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사에서 1980년경 부터 시작한 대하드라마 '한국의 여로'는
80년대 초중반 한국의 내밀한 모습을 드러내는 자원의 보고입니다.
그 처음으로 1981년 여수를 볼까 합니다.
겨우 35년이 지났는데, 과연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 아래 사진들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표지는 이렇습니다. 분명 거문도 아니면 백도일 것 같습니다.
당시 여수의 대명사는 오동도 그리고 거문도 백도 등이라 얼굴마담도 돌아가며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지금 사람들이 제일 관심있는 '맛집'의 개념을 담은 사진입니다.
당시 여수에는 여수 1,2,3 식당이 있었습니다.
술값- 맥주 1400원, 정종 6000원만 내면 이런 안주가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걸 '실비집'이라고 했던가요.
몇몇 안주는 저도 한눈에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얼마나 맞출지 모르겠습니다. 답은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상추와 빨간 고추로 데코레이션을 했군요.지금과 달리 와사비장이 아니라 그냥 장인 듯 같고요.
술은 무엇일까요?
석궁이라는 경양식집도 있고요.
비프스텍. 콤비네이션 피자파이^^ 치즈버그 샌드위치^^...이름이 그때 스럽습니다.
그리고 일이삼청주센터. 아항 그러니까 이곳은 기본이 청주였군요.
화면을 클릭하면 사진속 안주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다.
샛서방. 문어, 고동, 생선전, 돼지수육, 설탕에 저린 대추, 천엽. 간.전복회. 숭어회.완두,
부추김치. 감자샐러드 삼치구이.말린 장어구이. 붕장어회. 성게 알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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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원에 저런 호사를 부렸다니...그때의 한국인들은 복받았습니다.^^
당시 여수가 자랑하는 맛은 이랬습니다.
지금은 그때랑 얼마나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얼만큼 달라졌을까요?
여기서 달라졌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우리는 다 알 수 있습니다.
허해지고, 줄어들고, 없어지고.....
80년대 여수에서 중학교 이상을 보낸 이라면, 이들 중 많은 데에서 추억이 있을 겁니다.
지금에야 속절없이 바뀌었겠죠...
빨간 바지.
차라리 벗을지언정, 지금도 대담한 패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1967년 시작되었다고 하네요. 진남제.
14회이니 1981년 막 전두환 정권때입니다.
지금은 전국 어디라 할 것 없이 축제가 외부인의 주머니를 노리는 컨셉
그래서 주민들은 축제의 의미대로 하자면 소외되고 말았는데.
그때는 이렇게 시민들이 주인공인 걸로 보입니다.
보시다시피 똑같은 모델입니다.
이들은 사진작가와 함께 한 일행으로 보입니다...
그때 빨간바지 만큼 화려했던 텐트색깔.
몇년전 용인의 한 텐트촌에 가보았는데.
하나같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짙은 갈색톤의 일본 스노피크 스타일 일색이더군요.
딱하게도.
어디에 사진찍어 놓은게 있는데...
가보지 않았지만. 제일 궁금한 오동도.
지금은 여수를 대표하는 곳은.....'여수 밤바다'입니다.
당시 오동도 안에도 곳곳에 식당들이 있어서 즐길 수 있었다죠. 1979년때까지..
입장료 300원.
여수관광호텔에도 슬롯머신이 있었군요.
사진속 설명이 좋습니다. '파도실은 노래대잔치' 1981년 풍경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섬에 있는 식당들은 대부분 고깃배 들어오는 대목을 노리고 장사ㅡㄹ
간판은 식당이지만, 내용은 접대부가 있는 술집인 것이다.
거문도에도 서너 개의 그러한 식당이 있지만, 해동식당은.....~~~
거문도에도 쇠뼈를 고은 곰탕이 있었군요,.....~
향일암은 영구암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
밤젓이라는 젓갈을 저는 처음 들어봅니다만 전어창자를 가지고 만들었다니 알겠습니다..
전어가 그때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던 시절입니다.
남해 창선도 사람들도 창자만 빼고 바다로 던졌다죠...
'방죽포 해수욕장.. 저만치 휴게실이라는 간판의 3층 식당겸 여관.
지금도 있으려나.....
이상 1981년 여수 이야기이고요.
1970년대 중반 사진으로 보는 여수로 이어집니다.
참고로 여로旅路라는 말은 은근히 아름다운 말인데요.
일본에서 만든 조어이죠.
조선시대에는 이런 단어가 없었습니다.
'
첫댓글 1981년이라... 고 1. 서울 관악구 대방동(현재는 동작구임) 성남고등학교 신입생. 경남 의령에서 우 순경 사건(경찰이 권총으로 마을 전체를 학살한 사건)이 났던 해. 서울 여의도에서 '국풍 81'이 열렸고, 여기서 가수 이용씨가 '바람이려오'로 금상을 타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시절이군요.
한데 가격 혹은 수치에 민감한 저는 음식 가격에 눈길이 갑니다. 기사에는 해장국이 700원이라고 했는데, 이 가격이 정말로 싼 것이었는지 말입니다.(물론 가격 대비 맛이나 양과 비교할 때는 달라질 수 있지만...)
당시 서울 버스비가 일반 100원이었고, 라면 한봉지 역시 100원이었습니다. 요즘 서울 시내버스가 카드로 1250원일 것이고,
라면 한 봉지는 800~1500원 정도 합니다.
버스비 상승분과 동일 비교를 한다면, 해장국 가격은 1만원 정도 하는 것이고, 가장 싼 라면과 비교하면 5600원 정도 하는군요.
맛과 양에 비하면 싼 것인지 몰라도, 여전히 서울 어딘가에는 해장국이 3000~4000원 하는 곳도 있으니 아주 싸다고만은 볼 수 없을 듯 합니다. 물론 양과 맛을 비교하면, 씬 것일 수 있겠네요.
당시 서울 관악구의 분식점 라면 값이 200원이었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난 뒤 1984년 상급학교에 진학했을 때 학교 구내식당의 한 끼 식사는 400원이었지요. 그립다, 그 시절...
사실 책에 실린 가격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여 제 친구하고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기억에 의하면....
1981년 서부 경남의 함양군 읍내에서 그해에
짜장면 가격이 300원에서 350원으로 인상되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가격이 어떤 의미인지는 더많은 글을 올리면서 정리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미의산책 그립다^^ 라는 말이 정말 그립네요.....
미의 산책님께서 다시 돌아가셔서 학계에 머물렀다면,
역사학계에 치열한 토론과 연구 분위기를 만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학계뿐 아니라 책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에 의하면....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일도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자기의 생각이라는 거...
어린 아해들에게도 '관점'이 무슨 말인지 심어주었을 것 같습니다.......
@모자이크-등산박물관 자장면 값 300~350원... 다시 그립습니다.
그리고, 저에 대한 평가는 과찬이십니다. 이제 그저 농부로 살 뿐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특히 그리워하는...
연말 잘 보내소서...