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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5월 12일 부활절 일곱째 주일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찬송 38장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겠습니다.
찬송 20장입니다.
광고, 헌금, 기도입니다.
성경 계14:1-5절(신412)입니다.
성가대 찬양입니다.
제목: 하늘의 144,000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여기에 계신 우리 어버이들은 아브라함 언약의 사람인 야곱이 애굽의 바로(왕)에게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47:9)라고 말한 것과 같이 세상을 떠나실 날(별세)에 점점 다가가는 ‘험악한 세월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어버이들에게 카네이션 꽃과 맛있는 음식으로 우리의 감사와 존경을 드리면서, 오늘 본문(1-5)을 통해서도 절대 위로와 소망을 드리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앞에 있는 12-13장은 어린 양에게 패배하여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용과 그의 두 짐승이 미혹과 핍박을 통하여 성도들과 싸우는 환상들입니다.
이것들에 대응하는 14장에서 오늘 본문(1-5)은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거부하여 죽임을 당하거나, 짐승의 이름과 짐승의 수(666)의 표를 받기를 거부하여 매매하지 못하는 성도들에게 이 영적 싸움의 이미 승리한 결과, 즉 하늘에서 어린 양과 함께 한 승리한 그들(144,000)에 대하여 사도 요한이 보았고 들었던 환상과 설명입니다.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가 ‘현재 어디에도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그 답을 오늘 본문에서 발견하기 원합니다.
1. 하늘에서 승리한 어린 양과 함께한 144,000입니다(1).
“또 내가 보니, 보라 (그)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여기서 요한이 보며, 우리에게 ‘보라’고 외친 환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그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1a)의 모습입니다. 여기 ‘섰고’는 완료시제 분사로 과거로부터 계속 서 있다는 의미이며, ‘시온 산’은 어린 양의 출애굽에 의하여 ‘새 언약의 하늘의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갈4:24, 히12:22). 이것은 모세의 출애굽에 의하여 옛 언약의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시내 산’과 대조됩니다(갈4:23).
그래서 ‘그 어린 양’에서 우리말 성경에서 번역되지 않은 관사 ‘그(토)’가 이미 승리하신 어린 양에 대한 말씀을 가리킵니다(1:5, 1:18, 5:5). 12:4-10절입니다.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그렇습니다. 그 어린 양이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그의 죽음을 통하여 용과 그 사자들의 참소에 대하여 이미 결정적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골2:14-15절입니다.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세 번이나 그들에 대한 그의 승리(15)와 그 승리의 원인(14)을 반복합니다. 그의 승리의 이유는 그가 십자가로 율법 언약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의 결과가 그의 부활, 승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심입니다. 행2:36절입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를 대표하신 어린 양이 우리를 위하여 우리 원수들과 싸움에서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영원히 승리하셨습니다. 이 복음(기쁜 소식)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둘째는 ‘시온 산에 서 있는 그 어린 양과 함께 그들의 이마에 쓴(기록된)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가진(있더라) 144,000’(1b)의 모습입니다. 여기서 ‘쓴(기록된)’은 하나님에 의하여 과거에 기록된 결과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완료시제 수동태 분사입니다.
‘144,000이 시온 산에 서 있는 그와 함께 있다’라는 것은 그들도 어린 양과 함께 출애굽 하여, 즉 이미 승리하여 하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144,000이 누구일까요? 주 안에서 죽은 성도들(13)만이 아니라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의 전체를 가리킵니다. 이는 이들은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자들’(3)과 동격이며, 4-5절의 내용도 특별한 집단이 아니라 모든 성도에 대한 설명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늘의 144,000에 우리가 죽어서도 가겠지만, 현재 우리는 이것에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신천지를 포함한 이단들은 ‘144,000’을 성도 가운데서 특별한 자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5절의 ‘처음 익은 열매’의 의미를 추수 때 나머지 추수와 구별된 ‘첫 열매’로만 이해하며(출23:19, 고전15:20, 23), 이스라엘이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께 바쳐진 “여호와를 위한 성물 곧 그의 소산 중 첫 열매이니”(렘2:3), 즉 세상과 구별된 그의 언약 백성 전체를 의미한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1:18절입니다. “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그러므로 여기의 144,000은 하나님의 종들로 그 이마에 인침을 받은 7:4-8절의 144,000과 동일합니다. 다만, 후자는 지상에서 전투하는 하나님의 군대(백성, 교회)를 상징하지만, 전자는 하늘의 승리한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7:9-14절에서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7:14), 즉 하늘에서 ‘흰옷을 입고 종려 가지를 든 셀 수 없는 큰 무리’(7:9)인데, 여기서는 ‘그 어린 양과 함께 144,000이 시온 산에 서 있는’(1) 모습입니다.
성도 여러분, 땅 위에 있는 전투하는 144,000(7:2-8)과 하늘의 144,000(14:1) 사이에서 우리의 죽음이라는 구별은 하나님의 관점(새 언약의 관점)에서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함께 이미 하늘에 앉아 있습니다(엡2:6, 빌3:20, 골3:4). 히12:22-24절입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된 장자들의 모임과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과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여기 ‘이른(프로셀렐리마테)’(22)는 ‘너희가 앞으로 너희가 이를 곳’이라는 미래시제가 아니라, ‘너희가 이미 그곳에 이르러 그 결과가 계속되고 있다’라는 완료시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용과 두 짐승과 영적 싸움을 하는 성도들(12-13장)이 현재 어린 양과 함께 144,000이 있는 시온 산(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미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하늘에 들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13장) 동시에 이미 승리하여 하늘에 들어가 있습니다(1).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주 안에 있는 우리는 이 영적 싸움에서 이미 이긴 자이며, 이기고 있는 자이며, 이길 수밖에 없는 자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기는 자입니다.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한 하늘의 144,000에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축복입니다.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우리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2. 하늘의 144,000이 부르는 승리의 새 노래입니다(2-3).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하늘에서 나는 소리’(2)는 승리한 144,000이 부르는 새 노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다’(2)라는 것은 그 승리의 함성이 온 우주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나게 크다는 의미며, ‘거문고를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다’(2)라는 것은 그 승리의 함성이 아름답고 즐거운 곡조의 합창 소리였다는 의미입니다.
144,000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는 부른다’(3a)는 것은 승리한 그들이 하늘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144,000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3b)입니다.
여기 ‘속량함’이란 돈을 주고 물건이나 종을 사서 자기 소유로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어린 양이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십자가에서 그의 피(생명)로 144,000을 사서 그와 그 아버지의 소유로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144,000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1)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새 노래의 내용을 언급 않지만, 그 내용은 ‘속량함’일 것입니다. 5:9-10절입니다. “그(네 생물과 24 장로)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어린 양의 피로 땅에서 속량함을 받아 하늘에서 그와 함께한 우리(144,000)는 승리의 새 노래를 즐겁고 당당하게 불러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승리자인 우리가 드리는 영과 진리의 예배(요4:24)입니다.
3. 승리한 144,000의 특성입니다(4-5).
주 예수의 복음으로 어린 양과 결혼(연합)한 144,000은 어린 양의 승리를 그와 함께 소유할(1-3) 뿐만 아니라, 그의 성품을 닮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4-5). 이것이 새 언약(복음)의 약속입니다.
첫째로 ‘이 사람들(144,000)은 여자들과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한 자들’(4a)입니다.
여기서 ‘여자들’은 세상의 강한 유혹들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독신주의자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순결한, 즉 우상 숭배하지 않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결한 자(처녀)들이기 때문입니다’(4a). 여기서 ‘순결한 자(처녀)’라는 표현은 그리스도(남편)의 아내를 묘사하는 방법입니다(고후11:2).
성도 여러분, 우리(144,000)는 주 예수의 복음으로 어린 양과 결혼하여 그의 아내이기에, 세상과 구별된 자들, 즉 하늘에 속한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둘째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들’(4b)입니다.
여기서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라는 표현은 ‘따라가는 자들’에게 그의 인도 방향이 미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암시합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리 불확실해 보이는 상황에도 우리(144,000)는 의심하지 않고 오직 어린 양을 믿고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어린 양이 우리의 모든 것(영광은 물론, 고난과 죽음까지)을 책임지시는 선한 목자요, 남편이요,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사람들 가운데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4c)입니다. 여기서 ‘처음 익은 열매’는 앞으로 추수할 많은 열매 가운데서 ‘첫 열매’(고전15:20)라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 바쳐졌다’라는 의미로서 모든 성도를 가리킵니다(렘2:3, 약1:18).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144,000)는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어린 양의 피로 속량함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바쳐진 첫 열매입니다. 즉 우리(144,000)는 그들의 소유가 된 자로서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 수 없고 하나님과 어린 양을 위하여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이것이 속량함의 의미이며, 복음의 진리이며, 창조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5)입니다.
여기서 ‘거짓말’은 사탄에 대한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승리, 즉 사탄의 패배를 계시하는 어린 양의 복음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요일2:22). 즉 ‘거짓말이 없다’라는 것은 복음의 진리를 믿고, 그것에 어긋나는 것들을 진리로 알고 말하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우상들은 복음에 대하여 거짓말을 계속 말합니다(13:14).
그리고 ‘흠이 없다’라는 것은 어린 양의 피로 속량함을 받아 의롭다 함(칭의)을 받았고, 결국 완전한 자(영화)들이 될 것을 의미합니다. 롬8:29-30절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어린 양과 연합한 우리(144,000)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계십니다(롬8:28).
성도 여러분, 천지가 흔들려도 새 언약대로 우리는 결국 부활의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아들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1-5)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영적 싸움을 하는 우리가 ‘현재 어디에도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으셨나요? 우리는 이미 출애굽(승리) 하신 어린 양과 함께 하늘에서 승리의 새 노래를 부르고 있는 ‘144,000’입니다.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을까? 휴거 할 수 있을까? 이러한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이미 승리하였고, 승리하고 있고,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새 언약(복음)의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 싸움은 이것에 대한 진리냐 거짓이냐의 싸움, 즉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용과 그의 우상(세상)들은 계속 거짓말을 할 것이며, 우리 안에 성령님은 계속 진리라고 계시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적인 지혜와 그 복음으로 변화된 생각(총명)으로 분별하셔서(13:18) 어린 양의 복음(새 언약)에 대한 믿음으로 선한 싸움에서 승리의 새 노래를 힘차게 부르시기 바랍니다.
계12:11절입니다.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새 언약)에 대한 오직 믿음만이 승리의 방법입니다.
성도 여러분, 어버이 주일에 우리 어버이들에게 다시 한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찬송 357장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