. 그나마 규칙적인 일상이 있었다면 밤을 새는 일이었고, 덕분에 이전에는 몰랐던, 자정을 넘기면 세상이 추상의 세계가 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추상은 글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나는 글을 읽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어서 두서없는 글들을 적기 시작했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눈은 점점 더 나빠졌다. 한편 밤을 새고 나면 여기저기 돋아나곤 하던 구내염과 그 나은 자리를 혀끝으로 더듬어보는 일은 안과 보냈던 다른 모든 시간들을 망각하게 해주는 환각제와 같았다. 나는 그 생활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다행히 중학교는 어찌어찌 졸업할 수가 있었다. 나는 그 가을과 겨울을 단 한 번도 안의 얼굴을 보지 않고 흘려보냈다.
22.
고등학생에겐 생전 듣도 보도 못 한 기숙사라는 세계가 존재했다. 내가 어쩌다 그런 위험천만한 환경에 들어가길 선택했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안과의 사이에 있었던 일로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니었나 싶지만, 결과가 좋았으니 만사 오케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의 기숙사는 육인 일실이 원칙이었으나 입사한 전체 인원이 육의 배수에 하나 못 미쳤던 덕에 마지막 방을 배정받은 우리는 다섯이서 지낼 수 있었다. 내 인생에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또 언제 있었는지 반추해보면 아마 이에 준한다고 할 만한 일도 없을 것인데, 놀랍게도 이 네 명은 모두 사교적이고, 포용적이고, 심지어 헌신적이었다. 물론 다소 위계적이고 강압적이었던 학풍이 그 애들로 하여금 그러한 생존전략을 취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으나 이유야 어찌됐건 아주 사소한 트러블의 새싹마저 짓밟아 없애려는 그 노력의 최대 수혜자는 의심할 여지도 없이 나였다. 나는 마치 모두 같은 학년이었던 그 애들의 막내 동생이라도 되는 양 온갖 배려를 받고 살게 된 것이다.
개중 송은 그 고교 일 년의 짧은 기간이나마 우리의 리더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송은 남을 돕는 법을 알았다. 아마 유니세프나 난민기구 같은 곳에서 일하는 데 최적화된 인물일 것이다. 송은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무조건적 원조가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송은 물론 그 자신이 무척 친절하기도 했지만, 그러한 노골적인 친절을 베풀거나 자기의 친한 친구를 소개해주기보다는 내게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법을 말해줬다.
「저열하게 미소 짓는 거야. 경멸과 존경을 함께 담아서. 자, 봐봐, 이렇게.」
두 검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던 송의 우스운 모습이 어쩜 그리 현학적으로 보였던지. 내가 그 애의 좋은 제자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애는 열성적인 선생이었다. 아무리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열심히 하면 무엇이든 배울 수 있다는 게 그 애의 신념인 것처럼 보였다. 나 참, 그게 얼마나 감사하던지.
연인이 있다는 사실을 숨긴 외도, 더군다나 스승과의 로맨스라니, 사실상 부도덕의 덩어리였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내 욕망에 충실하기를 택했다. 용기 있는 결단의 보상은 내 생에 전무후무한 평범한 연애의 행복이었다. 물론 학교 기숙사라는 폐쇄적인 공간 안에서 우리의 성향을 대놓고 드러낼 정도로 우리는 호기롭지는 못 했지만 그거야 뭐, 마치 사내 커플이라도 된 양 생각하기에 따라선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부분이었고, 그 외엔 평범하게 주말을 함께 보내거나, 우산을 함께 쓰거나, 담백한 향락을 공유할 수 있었음에, 나는 마치 내가 정상적인 연애를 하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 두 여인 사이에서 느끼는 죄책감 같은 건 희미하기 그지없었다.
23.
한편 그 즈음은 내가 글을 가장 열심히 쓰던 시기였다. 고등학교 수업이 상상 이상으로 어렵고 지루했던 탓이다. 처음에는 시를 몇 편 끼적여보는 정도였지만 점점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나의 통제 아래에 있는 구체적인 세계가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수업에도 집중하지 않고 빈 노트에 나름대로 플롯을 구성해보거나 멋들어진 글귀를 생각해보거나, 혹은 이따금 연필이 종이 위에 흔적을 남기는 일을 신기하다는 듯 관찰하곤 하였다.
「근데 왜 주인공이 다 남자야?」
송은 가장 먼저 내가 쓴 글들을 읽을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이었다. 사실, 그 시절엔 송 말고 다른 사람에게 내가 쓴 글을 보여준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창피한 일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나 아닌 것들이거든. 나랑 같은 성별로 하면 객관성을 확보할 수가 없잖아?」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송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노트를 덮어버렸다. 그 애는 파안하며 말했다.
「사실 난 너 아닌 것들엔 별로 흥미가 없어.」
사실은 그냥 읽기가 귀찮아진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계속 소년들의 이야기를 적었다. 송은 이제 내가 쓴 글엔 별로 흥미를 갖지 않는 듯했지만 나는 괘념치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의 연애전선에 어떤 이상기류가 발생한 것도 아니었으므로.
24.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에 안과는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고 지냈다. 그 애가 먼저 나를 찾아본 일이 있기는 했을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아무튼 나는 안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고도 나는 나답지 않게 끈기를 가져보았다. 나는 마치 안과의 기억을 지워보려는 듯 송과 입을 맞추거나 그 목소리를 기억에 아로새겼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내가 놀란 바는 모진 풍파를 모조리 견뎌낸 그 애의 각인이 선명하다는 바뿐이었다.
25.
「언젠가 섬으로 이사할 거야. 대학을 졸업하면……. 아니, 대학도 졸업할 필요가 없을지 모르지.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할 수 있는 게 분명 많을 거야. 날씨가 좋은 휴일엔 가까운 바닷가에 가야지.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좋아. 저녁놀이 질 때까지 온종일 명상을 하다가, 황혼이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거야. 집에는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지, 해물 향 가득한 식탁도 매혹적이지, 그리고 무엇보다, 섬의 밤은 따듯할 거야…….」
나의 스무 살은 미국의 해인 것으로 밝혀졌다. 물론 나 자신의 궤적은 다시금 집과 새로 발을 들이게 될 집 근처 대학과 송이 사랑해 마지않던 카페가 그리는 삼각형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두 여인이 미국으로 떠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보스턴으로, 송은 하와이로 향하고 있었다. 송의 경우엔 비록 가을까지 유예가 주어지긴 했지만 오히려 어느 날 불쑥 캐리어를 집에 들였던 언니보다도 송의 경우가 더욱 잔혹하다고 나는 느꼈다.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 시한부 선고를 내리는 것이 옳은지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이 옳은지, 그러한 의료윤리의 문제였다. 우리 관계는 불현듯 죽어가기 시작했고 냉혹한 의사는 우리의 사랑에게 앞으로 여섯 달 정도밖에는 살지 못 한다는 선고를 내렸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느니 차라리 여생을 즐기기로 했다. 그러나 물론 여유가 많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우리는 여전히 공부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야 물론 나는 그리 성실한 학생이 아니었지만 송의 경우는 달랐다. 그 애는 나보다 영어를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하필 하와이야? 잘은 몰라도 본토로 가는 게 돌아왔을 때 훨씬 유리할 거야.」
「글쎄, 어쩌면 나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몰라. 돌아온다 해도 아주 잠깐씩이거나, 아니면 다시 다른 섬을 찾아 떠나게 될 거야.」
나는 끝내 송이 왜 그리도 섬이라는 환경에 집착하는 것인지 알아내지 못 했다. 그러고 보면 사실 나는 송과 지내는 대략 삼 년 하고도 육 개월 정도의 시간 동안 송에 대해 거의 알아낸 것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알아내고자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송이 비행기에 오르던 날에 나는 뒤늦게 섬이 되었다. 패연히 쏟아지던 장대비는 비행기의 운항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 했지만 나를 망망대해의 한복판에 고립시키기에는 충분했다. 나는 그 유래 없던 대홍수를,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일기예보도 보지 않고 알고 있었던 듯했다. 고작 스무 살 나이에 나는 차오르는 습기와 관절의 건강이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경험하고야 말았다.
26.
요즘 같은 시대에 송이 굳이 값비싼 항공우편을 통해 편지를 보내는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송의 편지엔 북태평양의 따사로움이 실려 있었다. 편지봉투를 열면 그 안에 꾹꾹 담아두었던 햇볕이 일거에 쏟아져 나왔고 곱게 접힌 편지지의 골 사이론 그 해변의 모래알이 까맣게 내려앉아있었다. 편지봉투엔 이따금 몇 장의 사진이 동봉되어 있었고 그 사진들 스스로는 결코 찍은 사람이 누구라고 말해주는 법이 없었다. 송의 편지엔 북태평양의 따사로움이 실려 있었고 나는, 송이 그곳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사실에 질투와 안도가 뒤섞인 복잡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처음으로 억지를 부렸던 그 날처럼 안은 아무런 저항 없이 자신에게로 돌아온 나를 받아주었다. 삼 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얼굴 한 번 보지 않고 지냈던 것치곤 우리의 관계는 마치 누구 하나가 일주일 쯤 짧은 여행을 다녀온 것처럼 자연스러웠고, 어쩌면 조금 냉담했고, 달리 할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여전히 송에겐 안의 존재에 관해 아무런 말도 않고 있었지만 안에겐 지난 삼 년 간 있었던 일들에 대해 아주 조금쯤은 밝혔고, 마음에도 없는 사과를 했고, 이따금 송으로부터 오는 편지를 낭독해야 했다.
「참 우습지. 이렇게 시달리기 좋아 보이는 섬에 이렇게 팔자 좋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으니 말이야.」
안은 하와이가 어디쯤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안의 오른손 검지가 그리는 북태평양 한복판까지의 궤적은 아주 큰 타원형이다.
편지는 열흘에 한 번 꼴로 온다. 나는 심지어 안과 함께 그 편지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그러나 매번 특별할 것 없는 내용에 조금 실망하다가, 답장을 써볼까 망설인다. 하와이, 하와이, 미국, 영어, 해변과 열대의 태양, 하와이, 그리고 하와이. 그해 서울의 추위는 조용히 권태로웠고 나는 송에게 답장할 만한 소식이나 지식이 아무것도 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음을 끝까지 파헤쳐낸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한 번도 잡아본 적 없던 HB연필을 꼭 쥔 손끝이 희미하게 떨린다. 다행히 편지가 오고 가는 데에는 유예가 많이, 아주 많이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송이 굳이 값비싼 항공우편을 통해 편지를 보내는 이유를 나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27.
안은 삼학년이 되자마자 학교를 그만두고 내가 있는 서울로 왔다. 고백컨대 나의 종용이 조금 있었다. 그러나 물론 전적으로 내 의견이었던 것은 아니고 명백히 안의 결정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함께 살기 시작했고, 내가 학교에 있는 동안 안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이따금 들려오는 다른 이들의 소식들에 나는 기뻐하거나 동요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이 살기 시작한 이래로 키스 한 번 하지 않았고 아주 권태로웠다.
나는 관계의 회복을 원했다. 남은 연정 때문이라기보다는 책임감 또는 죄악감 때문이었다. 우리의 관계는 시작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내가 나쁘다.
어쨌든 빌미가 필요했다. 다행히, 거의 십 년의 간극이 있었지만 나의 입술 물어뜯는 솜씨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었다. 조심스레 입술을 물어뜯으니 피 한 방울이 입술 위로 번져갔다. 안도 그 모습을 보았다.
「피 나는데?」
「정말이네.」
나는 짐짓 모른 체를 하며 대꾸했다.
「핥아줘. 내 피를 핥아내는 건 좋아하지 않아.」
안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기는 했지만 그러면서도, 그쯤이야 뭐, 라고 말하듯 어깨를 한 차례 움츠려 보이곤 수고로이 입술을 움직여주었다. 그야 물론 나도 간만에 맛보는 쾌락이 썩 싫지 않았고 우리 사이엔 더 이상 처음으로 접문하던 그날과 같은 망설임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결여된 것을 감추기에 그 순간은 부족했던 것이 분명하다. 안이 내 입술로부터 떨어져나갈 때에 나는 마치 살점이라도 조금 떨어져나간 양 입술의 희미한 통증을 느꼈고, 그것을 줄곧 앓아오던 아프타성 구내염과는 조금 다른, 그러나 아주 크게 구분되지도 않는 어떤 입병의 일환이리라고 생각했다.
커튼 틈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이 무질서하게 활보하는 먼지들에게 각광을 비추었고 그 순간에 나는 그 먼지들의 활기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28.
이제 모든 것이 분리됐다. 짜릿하게 입 안의 신경계를 괴롭히는 입병만이 남았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무엇이 사랑인지 나는 도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어쨌든 통증과 사랑과 아름다움, 이 셋이 동의어가 아니란 것이 증명되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둘은 무엇으로 확인한단 말인가?
나는 오래 전에 숨겨두고 위치를 잃어버린 비자금 봉투라도 찾으려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책을 읽었다. 그러나 어디에도 내가 찾는 것이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모두가 슬펐고 모두가 괴로웠다. 아름답거나 사랑스럽다고 믿을 만한 것은 공상 속에서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엔트로피처럼 통각만 무한히 증식해나갔다.
나는 그 즈음 어렵사리 송에게 편지를 적어내면서, 더 이상 슬프거나 아픈 결말의 이야기는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후에 송에게서 온 편지에 그 다짐에 관한 언급은 달리 없었다.
29.
봄에, 보스턴에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언니는 무사했지만 언니가 이제 한국으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고 우리는 결론 내렸다.
언니가 귀국한 그날까지 나는 아직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집으로 내려가는 길은 동행할 수 있었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에, 생각해보면 아빠가 떠난 이후로 둘이서 같이 장거리를 이동해본 적이 처음인 것 같다고, 언니가 불쑥 말했다. 그러고 보면 정말로 그랬다.
내려가는 길에 나는 넌지시 언니에게 내 생활에 관해 말했다. 가령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과, 그것과는 무관하게 서로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미성년자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과, 앓고 있는 우울증에 관해 말했다. 언니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기는 했지만 동생의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어주었다. 하기야 언니는 언제고 내 말을 끊는 법이 없기는 했다.
「너 정말 괜찮기는 한 거야?」
「그럼. 멀쩡하지.」
나는 웃으며 대꾸했다. 언니는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긴 했지만,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당사자가 괜찮다고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언니는 잠시간 추궁하듯 눈빛을 보낸 이후에야 시선을 거두고 몸을 의자 깊숙이 묻었다.
「하기야, 그렇기는 하지. 사실 내 생활도 좋을 건 하자 없어. 적잖은 인종차별에 뭐 그리 썩 좋은 성적도 아니고 말이야. 주변엔 아무도 없고 사랑하는 사람은 멀기만 하고…….」
언니는 다소 과장스럽게 표정을 구기며 말했다. 언니의 푸념을 듣는 일이 있다니, 하고 내가 조금 놀라고 있자니, 언니가 덥석 팔걸이 위에 올려둔 내 손 위로 자기 손을 포개어 왔다. 언니는 순식간에 표정을 밝게 바꾸며 덧붙였다.
「그래도 뭐,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항상 어찌어찌 살아지는 법이지.」 하고.
언니는 입병의 통증을 모르는 사람이다. 그러나 뭐 사실, 입병 따윈 우리 삶에서 아주 조그마한 통증에 불과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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